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화
선택받은 소수의 팬이 실물 데이즈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다수의 팬은 영상 속 데이즈로 허전함을 달랠 예정이었다.
‘노트북, 노트북!’
오늘은 바로 데이즈의 첫 TV 예능 <전학 왔습니다!>의 방영일. 실물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무려 교복 데이즈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
SNS를 새로 고치며 간간이 올라오는 팬싸 후기에 하트를 마구 남발하던 복쑹이 괴로워했다.
“흐억! 아 미친. 나 원래 프리뷰는 저장 잘 안 하는데….”
프리뷰란 미리 보기의 개념으로, 홈 마스터가 사진을 고화질로 올려주기 전 공유하는 사진을 일컫는 단어였다.
대개 핸드폰과 같은 2차 장비로 카메라 액정을 재촬영해 올려주는 것이라 화질이 많이 떨어지며, 보정이 전혀 되지 않은 날것이었다.
대신 가장 큰 장점은 빠르다는 것.
‘햄스터랑 피X츄라니!’
노란 인형을 품에 안고 사인 중인 백야의 모습. 그의 미모와 귀여움이 저화질을 뚫고 나오고 있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저 인형 준 팬은 완전 계 탔네.
“허억, 헉. 어레스트…!”
복쑹이 심장 위를 짚으며 침대를 뒹굴었다. 배가 좀 아픈 거 같기도 하고.
“괜찮아?”
오랜만에 등장하는 그녀의 룸메이트.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던 룸메가 복쑹을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아, 아무거도 아니야. 그냥 귀여운 걸 좀 봐서.”
“뭔데?”
복쑹과 마찬가지로 귀여운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룸메가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안 돼…!’
이대로 덕밍아웃을 할 수는 없었다. 황급히 프리뷰를 끈 복쑹이 자신의 타임라인으로 돌아가 새로 고침 했다.
지한 팬의 인장인 고양이 사진.
‘이거다!’
사이버 친구의 프로필을 확대한 그녀가 룸메의 얼굴 앞으로 핸드폰을 내밀었다.
“고, 고양이! 귀엽지?”
“어머. 너무 귀엽다~”
큰 고비를 무사히 넘긴 복쑹이 안도의 숨을 삼켰다.
“그런데 뭐 보려고?”
복쑹의 옆으로 활짝 펼쳐져 있는 노트북. 방송국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의 광고가 재생되고 있었다.
“전학 왔습니다 보려고. 할 거 없으면 언니도 같이 볼래?”
안 볼 걸 알았기에 그냥 예의상 물어봤다.
‘데이즈가 아니더라도 많이들 보는 인기 프로그램이니까 수상하게 생각하진 않겠지.’
그런데 언니가 반응을 보였다.
“…누구 나오는데?”
잠깐 뜸을 들인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룸메가 게스트를 물었다. 복쑹은 딴청을 피우며 대답했다.
“누구더라… 데이지?”
“데이즈?”
복쑹이 흠칫하며 그녀를 보자, 어디서 들은 것 같다며 룸메이트가 말끝을 얼버무렸다.
“너, 너튜브에서 봤어.”
“어? 어어, 데이즈 맞는 거 같다. 이번에 데뷔한 ID 신인 남돌이래.”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뭐지 이 언니. 수상한데.’
탐색전을 벌이듯 서로의 눈치를 살피던 복쑹과 룸메. 먼저 눈을 피한 룸메이트가 복쑹의 옆자리에 앉으며 시청 의사를 밝혔다.
“같이 보자.”
두 사람은 보다 편안한 관람을 위해 책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송은 착석과 동시에 시작됐다.
* * *
[모든 게 작아진 제티 학교]
[미니어처가 되어 버린 친구들]
쾅!
교실 뒷문이 열리며 반장 호딘이 호들갑을 떨며 들어왔다.
“야들아 큰일 났다! 지금 모든 게 작아졌다구!”
커다란 체격에 둥근 인상. 코미디언 출신인 그는 특유의 입담과 유쾌한 진행으로 국민 MC라 불리는 자 중 한 명이었다.
검은색 동복에 홀로 망토를 두른 호딘은 교실 뒤에 모여있는 친구들에게로 달려갔다.
“넌 여전히 큰데?”
제티 학교의 최단신. 키가 작아 제일 앞자리에 앉는 수재가 여느 때처럼 깐죽거렸다.
수재도 개그맨 출신의 MC. 호딘과 실제로도 절친한 사이다.
“아니야. 책상도 크고 의자도 크고 모든 게 다 커졌다구! 아무래도 우리가 인형이 돼버린 것 같아.”
오또카지?
호딘이 귀여운 척을 하며 양 볼을 감싸자, 반에서 키가 제일 큰 대윤이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아유. 쟤 또 저런다.”
대윤은 전 국가대표 농구선수. 그는 요즘 방송가에서 가장 주목받는 예능계의 샛별이었다.
“흥!”
아무도 반응해주지 않자 삐친 호딘. 그가 발을 쿵 구르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저기 반장. 조용히 좀 해줄래? 시끄러워서 공부할 수가 없잖아.”
전교 1등 영삼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뒤를 돌아봤다.
영삼은 데뷔 12년 차 현역 아이돌. 입대 전에도 예능돌로 유명했던 그는, 2년간의 군백기를 끝내고 연예계로 복귀한 차세대 MC 유망주였다.
그는 제티 학교에서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일명 엄친아 캐릭터를 연기 중이었다.
그러던 그때.
[드르륵]
[오늘의 전학생 등장!]
앞문이 열리며 분홍색 머리를 한 데이즈가 등장했다. 멤버들을 발견한 패널들이 놀란 척 뒤돌아봤다.
“우와~ 인형이 걸어 다닌다!”
쏟아지는 열렬한 환호. 수재가 의자를 밟고 일어나 소리쳤다.
[줄줄이 입장하는 전학생]
선두에 선 민성이 교탁 가운데 멈춰 서자, 그를 중심으로 멤버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안녕?”
매주 새로운 학생들이 전학 온다는 설정의 <전학 왔습니다!>는 같은 학년이라는 설정 하에 서로 반말을 하는 게 컨셉이었다.
“뭐야, 뭐야? 인형이 말을 해!”
호딘의 주접에 빵 터진 유연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뭐가 이렇게 훈남들이야?”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대윤이 세상이 불공평하다며 하소연했다.
[잘생긴 애 옆에 잘생긴 애]
[걸어 다니는 인형들]
좌우를 살피며 멤버들과 신호를 주고받은 민성이 살며시 손을 들며 말했다.
“자, 인사할게…?”
민성의 목소리에 조용해진 교실.
“우리는 상자를 찢고 나온 인형이 高에서 전학 온.”
[For your Days! DASE!]
여섯 명의 목소리가 교실을 우렁차게 울렸다. 박수로 반갑게 맞이해주는 제티 학교 친구들.
“안녕? 나는 데이즈의 율무차! 아니고 율무라고 해~”
제일 안쪽에 서 있던 율무부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차례대로 간단히 소개를 마친 데이즈. 멤버들의 교복 위로 이름이 적힌 명찰이 달려있었다.
“너희 예능 첫 출연 아니야?”
수재의 질문에 바로 앞에 있던 청이 대답했다.
“맞아. 왜? 문제 있어?”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외국인의 화법. 긴장한 청의 한쪽 눈썹이 삐죽 올라갔다 내려온다. 제일 어린 친구임에도 느껴지는 포스가 상당했다.
“아, 아니… 그냥 그렇다고…….”
수재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1차 후퇴했다.
“너 그런데 반말이 상당히 자연스럽다?”
기선을 제압하려던 수재의 2차 시도가 이어졌다.
그는 아무래도 우리 반에 무서운 친구가 전학 온 것 같다며 바람을 잡았는데. 그에 옆에 있던 유연이 나섰다.
“청이가 외국에서 오래 살다 와서 그래. 얘는 평생 반말밖에 모르던 애거든.”
“맞아. 나 존댓말 배우고 있어. 근데 여기는 다 친구 아니야?”
자기가 실수한 건가 싶어 눈치를 살피는 청에 영삼이 나섰다.
“친구 맞아. 편하게 해.”
청을 안심시킨 영삼이 수재를 타박했다.
“텃세 좀 그만 부려.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
너는 잘생긴 애들만 보면 그렇게 시비를 걸더라며 영삼이 그를 노려봤다.
“수재! 니 경고데이!”
호딘이 영삼의 말을 거들자 그가 사과했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전학 오면 장기자랑 해야 하는데. 너희 뭐 준비해 온 거 있어?”
장기자랑을 통과하지 못하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 한다며 대윤이 개인기를 요구했다.
“당연히 준비했지~”
율무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럼 너부터 해 봐.”
좋다며 고개를 끄덕인 율무가 교실 뒤쪽으로 향했다.
“쟤 어디가?”
도망가는 거 아니냐며 수재가 깐죽거렸다. 그사이 농구대 게임기 안에서 공을 집어 든 율무.
“어? 저거 대윤이 네 거잖아.”
손가락을 세워 공을 빙그르르 굴리던 율무가 그대로 한 손 슛을 던졌다. 골대 안으로 깔끔하게 들어가는 농구공.
[순식간에 들어간 농구공]
“우와아아!”
패널들이 야단법석을 떨었다.
“내 개인기는 농구공으로 하는 거야~”
율무의 대답에 수재가 물었다.
“근데 전 국가대표 상대로 괜찮겠어?”
율무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힐끔 바라봤다.
“음~ 그러게? 갑자기 안 괜찮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럼 안 되지. 네 개인기잖아.”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대윤이 물었다.
“혹시 회사에서 시켰니?”
“응!”
그의 해맑은 대답에 패널들이 박장대소했다.
“너 시원시원해서 좋다!”
“고마워~”
호딘이 율무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런데 농구공으로 뭐 하려고? 골 많이 넣기?”
대윤이 다가와 율무의 옆에 섰다.
“그거도 좋아하긴 하는데, 나는 더 신기한 걸 보여 줄 거야. 개인기잖아.”
양팔과 허리 사이에 농구공을 하나씩 낀 율무가 양손에도 공을 하나씩 들었다.
“나 좀 도와줄래?”
“도대체 뭘 하려고 이러는 거야?”
“팔 위에 공 하나씩만 더 올려줘.”
대윤의 도움으로 공 여섯 개를 들고 선 율무. 그가 준비한 개인기는 농구공 여섯 개를 동시에 튕기는 것이었다.
“시~ 작!”
호딘이 신호를 주자 공을 두 개씩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율무. 시차를 두고 튀어 오르는 공을 율무가 차분한 얼굴로 튕기기 시작했다.
[수준급의 농구 실력]
[한두 번 해 본 게 아닌 솜씨]
율무는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처럼 여섯 개의 농구공을 완벽하게 다루고 있었다.
“우와!”
처음 보는 광경에 영삼이 감탄했다.
“…쟤 뭐 하던 애야? 대윤이 너도 저거 가능해?”
영삼의 질문에 그가 자신 없는 얼굴로 갸웃거렸다.
“안 될 것 같은데…….”
이대로 두면 집에 갈 때까지 공만 튕기고 있겠다며 율무를 중재한 호딘. 친구들의 부추김에 대윤도 도전해보지만 몇 번 튕겨보지 못하고 실패했다.
“신기한 재주일세.”
[율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호딘]
그의 반응이 만족스러운지 율무가 뿌듯한 얼굴을 했다.
“자, 다음은 누가 할 거야?”
수재가 묻자 이번에는 유연이 손을 들었다.
“내가 할게.”
“그래. 넌 뭘 준비해 왔니?”
수재가 새침하게 물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유연은 교실 중앙으로 걸어 나오며 엄청난 대사를 했다.
“여기 춤짱이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