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 * *
늦은 새벽.
눈가를 다크서클에 점령당한 백야 현상은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미쳤네.”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최애의 얼굴. 첫 팬 사인회 이후, 두 차례나 더 열렸던 데이즈의 사인회에 모두 당첨되는 기적은 개뿔.
돈으로 처발라 기적을 산 그녀는 아직 SNS에 올리지 않은 레어급 사진의 감상을 마쳤다.
“어쩜 보정할 게 없냐.”
빈말이 아니라 뭘 해 보고 싶어도 건드릴 곳이 없었다.
기껏 해 봤자 색감 조정 정도?
백상이 할 수 있는 건, 봉긋 솟아오른 두 뺨의 복숭아를 조금 더 탐스럽게 만드는 게 다였다.
“하…… 어떻게 이렇게 생겼지?”
이 사진을 찍은 나에게 치얼스.
백야는 하얀색 리본이 달린 화관을 쓴 채 정확히 자신의 렌즈를 보며 웃고 있었다.
“이번 시즌 그리팅 표지는 무조건 이거다.”
바탕화면 설정까지 마친 그녀는 셀렉해 둔 다른 사진을 올리기 위해 SNS에 접속했다.
수만 명의 팔로우를 거느린 그녀는 알림 기능을 항상 꺼뒀는데. 아니나 다를까 팬들로부터 온 쪽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대부분이 백야의 사진을 찍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중간중간 알 수 없는 아랍어와 영어도 섞여 있었지만, 지독한 영어 울렁증을 앓고 있는 그녀는 쿨하게 패스했다.
백상이 팔로우한 계정은 단 4개. 데이즈의 공식 계정과 백야 연합, 스케줄을 함께 뛰면서 친해진 율무의 홈마 <에드레이>와 청의 홈마 <윈섬>이 전부였다.
며칠 전 음악방송 출근길 사진을 업로드한 백상. 사진이 올라가기 무섭게 해당 글은 빠르게 공유되기 시작했다.
- 왁 초밥데이 출근길 고화질!
- 믿고 보는 백상님ㅠㅠ
잠시 반응을 지켜보던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SNS 부계정으로 옮겨갔다.
백야의 분홍색 머리 위로 새싹 낙서가 그려진 인장의 부계 ‘말랑이’. 본 계정인 <백야 현상>은 많은 사람이 보는 계정인 만큼 이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주접을 발산하기엔 부적합하다고 판단. 그녀는 곧바로 세컨드 계정을 만들었다.
계정이 전환되며 타임라인이 새롭게 로딩됐다. 개중엔 백야의 다른 홈인 <스윗백>, <디어피치>등 여러 홈마들의 사진도 섞여 있었다.
“보정 장난 아니네.”
백상이 감탄하며 하트를 눌렀다.
같은 사진 다른 느낌.
자신도 같은 곳에서 똑같은 날의 백야를 찍었지만 결과물은 완전히 달랐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홈마다 특유의 분위기가 존재하기 때문.
같은 사진이라도 선호하는 보정법이 다르니 결과물도 달라질 수밖에.
이번 팬싸에서 피X츄 백야를 건져낸 스윗백의 사진은 이름처럼 달콤하고 따뜻한 느낌이 강했고, 디어피치는 주로 피부를 강조하는 보정을 했다.
백상의 보정은 글쎄…….
- 백상도 출근길 올렸네. 데이즈 홈마 중에 여기가 제일 사진 잘 찍는 거 같음. 약간 애를 예술작품처럼 만들어 놓는다 해야 하나?
라고 한다.
자신은 차려진 밥상에 수저만 올렸을 뿐인데 이런 엄청난 평가라니.
“하핫. 머쓱타드.”
눈썹 뼈를 긁적이며 홀로 쑥스러워하던 그녀는 다시 타임라인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발견한 참신한 내용.
- 어제 엄청난 걸 보고 말았다 (‘DASE 세계관 정리 1탄’ 링크)
새벽에 올라온 글이었지만 리짹 수가 어느새 1만을 앞두고 있었다.
“세계관? 애들한테 세계관이 있었다고?”
금시초문이었지만 백상은 일단 눌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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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DASE 세계관 정리 1탄
추천 339 반대 87 (+1124)
※주관적 해석 주의
나는 원래부터 판타지, SF처럼 세계관이 큰 장르들을 좋아하는 영화 덕후임.
우연히 동생이 틀어놓은 음악방송을 보는데, 되게 잘생긴 애들이 이상한 초밥 옷 같은 거 입고 원미 원미 거리는 걸 보게 됨.
저 병맛은 뭐지? 하면서 계속 봄.
근데 갑자기 계란말이 초밥이 돌고래로 변하면서 듣도 보도 못한 4단 고음을 쏘는 거야.
여기까지가 내 입덕 계기고.
암튼, 나는 뮤직비디오부터 차근차근 파보기로 결심함.
과연 유명한 소속사라 그런가 뮤직비디오는 인트로부터 돈 냄새가 작렬했음.
북촌 어디 고등학교에서 찍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퀄리티. 나는 어디 유럽 나가서 찍고 들어온 줄.
그런데 이 웅장한 뮤비를 보고 있자니 고질병이 또 도지는 거야. 그러던 중 우연히 ID 관계자가 인터뷰한 내용을 보게 됨.
뭐 데이즈 유니버스 어쩌고가 있는데 그 세계관을 점차 확장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세계관에 환장한 나는 그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함.
그래서 내 마음대로 궁예 해 본 ☆데이즈 세계관☆ 시작!
먼저 데이즈의 ‘놀이’ 뮤직비디오를 보면 트럼프 카드가 등장함.
(놀이 뮤비 캡처.jpg)
데뷔곡이었던 ‘놀이’에서는 시작과 동시에 대놓고 보여줌.
트럼프 카드는 총 4개의 기호와 3개의 알파벳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상징은 아래와 같음.
K/Q (킹/퀸) : 왕, 여왕
J (잭) : 기사
하트 (♥) : 성직자, 봄
다이아몬드 (♦) : 상인, 여름
클로버 (♣) : 시민, 가을
스페이드 (♠) : 귀족, 겨울
JOKER (조커) : 광대
카드 색깔도 빨간색은 낮, 검정은 밤을 상징함.
데이즈는 데뷔 전, 컨셉 포토로 흑백과 컬러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음.
흑백 : 유연, 청청, 민성
컬러 : 율무, 지한, 백야
스페이드(♠)와 클로버(♣)는 검정 카드밖에 없고 하트(♥)와 다이아(♦)는 컬러 카드뿐임.
물론 K/Q/J랑 조커는 컬러, 흑백 카드가 모두 존재함. 그래서 저 티저 사진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음.
다시 ‘놀이’ 뮤비로 돌아가서.
뮤비 시작과 동시에 민성이 카드를 돌리던 걸 기억할 거임. 아마 이때 멤버들이 카드 기호를 하나씩 나눠 가졌을 가능성이 큼.
아직 뮤비가 두 개밖에 없는 상태라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데뷔 사진이 데이즈가 우리에게 던져준 첫 번째 힌트는 맞음.
(왕관 쓴 민성 캡처.jpg)
제일 처음 공개된 ‘놀이 Teaser #1’에서는 민성이 왕관을 쓰고 있음.
(왕관 들고 있는 유연 캡처.jpg)
그런데 정식 뮤비에서 왕관은 유연이 들고 있음.
민성과 유연 두 사람이 왕관(킹)의 자리를 두고 싸우는 중이라는 걸 예상해 볼 수 있음.
그리고 가사도 보면,
- No Games 다음은 없어
이기려면 나를 죽여
멤버들은 카드를 통해 어떤 게임을 진행 중임. 아마도 목숨을 건 게임 같은 게 아닐까…?
예를 들어 러시안룰렛 같은.
(뭔가를 찾는 중인 멤버들 캡처.jpg)
어디까지나 궁예지만 멤버들은 자기들 사이에 숨어 있는 흑막(조커)을 찾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음.
한마디로 서로의 정체를 의심해 믿지 못하고 있는 상황.
(보석 방을 발견한 청 캡처.jpg)
제일 먼저 무언가를 찾아낸 멤버는 청임.
화려한 보석들을 봐서 청은 귀족을 상징하는 스페이드(♠) 혹은 재물을 상징하는 다이아(♦)일 가능성이 높음.
뮤비 후반부에 보면 백야도 청과 함께 같은 방에 있는데, 이때 백야는 화려한 칼 한 자루를 보물 속에서 꺼내 듬.
기사인 J(잭)으로 추정됨.
(샹들리에 아래 엔틱 의자에 누워 있는 유연 캡처.jpg)
(샹들리에와 연결된 실을 끊는 누군가의 손 캡처.jpg)
(가위를 버리는 지한 캡처.jpg)
그럼 유연이 K(킹)이라는 가정하에 그를 가장 없애고 싶어 하는 인물은 누굴까?
바로 광대임.
트럼프 카드가 만들어진 시절에는 계급이 존재하던 귀족 사회. 거기서 광대는 동물만도 못한 취급을 받던 존재였음.
그렇다면 지한이 조커일까?
그건 아님.
(보석 목걸이를 한 지한 캡처.jpg)
일단 뒤에 가서도 이유를 알려줄 거지만, 먼저 ‘놀이’ 뮤직비디오 증거부터 얘기하자면 ‘놀이’에서 제일 화려한 장신구를 하고 나오는 멤버가 바로 지한임.
(카드 탑을 쌓고 있는 율무 캡처.jpg)
뮤비에서 율무는 유일하게 무언가를 찾는 데에 관심이 없음.
높은 확률로 성직자인 하트(♥).
우리가 ‘놀이’ 뮤비에서 건질 건 율무=하트 이것뿐임.
(여러분 율무는 사랑입니다.)
이어서 최근에 공개된 ‘WANT ME’ 해석도 이어가 보겠음.
(케익을 먹고 있는 청과 백야 캡처.jpg)
‘놀이’ 뮤비에서 보물의 방에 함께 있던 두 사람이 이번에도 함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음.
반면 이번에는 손도 안 댄 백야의 접시와는 다르게 청의 접시에는 각종 디저트가 담겨있음. 이때 홀로 바닥에 앉아있는 유연.
아래에서 곰돌이를 올려다보고 있는 구도인데, 이는 그의 사회적 계급이 낮다는 걸 암시함.
(다락방에 올라간 지한 캡처.jpg)
지한은 창고 비스무리한 데에서 오래된 체스 게임 상자를 발견함.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거는 바로 이 체스 게임임!
별표 다섯 개!!!!!
체스는 트럼프 카드랑 비슷한 구석이 있는데, 바로 말 중에 킹(King)/퀸(Queen) 그리고 제일 약한 말인 폰(Pawn)이 있다는 사실.
(체스 게임 중인 데이즈 캡처.jpg)
여기서도 민성과 유연은 서로 대립하는 구도를 보여주는데, 비슷한 것 같지만 민성이 조금 앞선 상황.
민성은 유연의 말로 추정되는 백색 폰을 들고 있음.
이때 백야의 위치는 민성의 옆자리, 지한은 홀로 쇼파에 앉아서 세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지한이 혼자 카메라를 쳐다봄!
(아이 컨택 지한 캡처.jpg)
저 장면에서 지한이 손안에 굴리고 있던 구슬은 보라색. 고대부터 보라, 자주색은 여러 문화에서 호사스러움, 부와 권력을 상징했음.
지한의 데뷔 티저는 컬러 사진이었으니까, 지한은 이제 다이아(♦), 킹/퀸(K/Q) 중 하나임이 확실해졌음.
무조건 다이아(♦)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한은 ‘놀이’ 뮤비에서 왕관을 들고 있는 유연을 해치기 위해 샹들리에를 끊은 전적이 있음.
만약 왕관이 지한의 것이고 민성은 그저 얻어걸린 거라면?
애초에 왕관을 노리는 유연과 민성이 괘씸해 두 사람을 자신이 짠 판으로 끌어들인 거라면?
거기다 저 체스 게임을 먼저 발견한 것도 지한이었음.
그럼 혼자 쇼파에 앉아있는 지금의 구도도 납득이 됨. (물론 나의 뇌피셜이기 때문에 아닐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