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화
전학생의 패기 넘치는 도발에 후끈 달아오르는 교실. 댄스동아리 회장 호딘이 흥분하며 앞으로 나왔다.
“니 지금 내 불렀나!”
“너야?”
유연이 여유로움 가득한 얼굴로 호딘의 위아래를 훑었다.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는 눈빛. 호딘이 기선제압에서 지지 않으려 눈을 부릅떴다.
“어때.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두 사람의 신경전을 지켜보던 영삼이 물었다.
의욕이 조금 과했는지 잠깐 사이 빨갛게 충혈된 호딘의 눈. 그는 일단 실력을 보자며 한발 물러났다.
“드뢉 더 비트!”
[처음 공개하는 유연의 댄스]
[여유로운 미소]
[차분한 전주가 흐르다가….]
음악이 시작되자 돌변하는 유연.
“와! 쟤 눈빛 변하는 거 좀 봐.”
수재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절도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춤 선. 살아 있는 손끝. 사뿐히 뛰어오르며 턴을 한 바퀴 돈 유연이 박자를 가지고 놀듯 파워풀한 안무를 선보였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잔상처럼 퍼지는 분홍색 머리카락. 음악이 고조되면서 안무는 점점 더 격해졌다.
[넋이 나간 친구들]
바닥을 쓸 듯 우아하게 한 바퀴 구른 유연이 손을 쓰지 않고 오로지 발목만을 이용해 일어났다.
“우와아악!”
호딘이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으며 얼굴을 찌그러뜨렸다.
[호딘의 절규]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안무]
[마무리는 보조개로]
카메라를 잡아먹을 기세로 렌즈를 쳐다보던 유연이 순간 눈에 힘을 빼며 활짝 미소 지었다.
저 얼굴에 보조개까지 있다니.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었다.
[쏟아지는 박수갈채]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호딘이 유연의 동작을 과장되게 따라 했다. 같은 춤 다른 느낌.
가만히 호딘을 보던 수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연에게 다가가 손을 내민 그는.
“축하해. 방금 댄스동아리의 새로운 회장이 됐어.”
“아, 내가 회장이야?”
숨을 고르며 옷매무새를 정리하던 유연이 능글맞게 받아쳤다.
“여기 취임식 같은 건 안 해 줘?”
“응. 우린 그런 거 없어.”
아마 다음 주면 또 다른 춤 잘 추는 애가 나와서 걔가 회장이 될 거라는 수재. 그의 애드립에 데이즈의 웃음이 터졌다.
다음 차례는 지한.
“지한이는 뭘 준비해 왔어?”
“나는 연주를 들려줄게.”
지한이 담담하게 말했다.
“뭐 리코더라도 가져왔니? 악기가 안 보이는데.”
대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율무가 우쭐하며 거들었다.
“우리 지한이는 악기 필요 없어.”
그사이 준비를 마친 지한. 그는 카메라 쪽을 힐끗거리며 혀로 입술을 축였다.
[휘- 휘이-]
시범 삼아 불어보는 휘파람.
“시작할게.”
점검을 마친 그가 시작을 알리자 집중되는 시선. 퇴폐 고양이의 개인기는 휘파람 연주였다.
[올망졸망 모은 입술]
[그 사이로 들리는 청아한 소리]
지한은 유명한 영화의 OST를 휘파람으로 불고 있었다.
[모두를 숨죽이게 만드는 연주]
[잠시 감상하실까요?]
마치 오르골 상자를 열어놓은 듯 맑은소리.
지한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일 때마다 음표가 하나씩 살아나는 듯했다.
“와아…….”
연주가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하는 패널들. 그들은 진심으로 감동한 얼굴이었다.
“이거는 진짜 하나의 연주다.”
호딘이 지한을 향해 쌍 엄지를 치켜들자, 그가 허리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지한도 뿌듯한지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자, 다음은 또 누구야?”
영삼의 빠른 진행에 냉큼 손을 드는 청. 막내가 손을 번쩍 들며 강하게 어필했다.
“나! 나 할래!”
“쟤 안 시켜주면 큰일 나겠다.”
수재가 턱짓으로 청을 가리켰다.
“나는 Cheat gainer 보여줄게!”
“칫 개놈? 잠깐만, 너 방송에서 그렇게 욕하면 안 돼.”
듣고 싶은 대로 들은 수재가 청을 모함하려 했다. 리더가 해명하려 했으나 유연이 조금 더 빨랐다.
“그게 아니라, 칫 게이너. 공중돌기 같은 거야. 현대무용에서는 하우스 턴이라고 불러.”
메인 댄서의 깔끔한 설명.
청은 수재가 떠들든 말든 자신의 무대가 될 중앙으로 나가 공간을 가늠해보고 있었다.
“뭐라꼬? 공중돌기?!”
이제는 댄스동아리 전 회장이 된 호딘이 또다시 춤에 반응했다.
“나 해?”
대충 계산을 끝낸 청이 물었다.
“응. 너 준비됐으면 하고 싶을 때 시작하면, 흐억!”
하고 싶을 때 하라는 수재의 말에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냉큼 공중으로 도약한 청.
[청의 맨발 투혼]
[이게 바로 하우스 턴!]
왼발은 지탱하고 오른발을 차며 뛰어오른 그가 허공에서 몸을 턴하며 왼발로 가볍게 착지했다.
순식간에 지나간 엄청난 기술.
“와아아! 이게 뭐고!”
호딘이 흥분해 소리치고.
“한 번 더! 한 번 더!”
다른 패널들도 어느새 한마음으로 외치고 있었다.
“Okay. One more~”
청이 자세를 잡자 이번에는 책상을 뒤로 밀면서까지 공간을 더 넓게 확보해주는 출연진들.
“혹시 음악 필요해?”
영삼이 묻자 틀어주면 좋다는 청. 그는 항상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그에 제작진이 미리 준비해 두었던 곡 중 하나를 재생해 주었다.
“Good.”
아는 곡인지 노래를 들으며 타이밍을 재던 그는, 어느 순간 도약하며 다시 한번 기술을 선보였다.
[강렬하고 기품있는 하우스 턴]
청은 전보다 커다란 원을 그리며 사뿐히 착지했다.
본인 피셜 센스 빼면 시체인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음악에 맞춰 즉석에서 안무를 더 만들어냈는데. 우아한 동작이 잠시 이어지다 마지막은 역시나 턴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다섯 바퀴를 연속으로 돈 청이 바닥을 짚으며 마무리하자 환호성이 쏟아졌다.
[엄청나다!]
한달음에 달려 나온 패널들이 너도나도 청의 옆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안 어지러워?”
자리로 돌아온 청에게 백야가 걱정 반 놀라움 반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응! 나 열 번 더 할 수 있는데?”
귀여운 허세와 함께 짓는 개구진 미소에 백야도 따라 웃었다.
이제 자신의 차례도 지났겠다, 풀어두고 나간 마이크를 다시 몸에 차려는 청. 유연이 옆에서 그를 도왔다.
“이제 두 명 남았나?”
대윤의 말에 서로를 돌아본 두 사람. 마지막은 부담스러운 백야가 민성의 눈치를 살폈다.
‘내가 먼저 해도 되나…?’
차라리 제일 먼저 할걸.
멤버들이 이렇게 멋있는 개인기를 준비해 올 줄 몰랐던 개복치가 뒤늦게 후회했다.
“내가 먼….”
백야가 슬그머니 손을 들려했다. 그러나 때마침 도착하는 퀘스트. 무려 두 개가 동시에 떴다.
[새로운 퀘스트(히든)가 도착했습니다!]
[Q.미담 제조기(1) : 촬영 현장 미담 최초 1회 생성]
[Q.연예인의 연예인(1) : 동료 연예인 1명에게 확실한 인상 각인]
‘촬영장 전용 퀘스트인가.’
히든 퀘스트는 백야가 처한 상황보다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었다.
‘그래도 아예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미담 생성과 확실한 인상 각인.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뜨지 않고 이제야 뜬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특히 저 저 미담 제조기 퀘스트.’
백야는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민성에게 차례를 양보했다.
“형 먼저 해.”
“왜? 너 안 하고?”
민성은 동생들을 배려해 가장 마지막에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재차 순서를 양보하는 백야에 크게 오해한 민성.
‘아, 혹시 얘가 마지막에 하고 싶어서 그러나?’
결국 먼저 개인기를 하기로 한 민성. 그가 준비해 온 건 노래였다.
“요즘 또 트로트가 유행이잖아. 그래서 선곡해 봤어.”
사랑해 보조 배터리. 작년 하반기 트로트 열풍을 일으킨 여성 솔로 가수의 메가 히트곡이었다.
[흥 충전 가즈아~!]
발랄한 전자음으로 시작되는 귀여운 전주. 시작도 전에 흥이 오른 출연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쥔 수려한 외모의 민성. 노래가 시작되자 분위기는 금방 달아올랐다.
- 너의 사랑으로 충전해 줘
완벽한 트로트 창법. 과연 김천 포도 축제 인기상 수상자는 첫 소절부터 달랐다.
짬에서 느껴지는 바이브. 이건 하루아침 만에 나오는 구수함이 아니었다.
“근데 잠깐만, 이거 원키야?!”
영삼이 놀라 소리쳤다. 너무 편안하게 부르고 있어서 미처 몰랐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음이 너무 높은 거다. 그러나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민성에 영삼은 턱을 떨궈야만 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실력]
[데이즈 명품보컬 민성]
[제티 학교 충전 완료♡]
노래를 마친 민성이 자리로 돌아왔다. 수고했다며 리더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멤버들. 이제 남은 건 백야뿐이었다.
그 순간 허망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햄스터.
‘……도대체 왜?’
퀘스트 완료가 뜨지 않았다.
멤버에게 순서를 양보하다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그러나 이번에도 시스템만의 기준이 있는 듯, 상태 창은 답이 없었다.
“괜찮아?”
백야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지한이 그의 팔을 살짝 움켜쥐었다.
“…어? 어어.”
금방 정신을 차린 백야가 허둥거리며 대답했다.
“그럼 이제 마지막이네. 백야?”
영삼이 이름을 부르자 잔뜩 긴장한 개복치가 흠칫거렸다.
“저, 저요!”
백야가 손을 번쩍 들었다. 순간 존댓말이 튀어나온 개복치.
“편하게 해, 편하게.”
영삼이 우리는 친구니까 무서워하지 말라며 그의 긴장을 풀어 주려 했다.
“그래, 너는 뭘 보여 줄 거야?”
영삼의 질문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백야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아니 나는….”
맞은편 패널들의 눈치를 살피던 그가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외쳤다.
“서, 성대모사 준비해 왔어!”
교탁 아래로 꼭 움켜쥔 두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를 발견한 민성이 백야의 손 위를 감싸며 느리게 토닥여 주었다. 효과가 있는지 백야의 손 떨림이 천천히 멎어 드는 게 느껴졌다.
“무슨 성대모사야?”
“우리 성대모사 진짜 좋아해~”
패널들이 더 열심히 호응했다.
다른 멤버들이 신인답지 않게 능청스러웠던 거지, 보통 백야의 반응이 일반적이었다. 아랫입술을 살짝 말아 문 백야가 카메라를 찾았다.
“내가 개인기가 진짜 없어서 고민을 많이 했거든….”
그래도 가장 최근에 칭찬을 들은 거니까 한번 해보겠다며 그가 마른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