제34화
SNS 반응은 뜨거웠다.
기존 남자 아이돌 그룹에서 본 적 없던 컨셉. 거기다 티저 공개와 함께 바뀐 데이즈의 공식 홈페이지까지.
어린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디자인의 홈페이지는 팬들에게 ID의 변태력을 논하게 했다.
‘옷 입히기 게임이라니!’
과연 아이돌 명가다운 엄청난 기획력. 컨셉이 인형인 만큼, 작정하고 팬들이 즐길 수 있는 컨텐츠를 제공하겠다는 걸까.
처음 경험해보는 자본주의 마라 맛에 뱁쌔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코드를 조금 읽을 줄 아는 그녀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숨김 처리되어있는 컨텐츠가 풀어지게끔 개발되어있는 정황을 포착했다.
지식의 한계로 숨겨진 주소까지 찾아내진 못했으나, 인트로가 이 정도 퀄리티라면 숨겨진 페이지들도 필시 엄청날 것.
정말 일부 팬들의 바람대로 멤버들을 대상으로 한 옷 입히기 게임이 제공될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앨범 사양과 예약판매 공지가 동시에 떴다. 뮤직비디오 티저에서 나왔던 인형 상자와 똑같이 생긴 커버는 팬들의 구매욕을 자극했고, 그는 곧 예약으로 연결됐다.
- WANT ME 앨범 사양 ☞ 커버 1종, 엽서 6종, 페이퍼 돌 카드 6종, 포토 카드 12종, 초도 한정 포스터 7종 (단체 포함)
- ID 일 잘하네~ 결제 완료 (카드 긁는 짤)
- 17x25cm 앨범 왜 이렇게 커?ㅋㅋㅋ
- 내 생각이지만 커버 앞부분 투명한 거 봐서 엽서를 저기 꽂을 수 있는 거 아닐까? 그럼 티저에 나온 인형 상자랑 완전 똑같아
└ 미친 이거네
- 않이... 포카 벌써 미쳤다구요ㅠ
- 페이퍼돌 카드? paper doll??? 애들 종이 인형이라니 사양 처 돌았다
그러나 ID에서 준비한 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날 자정이 되자마자 데이즈의 공식 홈페이지가 또 한 번 모습을 바꾼 것이다.
옷장 옆으로 걸려있던 여섯 개의 빈 액자. 개중 하나에 멤버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액자를 클릭하자 분홍색 머리에 흰 티셔츠를 입은 청의 정면 사진이 팝업으로 뜬다.
얼굴에 붙은 스티커만 아니었으면 증명사진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
활성화된 화살표를 누르자, 다른 의상과 다른 구도로 찍은 몇 장의 사진이 더 보여졌다.
그렇게 하루에 한 명씩 공개하고 나자, 다시 돌아온 월요일. 팬들의 기대 속에 데이즈의 리얼리티 5화가 방영됐다.
* * *
[EP.5|우리의 몰카는 시작됐어! : 녹음실에 백야를 가둬라|DASE HAPPY DAYS]
놀란 백야와 케이크를 들고 신나 하는 멤버들의 모습이 담긴 썸네일.
[평화로운 데이즈 연습실]
[5월 2일. 백야 생일 1시간 전]
거울을 마주 보고 선 데이즈. 멤버들은 안무가의 구호에 맞춰 동작을 따라 하고 있었는데.
[안무가 : 원, 투, Want me. 따따따.]
여섯 명의 발소리가 시차를 두고 공간을 울렸다.
간간이 들리는 운동화가 바닥을 끄는 소리. 거울 너머를 보는 멤버들의 눈이 진지하다.
[유연 : 형, 저 질문 있어요.]
[안무가 : 뭔데?]
안무를 따라 하던 유연이 손을 들었다. 그의 질문에 다 같이 귀를 기울이는 멤버들.
방금 배운 동작이 헷갈리는지, 자신이 이해한 게 맞는가 물어보는 유연과 자세를 봐주는 안무가. 나머지 멤버들도 해당 부분을 다시 되짚어 보며 집중한 모습을 보였다.
장면은 중간중간 계속해서 끊어졌다.
아무래도 미공개 곡의 안무 연습인 만큼, 음원이 나온 부분이 잘려 나간 모양이었다.
[청 : 그냥 오른쪽으로 많이 가면 안 돼? 얘네 부딪힐 거 같아.]
[백야 : 저랑 율무랑 너무 가까운 것 같긴 해요.]
[율무 : 일부러 많이 온 거 아니야? 나랑 가까워지고 싶어서.]
백야와 눈이 마주친 율무가 깨물하트를 앙 물어 보였다.
틈만 나면 걸어오는 장난에 이제는 이골이 난 백야. 이를 악문 그가 조용히 주먹을 쥐어 들었다. 거기서 한마디만 더 해보라는 경고였다.
그러나 율무는 오늘 평소보다 기분이 좋은 상태. 기어이 한마디를 더 보태고.
[율무 : 요즘 우리 애가 너무 난폭해졌, 악!]
[민성 : 그러게 왜 자꾸 가만히 있는 애를 긁어.]
기어이 한대 얻어맞은 율무가 팔뚝을 움켜쥐며 바닥으로 무너졌다.
백야의 포카 사진을 대신 제출해주며 얻은 까방권은 이미 다 쓴 지 오래. 엄살을 부리며 드러누운 율무를 공굴리기 하듯 반대편으로 마구 밀어내는 백야가 보였다.
장면은 잠깐 끊어지고.
[Now playing : 놀이(No Games)]
이번에는 데뷔곡에 맞춰 안무 연습 중인 멤버들의 모습이었다. 마치 한 사람이 추는 것 같은 발소리는 완벽한 합을 자랑했다.
- 안무 영상 발소리는 언제 들어도 짜릿! 이 조명 온도 습도... 그리고 이 쾌감
- 소리 딱딱 맞아떨어지는 거 너무 신기하다
- 놀이 안무 영상! 존버는 승리한다ㅠㅠ
- 율무랑 백야 완전 찐친이네ㅋㅋ
[잠시 후, 데이즈만 남은 연습실]
남경이 백야를 불렀다.
[매니저 : 백야야. 프로듀서님이 잠깐 보자고 하시는데.]
[백야 : 저만요? 왜요?]
[매니저 : 애드립 몇 개만 추가로 녹음했으면 하신다는데. 지금 시간 괜찮지?]
고개를 끄덕인 백야가 멤버들에게 다녀오겠다 인사했다.
손을 흔들며 응원해주는 데이즈. 스튜디오에 도착한 백야는 곧장 녹음실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매니저 :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금방 데리러 올게요.]
[작곡가 : 천천히 오셔도 됩니다. 이참에 좋은 거 몇 개 더 건져 볼 생각이라.]
두 사람의 알 수 없는 대화가 오가고. 부스 안에서 헤드셋을 낀 백야는 유리 너머만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바깥의 대화가 하나도 들리지 않아 어리둥절 모드였다.
남경이 나가고, 남자가 버튼을 누르자 초록색 불이 들어오며 바깥의 소음이 헤드셋 너머로 들려온다.
[작곡가 : 백야야, 애드립 몇 개만 딸게.]
[백야 : 네.]
[작곡가 : Want me 2절 싸비 부분, 거기 하나만 더 올릴 수 있겠어?]
해당 부분의 원래 음은 3옥타브 도.
목을 풀며 작곡가가 요청한 부분을 몇 번 연습하던 백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야 : 네, 해볼게요.]
그리곤 쉽게 해낸다.
3옥타브 레.
작곡가 역시 백야가 해낼 줄 알았는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다시 한 번 눌러지는 버튼.
[작곡가 : 잘하네. 하나 더 올려볼까? 무리하진 않아도 돼.]
[백야 : 아니에요. 해볼게요.]
3옥타브 미. 기성 가수들도 올리기 쉽지 않은 음역이었다.
그저 매니저의 부탁대로 시간이나 좀 끌어볼 생각으로 요청한 거였는데, 백야가 또 해내고 만다. 부드럽게 올라가는 고음에 작곡가는 살짝 놀란 눈치.
그는 ‘어라? 이게 되네?’ 하는 얼굴로 백야를 보고 있었다.
저놈 물건인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크게 될 놈이란 걸 깨달은 느낌. 남자는 방금 녹음한 부분을 한 번 더 재생시켰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백야 : 저… PD님?]
생각보다 꽤 오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남자. 그는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혹시나 해서 한 옥타브를 더 올릴 수 있겠느냐 물어보는데.
[백야 : 하나 더요?]
이번에는 백야가 당황한 눈치.
혹시 제 고음이 어디까지 올라가나 궁금하셔서 이러는 걸까. 짧은 순간 다양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리고는 3옥타브 파. High F를 쭉 뽑아낸다.
[작곡가 : 말도 안 돼. 완벽한 High F야…….]
남자는 이젠 대놓고 넋이 나간 얼굴. 실시간으로 댓글이 달리던 댓글 창도 할 말을 잃은 듯 조용했다.
- 미친......
- 와.....
- 남잔데 왜 계속 올라가..?
[작곡가 : 너 진짜 잘 하는구나?]
[감격에 말을 잇지 못하는 프로듀서]
저 음색으로 저 음역이 가능하다니. 사기였다.
분명히 녹음할 때까지만 해도 3옥타브 레까지가 마지노선이었던 것 같은데. 혼란스러워하던 남자는 이내 자기가 그 이상을 시켜본 적이 없구나 깨닫는다.
영문을 모르는 백야는 그저 눈치만 보며 기다리는 중. 녹음이 끝난 건지 알 수 없던 백야는 그가 나오라 해야 나갈 수 있었다.
[백야 : …다시 할까요?]
[작곡가 : 어? 아니야, 잘했어. 이번에는 다른 거 몇 개만 더 하자.]
[백야 : 네.]
[작곡가 : Yeah를 슬프게, 아주 슬프게 하는 거야. 막 듣자마자 코끝이 찡할 정도로.]
[백야 : ……예?]
난해한 요청에 백야의 평정심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이대로면 금방 끝나겠다 생각한 남자가 방법을 바꾼 것이다.
그 시각 연습실에 남아있던 멤버들은 다른 준비로 분주했는데.
[유연 : 빨리 숨어, 숨어.]
[청 : 12시 넘었어! 생일이야!]
[지한 : 불 끈다?]
[율무 : 잠깐만! 나 모자, 고깔모자 없어졌어!]
[민성 : 뒤에 있잖아. 빨리 이리 와.]
VJ들도 데이즈와 함께 연습실 구석으로 흩어져 숨은 상태. 마지막으로 불을 끈 지한도 자신의 자리로 곧장 찾아가며 연습실은 어둠에 휩싸였다.
한편 백야를 데리러 온 매니저에 녹음을 마무리하는 남자.
[작곡가 : 수고했어. 백야 이제 나와도 돼.]
마지막에 연달아 녹음한 슬픈 Yeah와 동물 소리는 백야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덕분에 연습실로 돌아가는 내내 수상한 낌새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백야 : 작곡은 진짜 머리가 좋아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개웃기네ㅋㅋㅋ 편견이 너무 없는 거 아니냐고
- 진심 편견 없는 아이돌 1위ㅋㅋ
- 너무 귀여워ㅠㅠ 참새 소리에서 눈치챌 줄 알았는데
- 동물의 왕국 OST도 아니고 사자 울음소리를 왜 녹음해요ㅠ
- 사자랑 참새 음원 풀어 주세요ㅠㅠ 울 애기 사자 크와앙 거리는 거 모닝콜 하고 싶어! 어흐흑...
- 작곡가 머리가 좋은 게 아니라 그냥 니가 당한거야ㅋㅋㅋ
- 울 복숭아 순수 그 자체.. 이 정도면 사탕으로 유인 가능하겠는데?
- 너무 열심히 해서 더 웃겨ㅋㅋ
백야는 녹음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재잘거리고 있었다.
마침 울리는 남경의 핸드폰에 대화가 잠깐 멈추고. 백야에게 연습실로 먼저 돌아가 있으라 한 그는 전화를 받으러 사라졌다.
홀로 연습실로 향하는 복숭아. 그런데 작은 유리창 너머가 캄캄하다.
[백야 : 어? 다들 어디 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