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화
* * *
[DASE|1위 공략 연습해요!]
유앱 알람이 울렸다.
카메라 앞에 모여 앉은 멤버들이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시청자 수를 보며 신기해했다.
“엄청 빨리 올라가!”
청이 벌써 3만이 넘었다며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휘청이는 백야.
“청아 무거워.”
“응. 작아서 편해.”
청은 백야의 뒤에서 그를 끌어안듯 어깨에 팔을 기대고 머리 위로 턱을 괸 자세였는데. 팬들은 입장하자마자 보이는 막내즈의 스킨십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미친 얘들아 들어오자마자 이런 투샷이라니ㅠㅠ 은혜롭다 정말...
- 데이즈 공식 마약 방석=백야
- 1위 공략 연습은 또 뭐야ㅋㅋㅋ 뭘 공략할 건데ㅋㅋ 청이 적었니?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을 보던 멤버들이 의미심장한 미소로 잠시 후를 예고했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시작할게요~”
기분이 좋아 보이는 율무. 그사이 무언가를 가져온 민성이 멤버들에게 한 봉지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 뭐야 뭐야? 스티커?
- 아니 제목에 1위 공약 연습이라고 적어놓고 비밀인척 하면 제가 모른 척 해야죠.. 암요...
그렇다. 민성이 나눠 주고 있는 건 스티커였다.
음악 방송 1위 후보에 올라 공약을 말하긴 했지만, 상대는 경쟁사의 5년 차 간판 아이돌. 데뷔 때부터 AIM과 라이벌 구도로 엮였으며, 소위 남돌 1군이라 불리는 인기 그룹이었다.
아무리 데이즈의 성장세가 좋다고는 하지만 이미 팬덤이 확실한 그룹과 붙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오늘 뭐 하냐고여? 비밀이고요!”
민성이 스티커를 나눠 주든 말든, 라이브를 켜 놓은 핸드폰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청.
- 저게 말로만 듣던 그 이상한 존댓말?ㅋㅋㅋ 귀여워
- 청이한테 존댓말 이상하다고 하지 말아주세요~
- 넌 평생 존댓말 안 배워도 돼 애기야ㅠㅠ 지금이 딱 좋아
“청청.”
“응! 나 가!”
유연의 부름에 새끼 늑대가 냉큼 달려갔다.
데이즈는 WANT ME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의상을 선보였다.
그때마다 스타일리스트는 멤버별로 의상 디테일을 다르게 했을 뿐 아니라, 소품 활용도 센스 있게 해 타 그룹 팬들의 부러움을 샀는데. 사복 차림을 보니 멤버들의 센스도 못지않게 뛰어난 듯했다.
먼저 검은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는 율무.
“물 마실 사람?”
적당히 두꺼운 팔뚝. 탄탄한 체격과 넓은 어깨의 소유자답게 티셔츠 핏 또한 완벽함을 자랑했다.
하의는 주머니가 달린 깔끔한 스타일의 블랙 조거팬츠. 그의 조각 같은 몸 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옷차림이었다.
“청, 너 이거 떨어뜨렸잖아.”
흑이 있으면 백도 있는 법.
율무와 반대로 흰색 긴팔 위에 유니폼 느낌의 카라티를 레이어드 해 입은 유연. 그 또한 다년간 무용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매의 소유자였다.
하의는 조금 더 캐주얼한 스타일의 화이트 조거팬츠. 유연의 차림은 청소년 축구 선수를 떠올리게 했다.
“Good boy~”
율무에게서 스티커를 건네받고 있는 청.
마찬가지로 청도 앞의 두 사람과 견주어도 전혀 뒤처지지 않을 피지컬의 소유자였는데. 팬들 사이에서는 진작에 비인간으로 분류된 그는 일단 쓰고 있는 모자부터 범상치 않았다.
초록색 볼캡. 이장님 모자가 분명한데 그가 쓰니 명품처럼 보였다.
청은 남색 집업 아노락을 입고 있었는데, 판판한 가슴 아래로 적힌 영문 로고가 매우 돋보였다. 해당 브랜드의 디자이너가 이 모습을 봤다면 기립박수를 쳤을 만큼 훌륭한 옷걸이.
하의는 상의와 세트 되겠다.
“우리 이제 해?”
우유 냄새가 날 것 같은 이 남자.
백야는 흰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는데. 오버핏임에도 불구하고 어깨선만큼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하의는 그레이 조거팬츠.
“근데 춤추면서 이걸 어떻게 붙여?”
유연에게 뺏긴 적 있는 스티커를 소중히 쥔 지한. 지한은 품이 넓은 딥블루 셔츠에 라인이 한 줄 들어간 일자 핏의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셔츠 단추를 두 개쯤 풀고 있어 하얀 속살이 제법 보였다.
“얘들아, 대열 맞춰서 서자.”
오늘도 열일 중인 리더.
며칠 전 개복치의 난으로 다크서클이 짙어진 그는 초록색 체크 남방을 입고 있었다.
지한과는 다르게 목 끝까지 단정하게 채워진 단추. 유일하게 반바지를 입은 그는 늘씬한 각선미를 자랑했다.
검은색 팬츠 아래, 발목 위로 올라온 양말과 스니커즈는 팬들의 마음에 제대로 불을 지피는 중.
- 애들 사복 처돌았다
- 율무랑 유연이 반팔핏 미쳤네; 청이는 오늘도 그저 god
- 애들 뭐 해요?
- oppa english plz
“저희 오늘 1위 후보 올랐었잖아요. 1위 하면 WANT ME 추면서 얼굴에 스티커 붙이기 하겠다고 했었는데, 사실 후보 오른 것만으로도 너무 기뻐서 그냥 하려고요.”
대열을 갖추고 선 멤버들 사이에서 민성이 차분히 설명했다.
“그럼 시작할게요!”
민성의 목소리에 준비하고 있던 덕진이 음악을 재생했다.
♪♩♬♪♬♪♩
가운데 선 백야를 중심으로 둥글게 원 모양으로 선 멤버들.
발랄한 플럭 사운드와 함께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돈 멤버들이 파도타기를 하듯 한 명씩 제자리에 앉았다.
뒤돌며 첫 소절을 시작하는 백야. MR이 아닌 음원 재생이었지만 백야는 실제로 곡을 불렀다.
그런데 갑자기 튀어나온 지한의 손이 백야의 이마 위로 커다란 스티커를 붙였다. 백야는 눈 깜빡할 사이 복숭아 부적을 붙인 강시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 지한이 저번에 뮤비 비하인드에서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이마만 노림ㅋㅋㅋㅋ
- 이마 집착 광공ㅋㅋㅋ
- 붙이고 나서 뿌듯해하는 거 좀 보라고ㅋㅋㅋㅋ
생각보다 빠르게 스타트를 끊은 지한에 다른 멤버들도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안무를 시작하기 전, 한번 붙은 스티커는 절대 뗄 수 없다며 서로 간에 약속한 데이즈. 백야가 지한을 노려보며 자신의 스티커에서 제일 유치한 그림을 고르기 시작했다.
멤버들마다 들고 있는 스티커는 달랐다. 지한은 과일 시리즈였고, 백야는 동물, 청은 식물, 유연은 나비, 율무는 하트, 민성은 케이크였다.
“너 이리 와.”
호시탐탐 지한만 노리는 백야.
시야는 자연스레 좁아졌고, 덕분에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들의 눈에 그보다 좋은 타깃이 없었다.
“얍!”
“아야!”
어디선가 쏜살같이 달려온 청이 백야의 머리 위로 커다란 나뭇잎 한 장을 붙였다.
“Peach! Yeah~”
민성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청.
커다란 덩치로 달려와 냅다 머리를 갈겼으니 그 파워가 엄청날 만도 했다. 뒤통수를 움켜쥔 백야가 눈을 부릅뜨며 청을 노려봤다.
“넌 잡히면 가만 안 둔다.”
그사이 유연의 이마에 사과를 붙이며 복수에 성공한 지한. 그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와~ 이러기 있다고?”
눈빛이 달라진 유연이 제가 가진 나비 중에서 제일 커다란 놈을 떼 지한에게로 돌진했다.
순식간에 엉망이 된 WANT ME.
- 이게 무슨 개판이야ㅋㅋㅋㅋ
- 원미 추다가 졸지에 목숨을 건 술래잡기ㅋㅋㅋ
- 할미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내 새끼들 재롱잔치 꿀잼
“항복! 항보오옥!”
율무에게 스티커를 붙이려다 역으로 붙잡힌 민성이 소리치고 있었다.
양손을 결박당한 자세에 득달같이 몰려드는 까마귀 떼. 민성의 얼굴과 다리 위로 온갖 스티커가 붙었다.
- 다리 미친;; 완전 배우신 분들
- 방금 내가 뭘 밟았는데 뭐지? 어라? 데이즈 가방끈?
살 위에만 붙이기로 자기들끼리 합의했는지, 드러난 맨살이 아니고서야 서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금 제일 깨끗한 사람 누구냐~”
가장 우수한 피지컬로 독보적인 점수를 내고 있는 율무. 그에게 주어진 하트 스티커를 안 붙이고 있는 멤버는 없었는데. 개중에서도 백야가 제일 많이 붙이고 있었다.
- 백야 머리에 하트만 도대체 몇 개야ㅋㅋㅋㅋ
분홍색 머리와 얼굴 위로 덕지덕지 붙은 율무의 왕 하트 스티커. 거울을 본 백야가 이게 뭐냐며 불만을 표출하자 율무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마음이야~”
쪽.
백야에게 날리는 손 키스까지 완벽했다.
“장난해?”
승자의 여유로움에 오히려 자극받은 햄스터. 며칠 전 다툼으로 서먹해질 만도 했지만, 율무의 빠른 사과로 두 사람은 오히려 더 가까워진 듯 보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그날 오해해서 미안했다는 율무에게 백야는 멱살을 한 번 잡혀 달라고 요구했다.
그에 기꺼이 응해 준 율무.
그런데 백야가 돌연 침대를 밟고 올라가는 것 아닌가.
멤버들이 의아해하기도 잠시. 침대에 올라선 위풍당당 햄스터는 양손으로 율무의 멱살을 잡아 위로 당겼더랬다.
그러나 거구는 꼼짝하지 않았다. 분명 발이 떠야 하는데 옷만 주욱 늘어났다.
‘여, 여기 옷 맛집이네. 신축성 무슨 일이죠…?’
누가 봐도 당황한 햄스터에 율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만 긁적였다는 후일담.
- 율무 백야 놀리기 만렙ㅋㅋㅋ
- 근데 이거 많이 붙이는 사람은 뭐 주는 거야? 다들 너무 필사적으로 하고 있어서ㅋㅋㅋㅋ
얻는 건 없지만 대체로 데이즈 멤버들은 승부욕이 있는 편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맨살이 보이는 멤버가 없나 눈을 번뜩이던 율무. 그의 눈에 지한이 들어왔다.
“한지한.”
율무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이리 와.”
“웃기고 있네. 잡아 보시던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린 지한이 율무를 도발했다.
팽팽한 긴장감.
이미 체력이 바닥난 민성과 백야는 유리 앞에 기대앉아있었다.
맞은편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유연은 반항하지 않는 두 사람의 몸에 여유롭게 나비를 붙였고, 그 뒤에 선 청은 유연의 머리 위를 나뭇잎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복숭아 여섯 개, 끝!”
자기 머리 위에도 이파리를 한 장 달고 있는 청. 물론 셀프로 붙였다.
- 근데 애들아 그거 언제 다 떼려고 그래..? 우리야 좋긴 하다만..
- 지한이 결국 잡혔네ㅋㅋㅋ
“아악! 야 이…!”
“잡아보라며~”
지한은 헐렁한 셔츠 안에 아무거도 입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 안으로 불쑥 손을 넣은 율무가 몸 안에 스티커를 붙여버렸다.
그러나 지한의 처절한 비명만 들릴 뿐, 안타깝게도 화면에는 잡히지 않았다.
그 외에도 목덜미와 쇄골에 스티커를 붙이게 된 지한은, 슬슬 방송을 끝내야 한다는 남경의 사인에 풀려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