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상의와 하의가 따로 나뉘어 있었는데, 일단 상의를 먼저 고르기로 한 뱁쌔. 기본 티부터 조끼, 재킷, 셔츠, 후드티 등. 종류가 제법 다양했다.
뱁쌔는 그중에서도 흰색 오버핏 셔츠를 선택했다. 순전히 개인 취향이었다.
비교적 빠르게 넘어간 다음 단계.
남자 캐릭터라 그런지, 하의는 주로 기본 아이템뿐이었다. 청바지나 슬랙스 같은.
사실 남자 옷은 잘 모르는 뱁쌔는 검은색 바지를 아무거나 클릭했다. 개중에서 좀 광택이 나 비싸 보이는 바지를.
순식간에 클리어한 의상 코너. 이제 대망의 하이라이트인 액세서리가 남아 있었다.
“어머. 세상에.”
보석함처럼 생긴 아이콘을 누르자 쏟아지듯 로딩되는 각종 액세서리들. 모자, 귀걸이, 목걸이, 동물 귀, 안경 등 없는 게 없었다.
ID 엔터테인먼트는 SKY만 뽑는다더니. 역시 배운 놈들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배운 변태가 제일 무섭다더니.”
뱁쌔는 액세서리를 하나씩 눌러보기 시작했다. 귀걸이도 해봤다가, 초커도 해봤다가, 베레모도 씌워봤다가.
그렇게 유목민처럼 액세서리 코너를 이리저리 떠돌다 마침내 정착한 아이템.
“이거다!”
검은색 가죽끈으로 된 하네스. 목에는 큐빅 참이 달린 예쁜 진주 목걸이도 해 줬다.
완성된 코디를 보니 그저 뿌듯한 뱁쌔. 그녀는 저장을 누른 뒤 자신의 SNS로 넘어갔다.
정신 차려보니 1시간이 훌쩍 넘은 시각. 실시간 트렌드에는 이미 ‘데이즈 의상실’이 올라와 있었다.
벌써 손 빠른 몇몇 팬들이 자신이 코디한 멤버들의 캐릭터를 공유한 상태. 뱁쌔도 얼른 그 대열에 합류했다.
* * *
기자 간담회 의상 그대로 회사 회의실에 모여있는 데이즈.
자정을 10분 남긴 그들은 태블릿 PC를 가운데 두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으아아~ 떨린다.”
율무가 자기 허벅지를 두드리며 호들갑 떨었다.
“백도 오늘은 안 떠네? 아~ 두 번째다 이거야?”
“그런 거 아니거든!”
유연이 백야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장난을 걸어왔다.
남경은 민성과 함께 맞은편에서 카메라 세팅을 하는 중이었고, 웬일로 얌전한 청은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데이즈가 아직도 퇴근을 하지 못하고 회사에 남아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는데.
“청아 일어나. 슬슬 정신 차려야지.”
바로 곧 공개될 데이즈의 뮤직비디오 리액션 촬영. 크게 하품하며 일어난 청이 터벅터벅 비어있는 자리로 향했다.
의자에 앉은 그는 커다란 몸을 눕히듯 백야 쪽으로 기댔다.
“흐억!”
“야, 뭐 하는 거야.”
방심하던 백야가 휘청이자 유연까지 넘어질 뻔했다. 지한이 청을 일으켜 세우며 똑바로 앉으라 달랬고, 민성도 얼른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3분 남았다.”
녹화를 시작한다는 남경의 말에 렌즈 위로 빨간 불이 들어왔다.
“드디어 오늘! 저희 데이즈의 두 번째 뮤직비디오, WANT ME가 공개됩니다!”
율무의 멘트와 함께 시작되는 녹화. 그의 말이 끝나자 멤버들이 각자 환호의 리액션을 취했다.
“저희가 이렇게 모여서 뮤직비디오 리액션을 하는 건 처음이에요. 그렇죠, 유연씨?”
“맞습니다. 지금 시간이 11시 59분. 1분 남았어요.”
저희도 지금 처음 뮤직비디오를 보는 거라 많이 떨린다며 유연이 가슴 위로 손을 얹었다.
12시 정각.
태블릿 상단의 시간이 바뀌자마자 민성이 새로 고침을 눌렀다.
[DASE 데이즈 WANT ME MV]
“떴다!”
그사이 컨디션을 되찾았는지 청이 재빠르게 팔을 뻗어 썸네일을 누르고, 검은 바탕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잠깐 로딩 바가 돌고.
분홍색으로 꾸며진 여아의 방이 보였다. 한쪽 구석에 놓인 호화로운 장난감 저택이 눈에 띈다.
멀리서부터 점점 줌 인 되며 창문 안을 클로즈업 하는 카메라.
텅 빈 로비 위, 육각형 대형으로 선 데이즈가 등장하며 반주가 시작된다.
♪♩♬♪♬♪♩
통통 튀는 비트와 함께 시작되는 단체 안무.
짧은 반주에 맞춰 원을 그리듯 가볍게 한 바퀴 돈 멤버들이 한 명씩 무릎을 굽히며 차례대로 앉았다.
중심에 홀로 서 있는 백야.
그가 뒤돌아서 몸을 돌리는 순간 컷은 전환된다.
햇살 가득 내리쬐는 창문과 침대. 그 아래 보송한 이불을 걷으며 등장하는 백야의 얼굴.
- 매일 아침 눈 뜨길 기다려
너의 하루는 나로 시작해
첫 등장과 더불어 제법 앙증맞은 표정에 멤버들이 환호했다.
“우오오오!”
“뭐야, 뭐야! 시작부터 우리 복숭아 터지면 어떡해!”
율무가 백야의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들었다. 거대한 태풍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과일 인간.
다행히 유연에 의해 빠르게 풀려난 그는 율무와의 거리를 살짝 벌렸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장면.
침대에서 내려온 백야가 방문을 열며 밖으로 나선다. 백야의 시선에 따라 함께 이동하는 카메라.
주방으로 걸어가자 테이블 앞에 우아하게 앉아 있는 청이 보인다.
- morning 좋은 아침이야
투정 부리는 게 좋아
케이크를 한 조각 크게 뜨는 청. 카메라와 시선을 맞추며 싱긋 웃어 보인다.
- 나를 보는 눈이 사랑스러워
“우오오오!”
2연타를 때려버리는 막내들의 잔망 페스티벌.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안무 컷으로 바뀌며 동선을 이동 중인 유연이 클로즈업된다.
- 너에게 난 항상 우선순위
“와~ 역시 센터!”
안무를 소화하며 윙크를 찡긋하는 유연에 또다시 터져 나오는 탄성. 데이즈는 전체적으로 리액션이 훌륭한 편이었다.
쐐기를 박는 막내즈의 마지막 주자, 유연의 잔망에 형들은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컷은 다시 전환되며 거실 바닥에 앉아 있는 유연이 보인다. 턱을 괸 채 소파 위에 올려진 소녀 인형을 빤히 바라보는 그는, 팔을 뻗어 인형을 잡아당기더니 품에 안아 얼굴을 비빈다.
- 나도 같은 마음이야
나를 안아줘 세게 안아줘
장면은 또 바뀐다.
다락방에서 낡은 상자를 발견한 지한. 바람을 불자 먼지가 날리며 가려져 있던 글자가 드러난다.
[King : Chess Game]
상자 안에서 나오는 체스 말과 체크무늬의 판. 다락방 사다리 위로 민성이 고개를 내밀며 지한을 부른다.
그에게 체스 상자를 건네는 지한. 민성이 기쁘게 받아들며 아래로 내려간다.
- 숨이 터져버려도 좋아
나는 너라면 다 좋은걸
옷장 앞에서 옷을 고르는 중인 율무. 각종 스타일의 옷이 침대 위에 즐비하다. 율무가 입고 있는 옷은 흰색 샤워 가운.
마침내 그가 집어 든 건 하얀 셔츠. 가슴 위로 작은 문양이 새겨져 있지만 카메라가 움직이며 보이지 않는다.
- 놓지 말아줘 내 손을 잡아
율무 중심의 안무 컷이 잠깐 이어지다 눈에 띄게 변하는 대형. 이내 후렴구가 터져 나오며 데이즈의 단체 안무가 시작된다.
- 하루 종일 딱 붙을래
너는 날 가지고 놀아
Want me
You want me too
센터에 선 민성이 뒤로 빠지며 백야가 치고 나온다. 그러나 컷이 바뀌며 영상은 다시 저택 안 백야의 모습.
그는 민성의 옆자리로 다가가 앉는다.
- 네가 없는 하루는 지루해
날 데려가 줘
Want me
You want me too
어느새 거실에 모인 네 사람.
체스판을 사이에 둔 채 마주 보고 앉은 유연과 민성이 보인다. 지한은 소파에 앉아 두 사람의 경기를 지켜보는 구도다.
손에 굴리고 있는 구슬 두 알. 지한과 카메라의 시선이 마주침과 동시에 랩 파트가 시작된다.
- 내 귓가에 속삭여줘 그렇다면
Shine a light 내 세상은 빛이나
Like a star 내 우주는 물들어
너 하나만 바라보잖아
Just take my hand
중간중간 짧게 보여지는 안무 컷.
“난 이번에 지한이 랩 부분이 너무 좋은 것 같아.”
가만히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던 백야가 말했다. 지한이 고맙다며 작게 미소 지었다.
“근데 형 Chess game 할 줄 알아? 완전 잘해!”
손안에서 폰(Pawn)을 굴리고 있는 화면 속 민성의 모습. 아직 많이 남아 있는 민성의 흑마와 달리 유연의 백마는 몇 개 남지 않았다.
“체스 말 저 날 처음 잡아 봤다.”
너무 잘해서 깜짝 속을 뻔했다는 캘리보이. 그 말에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히 연출된 거니까 그렇지. 그리고 깜짝이 아니라 깜빡.”
“응. 깜빡.”
일상과도 같은 대화가 잠깐 지나가고, 어느새 후반부를 맞이한 곡. 다시 안무 단체 컷이 나오며 청과 유연, 율무가 카메라에 잡힌다.
“나 이거 기억나.”
유연의 리액션이 이어지고.
“오~ 청청 멋있는데?”
“와! 나 방금 초능력 같았어!”
중심에 선 청이 손가락을 튕기자 컷이 바뀌며 화면에 없던 멤버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동시에 터져 나오는 클라이맥스. 율무와 민성의 화음 구간이었다.
- 나는 너를 지키는 기사
두려워 마 내 품에서 잠이 들어
두 사람의 목소리가 조화롭게 섞이고, 얼마 안 가 백야까지 합류하며 곡에 정점을 찍는다.
- I wa-a-a-ant
끝도 없이 올라가는 고음.
“이 부분이 원래 이렇게 높았나?”
갑자기 드는 의문에 지한이 백야를 보며 넌지시 물었다.
“아, 이거 너희가 내 생일파티 해 준 날 녹음실에서 다시 땄어.”
“그날 진짜 녹음을 했다고?”
파티를 준비하는 동안, 잠시 시간만 끌어달라고 부탁드렸을 뿐인데. 얘가 진짜 녹음을 하고 내려왔을 줄이야.
멤버들도 방금 알았다.
“응. 나 이거 말고도 엄청 많이 했는데? 참새랑 사자랑 뱀도 했어.”
“……어?”
도대체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이해해보려 애쓰는 얼굴들이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좋네~ 피디님께 제대로 속았구나, 너?”
율무가 엄지를 척 들었다. 그리고 비슷한 타이밍으로 끝나는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장면.
- 나의 하루는 널 그리며 끝이나
백야의 목소리와 함께 저택 곳곳에 홀로 있는 멤버들의 얼굴이 지나가며 영상은 끝이 난다.
[DASE : WANT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