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43화 (43/340)

제43화

마침 지한이 민성의 이마 위로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저세상 센스의 소유자가 누군가 했더니 조용한 또라이가 범인이었다.

[유연 : 동작 그만.]

[지한 : ??? (어리둥절)]

[유연 : 스티커 내려놓고 손드세요.]

현장에서 검거되는 현행범. 스티커를 빼앗긴 지한이 억울함을 호소해 보지만 유연은 강경했다.

[유연 : 형은 스티커 금지야.]

[지한 : 이마에 안 붙일게.]

한 번 더 회유를 시도하는 지한. 그러나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고양이는 모든 걸 잃고 무기력해졌다.

그 앞에 나타난 토끼와 늑대가 고양이의 얼굴 위로 스티커를 마구잡이로 붙이기 시작했다. 지한은 훌륭한 스케치북이 되었다.

장면이 바뀌고.

- 내 귓가에 속삭여줘 그렇다면

shine a light 내 세상은 빛이나

동선의 끝에서 끝으로 이동하며 시작되는 지한의 랩 파트. 스테디캠을 몸에 착용한 카메라맨이 그의 동선을 따라 함께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계속해서 멤버들의 안무가 짧게 보여지고, 다시 전환되는 화면. 아기자기한 장난감 집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등장했다.

[유연 : 데이즈의 돌 하우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백야 : 여기가 영어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래요. 실제로 어린 친구들이 공부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유연 : 아 진짜? 그래서 저쪽에 책상이랑 의자가 있었구나.]

돌 하우스를 가리킨 유연이 잠시 후 저희가 이 안으로 들어갈 거라며 콩트를 시도했다.

백야가 눈치껏 받아주었다.

[백야 : 맞아요. 지금은 아무도 없어서 잠깐 밖으로 나온 거예요.]

대답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장난감을 살펴보던 개복치. 그가 슬쩍 손을 뻗었다.

닿기 직전,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유연이 백야의 팔을 툭 건드리며 놀래켰다.

[유연 : 워!]

[백야 : 으갹!]

비명과 함께 황급히 거둬지는 손. 백야가 소품에서 멀리 떨어졌다. 뒤늦게 장난임을 눈치챘지만 노려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현실.

햄스터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위협했다. 그러나 야생동물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 날 데려가 줘

Want me

You want me too

후렴구 멜로디가 나오며 다시금 단체 안무 장면으로 전환됐다.

센터에 선 백야가 카메라를 보며 자신의 파트를 소화 중이었다. 촬영장 가득 울리는 음원 사이로 백야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립싱크를 어려워하는 백야는 촬영 내내 자신의 파트를 실제로 불렀는데. 아직까지 음 이탈이 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숨이 터져 버려도 좋아

멤버의 눈높이에 맞춰 낮게 낮춰진 지미집. 그 앞에 선 율무가 자신의 파트를 립싱크하며 개인 컷을 촬영 중이었다.

화면이 넘어가고.

이제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멤버는 민성. 가사에 맞는 제스처를 하며 표정 연기를 하는 모습이 제법 프로다웠다.

노래는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멤버들의 모습이 한 명씩 연속으로 짧게 스쳐 가고. 어느새 2절 후렴을 지나 보컬 라인의 화음 구간.

- 나는 너를 지키는 기사

두려워 마 내 품에서 잠이 들어

백야의 고음 파트가 나오는 클라이맥스 직전에 음악이 끊기며 청이 나타났다.

[청 : 이번 군무는 정말 최고!]

[율무 : 특히 인트로 부분의 파도타기 안무가 예술이죠.]

[청 : Surfing~]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의 옆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서 있는 지한.

[청 : 지한 씨도 한마디 해!]

[지한 :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화면이 전환됨과 동시에 곡의 클라이맥스가 터졌다.

- I wa-a-a-ant

폭발하는 성량.

그러나 얼굴은 평온하다.

고음이 한 단씩 올라갈 때마다 덩달아 올라가는 입꼬리와 귀엽게 찡그려지는 콧잔등.

멋있는 표정으로 마무리한 백야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가만히 서 있자, 스텝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백야 : 아, 아니…. 감사합니다!]

당황한 백야가 어쩔 줄 몰라 하며 허리를 숙였다.

잠깐 어둡게 변한 화면.

다시 밝아진 영상 속에는 의상을 갈아입은 데이즈가 있었다.

뮤직비디오에서 거실로 나왔던 공간에 모여있는 멤버들. 샤워 가운을 입은 율무가 등장하자 하나같이 호들갑을 떨어댔다.

[민성 : 이야~]

[청 : You! 옷이 너무 야해!]

[율무 : 이게 뭐가 야해?]

청의 앞으로 다가간 율무가 바바리 맨처럼 샤워 가운을 확 열어젖혔다. 물론 율무는 가운 안에 옷을 입고 있었지만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청 : 아아악!]

[율무 : 푸하하!]

청이 눈을 감으며 비명을 질러대자 율무가 즐거워했다.

그때 조용히 다가온 지한이 그의 가운을 여며 허리끈을 꽉 졸라맸다. 닥치라는 뜻이었다.

[율무 : 우욱! 나 토할 거 같….]

[지한 : 아니. 넌 괜찮아.]

살짝 질린 얼굴로 장까지 묶인 기분이라며 리본을 다시 묶는 ENFP. 장면이 넘어가며 다시금 노래가 재생됐다.

- 나의 하루는 널 그리며 끝이 나

마지막 소절과 함께 어깨동무한 멤버들의 모습이 잡히더니 완전히 어두워졌다.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온 화면.

“와~ 잘 보고 왔습니다.”

연하와 멤버들이 손뼉을 쳤다.

“촬영은 며칠 하신 거예요?”

“3일이요.”

지한이 대답했다.

너무 고생했다며 데이즈를 향해 수고와 칭찬의 말을 전한 연하. 그는 계속해서 진행을 이어갔다.

“혹시 영상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것만큼은 꼭 팬분들께 들려드리고 싶다, 하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연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한 명의 손이 번쩍 들렸다.

“저요!”

비하인드 영상이 나가는 동안 평정심을 되찾은 백야였다.

“사실 저도 몰랐는데, 제가 고음을 올릴 때 손도 같이 올라가더라고요.”

“맞아. 너 그래.”

유연이 백야의 말에 아는 체했다.

“감독님께서 손을 가만히 뒀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이게 저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나오는 행동이라 마음처럼 잘 안되더라고요.”

멋쩍은 듯 백야가 눈썹 위를 긁적였다.

“그래서 촬영할 때 멤버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처음에는 손을 묶어보기도 하고, 멤버들이 카메라 앵글 밖에서 제 손을 붙잡고 있기도 했다는데.

“백야 작은 데 힘 진짜 세.”

“나 안 작거든?”

순간 발끈하는 개복치.

“Okay. Sorry.”

빠른 사과에 다시 이야기로 돌아온 백야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결국에는 잘 안 됐어요.”

경청하던 연하가 고개를 주억였다.

“어떤 장면 말씀하시는지 알 것 같아요.”

끝없이 올라가는 고음이 인상적이라 기억한다던 그가 놀리듯 말을 덧붙였다.

“두 손이 다 나오더라고요.”

“하핫. 감독님께서 차라리 양손을 기도하는 것처럼 맞잡아 보는 건 어떻겠냐 하셨어요.”

그런데 긴장한 나머지 손을 너무 세게 쥐었다는 백야.

“음을 한 단씩 올릴 때마다 손에 힘이 들어가서 한동안 손가락 끝이 빨갰어요.”

“피가 몰려서요?”

“네.”

연하가 너무 귀여운 에피소드라며 웃음을 터뜨리자 멤버들도 따라 웃었다.

“쏠린 피 다시 내려가라고 잠깐 손도 들고 있지 않았나?”

“응. 그때 내 손바닥 봤잖아.”

율무의 말에 백야가 긍정했다.

“피부가 하얘서 더 눈에 띄었겠어요. 저희 멤버 중에도 그런 친구가 한 명 있거든요.”

적당히 끊어내는 멘트와 함께 다시 큐카드를 집어 든 연하. 이제 라이브 방송을 슬슬 끝내야 할 시간이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여러분 오늘 어떠셨어요?”

연하가 데이즈를 바라보자 리더인 민성이 먼저 소감을 말했다.

“저희가 리얼리티도 처음이고 이런 라이브 방송도 처음이었는데, 선배님께서 잘 이끌어주신 덕분에 실수 없이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비활동기임에도 저희를 위해 한달음에 달려와 준 선배를 제일 먼저 챙긴 리더.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그의 대답에 지한도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며 인사를 전했다.

“다른 분들도 오늘 어떠셨는지.”

연하와 눈이 마주친 율무가 입술을 뗐다.

“네, 오늘 너무 재미있었고요~ 한편으로는 리얼리티가 마지막 방송이라는 게 너무 아쉽습니다.”

더 열심히 해서 꼭 시즌2를 찍을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는 율무.

이어서 지한도 운을 뗐다.

“비록 채팅으로 만나 뵌 게 전부지만, 두 시간 동안 정말 함께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저희 데이즈를 위해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끝으로 바통을 넘긴 지한. 앉아 있는 구도상 다음은 백야의 차례였다.

‘이렇게 끝나면 안 되는데…!’

개복치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방송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미션은 아직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회심의 한 방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초조함에 입술을 물어뜯던 백야가 입술을 열었다.

“네! 그, 소감이요?”

머리를 굴리느라 뜸을 들이던 백야.

“어… 그런데 저희는 주인님이 식사하러 가신 동안 그냥 얘기하고 있던 거 아니었나요…?”

개복치가 어그로를 시전했다.

잊은 자들로 하여금 오늘의 컨셉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백야의 멘트.

“곧 돌아오실 시간이라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 같긴 한데….”

- 아 맞다 얘네 인형 컨셉이었지?

- 나도 까먹고 있었는데ㅋㅋㅋ

- 주인님 오기 전에 자리로 돌아가야 한대.. 대가리 깬다 진짜

- 이 정도면 과몰입이 아니라 진짜 인형인 걸지도... 사실 얼굴부터가 말이 안 되잖아?

- 울 백도 컨셉에 진심이라구요ㅠ

멤버들의 반응도 팬들과 다르지 않았다.

“와… 대박.”

“You 완전 리스팩.”

유연과 청이 존경한다며 백야를 향해 느린 박수를 보냈다. 멤버들의 칭찬에 백야의 귀 끝이 붉게 달아올랐다.

“너 귀 터지는 거 아니야?”

민성이 백야의 귀를 만지려 들자, 그가 재빠르게 가리며 쐐기를 박았다.

“혀, 형이 잘못 본 거야…! 그리고 인형이 어떻게 빨개지냐?!”

양손으로 귀를 가린 채 내뱉는 새침한 대사에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너 이 자식… 정말 진심이구나?”

율무가 감동한 얼굴로 백야를 바라봤다. 인정받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인정받았다.

그러자 눈앞에 뜨는 상태 창.

[<이 구역의 컨셉 장인(1)>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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