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36화 (36/340)

제36화

때는 바야흐로, 여름. 아마 작년 이맘때쯤이었을 거다.

AIM 연하의 홈마였던 친구를 따라 ID 사옥에 갔던 그녀는, 더워 죽겠는데 무슨 아이돌 사진을 찍냐고 투덜대면서도 친구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치킨을 사준다는 말에 홀라당 넘어갔을 뿐.

친구가 사진을 찍는 동안 자신은 캠코더가 달린 삼각대 앞에 서 있기만 하면 됐었다.

완전 개꿀.

현장에 도착해보니 저 같은 사람이 꽤 보였다. 두리번거리며 영 집중을 못하는 게 저와 비슷한 재질.

강남에 무슨 K-POP 거리를 만들었다더니, 그게 하필 ID 사옥 앞이라 소속 연예인들이 홍보 겸 참석하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정문이 열리며 경호원을 대동한 연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 강연하다아악!!!!

한 팬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쏟아지는 함성. 홈마와 기자들의 플래시가 사방에서 폭죽처럼 터졌다.

“어우, 귀야.”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 유명한 AIM 실물이나 한번 보자는 생각에 그녀는 고개를 쭉 내밀었다.

그런데 이게 바로 운명이라는 걸까.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이 광기 어린 인파를 뚫고 역주행을 시도 중인 갈색 머리통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쟤는 뭐지?”

“자, 잠시만요. 저 좀 지나갈, 흐억!”

그녀의 인생에 영원히 지지 않을 덕질의 태양이 떠오른 순간.

백야현상이었다.

* * *

[보이그룹 “서머킹 전쟁” 첫 주자는 DASE, 컴백 쇼케이스]

컴백 D-1.

늦은 오후, 삼성동의 한 호텔에서 데이즈의 컴백 쇼케이스 겸 기자 간담회가 개최됐다.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등장하는 데이즈. 정해진 대형대로 선 멤버들은 리더의 구호에 맞춰 인사했다.

한 분씩 돌아가며 소개를 부탁드린다는 진행에 마이크는 가장자리에 서 있던 율무에게로.

“안녕하세요. 데이즈 율무입니다.”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순서대로 지한, 백야, 민성, 유연, 청까지 인사를 모두 마쳤다.

곧바로 이어지는 포토타임.

가운데로 모여 선 데이즈의 위로 플래시 세례가 쏟아지고, 이어서 이번 첫 번째 미니앨범에 대해 소개와 소감을 부탁드린다는 사회자에 민성이 마이크를 들었다.

“이번 미니앨범 WANT ME는 저희 데이즈 여섯 명의 다양한 매력을 최대한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그는 데뷔 후 첫 컴백이라 긴장도 많이 되고 사실 지금도 떨고 있다며, 열심히 준비했으니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덧붙였다.

“네, 민성씨 감사합니다. 그런데 지금 메이크업이 굉장히 독특한데요. 혹시 어떤 컨셉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멤버들의 얼굴 위로 붙어있는 반짝이는 스티커. 이번 질문에는 청이 대답했다.

“인형 컨셉이예요. 저희는 공장에서 막 나왔어요. 팬 여러분이 이제 저희를 가지고 놀면 돼요.”

‘……가지고 논다고?’

분명 회사에서 적어준 멘트는 저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백야가 긴장한 순간 옆에 있던 유연이 그의 마이크를 살짝 잡아당겨 설명을 더했다.

“인형 놀이가 컨셉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오늘 자정에 청이 말이 어떤 뜻이었는지 아실 수 있을 거예요.”

“네. 두 분 모두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사회자의 질문.

“그럼 곡 소개에 앞서서 데이즈 분들은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을 좀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지한이 마이크를 들었다.

“감사하게도 저희가 첫 리얼리티를 촬영하게 됐습니다. 덕분에 멤버들이랑 좋은 시간과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고요, 그 외의 시간은 주로 연습실에서 보낸 것 같습니다.”

깔끔한 대답에 몇몇 기자들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빠르게 타이핑했다.

이어서 곡 소개를 부탁드린다는 말에 백야에게로 넘겨지는 마이크.

“이번 컴백 타이틀곡인 WANT ME는 트로피컬 하우스와 힙합을 믹스한 팝 댄스곡으로, 신나고 청량감 넘치는 사운드가 인상적인 곡입니다.”

더듬지 않고 해냈다.

준비한 멘트를 실수 없이 마친 백야가 짧게 숨을 내쉬며 마이크를 내렸다.

“올여름 서머킹 자리를 노리는 데이즈. 그럼 이번 타이틀곡과 가장 잘 어울리는 멤버는 누굴까요?”

사회자의 즉석 질문에 당황한 백야.

‘마이크를 누구에게 넘겨야하지? 아니면 저한테 물어보는 건가?’

하얘진 머릿속에 어버버 거리는데, 민성이 대신 가져가며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백야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백야씨~ 어떤 점에서요?”

“일단 분홍색 머리가 제일 잘 어울리고요. 후렴 파트를 소화할 때 그 표정과 제스처들이 정말 상큼합니다.”

민성의 대답에 백야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깨물하트를 잇는 새로운 잔망을 볼 수 있냐는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마이크를 드는 율무.

“무대 위에서 복숭아 과즙이 터지는 장면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청이 손뼉을 치며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지한이 웃음을 참으며 백야의 등을 토닥였다.

이거 정말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는 자신감이라며 슬슬 마무리로 넘어가는 MC.

“자, 데이즈분들과 얘기를 나눠봤는데요. 앞으로의 활동 계획과 포부에 대해서도 들어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 질문에 멤버들의 시선이 민성에게로 향한다. 리더의 마이크가 들리고.

“네. 저희 첫 번째 미니앨범 WANT ME 정말 열심히 준비했으니까요, 많이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활동을 시작으로 올 연말까지 계획이 모두 정해진 상태라는 민성.

“<놀이> 활동은 모든 게 처음이라 너무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은데, 이번에는 더 자주 뵐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거라 예상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감사하다는 데이즈의 단체 인사를 끝으로 약 한 시간 동안의 기자 간담회가 끝이 났다.

[데이즈 쇼케이스, 6인 6색 인형으로 돌아온 ‘Doll dol’]

[데이즈 백야, 무대 위에서 복숭아 과즙 터질 예정]

[ID 역대급 신인 돌아온다!]

[컴백 데이즈 “팬들과 가까워지는 앨범 될 것”]

우호적인 타이틀의 기사가 쏟아졌다.

기사를 클릭하면 똑같은 옷과 머리를 한 데이즈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간혹 떨어진 스티커를 서로의 얼굴 위로 다시 붙여주는 멤버들의 모습이 찍힌 사진도 올라왔다.

- 아 미친 4시간 남음

- 스티커 새끼 일 잘하네^^ 그래 계속 그렇게 떨어져!

- 과즙 미쳤나ㅋㅋㅋ 백야 복숭아인 거 이제 공식이네

- 자정 WANT ME 뮤비 선공개, 저녁 6시 음원 공개, 8시 너튜브 라이브

└ 자정되면 공홈부터 달려가야지

- 가지고 놀라니..? 우리가 어떻게 놀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니

그리고 자정.

데이즈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됨과 동시에 공식 홈페이지가 바뀌었다.

* * *

[23:59:58]

탁!

0시로 바뀌기 무섭게 새로고침 되는 페이지. 자정이 되기 무섭게 팬들의 행동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먼저 뮤직비디오 파의 복쑹.

“시X 미친.”

기자 간담회에 나왔던 모습 그대로, 나란히 서서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정면을 보고 있는 섬네일. 신선한 충격에 욕이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왔다.

한편 비슷한 이유로 몹시 흥분 중인 또 다른 한 사람. 이번에는 공홈 파의 뱁쌔였다.

“꺄악! 이게 뭐야?! 미친! 개 미친! 돌았나 봐 진짜!”

F5를 누르자 공개되는 키치한 디자인의 게임 인트로. 샛노란 바탕에 하얀색 손 그림 레이스가 화면 테두리를 감쌌다.

[♥데이즈의 의상실♥]

깜찍한 간판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고, 미니 사이즈의 데이즈가 스티커처럼 곳곳에 붙어있었다.

티저 때부터 놓여있던 가운데의 옷장은 활짝 열린 상태. 새롭게 추가된 버튼은 오른쪽 아래에 활성화되어있었다.

게임 방법 위로 커서를 올리자, 하트 모양의 바늘꽂이 위로 핀이 꽂히며 마우스 오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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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즈를 예쁘게 코디해 주세요♡

1. 원하는 멤버를 한 명 선택한다.

2. 준비된 옷과 액세서리, 헤어 스타일을 이용해 예쁘게 꾸민다.

3. 저장한 이미지를 간단한 의상 컨셉, 해시태그(필수)와 함께 SNS에 공유한다.

#데이즈의상실 #WANTME

4. 당첨된 분께는 데이즈의 친필 사인 CD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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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시작

지금까지 이런 아이돌은 없었다. 단순히 컨셉일 뿐인가, 아님 ID도 데이즈에 진심인 걸까.

바뀐 홈페이지만 확인하고 뮤직비디오를 보려던 계획은 진작에 무산됐다. 게임 시작 버튼을 누른 뱁쌔는 또다시 바뀐 화면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멤버를 선택해 주세요!]

노란 바탕 위에 걸려있는 여섯 개의 액자. 분홍색 머리에 흰 티를 입은 데이즈의 증명사진이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백야를 선택한 뱁쌔. 그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의 액자는 사라지며 기본 옷차림의 3D 캐릭터가 화면에 나타났다.

하얀 피부에 동그란 눈매. 분홍색 머리를 한 캐릭터는 백야를 꼭 닮아있었다.

“윽. 졸라 귀여워.”

충격적인 귀여움에 뱁쌔는 심장 통증을 호소했다.

빠르게 UI를 훑어본 그녀는 제일 먼저 머리 모양의 아이콘을 클릭했다. 아이콘이 활성화됨과 동시에 옷장 위로 뿌려지는 헤어 스타일들.

생머리부터 파마머리, 쉼표 머리 등 다양한 스타일이 선택 가능했다.

누르는 족족 머리 모양이 바뀌는 백야 캐릭터. 우리 백야는 안 어울리는 머리가 없었다.

“이것도 예쁘고, 저것도 예쁜데 어떡하지.”

아마 의상실에 입장한 대부분의 팬이 같은 고민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뱁쌔는 심사숙고 끝에 이마가 살짝 드러난 컬이 들어간 머리를 골랐다.

드디어 넘어간 다음 단계. 이번에는 의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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