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싸늘한 정적.
둘 사이를 중재하려던 민성도 자리에서 얼어 버렸다.
반면 자기도 모르게 급발진해 버린 개복치. 사실 개복치는 속으로 벌벌 떨고 있었다.
‘망했다.’
소리를 지르려던 건 아니었는데 저도 모르게 쌓였던 게 터져 버렸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아남으려 아등거렸다. 이곳에 동기화된 이후 매일을.
모든 게 제가 죽어야 할 이유 같았고 지금 이 순간도 그랬다.
[BAD ENDING]
[멤버와의 불화로 사망!]
이딴 게 떠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 시스템에게 해야 할 말을 율무에게 해 버렸다.
‘등신같이 눈물은 또 왜 나서.’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 백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오늘 일은 정말 미안. 안 그래도 활동하느라 힘들 텐데.”
그냥 제가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겠다며 방을 나가 버린 백야는 그대로 화장실에 숨어버렸다.
문을 잠그고 샤워기를 틀었다. 그리곤 그 아래 웅크리고 앉아 무릎 위로 얼굴을 묻었다.
“누나 보고 싶다.”
기어이 눈물이 터져 버렸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 사이로 백야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율무가 머리를 헝클이며 침대 위로 털썩 앉았다.
“나율무, 왜 그랬냐.”
유연은 놀란 청을 데리고 나갔고, 방에는 율무와 민성, 지한만이 남아있었다.
“미안. 괜히 나 때문에 분위기만 이상해졌네.”
“사과는 우리 말고 백야한테 해.”
지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미안하다는 말 좀 그만해.”
민성은 미안탈트가 올 것 같다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너 진짜 왜 그랬어? 평소엔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웃고 다니는 놈이.”
민성의 말에 율무는 입을 다물었다. 잠깐 망설이던 그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며 대답했다.
“…그냥. 무서워서.”
처음 보는 율무의 모습에 그를 빤히 쳐다보는 지한.
“뭐가 무서운데. 쟤 나갈까 봐?”
백야의 탈퇴.
물론 그 또한 무서운 일이긴 했다. 애초에 데이즈는 백야가 없었다면 엎어질 게 뻔한 그룹이었으니까.
“그거도 무섭긴 하네.”
“말장난하지 말고.”
역시나 무거운 분위기.
이번에는 지한과 율무의 차례인가.
본인피셜 멘탈이 약한 민성은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두 사람을 중재하기에 나섰다.
“그만. 너희까지 싸우면 나 진짜 울 거야.”
“으.”
“울어.”
질색하는 율무와 다르게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는 지한. 민성이 해탈한 얼굴로 둘을 바라봤다.
“그래, 한 번 싸울 때 됐지 뭐. 사실 혈기왕성한 남자애들 여섯 명 모아놓고 마냥 화목하기만 바라는 건 내 욕심이지. 그렇지?”
“잘 아네.”
지한의 대답에 민성이 너는 가끔 너무 매정하다며 우는 척을 했다.
“욕심까지야….”
율무는 머쓱한지 대답을 흐렸다. 그러다 다시금 입술을 열었다.
“쟤 뛰어내릴까 봐 그랬어.”
율무의 시선은 여전히 바닥을 향해있었다.
“누가. 백야가?!”
민성이 놀라 되물었다.
“처음 숙소 들어왔을 때 발코니 난간대가 망가져 있더라고. 위험해 보여서 대충 쓰레기통으로 가려놨는데 그건 또 언제 봐서.”
한 번 더 머리를 헝클이는 율무. 덕분에 그의 머리는 산발이 됐다.
“힘든 티 내지도 않던 애가 갑자기 울지를 않나, 안 하던 실수를 하질 않나.”
분명 백야의 심경에 변화가 있었을 거라는 율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백야가 너한테 뭐 말한 거라도 있어?”
지한이 묻자 율무가 망설이다 대답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새벽에 잠깐 물 마시러 나갔다가 봤어.”
백야가 발코니에 웅크려 앉아 아래를 보고 있었다는 율무.
“담배라도 하는 건가 싶어서 가 봤는데 ‘죽으면 아플까’ 이딴 말을 중얼거리고 있더라고.”
그날은 아무것도 못 들은 척 백야를 거기에서 나오게 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는데. 이야기를 듣던 민성과 지한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그래서 다음날 남경이 형한테 바로 말했지. 쟤 불안하다고.”
“하긴. 백야같이 무슨 생각 하는지 모르겠는 애들이 종잡을 수 없긴 하지.”
혹시 그건 자기소개이신지.
민성이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눈으로 지한을 바라봤다.
“그래서 뛰어내리려는 건 줄 알고 그랬다?”
“응.”
“에이, 설마…….”
민성이 필사적으로 웃었다. 그러고 보니 자기랑 이야기할 때도 발코니 아래를 되게 아련히 쳐다보지 않았나?
졸지에 정서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백야.
이 분야 종사자들이 우울증을 많이 앓고 있다는 거야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보통은 연예인 병이 먼저 걸리지 않나?
“남경이 형도 잘 지켜보라 그랬잖아. 우울증일지도 모른다고.”
혼란스러운 민성에 지한이 기름을 부었다. 민성은 자기 손을 맞잡았다 풀기를 반복하며 초조해하고 있었다.
“혀, 형한테 말해야겠지?”
다행히 ID 엔터테인먼트에는 전문 심리상담사가 상주하고 있었다. 뭐든지 초기에 바로잡는 게 제일 좋은 법이니 지금이라면 백야를 원래대로 돌릴 수도…!
그때였다.
방문이 슬쩍 열리더니 백야가 다시 나타났다. 눈이 조금 부어 보였지만 아무도 내색하지 않았다.
“저기…….”
“어, 백야 왜?”
아직 율무와 백야를 붙여놓기는 너무 이르다고 판단한 민성이 허겁지겁 다가갔다. 그는 백야가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은근히 몸으로 가로막고 있었다.
그의 눈물겨운 노력에 지한이 안쓰러운 얼굴로 뒷모습을 바라봤다.
“할 말이 있어서….”
“무, 무슨 할 말?”
안으로 들어오려는 백야와 그 뒤로 함께 서 있는 유연과 청.
얘 왜 이러는데?
우리도 몰라.
눈빛으로 대화하는 세 사람.
그러나 백야의 의중을 알 수 없기는 유연과 청도 마찬가지. 두 사람은 말없이 어깨만 으쓱였다.
“이대로 자면 안 될 것 같아서. 우리 이번 주가 음악방송 마지막이잖아.”
이대로면 분명 티가 날 거라는 백야의 말은 일리 있었다.
유연이나 지한, 청이라면 모를까. 항상 생글생글 웃던 두 사람이 얼굴을 굳히고 있으면 지나가는 개도 알겠다. 쟤네 싸웠냐고.
백야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이상 가로막을 명분이 없던 민성이 슬그머니 길을 터 주었다. 백야를 보는 율무의 눈빛이 아까보다는 한층 누그러져 있었다.
“내가 샤워하면서 생각해봤어.”
“…….”
율무는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왜 반응이 없지.’
백야의 눈썹이 살짝 움찔거렸지만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진짜 내가 안무 실수한 것 때문에 화난 게 아니야?”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는데.”
“그럼 왜 화내는데?”
서로 한마디씩 주고받았을 뿐인데 분위기가 다시 험악해지고 있었다.
오 주여.
민성이 믿지도 않는 하느님을 찾던 순간, 폭탄이 터져 버렸다.
“너 죽을까 봐.”
“……어?”
그런데 백야가 당황했다.
“왜 당황하는데?”
비밀을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죽을까봐라니? 이 새끼… 혹시 뭐 알고 이러나?’
개복치가 율무의 눈을 마주쳤다 피하길 반복하며 낌새를 살폈다. 그에 점점 더 확신이 서는 율무.
“역시.”
“아, 아니, 너 뭘 알고 이러는,”
“너 아까 뛰어내리려던 거 맞지.”
으엥?
백야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백야의 멱살은 이미 율무의 손에 잡힌 뒤. 율무가 살벌한 얼굴로 백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 벌써 세 번째야.’
평생 잡힐 멱살 오늘 다 잡혀본다며 속으로 한탄하던 백야. 기분이 언짢아진 개복치가 눈을 부릅떴다.
“좋은 말로 할 때 이거 놔라.”
기분 나쁜 거도 나쁜 건데 그보다는 수치스러운 게 더 심했다.
아니, 나율무랑은 고작 10cm 차인데 멱살 한 번 잡혔다고 발이 공중에 뜨면 어떡해요?
‘율무차.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입술을 앙다문 백야가 마음속으로 참을 인 자를 세 번 새겼다. 그러나 여전히 멱살을 쥐고 있는 손에 결국 율무를 거칠게 뿌리치고 마는 성난 개복치.
“미쳤냐?!”
“…뭐?”
분위기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와 버렸다.
“백도 진정해.”
“둘 다 너무 흥분한 거 같다. 그냥 내일 이야기하는 게,”
유연과 민성이 한 명씩 잡아 두 사람을 떨어뜨려 놓았다.
“아니? 난 지금 해야겠어.”
민성의 말을 끊은 백야가 제 할 말은 해야겠다고 선언했다.
“내가 죽긴 왜 죽어 미친놈아. 내가 돌았냐?! 저기서 뛰어내리게!”
백야가 손으로 방문 너머를 가리키며 버럭 소리 질렀다.
흥분한 상태에 점점 높아지는 톤. 율무는 물론 지켜보던 멤버들도 백야의 처음 보는 모습에 당황했다.
“너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그에 백야가 살짝 맛이 간 눈으로 고음을 발사했다.
“어! 자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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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T ME 활동 4주 차, 공중파 1위 후보까지 올라간 괴물 신인 #DASE
(1위 후보 데이즈 캡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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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막방인데 유앱이라도 켜줘
- 애들 1위 공약하는 거 보고 싶었는데 상대가 넘 셌다ㅠㅠㅠ 그래도 수고했어 얘들아~
- 얼굴에 스티커 붙여주면서 앵콜... 어떻게 내 맘속 1위라도 안 되겠니ㅠ
- 1위 발표할 때 율무 백야한테서 떨어지질 않던데ㅋㅋㅋㅋ 계속 장난치는데 백야 꿈쩍도 안 함
└ 치대는 댕댕이랑 체념한 고양이 느낌ㅋㅋㅋㅋ
└ 그래도 내려갈 때 율무 꽃가루 잡는다고 좀 뒤처지니까 백야가 챙겨서 내려가더라ㅋㅋㅋ
- 음원 3n위로 진입해서 지금 12위까지 올라간 거 실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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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E_Official]
안녕하세요! 데이즈입니다~
오늘 무대 어떠셨나요? 벌써 마지막 방송이라니 시간이 너무 빨라요ㅠㅠ 그리고 오늘 1위 후보도 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이었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는 데이즈 될 테니까 지켜봐 주세요~!
아 참! 오늘의 데이즈 의상실 테마는 ‘너드’래요. 그런데 너드가 뭘까요? 안경 쓴 사람인가…?
그럼 저희는 금방 만나요♡
(안경에 풀린 눈, 주근깨 데이즈 단체 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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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울 아가 복숭아가 썼다에 100원 건다. 글이 아주 귀염뽀짝
- 에! 미쳤다. 단체 사진 도랏나ㅠㅠ 너드 뭔지도 모르면서 풀린 눈 뭐냐고ㅠㅠ 울 애들 천재다
- 너드! 수학이나 컴퓨터 잘하는 괴짜! 근데 존잘이어야 함
└ 이거지ㅋㅋㅋ 존잘이 아니면 너드는 성립될 수 없음
- 이제 의상실도 끝이야? 안돼 내 삶의 낙이 이렇게....
└ 의상실 계속 열어둔 대용
- 애들 이제 케이콘 무대 준비하려나? 케이콘 양도 구해요ㅠㅠ
└ 곧 연말 시상식 시즌이니 좀 쉬었다가 두 개 다 하지 않을까요
- 그래서 공식 팬클럽은 언제 만들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