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청은 패턴이 들어간 파란색 오버핏 반소매 셔츠에 검정 가죽 바지를 입고 있었다. 거기에 검은색의 얇은 초커와 은색의 립 피어싱까지.
연하에게 인정받은 청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이어서 등장하는 은메달리스트는 토끼 귀 머리띠를 한 민성이었다.
- 토끼다 토끼!!!!
- 그동안 토끼상 많이 봤는데 얘는 진짜 토끼랑 헷갈리게 생겼다... 동물원 가면 안 될 듯
동물 귀가 부끄러운지 입술을 잘근거리며 걸어오는 민성. 청이 토끼가 나타났다며 그 앞으로 달려가 귀를 한 손으로 잡았다.
“토끼 잡았다!”
해맑게 웃는 청의 옆구리를 툭 치자 순순히 손을 놓는 새끼 늑대. 묘하게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의 케미에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 될까요?”
“네. 다른 분까지 다 나오면 저희 같이 케이크 먹어요.”
어느새 연하는 자신이 가져온 케이크를 자르고 있었다.
[코디 명 : 바니바니 / 스타일리스트 : 당근당근]
흰색 반팔 티셔츠 위에 연분홍 니트 조끼. 와이드한 청바지 차림의 민성은 보기만 해도 훈훈했다.
아, 토끼 머리띠는 빼고.
- 선배... 기억나요? 우리 처음 만난날 내가 추워하니까 분홍색 니트 벗어 줬었는데..
- 기억난다... 미대 남신 도민성
팬들은 선배를 부르짖으며 기억 조작 드립이 한창이었다.
“안에 계신 분들은 멀었나요?”
연하의 재촉에 대답이 동시에 들려왔다.
“지, 지금 나가요!”
“나갈게요.”
탈의실 문이 열리며 백야와 지한이 동시에 등장했다.
코디 명 복숭아와 목줄 고양이. 베레모를 제외하면 온통 분홍색투성이인 백야가 모자를 손에 든 채 등장했다.
“저… 모자가 조금 큰데 어떻게 줄이는 건지 잘 몰라서…….”
이파리 떨어진 복숭아가 쭈뼛거리며 카메라를 힐끔댔다. 상아색 보석 귀찌도 사용법을 모르겠는지 반대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저 많이 해 봤어요. 제가 씌워드릴게요.”
연하가 손을 내밀었다. 방금 대사에서 그의 아이돌 경력이 물씬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연하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는 백야. 그가 복쑹의 코디에 화룡점정을 장식해 줄 초록색 베레모를 내밀었다.
받아 들던 연하가 손안의 귀찌도 함께 가져갔다.
“이것도 다 해 드릴게요.”
율무만큼이나 키가 큰 연하에 백야는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됐다.
AIM의 고양이와 DASE 복숭아의 신선한 조합. 처음 보는 투샷에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갔다. 대충 두 그룹의 팬들이 귀엽다며 우는 내용이었다.
“지한아 이리 와.”
그 사이 리더는 지한을 챙겼다. 민성이 등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지한도 입술을 가만히 두질 못하고 있었는데.
[코디 명 : 목줄 고양이 / 스타일리스트 : 산책 로망 집사]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색 긴팔 니트에 어두운 가죽 바지. 여기까지만 보면 굉장히 준수한 복장이었다.
그러나 그의 목엔 웬 개 목걸이 같은 게 달려 있었는데.
“이거 강아지 줄 아니야?”
청이 지한의 목에 달린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청의 앞으로 힘없이 딸려오는 지한.
“……!”
“으악!”
당긴 청도, 당겨진 지한도 놀란 눈을 떴다. 엄청난 방송 사고가 날 뻔했다.
- 아악!!! 와씨!! 미친 거 아니야?!
- 바바방금 제가 뭘 본 건가요;;
- 역시 세계 서열 1위는 다르네
눈꼬리가 사납게 올라간 지한이 청의 손에서 목줄을 가로챘다.
숙연해진 분위기.
사이좋게 귀찌를 끼워주고 있는 연하와 백야는 아직 이쪽의 상황을 모르는 듯했다.
“아하하. 이, 이거는 잠깐 풀어도 될 것 같은데…. 밟으면 다치겠다.”
민성이 어색하게 웃으며 지한의 목줄에 손을 뻗었다.
“좀 잡을게…?”
조심스러운 목소리.
좀전의 사고로 예민해진 고양이가 사나운 눈으로 토끼를 노려봤다.
“차, 착하지~ 이것만 금방 풀게. 그게 좋을 것 같아.”
낮은 자세로 접근하는 집사에 고양이는 일단 두고 보기로 했다.
조심스레 지한의 목줄을 만지는 데 성공한 민성은 얼른 고리를 풀어 줄을 분리해냈다.
“됐다!”
때마침 연하의 손길로 완성된 복숭아도 지한의 옆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공기가 조금 어색했다.
“무슨 일 있었어?”
백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답 대신 시선을 피하는 민성과 청. 지한이 백야를 잡아당기며 그를 자리에 앉혔다.
“아무 일도 없었어.”
이어서 나오는 마지막 주자. 율무와 유연의 차례였다.
그런데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현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물론 채팅창도 난리였다.
- 와 세상에
- 미쳤네 이거 그거잖아! SNS에서 리짹 개 많이 된 거!!!!
- 개쌉변태같애 X나 너무 좋아
- 내 취향을 방금 깨달은 것 같다
- 이걸 뽑은 ID도 개변태 아님? 하 진짜 너무 감사합니다ㅠㅠ
먼저 타노쓰의 작품.
흰색 긴팔 크롭티에 갈색 와이드 팬츠를 입은 유연이 한 뼘 넘게 드러난 배를 팔로 감싸고 있었다.
“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파격적인 두 사람의 의상. 민성의 입이 저도 모르게 벌어졌다.
무심코 옆을 돌아봤다가 그를 발견한 백야가 살포시 입을 닫아주었다.
“좀… 어색하네요.”
처음 입어보는 스타일의 의상이 멋쩍은지 유연이 목을 긁적이며 자리로 돌아왔다. 순간 드러나는 옅은 복근에 채팅창은 광기로 물들었다.
이제 남은 건 단 한 사람.
물론 율무는 ENFP답게 당당했다.
[코디 명 : 사실 하네스만 입히고 싶었는댕 / 스타일리스트 : 율무차]
코디 명에서도 알 수 있듯, 상의를 선택해야 액세서리를 착용할 수 있는 시스템에 마지못해 고른 게 분명한 시스루 블라우스.
살이 다 비치는 검은색 시스루 위로 걸쳐진 하네스가 영롱하게 빛났다.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과 그의 피부색이 조화를 이뤄 상당히 야해 보이는 효과까지 있었으니 팬들은 얻어걸린 셈이었다.
“아악! 내 눈!”
반면 청은 이게 무슨 짓이냐며 비명을 질렀다. 팬분들도 어서 눈을 가리시라며 파닥거리는 새끼 늑대.
- 왜죠? 제가 왜 그래야 하죠?
- 라이브 끝나면 고화질로 올려 주시는 거죠? 믿습니다 데해데 제작진 선생님들^^
이로써 옷을 갈아입은 데이즈가 한자리에 다시 모였다.
모아놓고 보니 유독 눈에 띄는 율무와 백야. 가운데 낀 목줄 고양이가 오히려 정상적으로 보였다.
“율무는… 저거 괜찮은 거예요?”
민성의 방황하는 눈동자.
원래 대놓고 드러낸 것보다 은근히 가린 게 더 야하다고, 졸지에 복근을 공개한 유연보다 율무에게 더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왜? 난 괜찮은데.”
“우리가 안 괜찮아.”
입은 사람보다 보는 사람이 더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의상. 결국 율무는 검은색 가죽 재킷을 위에 하나 더 걸치는 것으로 합의했다.
팬들은 눈물을 흘렸다.
“여러분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제가 이런 걸 발견했어요.”
연하가 데이즈의 이번 미니 앨범을 들어 올렸다.
“저는 처음 보는 물건이라 이게 뭔지 잘 모르겠는데, 설명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앨범 소개 코너였다. 앨범 관련 질문 담당은 백야였기 때문에 그가 손을 들었다.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는 백야의 얼굴. 민성을 거쳐 전달된 앨범이 백야의 손에 들어갔다.
“이건 데이즈의 첫 번째 미니 앨범이고요, 저희가 막 공장에서 나왔을 때의 상자랑 똑같이 생겼어요.”
꼼지락거리며 앨범을 여는 백야.
“보시면 이렇게, 으악…!”
상자를 열자 무릎 위로 쏟아지는 구성품. 기껏해야 CD랑 엽서만 들어있을 줄 알았던 백야는 당황했다.
앨범을 소개하랴 떨어진 포토 카드를 주우랴 손이 모자란 상황.
“주워줄게. 계속 말해.”
지한이 바닥에 떨어진 포토 카드를 줍고, 유연이 무릎 위로 쏟아진 구성품을 정리하며 백야를 도왔다.
“고마워. 아, 안에 보시면 저희가 포장됐을 때 모습이 엽서로 들어있어요. 이거를 이렇게 앞에다가 끼우면….”
투명한 홀로그램 필름지 위로 엽서를 끼우자, 뮤직비디오 속 백야의 인형 상자가 짠하고 나타났다.
“멋있죠!”
뿌듯해하는 복숭아. 연하가 그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네. 저도 갖고 싶네요.”
그는 이어서 곡 소개를 부탁했다.
“곡 담당은 어느 분이죠?”
“네! 접니다.”
율무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띠며 손을 들었다.
“저희 타이틀곡 WANT ME는요, 트~로피컬 하우스와 힙합을 믹스한 댄스곡인데. 신나고 음. 청량감 넘치는 사운드가 인상적인….”
외운 티가 팍팍 느껴지는 버퍼링. 덕분에 댓글 창은 키읔으로 도배되는 중이었다.
“떨어지고 싶지 않은 저희의 감정을 표현한 곡입니다.”
임무를 완수한 율무가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해냈다는 얼굴.
반면 연하는 웃음을 터뜨리며 카메라를 향해 큐카드를 잠깐 보여주었다. 후배들이 귀여워 죽겠다는 뉘앙스였다.
“정말 그대로 읽었어요.”
훈훈한 분위기에 채팅창 또한 평화로웠다.
“계속해서 수록곡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WANT ME 외에도 키링, 사자자리 등 다섯 곡이 더 있다며 설명을 덧붙인 연하. 혹시 모든 곡 소개를 율무 씨 혼자 하시는 거냐는 질문에 그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어휴, 그럴 리가요. 공평하게 하나씩 맡았습니다.”
첫 번째 트랙을 맡은 지한부터 순서대로 돌면 될 것 같다는 서브 MC의 진행에, 연하가 든든하다며 율무를 칭찬했다.
- 율무 확신의 예능멤ㅋㅋㅋ
- 연하 오늘 많이 웃네ㅠㅠ 내 새끼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야
- 근데 가운데 분홍색 시강 쩐다.. 멤버들 색깔을 빼앗은 ㅇㅅㅇ 친구
- 원미 무대 빨리 보고 싶어~~
채팅이 올라가는 사이 각자 맡은 수록곡 소개를 끝낸 데이즈. 연하가 다시 진행을 이었다.
“이렇게 곡 소개를 듣고 나니까 무대가 더 궁금해지네요.”
혹시 이 자리에서 수록곡 중 하나를 라이브로 들어 볼 수 있는지 물어보는 연하. 물론 사전에 데이즈와 말을 맞춰둔 무대였다.
“네, 그럼요.”
민성이 데이즈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며 싱그럽게 웃었다.
“그럼 데이즈의 키링 들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