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58화 (58/340)

제58화

“이야~ 걸작이네~”

카메라 앞으로 모인 데이즈.

스티커로 엉망이 된 멤버들을 바라보며 흡족해하는 율무는 굉장히 얄미웠다.

“인간적으로 네 얼굴은 너무 깨끗한 거 아니야?”

율무에게 붙은 스티커라고는 머리 위의 나뭇잎과 얼굴의 나비 한 마리가 전부였다.

그나마 스티커가 붙어있는 곳을 찾자면 팔뚝이었는데. 그마저도 민성이 몸부림칠 때 옮겨붙은 케이크와 지한의 레몬, 유연의 나비 두 마리가 끝이었다.

백야가 심통 난 얼굴로 바라봤다.

“그러게 잘 좀 하지 그랬어~”

“뭐라고?”

윗입술을 올리며 드러내는 앞니.

입질하는 말티즈에 율무가 크게 웃으며 좋아했다. 그는 유독 백야의 반응을 재미있어했다.

- 애들아 다음에는 꼭 무대에서 할 수 있게 해 줄게ㅠㅠ

- 백야는 머리에 복숭아를 계속 해야 한다.

- 안돼 죽어도 못 보내... 원미 안되면 원츄로 재컴백해 줘ㅜㅜ

- 지한아 나 케이콘 간다!!! 케이콘에서 만나♥

다른 멤버들은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채팅창을 보고 있었다. 대부분이 유앱을 자주 켜 달라거나 곧 있을 케이콘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던 중 청의 눈에 들어온 짧은 영어 문장.

“Fan club?”

데이즈의 공식 팬클럽은 언제 만들어지냐는 내용이었다.

아이돌과 팬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 팬클럽은 해당 연예인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소속감을 심어 줄 뿐 아니라, 팬들 간에 유대감을 돈독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는데.

데이즈는 아직까지 정식 팬클럽이 없는 상태였다. 데뷔와 동시에 팬클럽을 공개하는 추세인 요즘, 데이즈는 많이 늦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

민성이 맞은편을 힐끔댔다.

남경도 전달받은 사항이 없는지 곤란한 얼굴로 대충 넘어가라 손짓했다.

“아직 정확히 정해진 게 없어서요. 조만간 확실해지면 그때 한 번 더 알려드릴게요.”

오래 기다리시게 하진 않겠다는 리더의 매끄러운 수습.

잘했다며 고개를 주억인 남경은 곧장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 팬클럽과 관련된 내용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올라가는 채팅창. 끄지 말고 조금만 더 있어 달라는 팬들의 부탁에 마음 약한 멤버들이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9위?”

지한의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에 얼굴을 들이밀며 너도나도 채팅창을 확인하던 데이즈.

- 얘들아 원미 실차 9위야!

- 백야 춤 연습 좀 해라. 혼자 X나 튐. 놀이 때처럼 수납 부탁~ 안 보이니까 좋았는데 원미에서는 왜 자꾸 기어 나와서 무대 망침? 오늘도 혼자 다른 노래 하는 줄

- 대박 우래기들 슈스다!!!

- 미친 드디어 한 자릿수 진입!

데이즈의 WANT ME가 실시간 차트 9위까지 올라갔다는 기쁜 소식이 보였다.

곧장 스트리밍 앱을 켠 덕진이 차트를 확인하곤 청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그러나 팬들의 축하 인사 사이로 눈에 띄는 악성 댓글. 하필이면 채팅창을 건드린 바람에 위로 올라가지도 않고 그대로 고정되어 있었다.

물론 백야도 해당 댓글을 읽었다.

‘오. 세다.’

백야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곁에 있던 유연과 율무가 슬쩍 옆을 보는 게 화면에 잡혔다.

“우리 진짜 9위야!”

청은 보지 못한 듯 핸드폰을 내밀며 신나게 소리쳤고, 민성은 댓글을 살피는 척 해당 글이 보이지 않도록 위로 넘겨버렸다.

“우와! 너무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는 데이즈 될게요~”

백야를 의식한 율무가 자연스럽게 박수 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유연은 그 틈을 타 아쉬운 말을 꺼냈다.

“그런데 여러분, 저희 이제 그만 연습하러 가야 할 것 같아요.”

일부러 옆을 보며 관계자와 눈짓을 주고받는 척하던 유연. 그는 남경의 핑계를 대며 방송 종료를 알렸다. 눈치 빠른 민성과 율무의 지원사격까지 더해지니 팬들도 더는 붙잡지 못했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지한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방송이 종료되었다는 안내가 떠올랐다. 화면이 꺼지기 무섭게 뒤를 돌아보는 민성.

“왜?”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은 백야가 모르는 척 되물었다. 그러나 민성은 속지 않았다.

“봤네, 봤어.”

답정너야 뭐야.

떫은 표정의 백야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래, 봤다. 맞는 말만 했던데 뭐.”

민망한지 백야가 시선을 피하며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천재 아이돌로 살아남는 건 고사하고, 그룹에 피해를 끼치는 것 같아 멤버들을 볼 낯이 없기는 했다.

‘망할 시스템 창.’

생각할수록 열받았다.

그에 지한이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말하려 했으나 청이 조금 더 빨랐다. 백야의 얼굴을 잡아채 제 눈을 보게 만든 막내 온 탑.

“백야! 내가 도와줄게!”

납작 찌그러진 개복치의 얼굴. 한동안 형이라고 잘 부르는 거 같더니 이제 그냥 맞먹기로 한 걸까.

‘하긴 연도가 같으니 상관없나.’

백야는 방금 저 자신이 조금 꼰대 같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데 이건 좀 놓고 말해주면 좋겠는데….

“으근 즘 늫즈?”

자비 없는 악력에 붕어 입술이 된 백야가 입술만 뻥긋거렸다.

“드츠 믈!”

도대체 뭘 도와주겠다는 건지. 붕어가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댄스 도와줄게!”

이래 봬도 청은 유연과 함께 데이즈의 메인 댄스 포지션을 담당하고 있었다.

아까 마냥 신나 하길래 얘만큼은 못 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본 것 같지.

포기한 백야가 뻐끔거리던 입을 닫았다.

“연습하면 댄스 늘어! 무조건!”

그렇게 결정된 방과 후 수업. 지도교사는 스파르타 청청. 초빙 강사는 한유연 되겠다.

* * *

[<연습벌레만이 사는 길(7)> 완료!]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 1 스타 포인트]

오랜만에 보는 연습벌레 퀘스트. 무려 뒤에 붙은 숫자가 7이었다.

‘저게 안무 연습 2,000번 달성이었던가…….’

아찔한 숫자에 백야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넋을 놓고 있었다.

“Hey! 입술 깨물기 금지야.”

“…안 깨물었어.”

“억울한 표정 금지!”

“그런 적 없어!”

“백야 소리 지르기 금지!”

금지! 금지! 금지!

청의 입에서 나온 금지만 합쳐도 시무 20조는 거뜬했다.

“이리 와.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이틀 뒤로 다가온 K-Concert.

아침부터 시작된 연습은 자정을 한 시간 남기고 끝이 났는데. 이 말은 즉, 하루 종일 연습실에 갇혀있었단 소리였다.

당연히 식사도 연습실에서 해결했다. 데뷔한 그룹에게 연습실 내 식사 금지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와악! 햄스터가 사람 잡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백야는 믿기 힘든 속도로 청의 뒤를 쫓고 있었다.

“역시…. 젊은이는 다르네.”

눈이 반쯤 감긴 민성이 느리게 눈을 끔뻑였다.

오늘의 임무를 마친 안무가가 퇴근하기 무섭게 그 자리를 꿰찬 청. 댄스 부진아의 방과 후 교실을 자처한 새끼 늑대가 호랭이 대신 선생님 행세를 하고 있었다.

“아악! 힘들어.”

도망 다니던 청도 체력이 달리는지 넘어지듯 바닥 위를 굴렀다. 갑자기 넘어진 청에 그를 밟을 뻔한 백야. 간발의 차로 멈춰 선 개복치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놀랐잖아!”

그러나 장난기가 발동한 청은 밟힌 척 다리를 붙잡고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아이고~ 내 다리!”

“괘, 괜찮아?!”

사색이 된 백야가 어디 보자며 청의 다리를 살폈다. 엄살을 피우는 순간 청은 유연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백도. 너 안 밟았어. 쟤 지금 장난치는 거야.”

“저 치사한!”

“…뭐라고?”

사납게 올라간 백야의 눈이 청을 향했다. 이번에는 정말 화가 난 얼굴. 위험을 감지한 청이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눈썹 끝을 내렸다.

“잘못했어요, 형.”

빠른 태세 전환.

청은 이럴 때만 백야를 형이라 불렀다. 과연 형들을 조련하는 막내의 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었다.

“어휴, 이걸 진짜.”

주먹을 쥔 백야가 청의 머리를 아프지 않게 쥐어박았다.

“너 때문에 힘만 뺐잖아.”

그러니 오늘은 더 이상 안무 연습을 하지 않겠다며 개복치가 파업을 선언했다. 청의 옆으로 발라당 누워버린 개복치. 스파르타 청도 오늘은 그만하고 싶은지 별말 없이 동의했다.

그러나 백야에게는 또 한 명의 스승이 있었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바로 악마 교관 유연이었다.

“너무 오래 쉬어도 힘들어.”

다가온 유연이 백야의 앞에 장승처럼 서 있었다.

“춤 잘 추고 싶다며.”

“아니, 그렇긴 한데….”

백야의 옷을 쭉 잡아당기며 얼른 일어나라 보채는 교관. 자비 없는 손길에 속살이 드러나자 백야가 기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기지 마!”

“기운 없다더니 좋기만 하네, 뭐. 우리 딱 다섯 번만 더 하자. 콜?”

콜 같은 소리하고 있네!

말은 우리라면서 너는 지켜보기만 할 거 아니냐며 백야가 억울해했다.

“쓰읍, 억울한 표정 금지.”

유연이 청의 말을 빌려 백야를 약 올렸다.

“하…….”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똑같았다.

체념한 백야가 유연의 손에 이끌려 거울 앞에 세워졌다.

한편 뒤에서 그를 지켜보던 율무와 지한. 둘은 안타깝다는 얼굴로 고개를 젓고 있었는데.

“차라리 호랭이가 낫다.”

지한의 말에 율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내가 연습생 때 쟤네한테 춤 알려 달라 그랬다가 살이 한 5kg 빠졌었나….”

율무가 백야를 잘 먹여야 된다며 당부했다.

“안 그래도 한 줌인 애 저러다 사라지겠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백야맘. 율무가 옆에서 엄마 같은 소리를 잘도 해 댔다.

“근데 한 명이 비는데?”

아까부터 보이지 않는 한 사람에 지한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언제 올라갔는지 소파 위로 탑처럼 쌓인 패딩 아래, 삐죽 튀어나온 베이지색 양말이 보였다. 검은 맨투맨으로 보호색을 한 민성이 그곳에 기절해있었다.

“쯧쯧. 갔네, 갔어.”

율무의 안타까운 얼굴은 한동안 펴질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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