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화
“뮤직비디오가 전체적으로 청량하고 밝은 느낌이라 너무 좋네요.”
물론 놀이도 좋았지만, 이번 곡이 저희 나이대에 조금 더 어울리는 곡이 아닌가 싶다며 민성이 소감을 전했다.
그에 격하게 공감하는 한 사람. 율무가 손을 들며 말을 보탰다.
“사실 저도 처음에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상큼함을 느꼈거든요. 저희 복숭아가 이불 속에서 등장하는데 과즙이, 어휴.”
그때 튄 과즙 때문에 아직도 끈적거린다며 율무가 자기 얼굴을 만지는 시늉을 했다. 율무의 주접에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익!”
유일하게 웃지 못하고 눈썹을 치켜뜬 백야가 화면 밖에 놓여 있던 물티슈를 집어 왔다.
“자! 빨리 닦아.”
쥐어뜯기듯 길게 뽑힌 휴지가 율무의 손안으로 쥐어진다.
“쌩유~”
그러나 1절에서 멈추지 못하고 이어지는 2절.
“보셨나요? 저희 집 복숭아가 이렇게 스윗합니다. 당도 100프, 웁!”
그러나 끝내 참지 못하고 뻗어지는 작은 손. 자리에서 일어난 백야가 율무 쪽으로 달려들며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몸을 뒤로 젖히며 자연스레 길을 터 준 유연이 말을 이었다.
“나는 율무 형이 샤워 가운 입고 나왔을 때, 상의 탈의하는 줄 알고 진짜 깜짝 놀랐잖아.”
두 사람이 아웅다웅하는 동안에도 한쪽에서는 소감이 이어졌다. 늘 보는 장면이라 대수롭지 않아 하는 분위기였다.
“율무가 몸이 좋긴 하지.”
실제로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농구부를 했었다고 한다.
“청이는 어땠어?”
“나도 너무 좋았어! 특히 우리 똑같은 옷이랑 머리한 거.”
외동인 청은 항상 형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쌍둥이 형제가 생긴 기분이라 너무 즐겁게 촬영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지한이는?”
“일단 카메라 감독님께서 너무 예쁘게 찍어주신 것 같아서 감사하다는 말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체스를 하는 민성과 유연의 장면이 특히 영화 같았다며 덧붙였다.
지한의 대답에 청이 맞장구쳤다.
“맞아! 내가 본 영화 중에 Chess game으로 챔피언 되는 게 있는데, 둘이 거기에 나오는 배우 같았어.”
“그래? 그거 완전 최고의 칭찬인데?”
“You’re welcome.”
그사이 평화협정을 맺은 율무와 백야.
“다 끝났어?”
“미안.”
“아니야, 이리 와서 앉아.”
약 5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백야. 민성은 그에게도 뮤직비디오를 본 소감이 어떠냐 물었다.
“나는 다른 것보다 일단 팬분들 반응이 제일 궁금해.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더불어 리액션 영상이 언제 올라갈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상도 부디 즐겁게 봐주셨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물론 이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 데이즈 너희가 케이팝의 미래다
- 본격 ID 보컬 자랑하는 곡. 후반부에 보컬 버뮤다 삼각지대
└ 민성, 율무, 백야
└ 나 여기 빠져서 못 나오는 중..
- 4단 고음 미쳤다
- 백야 도입부 장인. 반박 안 받음
- 저 인형의 집 제가 그대로 살게요... 그러니까 제발 좀 팔아줘.....
- 청청 뱃속에서부터 얼굴에 스티커 붙이고 태어난 줄
- 난 이 뮤비에 뼈를 묻으려고. 지한아 네가 내 나라다
- 백야 왜 이렇게 예뻐? 씹어먹고 싶다 진짜 아작아작
- 청량 맛집 여기가 극락인가요
- 데이즈 얼굴이 아멘이네
└ 아무거도 안 하고 그냥 흰 티에 청바진데 어떻게 저래..?
└ 아이돌이 이렇게 나온 거면 걍 생얼 아닙니까
- 저... 뮤직비디오가 3시간째 안 끝나고 있어요. 볼 때마다 새로워서 계속 보게 됨
- 모든 인복이 ID로 향했네
- 율무 옷장에 있던 거 공홈 의상실 옷이랑 많이 겹쳐 보이는데?
댓글은 뮤직비디오 공개와 동시에 무서운 속도로 불어나고 있었다.
* * *
[DASE 웹게임 프로모션 ‘데이즈의 의상실’ 오픈]
데이즈의 남다른 컴백 스케일이 화제가 됐다.
자정에 공개된 뮤직비디오와 공식 홈페이지의 플래시 게임. 이는 데이즈의 팬이 아니더라도 한 번씩 해볼 만큼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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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현재 돌판 뒤집은 데이즈 컴백 (feat. 데이즈 의상실)
추천 340 반대 33 (+552)
데이즈?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맞음. 작년 연말에 임진각에서 셔츠 한 장 입고 칼군무 추던 애들임ㅋㅋㅋㅋ
깨물하트 걔 있는 그룹 아니야?
맞음.
백쏘하. 일명 백야가 쏘아 올린 하트라고, 아이돌이라면 한 번씩은 꼭 거쳐야 한다는 깨물하트 애교.
그동안 수많은 애교 바이블이 있었지만, 한동안 뜸했던 건 사실.
그런데 이 그룹이 바로 그 <필살 애교 바이블 개정판>을 집필하신 분이 몸담고 계신 곳임.
마침 어제 컴백을 하셨는데 진심 컨셉부터 프로모션까지 역대급.
곧 AIM 군백기 시작될 거라 ID에서 차기 보이그룹에 목숨 걸었다더니.. 상상 이상으로 진심이었던 것.
음원은 수록곡까지 총 6곡이고 뮤직비디오도 돈 냄새 장난 아님.
근데 제일 쩌는 건 공홈 프로모션.
자정되자마자 인형 옷 입히기 게임으로 바뀌더니, 팬들을 하루아침에 스타일리스트로 만들어버림.
(공홈 캡처.jpg)
저 액자 중에 하나 선택하면 해당 멤버가 나오는데, 그 멤을 내 취향대로 꾸며서 SNS에 공유하면 이벤트 참여 완료.
반응 좋은 옷은 실제로 무대에 입고 나오는 거 아니냐는 말도 있어서 지금 팬들 의욕 장난 아님.
2n 살 먹은 나도 팬 아닌데 데이즈 의상실에서 꾸미기 하는 중^^
내가 꾸민 멤버들 코디 구경해줘.
(베레모 백야.jpg)
(립 피어싱 청.jpg)
(크롭티 유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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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짹에서 크롭티 유연 보고 진짜 배운 변태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이셨군요..? 존경합니다
- 입술 피어싱 캐릭터 누군지 아시는 분ㅠㅠ 3등신 주제에 왜 내 취향 저격하고 난리
- (시스루+하네스 율무.jpg) 죽기 전에 이거 실물 한번 봐야겠다 난
- 실시간 팬들 상황 : 나도 몰랐던 내 안에 숨어있는 변태력을 발견하고 폭주하는 중
└ 혹시 내 얘긴가 이거...
└ 숨겨왔던 나~ 의~
- SNS에서 하도 난리길래 해봤는데 재미는 있더라ㅎ 시간 잘 감
└ 어제부터 계속 실트 1위
- 캐릭터 잘 뽑았더라. 진짜 비슷하던데? 개발 어디서 한 건지 궁금
└ 제X토 ID 콜라보
- 근데 코디 잘한 사람은 진짜 잘했더라. 말 많이 나오는 모그룹 스타일리스트보다 낫던데?
- 요즘 쉬는 시간에 보면 여자애들 다 이거하고 있음ㅋㅋㅋ
└ 재밌음ㅎ 남자애들도 많이 함
- 오늘 무슨 라이브 한다던데 거기에 입고 나오는 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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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Q. 이 구역의 컨셉 장인(1) : 과몰입으로 당신의 컨셉 소화력을 보여주세요!
※ 실패 시 컨셉 소화력 100%]
오랜만에 뜬 메인 퀘스트. 그러나 백야는 허공을 한참 쳐다봐야만 했다.
‘이게 무슨 말이지?’
실패 시 컨셉 소화력 100%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청이 뭐가 그렇게 심각하냐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기에 뭐 있어?”
“어? 아니야. 그림이 멋있어서.”
데이즈는 컴백 라이브 방송을 위해 인천의 한 호텔을 찾은 참이었다.
세련된 실내 인테리어 위로 장식된 호화로운 예술품. 백야가 대충 벽에 걸린 커다란 그림을 가리키며 말을 돌렸다.
“근데 우리 진짜 이 상태로 방송하는 거야?”
“Yup. 갈아입을 필요 없대.”
백야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당연히 준비된 의상이 있을 줄 알고 손에 집히는 대로 입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신경 써서 입을 걸 그랬다.
품이 큰 티셔츠와 무릎까지 오는 트레이닝 반바지는 백야의 연습실 전용 복장이었다.
‘……얼굴은 풀 메이크업인데 옷은 도대체 왜?’
괜히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백야의 촉은 대개 잘 맞는 편이었다.
“5초 남았습니다!”
생방송 임박을 알리는 조연출의 목소리. 그에 연하가 자세를 바로 하며 정면의 카메라를 바라봤다. 그는 오늘 DASE HAPPY DAYS의 마지막 회 진행을 위해 ID에서 특별히 모셔 온 고급 인재였다.
연하의 옆으로 놓인 빨간 지붕의 이층집 장난감. 그 안에는 작은 동물 인형들이 놓여 있었는데, WANT ME 뮤직비디오 장면을 재현해 놓은 것 같았다.
2층으로 이어진 계단 옆의 꽃 장식 화이트 아치 게이트. 그 위로 앙증맞은 간판이 걸려 있다.
[♥DASE HOUSE♥]
카메라가 장미 아치 아래, 마이크를 들고 서 있는 갈색 고양이 인형을 비췄다.
7시 정각과 동시에 카메라 위로 들어오는 빨간 불. 드디어 방송이 시작됐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데이즈의 너튜브 오리지널 리얼리티, 컴백 기념 라이브 방송의 진행을 맡게 된 AIM의 연하입니다. 반갑습니다.”
연하의 목소리 아래로 데이즈의 이번 컴백 타이틀, WANT ME의 inst 버전이 잔잔하게 깔렸다.
“데이즈의 첫 컴백과 첫 리얼리티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연하가 살짝 눈웃음 지었다.
방송 시작과 함께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채팅 창. 연하의 출연 때문인지 AIM의 팬들도 제법 보였다.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화제를 일으키며 핫 루키로 떠오른 데이즈.”
이들이 과연 어떤 새로운 음악과 스타일로 돌아왔는지, 오늘 한번 낱낱이 파헤쳐 보겠다며 연하가 오프닝을 열었다.
“그러려면 먼저 데이즈부터 빨리 만나봐야겠죠?”
그가 옆을 돌아보자 카메라도 함께 움직인다.
한쪽에 놓인 커다란 노란색 인형 상자. 투명한 필름 대신 홀로그램 은박 커튼이 달려 있었는데, 그 사이로 청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