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문 앞에 멈춰선 백야가 안을 살폈다. 매니저에게서 별다른 말을 듣지 못한 그는 자신이 걸어온 복도를 슬쩍 돌아봤다. 역시나 남경은 보이지 않는다.
[백야 : …혹시 연락받은 거 있으세요?]
[VJ : 글쎄요. 잠깐 어디 간 거 아닐까요? 들어가서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담당 VJ도 아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일단 남경이 돌아올 때까지 안에서 기다리기로 한 백야는 문고리를 잡았다.
문이 열리고.
그대가 들어오는 순간.
파앙!
생일 폭죽이 터지며 일렁이는 촛불과 함께 등장하는 멤버들.
[단체 :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백야의~]
[백야 (놀란 햄스터) : !!!!!!]
[깜짝 생일파티를 준비한 데이즈]
불이 환하게 켜진 순간에도 백야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사이 재빠르게 다가간 청이 그의 머리 위로 정체 모를 물건을 덮어씌웠다.
초록색 이파리가 달린 분홍색 베레모. 백야를 닮은 복숭아 모자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잘 어울렸다.
[청 : Happy Birthday to you!]
격하게 끌어안는 청에 복숭아가 휘청였다. 청이 떨어지자 민성이 백야 앞으로 얼른 케이크를 내밀었다.
[민성 : 빨리 소원부터 빌어. 초 다 녹는다…!]
[유연 : 일단 불어! 불고 빌어!]
턱 끝이 파르르 떨리는 백야는 울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았다.
상당히 감동받은 모양인지, 몇 번 입술을 달싹이던 백야는 눈을 감고 빠르게 소원을 빌었다.
후우!
불어오는 숨결에 초는 심지를 아슬하게 남기며 꺼졌다.
[율무 : 와아~ 생일이다, 생일! 생일엔 뭐다?]
[청 : 생일빵!]
초가 꺼지자마자 생크림을 손가락으로 찍은 율무가 백야의 코끝에 묻히며 소리쳤다. 백야가 눈을 부릅뜨자 동시에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잡으러 가는 백야와 도망가는 율무. 그 뒤를 유연과 청도 합류하며 백야의 얼굴에 생크림을 묻혀보겠다고 혈안이 됐다.
[백야 : 이게 뭐야….]
잠깐 사이 생크림으로 엉망이 된 몰골. 유연이 복숭아 케이크가 됐다며 백야를 놀렸다.
미끈거리는 감촉 때문에 한껏 찡그린 얼굴. 그래도 기분 나빠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한 : 일단 이거로라도 닦아.]
[백야 : 고마워.]
지한이 물티슈를 가져와 건넸다. 민성은 바닥에 떨어진 분홍색 베레모를 주워 다시 머리 위로 씌워주었다.
[민성 : 너 이파리 떨어졌다.]
리더의 실없는 농담에 백야와 지한이 키득거린다.
[매니저 : 얘들아 사진 찍어줄게. 모여봐.]
스태프들 사이에 껴서 함께 축하해주고 있던 남경이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대충 얼굴을 닦은 백야와 멤버들이 그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셋을 세자 울리는 카메라 음.
여기까지가 백야의 생일날 공식 계정에 올라왔던 데이즈 단체 사진의 비하인드 스토리였다.
- 어쩐지 백야만 얼굴이 만질만질하더니 생크림 때문이었구나ㅋㅋㅋ
- 애들 관계성 너무 좋다ㅜㅜ
- 복숭아 베레모 박제 부탁드립니다. 제가 본 복숭아는 항상 이파리가 떨어져 있었다고욧!
- 리얼리티 50분 너무 짧아.. 한 5시간 해줘요....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화 예고.
[COMEBACK DASE]
[드디어]
[글로벌 핫 루키가 돌아온다!]
데이즈의 티저 영상 속 컷이 빠르게 지나가며 짧게 보여지는 뮤직비디오 촬영장.
[DASE MV 비하인드 대공개]
[8월 9일 PM 8:00에 만나요~]
다음 화는 일주일 후, 데이즈의 WANT ME 음원이 공개되는 다음 날 저녁이었다.
마지막 화라 그런지, 1시간 늦은 8시에 라이브로 진행된다는 공지와 함께 영상은 완전히 끝이 났다.
* * *
음원 공개 일주일 전.
사실상 데이즈의 컴백 활동은 오늘부터 시작이었다.
새벽부터 샵을 찾은 멤버들은 그사이 금발이 된 머리를 다시 분홍색으로 물들이는 중이었는데. 바로 오후에 있을 스케줄을 위해서였다.
“백야씨는 밝은색이 정말 잘 받는 거 같아요.”
드라이를 해주던 직원이 말을 건넸다. 감사하다며 미소 지은 백야는 자신의 정보창을 불러왔다.
Lv.9 백야 (동기화 중)
외모 : A
보컬 : A
댄스 : C
끼 : B
A등급이 두 개.
BADD로 시작했던 능력치가 지금은 AACB였다. 이 정도면 적어도 무능력으로 욕먹어 죽는 일은 없겠구나, 백야는 안심했다.
외모 등급 위로 손을 올리자 장착 중인 스킬 상세가 팁처럼 떠올랐다.
<얼굴 천재(A)>
: 전문가도 인정하는 잘생긴 외모.
살면서 죽기 전까지 절대 들어볼 일 없을 거라 생각한 단어가 눈앞에 떠 있었다. 이는 백야가 생일선물(스킬 뽑기 3회권)로 얻은 간만의 수확이었다.
‘그때 함께 뽑았던 게 아마…….’
<환불전문가(B)>
: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
<다이어트는 내일부터(C)>
: 자기합리화 능력이 향상된다.
백야는 고민할 것도 없이 <얼굴 천재(A)>만 남기고 나머지는 날려버렸다. 게다가 지난 6개월 동안 리얼리티 촬영과 컴백 준비를 번갈아 하며 스타 포인트도 꽤 모인 상태였다.
▷ 현재 보유 스타 포인트 : 6
졸업식 날 떴던 히든 퀘스트 <아이돌이 된 범생이> 와 연습실 전용 퀘스트가 두 개. 거기다 한 번의 레벨업으로 8점 가까이 모았었으나, 스트레스 지수 때문에 2점을 써서 현재는 6점이 남아있었다.
비활동기라 그런지 메인 퀘스트는 <뜨고야 말겠어!(2)> 이후로 여전히 비어있었는데. 멍하니 거울(정확히는 상태 창)을 바라보던 백야의 뒤로 유연이 다가왔다.
“남자는 역시 핑크지.”
거울 너머로 유연과 눈이 마주쳤다.
“벌써 끝났어?”
“응. 네가 마지막. 나머지는 먼저 옷 갈아입으러 갔어.”
유연의 말에 슬쩍 옆을 보자 텅 비어있는 의자들이 보였다.
“저희도 금방 끝나요. 픽서만 뿌리고 마무리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빈 의자에 걸터앉아 백야를 기다리는 유연. 그가 핸드폰을 꺼내 백야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뭐하냐 너.”
“다음 한백야 포카 월드컵에 나도 작품 한번 내볼까 하고.”
찰칵 찰칵!
카메라 소리가 제법 크게 울렸다.
셔터음이 들릴 때마다 제 쪽을 힐끔거리는 직원들 때문에 백야의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만해, 다 쳐다보잖아…!”
“아, 죄송합니다.”
유연이 냉큼 핸드폰을 넣으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곧 있을 데이즈의 첫 컴백 스케줄은 요즘 한창 인기 있는 예능 <전학 왔습니다!>의 촬영이었다.
평소 멤버들도 즐겨보던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출연이 확정됐을 때부터 다들 기대하고 있던 스케줄이었다. 그러니 아침부터 저렇게 기운이 넘칠 수밖에.
반면 저는 어떻던가.
너희는 아직 신인이니까 개인기 하나씩은 필수라는 남경의 말에, 백야는 요 며칠 잠을 제대로 잔 기억이 없다. 자나 깨나 개인기 걱정뿐이었으니까.
‘그냥 지금이라도 무난한 거로 바꿀까….’
사전 미팅에서 만난 작가님의 개인기가 특이했으면 좋겠다는 요청만 없었어도….
다른 멤버들은 뭘 할 건가 궁금해서 물어봐도 다들 비밀이라며 알려주지 않았다. 개인기는 개인전이라 이거지.
백야는 콧잔등을 찌푸리며 다짐했다.
‘에이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 * *
데이즈 컴백 이틀 전.
다음날이 출근임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보정작업에 한창이던 ‘백야현상’. 그녀는 백야의 팬들 사이에서도 꽤 알아주는 네임드 홈마였다.
홈마는 며칠 전 자신이 찍은 복숭아의 예능 녹화 출근 사진을 만지고 있었는데. 정각이 되자마자 울리는 너튜브 알람에 핸드폰을 집어보니 막 두 번째 티저가 공개된 모양이었다.
하이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예쁜 케이크 앞에, 마주 보고 앉아있는 청과 백야의 섬네일.
그녀는 작업을 멈추고 영상을 재생했다.
[DASE 데이즈 ‘WANT ME’ MV Teaser #2]
1차 티저 때와 같은 플럭 사운드.
테이블에 앉아 모닝커피를 마시는 백야와 케이크를 먹는 청. 카메라가 부드럽게 움직이며 거실로 나가자 모여있는 세 사람이 보인다.
체스 게임이 한창인 민성과 유연. 지한은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을 지켜보는 중이다.
폰과 킹만 남은 체스판이 비춰지고, 다시 움직이는 카메라. 위층으로 이어진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젖은 머리의 율무가 욕실 문을 열며 나왔다.
샤워가운을 걸친 그는 난간을 짚고 멈추어 섰는데. 몸을 숙여 아래를 향해 무어라 소리치는 율무.
그러자 멤버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각자의 자리로 빠르게 돌아간다.
천천히 줌아웃 되는 카메라.
커다란 저택 모형이 드러나고. 이번에는 진짜 방문이 열리며 여자아이가 달려들어 온다.
인형의 집 앞에 멈춰 선 여아.
작은 장난감 문을 열자,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는 데이즈가 보이며 영상은 끝이 난다.
- 날 데려가 줘 Want me
You want me too
[DASE]
마지막 티저까지 공개되고 난 뒤, 팬들 사이에서 데이즈의 이번 컨셉은 인형‘놀이’가 확실시되는 분위기였다.
- 데이즈 집 안에 있는 옷장이랑 현재 공홈 옷장이랑 똑같이 생김 (비교 사진.jpg)
└ 와 이거다 눈썰미 대박
- 인형 컨셉만으로도 돌았다 생각했는데 인형 ‘놀이’라니. 나 대가리 깬다
- 미미미친 율무 샤워가운이요?!
- 뮤비 맡겨놨으니까 빨리 주세요... 지금 이런 티저를 보여줘 놓고 우리한테 2주를 더 기다리라니? ID 인성 무슨 일이야
└ 진심 이거 살인미수임
└ 컴백 기다리다 숨넘어가겠다
- 앨범 너무 궁금하다ㅠㅠ 빨리 받고 싶어
- 그나저나 애들 팬싸는 안 하려나
“귀여워. 너무 귀여워.”
늘 예쁘고 귀여운 백야였지만, 이번 컨셉은 정말이지….
ID에서 우리 말랑이를 위해 기획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찰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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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night_by]
DASE 데이즈 ‘WANT ME’ MV Teaser 2 #백야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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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티저 영상 공유를 올린 그녀는 잠깐 추억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