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백야는 왜 장점을 적었다가 지우고 다시 썼어?”
“……내가?”
백야가 금시초문이라는 얼굴로 바라봤다.
호딘이 여기 보라며 입학 신청서를 반대로 돌려 보여 주는데. 백야가 적은 장점 위로 누군가가 볼펜으로 긋고 새로 적어놓았다.
“일단 두 개 다 읽어줄게.”
[먼저 백야가 적은 장점은 노래]
[백야는 데이즈의 메인 보컬]
“범인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지우고 다시 적은 게 하트 머신.”
마지막 단어에서 범인을 대충 눈치챈 백야가 오른쪽 끝을 향해 눈을 흘겼다.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율무가 손을 휘저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아니야! 나 진짜 아니야. 한백야, 나 못 믿어?”
“응.”
“저런…….”
율무의 얼굴이 안타까움으로 물들었다. 평소에 애를 얼마나 놀렸으면 저런 대답이 바로 나오냐며 영삼이 몰아갔다.
“그러지 말고 참새 우리 팀 올래? 형이 잘해 줄게.”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는 플러팅. 싫은 소리를 잘 못 하는 백야가 난감한 얼굴로 웃기만 했다.
“그럼 하트 머신 누가 적은 거야?”
백야 대신 범인을 색출하는 호딘. 모두가 율무를 의심하는 가운데 진범은 예상외로 반대쪽에서 나왔다.
“나! 내가 적었어!”
청이 해맑게 대답했다. 백야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옆을 돌아봤다.
“정확하게 하트 머신이 어떤 장점이야?”
대윤의 질문에 청은 백야가 하트를 그렇게 잘 만든다고 대답했다. 그에 말을 얹는 수재.
“그럼 우리 그거 해보자. 하트 깨무는 거. 요즘 유행이잖아.”
팬분들이 또 이런 걸 좋아하신다며 하트 애교를 백야에게 시켜 보자는데, 민성이 뿌듯한 얼굴로 거들었다.
“그거 우리 백야가 만든 거야.”
“뭘?”
“깨물하트.”
이제 좀 잊혀지나 싶었는데….
민성의 한마디가 불러온 반응은 엄청났다. 깨물하트의 위력은 여전히 대단했다.
“그거 만든 게 쟤였어?!”
패널들은 진심으로 놀란 것 같았다.
[아이돌 사이 인기인 깨물하트]
[제티 학교 여러 전학생을 곤경에 빠뜨린 당사자가 여기에!]
“우리 한때 게스트 나오면 그거 엄청나게 시켰잖아. 그럼 오늘 원조 하트도 이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거야?”
“맞아. 내가 보여 줄게!”
호딘이 호들갑을 떨자 청이 맞다며 대신 대답했다.
“왜 네가 대답해?”
“내 마음이야!”
청의 막무가내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자! 하나 둘 셋!”
수재의 카운트에 하트를 장전한 백야가 크게 한입 깨물었다.
[앙♡]
“와아아! 귀여워~”
멤버와 패널들의 과장된 반응에 백야가 교탁 위로 무너졌다. 너무 오랜만에 선보인 하트라 그런가 하트 머신은 좀처럼 얼굴을 들지 못했다.
“우리 애가 부끄러움이 좀 많아.”
백야 대신 대답한 민성이 엎드린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런데 하트 머신이면 다른 하트도 보여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달랑 하나로는 부족하다며 시동을 거는 영삼. 듣고 보니 그렇다며 수재와 대윤도 영삼의 말을 거들었다.
“하나 더 보여 줘, 백야야~”
겨우 회복한 백야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MC들을 바라봤다.
“…하나 더?”
살짝 다문 입술에 축 내려간 눈썹 끝. 놀리고 싶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그냥 하트도 괜찮아.”
어떻게든 애교 분량을 뽑아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고민하던 백야는 이내 어느 카메라를 보고 하면 되느냐 물었다.
“아이돌은 아이돌이다. 카메라부터 찾는 거 봐.”
대윤이 귀엽다며 웃었다.
그사이 카메라를 찾은 백야. 파란색 후드티를 입은 스텝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백야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있었다.
“하, 할게.”
숨을 작게 들이마셨다 뱉은 백야가 눈을 찡긋 감으며 손가락 하트를 만들었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두 뺨 위로 올라가는 하트.
“아악 귀여워! 너무 귀엽잖아!”
영삼이 대윤의 어깨를 마구잡이로 흔들며 귀엽다 소리쳤다. 얼굴이 터져 버릴 것처럼 달아오른 백야는 교탁 아래로 숨어 버린 상태.
“어때, 우리 하트! 완전 짱이지?”
청이 턱을 치켜들며 잔뜩 거만한 표정으로 우쭐거렸다.
“원조는 역시 다르데이~”
하트 머신을 인정하겠다는 호딘. 그는 이어서 노래도 한번 들어 봐야 하지 않겠냐며 바람을 잡았다.
“하트 했는데 또…?”
슬쩍 교탁 위로 올라온 백야가 사색이 된 얼굴로 호딘을 바라봤다.
“본인이 적은 장점은 아직 우리가 검증을 못 했잖아~”
더운지 손을 파닥거리며 부채질하는 백야. 그에게로 오프닝 때 민성이 썼던 마이크가 전달됐다.
“짧고 강렬한 거 딱 하나!”
호딘이 딜을 걸어왔다.
‘짧고 강렬한 거라….’
순간 지금이 <연예인의 연예인> 퀘스트를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백야가 냉큼 하겠다 외쳤다.
“그럼… 우리 이번 컴백곡에 나오는 파트가 있는데 한번 불러 볼게.”
백야의 대답에 그가 뭘 부르려 하는지 눈치챈 멤버들. 데이즈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이건 된다며 확신하는 얼굴들이었다.
반면 백야는 들고 있던 마이크를 내려 놓았다.
“어? 마이크는 안 써?”
“응. 없어도 될 것 같아.”
말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백야.
“할게.”
의아한 패널들을 뒤로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그가 WANT ME의 클라이맥스. 4단 고음 파트를 아무런 워밍업도 없이 바로 내질렀다.
- I wa-a-a-ant
음이 올라갈 때마다 같이 올라가는 검지손가락. 스튜디오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성량에 패널들뿐만 아니라 촬영 중이던 스텝들까지 놀란 눈치였다.
동시에 백야의 눈앞으로 뜨는 상태 창. 하나가 아니었다.
[<연예인의 연예인(1)> 완료!]
[<연예인의 연예인(2)> 완료!]
[<연예인의 연예인(3)> 완료!]
[레벨 업! Lv.10 → Lv.11]
엄청난 수확이었다.
퀘스트 성공과 동시에 다음 단계의 퀘스트가 주어지고, 다시 조건을 충족하며 완료 알람이 뜨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마지막엔 레벨업 알림까지 더해져 백야의 눈앞은 그야말로 상태 창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흡사 렉이라도 걸린 것 같은 모양새였다.
“우와아아! 이게 뭐고!”
호딘이 자신이 방금 뭘 본 거냐며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영삼과 대윤은 할 말을 잃은 얼굴. 수재 또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어서 백야의 단점 : 셀고]
“셀고가 그거지? 셀카 고자.”
“응. 나 사진 진짜 못 찍어.”
그러나 이미 백야의 매력을 알아 버린 패널들은 이를 단점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괜찮아. 귀여워.”
그렇게 생략하듯 넘어간 백야의 단점. 이어서 유연의 차례였다.
“유연이 장점은 데이즈.”
왜 데이즈가 장점이냐 묻는 영삼에 능글맞은 미소로 대답하는 그.
“봤으니까 알잖아.”
우리 팀은 잘생긴 친구들도 많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춘다는 유연. 그는 자기 그룹과 멤버들이 너무 자랑스럽다며 말을 덧붙였다.
“개인적으로 이마에 데이즈라고 쓰고 다니고 싶어.”
“그럼 쓰면 되겠다.”
예능 작가의 매직을 받아와 가져다주는 수재. 유연이 살짝 당황한 사이 팬은 이미 백야에게 건네졌다.
“내가 써?”
“응. 글씨 쓰는 참새는 귀하니까.”
이제는 막 뱉는 드립.
“푸하하!”
웃음이 터진 청이 유연의 등을 퍽퍽 내려치며 몸을 휘청였다.
“그래 그럼. 내가 써 볼게.”
그사이 유연의 앞으로 다가온 백야. 그가 펜 뚜껑을 열자 유연이 손목을 잡아 저지시켰다.
“너 진짜 적을 거야?”
“어허. 예능이 장난이야?”
단호하게 받아치는 백야에 패널들이 환호했다. 유연이 몸부림치지 못하도록 뒤에서 붙잡은 청과, 백야가 적기 편하도록 앞머리를 넘겨 잡아주는 민성.
“예쁘게 적어 줄게.”
한 손으로 유연의 턱을 잡은 백야가 정말로 이마에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유연은 졸지에 벌칙을 수행 중이었다.
[데이즈 거]
“어디 보자~”
“…그거 지워지는 펜 맞지?”
“글쎄. 합격!”
유연의 턱을 잡고 요리조리 돌려보던 백야는 이마를 가볍게 때리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계속해서 유연의 단점]
“빈칸이네?”
“응. 뭘 적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비워 뒀어.”
그 말에 수재가 그 정도로 단점이 많냐며 유연을 몰아갔다.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당장 생각나는 게 없었어.”
그럼 이번에도 멤버들이 대신 칸을 채워 주자는 수재. 이에 청이 손을 번쩍 들었다.
“나! 나!”
“야 청청. 이러기야?”
적극적인 청에 유연이 배신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내가 한국 처음 왔을 때 이 사람 나한테 사기 쳤어!”
사기.
자극적인 단어에 패널들이 관심을 보였다.
“사기? 어떤 사기!”
“나랑 나이 같은데 존댓말 하게 했어! 한국의 매너라면서!”
사실 나이가 많든 적든 초면에는 서로 존댓말을 하는 게 예의긴 했다. 그러나 여기는 제티 학교. MC들은 유연이 나빴다며 청의 편을 들어 주었다.
“나는 청을 도와주려 한 거야.”
유연은 청의 첫인상이 워낙 강렬해서 존댓말 특훈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오디션에 합격한 청이 처음 연습실에 나온 날 마침 대표님을 마주쳤는데, 그날 대표님을 처음 뵌 청은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헤이! 미스터 ID~”
[첫 만남에 건넨 파격적인 인사]
[충격적이긴 하다…….]
“그래서 대표님이 받아 줬어?”
“응! 대표님 아주 Nice Guy~”
청이 카메라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자, 유연이 못 말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작게 저었다.
마지막 순서는 청.
[청의 장점은 영어]
“근데 넌 미국인이잖아. 아니야?”
“맞아. 그래서 영어 잘해.”
묘하게 빗나가는 것 같은 대화에 수재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상하게 쟤랑만 말하면 말리는 기분이야.”
“정상이야.”
그게 청의 매력이라는 민성.
“그래 그럼. 일단 영어 잘한다고 했으니까 영어로 우리 프로그램 좀 해외에 소개해 봐.”
“Okay.”
카메라를 찾은 청이 유창한 발음으로 <전학 왔습니다>를 소개했다.
끝으로 WANT ME로 컴백하는 데이즈의 신곡도 많이 사랑해 달라며 깨알 홍보까지 마친 청.
정말 기본적인 단어 몇 개만 알아들었지만, 패널들은 모두 이해한 척 미국 제스처를 취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Uh Hu.”
영삼이 아주 좋은 말이었다며 그에게 다가가 하이파이브를 했다.
“확실히 장점이네!”
청을 칭찬한 호딘이 이어서 단점을 읽었다.
“단점은… 이거 말해도 되나?”
호딘이 얼떨떨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의 낯선 반응에 슬슬 불안해지는 멤버들.
“당근하지!”
“아니야, 잠깐만!”
청이 당당하게 외쳤지만 유연의 손에 의해 급히 틀어막혔다. 그 틈을 타 조심스레 물어보는 민성.
“……뭔데?”
“베이비.”
Baby [명사] 아기, 새끼.
멤버들이 경악한 얼굴로 청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