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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60화 (60/340)

제60화

그러다 조심스레 열리는 문틈 사이로 고개를 내민 시윤과 눈이 마주쳤다.

“어?”

거울에 비친 백야가 눈을 크게 뜨며 뒤를 돌아봤다.

“백야 안녕?”

눈웃음을 지은 시윤이 문을 열며 들어섰다.

“…선배님?”

핸드폰을 하며 제 차례를 기다리던 민성도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났다.

“우리는 이제 도착해서. 아직 점심 전이지?”

에임 멤버들도 함께 왔는지 연하와 구양의 모습도 보였다. 데이즈와 스텝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에임을 반겨 주었다.

“아, 다른 멤버들은 스케줄 때문에.”

데이즈와 라이브 방송을 하며 꽤 친해진 연하가 손을 흔들었다.

“형님!”

달려와 엉겨 붙는 청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가 자리에 없는 멤버들을 언급했다.

“오면 소개시켜 줄게. 아직 한 번도 못 봤지?”

연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민성이 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에요! 저희가 갈게요.”

원래도 대충 준비가 끝나는 대로 찾아뵈려 했다는 민성은, 방금 뱉은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걸 증명하듯 초롱초롱한 눈으로 연하를 바라봤다.

그에 바로 옆에서 민성을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던 청.

“나는 많이 봤는데? 회사에 가면 사진 많아.”

어제도 함께 콘서트 영상을 봤지 않냐는 막내의 말에 민성이 그의 팔을 지긋이 잡아당겼다.

“하하…. 이리 와, 청아.”

“왜? 이거 아니야?”

머리 위로 뜬 물음표. 그런 두 사람을 향해 가볍게 웃은 연하가 청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 보고 있으면 꼭 구양이 처음 봤을 때 보는 거 같아.”

“나 왜?”

그때 끼어든 구양. 그는 대만 출신의 외국인 멤버였다.

“청이 보니까 네 옛날 모습 생각나서.”

저를 놀리는 게 분명한 말에 구양이 어이없어했다.

“참나. 그나저나 우리 후배님들 얼굴을 이제야 보네요. 투어 때문에 한국에 붙어있을 수가 있어야지.”

뭐지. 저 엄청난 한국어는.

시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백야가 옆을 보며 감탄했다. 백야가 한눈을 파는 와중에도 리더의 사회생활은 계속되고 있었다.

“저희도 선배님들 너무 뵙고 싶었습니다.”

율무랑 같은 방을 쓰더니 민성도 점점 닮아가는 것 같았다. 물론 진심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그러게. 같은 회산데도 보기 힘드네.”

시윤과 에임의 매니저가 테이블 위로 각종 포장지를 내려놓았다.

“아직 식사 전이지?”

"우와~ 이게 다 뭐에요?“

율무가 관심을 보이며 다가갔다.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각. 피자와 각종 분식의 향연에 데이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 거 사면서 같이 좀 샀어.”

“시윤아 잠깐만. 얘네 이런 거 안 돼.”

메뉴를 확인한 남경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그에 음식에 손을 떼며 남경의 눈치를 살피는 데이즈.

어제저녁, 마지막 만찬을 끝으로 연말 시상식 대비 다이어트에 돌입하기로 약속한 탓이었다.

“애들 관리해야 해.”

그러나 에임이 이를 알 리 없었다. 남경의 발언에 구양은 자기가 더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와……. 형은 쟤를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관리는 무슨 관리냐며 구양이 백야를 가리켰다. 저에게로 몰린 시선에 움찔거린 백야. 그가 애먼 가슴을 문지르며 어색하게 웃었다.

“저 그렇게 안 말랐는데….”

그러나 방금 발언은 조금 경솔했다.

“애 눈치 보는 것 좀 봐. 남경이 형, 왜 이렇게 빡빡해졌어?”

남경이 막 입사했을 즘. 잠깐 에임을 맡은 적 있던 그는 멤버들과 격 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였는데, 쏟아지는 질타를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그래… 먹어라.”

후배를 생각해서 사 왔다는데 안 먹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적당히 안 되는 척하다가 풀어 줄 생각이었는데 구양에게 당하고 말았다.

“와! 떡볶이!”

떡을 하나 찍어 든 청이 지한의 팔을 툭툭 쳤다.

“지한! 먹어!”

“내가 먹을게. 너 먹어.”

에임 멤버들이 대기실로 돌아가자 비좁았던 대기실이 다시 여유로워졌다. 관객 입장을 시작하기 전까지 리허설을 끝내려면 에임도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다.

“얘들아, 메이크업 지워지지 않게 조심해서 먹어.”

“알지 알지~”

먹성 좋은 남자애들답게 눈빛이 벌써부터 전투적이었다. 율무는 이미 피자 한 조각을 끝내고 은박에 쌓인 김밥 한 줄을 집어 들고 있었다.

“누가 보면 내가 너희 굶기는 줄 알겠다.”

김밥은 또 왜 이렇게 많냐며 검은 봉지를 들춰 본 남경이 학을 뗐다.

“백야도 얼른 와서 먹어.”

“네. 갈게요.”

시윤의 등장으로 잠시 메이크업을 멈췄던 백야가 마무리하고 돌아왔다. 립을 바르지 않았는데도 입술 위로 핑크빛 혈색이 돌았다.

“청, 이거 매운 거야?”

“Nope. 아가도 먹어.”

입 안에 떡을 두 개나 넣어 오물거리고 있는 막내. 입맛에 맞는지 방금 또 하나를 집어 갔다.

‘엄청 맛있나 보네.’

그냥 봤을 때는 빨간 맛 그 자체인데. 멤버가 잘 먹는 걸 보니 괜히 군침이 돌았다.

‘먹어? 말아?’

젓가락을 입에 문 채 고민이 길어지는 개복치. 그런 백야의 팔을 툭 건드린 유연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고사 지내냐? 그만 보고 얼른 먹어.”

유연이 백야의 빈 접시 위로 피자 한 조각을 얹어주었다.

“많이 먹어야 연습도 많이 하지.”

유연이 싱긋 웃으며 보조개를 만들었다. 팬들은 열광하는 모습이었지만 백야에게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얼굴일 뿐이었다.

“…무서운 놈.”

더는 엮이고 싶지 않다며 질색한 백야가 생각 없이 떡볶이 위로 손을 뻗었다.

이때 개복치의 머릿속은 이미 스파르타 수업에 대한 거부감으로 가득 찬 상태였는데. 고개를 털어 상념을 떨쳐낸 백야가 입 안으로 빨간 물체를 집어넣었다.

“어?”

유연의 놀란 눈이 백야를 향했다.

“왜.”

“그걸 왜 먹어?”

“뭐라는 거야. 언제는 많이 먹어야 굴린다며.”

백야가 이를 살짝 드러내며 입질에 시동을 걸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 떡….”

한발 물러난 유연이 말끝을 흐렸다. 평온해 보이는 백야에 반해 그는 의아한 모습이었다.

“…잘 먹네? 왜지?”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

그러나 반응은 뒤늦게 나타났다. 눈을 크게 뜬 백야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어 으으?”

오만상을 찌푸린 백야가 잔뜩 뭉개져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물었다. 그러나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동갑내기.

“뭐긴 뭐야. 매운 떡볶이지.”

유연이 봉지에 붙어있던 영수증을 떼어 백야에게 건넸다.

[맵기 4단계 <불닭 맛>]

고추가 무려 네 개였다.

‘이런 미친…!’

“그러게 내가 왜 먹냐 그랬잖아.”

에임과 청에게 암살 시도를 당한 맵찔이의 눈이 배신감으로 차올랐다.

그래도 둘 중에서 더 괘씸한 자를 고르라면 단연 얘가 아닐까.

“율무! 이거 먹어!”

“떡볶이? 아까 먹어봤지~ 화끈하던데?”

바로 청청.

‘미국 애들은 매운 거 못 먹는다고 한 사람 누구야.’

배신감과 함께 올라오는 매운맛에 백야의 이마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맺혀있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눈치 없는 놈이 하나 더 있었다.

[경고!]

[스트레스 지수가 ‘주의’ 단계입니다. 66%]

‘아 뒷목.’

매운 걸 먹은 데다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는 경고창까지 더해지니 혈압이 제대로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상태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새로운 퀘스트(히든)가 도착했습니다!]

[Q.한계와 도전(1) : 우리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한계에 대한 도전 최초 1회 달성]

도대체 저게 천재 아이돌이 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크헠, 콜록.”

씹지는 못하겠고. 차마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개복치는 발만 동동 굴렀다.

“그냥 뱉어.”

“으으!”

싫다는 말이었다. 유연은 이번에도 정확히 알아들었다.

“그럼 삼키든가. 너 얼굴 터질 것 같아 지금.”

시간이 지날수록 백야의 얼굴은 점점 빨개지고 있었다.

“으으!”

도대체 왜 뱉지 않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유연은 자신과의 싸움이 한창인 개복치를 바라봤다. 안쓰러움과 한심함, 그리고 난감함 그 어딘가의 표정으로.

“맵찔이도 자존심은 있다 이건가….”

이상한 데서 고집을 부리는 백야에 유연이 고개를 저었다. 꼭 말 안 듣는 조카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자.”

종이컵에 과일 맛 음료를 부은 유연이 백야에게 내밀었다.

“흐어엉.”

“고맙다는 말은 됐고. 그냥 입 안에 든 거나 어떻게 좀 해라.”

어느새 눈물까지 달고 있었다.

[<한계와 도전(1)> 완료!]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 1 스타 포인트]

쿨평화 한 사발과 눈물 한 방울을 삼켜 얻어 낸 1점.

‘그런데 이걸 고스란히 스트레스에 사용해야 하다니.’

속이 쓰렸다.

“…위장약 가진 거 있냐.”

“그 정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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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E_Official]

케이 콘서트 대기실 현장!! 저희는 잠시 후에 만나요~ 사진은 매운 거 먹고 고장 난 맵찔이랑

(멍때리는 백야랑 브이 하는 유연 셀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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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뱁쌔 : 나라님 어디세요? 저 이제 내렸어요ㅠㅠ]

[지한이 나라다 : 저 3번 게이트 앞이요! 베이지색 트렌치코트에 지한이 슬로건 들고 있어용.]

팬 사인회 이후 나라와 자주 연락을 주고받은 뱁쌔. 그사이 제법 친해진 두 사람은 스케줄까지 함께 뛰게 됐다.

초행길이라 약속 시간까지 도착하기엔 빠듯할 거라 판단한 뱁쌔가 나라에게 얼른 가겠다 답장했다.

“어디로 나가야….”

그러나 걱정할 필요도 없이 역에 내린 모든 인파가 한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긴가…?’

일단 따라가 보기로 한 뱁쌔가 주위를 살피며 대열에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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