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 * *
데이즈의 예능 인기 글을 섭렵 중인 뱁쌔와는 달리 다른 행보를 보이는 중인 복쑹.
무사히 본방 사수를 마친 그녀는 잠시 내려 두었던 SNS로 달려갔다.
‘팬 사인회!’
그사이 홍수처럼 불어난 타임라인의 팬싸 후기들. 복쑹은 상단에 뜬 후기부터 차례대로 정독을 시작했다.
[나 : 율무야, 누나로 이행시 지어왔는데 운 한 번만 띄워 줄래?
율무 : 좋아요~ 누!
나 : 누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게?
율무 : (피식) 너?
얘 첫 팬싸 아님. 아무튼 아님.]
[백야 온갖 방송에서 하트 깨물고 다녀서 본투비 아이돌인 줄 알았는데 팬싸 가니까 웬 새끼 햄스터가 오들오들 떨고 있었음ㅠㅠ]
[나 : 한국 병아리 소리 알아요?
청 : 응! 삐약삐약!]
[치명적인 매력 드립을 준비해 감.
나 : 오빠 치매에요? 치,
(타이밍 놓침)
지한 : (당황) 어떻게 아셨어요?]
[사인회 중간에 청이 시간 너무 끌어서 유연이랑 백야 앞이 잠깐 빈적 있었음. 교통체증ㅋㅋㅋ 그때 유연이 백야 머리 위로 복숭아 인형 하나 올리는데 애기는 또 가만히 있음ㅠㅠ 이 둘 케미 도랏다]
[나 : 백야한테서 벽이 느껴져.
백야 : 벽이요? 저 만만하게 생겼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는데….
나 : 완벽!
백야 : 으아아 그러지 마세요ㅠㅠ]
[나 : 오빠 볼 때마다 보조개에 손가락 넣어보고 싶어요.
유연 : 해 볼래요? (얼굴 내밂)]
[민성이한테 왼쪽 눈 감고 오른쪽 볼 찌르는 거 동시에 안 된다고 했더니 토끼 바로 해봄ㅠㅠ 팬들 소리 지르니까 눈치채고 웃음]
[나 : 왜 매일 같은 티만 입어요?
백야 : (당황) 죄송해요. 제가 숙소에 옷이 별로 없어서…….
지한 : (옆에서 사인하다가) 한백야, 내 거 입어.
이 둘한테 드립 치면 안 될 듯ㅋㅋㅋㅋㅋㅋ 환장의 조합ㅋㅋㅋ]
[나 : 오빠, 저 오늘 여기 남자친구랑 같이 왔어요!
율무 : 오~ 정말요? 어디 계세요?
나 : (거울 보여줌)
경호원 : 이동하실게요.
율무 : 잠시만요. 저 지금 제 여자 친구랑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오늘 완전 인생 첫 팬싸. 데이즈 생각했던 거보다 실물 대박이라 어버버 거리고 있었는데 지한이가 나보다 더 열심히 말 걸어줬다ㅠㅠ]
[서초 팬싸 #데이즈 실물 후기
민성 : 형광등 백 개 켠 것 같은 미모. 왕자님 상. 피부 개 좋음. 눈 땡그랗고 완전 흰 토끼.
지한 : 퇴폐 섹시 끝판왕. 부잣집에서 곱게 자란 고양이 같이 생김.
율무 : 웹툰에서 튀어나온 체대 남신. 덩치 미쳤고 건강한 구릿빛 피부. 걸어 다니는 조각상.
백야 : 개 하얌. 화면보다 얄쌍하고 오밀조밀하게 생겨서 진심 인형 같음. 얼굴에 복숭아, 햄스터, 말티즈 다 들어있고 기본 표정이 살짝 아방해서 망충미 있음.
청 : 엘프. 얘는 걍 다른 종족임. 턱선 예술이고 진짜 샤프하게 생김. 앞에 서 있는데 그냥 말이 안 나옴.
유연 : 신. 그저 갓. 아우라가 있음. 얼굴밖에 안 보임. 왜 센터인지 알겠고 무표정일 때 살짝 퇴폐 사슴 느낌. 피지컬 좋음.]
[청이한테 오빠라고 불러도 되냐 그랬는데 “(충격) 아빠요? 저 나이 들어 보여요?”라고 해서 팬싸 망한 후기...]
[팬들이 그림 그려달라는 요청 많이 했는지, 내가 하트 그려달라니까 자기가 먼저 엄청 많이 그려주겠다던 백야ㅠㅠㅠ 하트 10개도 넘게 그려 놨어ㅠㅠ 귀여워 쥬금♡]
[나 : 유연아 네 눈은 별로 만들었나 봐. 반짝반짝 거려.
유연 : 그 안에 누나가 있네요~
한유연 아이돌 2회차라는 게 학계 정설. 반박 안 받음.]
[팬싸 온 사람들 율무랑 하이파이브 한 번씩 다 한 듯. 손 대애애박 큼!!! 진짜 뻥 안치고 나랑 손가락 두 마디 차이 남.]
[내가 초등학교 앞에 파는 캐릭터 반지 한 10개 가져가서 멤버들마다 끼워주니까 지한이가 개 진지하게 혹시 이거 파시는 분이냐고ㅋㅋㅋ]
[애들한테 초동 33만 장 넘은 거 아냐고 물었더니 회사에서 들었다며 너무 감사하다고 마지막에 단체로 90도 인사하고 퇴장]
“부러워어허헝.”
중간에 주작 같아 보이는 게 몇 개 있었지만 일단 부러웠다.
첫 팬 사인회라 그런지 팬들의 드립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멤버가 있는 반면. 아이돌 2회차라도 되는 양 능숙하게 받아넘기거나, 오히려 드립을 받아치는 멤버도 존재했다.
백야와 지한은 전자에 해당했는데. 하필이면 이 두 사람이 붙어 앉는 바람에 그 시너지 효과가 대단했다고…….
“다음 팬싸는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고 만다!”
복쑹이 엄청난 결의를 다졌다.
팬싸 후기 사이로 홈마들이 올린 프리뷰도 꽤 섞여 있었는데, 유연과 백야의 트윈홈 <디어피치>에서는 백야의 머리 위에 복숭아를 올리고 있는 유연의 투 샷을.
민성의 홈 <도래빗>에서는 화관을 쓰며 웃고 있는 민성의 사진을.
지한의 홈 <한지>에서는 고양이 머리띠를 쓴 채 아랫입술을 혀로 살짝 핥고 있는 모습을 프리뷰로 공유했다.
이는 엄청난 속도로 팬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었는데. 뛰는 놈이 위에는 나는 놈이 있는 법. 남들이 프리뷰를 올릴 때 홀로 고화질을 올리는 이가 존재했으니.
바로 백야의 홈 <백야현상>이었다.
“미친! 백야현상 벌써 고화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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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night_by]
피X츄 : 살려줘…….
(백야랑 테이블 사이에서 살짝 찌그러진 피X츄와 노란색 감귤 모자 쓰고 웃고 있는 백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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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흑어흑.
입으로 울며 고화질 링크를 타고 들어가 원본을 저장한 복쑹. 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번 팬싸의 백야 레전드는 바로 이 사진이라는 것을!
당장 배경 화면으로 바꾸려는데, 새로운 짹이 업로드됐다는 알람이 울렸다. 복쑹이 피드를 새로 고치자 SNS 친구인 뱁쌔의 팬싸 후기가 막 올라온 게 보였다.
[아무래도 청님이 뱁쌔가 내 진짜 이름인 줄 아시는 것 같다...
(‘이름 귀여워요!’라고 적힌 청 사인과 P.S.jpg)]
[백야한테 선물 주는 거 까먹고 내려와서 진짜 눈물 날 뻔했는데 관계자분이 받아가 주셨다! 사인회 하는 동안 인형 계속 안고 있어 줬어ㅠㅠ (백야 홈 <스윗백> 프리뷰.jpg)]
“그 피X츄가 뱁쌔 님 거였어?!”
흥분한 복쑹이 대박이라며 그녀의 글에 댓글을 달았다. 눈물이 반 이상이었다.
* * *
이제 막 2주 차에 접어든 데이즈의 WANT ME 활동.
데이즈가 출연한 예능 방송은 지난주 대비 시청률이 소폭 상승하며 반응 또한 좋았다.
특히 팬들 사이에서만 거론되던 백야의 4단 고음이 소소히 화제가 되고 있었는데. 너튜브 채널에 올라온 해당 영상은 입소문을 타고 조회 수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유입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는 데이즈의 뮤직비디오와 리얼리티로 자연스레 연결됐는데.
- 인간 돌고래 보러 왔습니다~
- 고음도 고음인데 폐활량이 미침
- ID 주식 좀 사놓을까 AIM 떡상하기 전 보는 거 같음
- 데이즈라고? 얼굴이 사기네...
대중들이 데이즈의 이름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얘들아, 너희 뮤비 조회 수 벌써 4천만 넘었다.”
음악방송 대기실.
멤버들 앞으로 남경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전학 왔습니다>가 방송된 후 확실히 뮤직비디오 조회 수 상승 추이가 좋아졌다.
“음원도 꾸준히 오르고 있고.”
WANT ME의 음원 진입 순위는 33위. 데뷔곡보다 무려 열 칸이나 상승한 숫자였다.
현재는 소폭 상승해 20위 중후반 성적을 유지 중이었는데. 각종 예능 출연과 자본력의 끝판왕인 의상실 프로모션 효과가 슬슬 나타나는 것 같았다.
“우리 이 기세 몰아서 연말까지 쭉 달려보자!”
남경이 파이팅 넘치게 외쳤다. 함께 있던 덕진도 주먹을 쥐며 응원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너희 잠 덜 깼냐?”
새벽 사전 녹화라 그런가. 초점이 좀 안 맞는 거 같은데….
특히 백야의 상태가 유독 나빠 보였다.
“백야 괜찮니?”
개복치의 얼굴 앞으로 손을 흔들어보는 남경. 침울한 표정의 백야가 그를 천천히 돌아봤다.
“형, 저게 다 뭐예요…?”
아련한 시선의 끝은 바닥에 활짝 열려 있는 스타일리스트들의 캐리어로 향했다.
“뭐긴, 오늘 너희 무대 의상이지.”
“……저게요?”
백야의 눈빛이 마구 흔들렸다.
인형 컨셉으로 컴백한 뒤, 데이즈는 매번 음악방송 때마다 코스프레 수준의 의상을 소화해내는 중이었는데. 항상 과했지만 오늘은 얼핏 봐도 그 정도가 심해 보였다.
‘오늘이 며칠이더라….’
할로윈을 떠올리게 하는 과감한 소품의 등장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새우에 계란말이 인형?”
캐리어 앞에 쭈그려 앉아 구경하던 유연이 직사각형의 검은 복대 같은 걸 집어 들었다.
“이건 뭐지…?”
곱게 개어져 있던 복대가 그의 손에 의해 차르륵 펼쳐졌다.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지는 포스트잇 한 장.
팔랑이다 백야의 신발코 위로 내려앉은 종이에 개복치가 무심코 집어 들었다.
[초밥 김 6]
“아…….”
백야가 침통한 얼굴로 탄식을 내뱉었다.
“뭔데?”
슬며시 고개를 내민 율무가 글자를 소리 내 읽었다.
“…김?”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리는 법이 없었다. 애써 외면하고 있던 진실을 마주해버리고 만 데이즈.
“내가 초밥이라니…….”
항상 스타일리스트가 준비해 준 의상을 묵묵히 받아 입던 지한도 이번만큼은 충격이 커 보였다.
“우리 오늘 초밥 돼?”
1년 365일 맑음인 청이 해맑게 물었다. 그의 뒤로 보이는 옷걸이에 걸려 있는 흰색 티셔츠와 반바지는 아무래도 밥알인 모양이었다.
백야는 굳이 입어보지 않아도 얼마나 우스울지 상상이 갔다. 흰옷 차림에 등에 인형을 업고, 그걸 김 복대로 감싼 제 모습이라니.
“…….”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저런 창의적인 생각은 어떻게들 하시는 거지.
- 오늘 의상 진짜 역대급이다
- 이런 의상은 콘서트에서만 볼 수 있는 거 아니었어요..?
- 데이즈도 그렇고 ID 사람들 싹 다 이번 컨셉에 진심인 듯... 광기가 보여
- 오랜만에 음방 보다가 내 눈을 의심했다ㅋㅋㅋㅋ 이거 뭐냐? (데이즈 초밥 의상 단체.jpg)
- 초밥 광공 님 의상실에 원하는 옷 없어서 직접 그려서 ID에 보냈다더니 성덕 되심. 대박이다 진심
- 데이즈 특선 초밥 정리♥ 민성 : 참치 / 율무 : 간장새우 / 지한 : 연어 / 백야 : 계란 / 유연 : 새우 / 청 : 스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