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62화 (62/340)

제62화

‘이건 또 뭐야.’

이런 중요한 순간에 느닷없이 떠오른 상태창이라니. 백야는 심기가 불편해졌다.

[Q. 최고의 승부사 : 천재는 확률을 계산하지만 승부사는 감으로 판단한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 (더 보기)]

‘얘는 꼭 이상한 거 시킬 때만 말이 많아지더라.’

일단 더 보기가 떴다는 점에서 이 퀘스트는 탈락이었다. 메인 퀘스트도 아니니 굳이 성공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제일 마지막 문장이 시선을 사로잡는 게 아닌가.

[※ 성공 시 스타 포인트 2배]

‘뭐지, 이 엄청난 보상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에 덥썩 미끼를 물고 만 개복치. 내용을 요약하자면 대충 이랬다.

아까 다짐한 대로, 오늘 무대를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무사히 마친다면 네가 가진 스타 포인트를 두 배로 늘려 주겠다.

백야가 지금 가진 스타 포인트는 4점. 성공만 한다면 8점이 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백야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단, 실패 시 스타 포인트 소멸]

한국인 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안다 했다고, 실패 시 페널티가 만만치 않았다. 왜 속담에 소탐대실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4점 얻으려다 빈털터리로 망하는 수가 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카테고리만 댄스지 춤이랑은 전혀 상관없는 이름의 <혼수상태(D)>를 장착 중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됐다.

‘그래도…’

약 2주. 스파르타 청과 악마 유연 아래에서 한없이 굴려진 기간이었다.

‘괜찮지 않을까?’

게다가 어제 마지막으로 한 연습도 올 클린이었다. 개복치는 왠지 성공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몰라. 도전!’

개복치의 전 재산을 건 미니 게임이 시작됐다.

* * *

- Whoa-oh-whoa-oh

무대에서는 오랜만에 들어보는 놀이의 도입부 바이브레이션. 파트를 소화할 때가 아니면 무조건 구석으로 수납되는 일명 서랍 동선으로, 백야의 팬들은 데뷔곡을 선호하진 않았다.

아, 물론 백야는 예뻤다. 그래서 더 화나는 걸지도.

“와악! 백야야!”

흥분한 새 한 마리가 목이 터져라 백야를 부르짖었다.

“베레모옼! 콜록.”

결국 무대 시작 30초 만에 사레가 들려 버린 뱁쌔.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치면서도 눈은 전광판에서 떼질 못했다.

“미쳤다 한백야….”

아까부터 계속 같은 말만 하고 있었지만, 이곳에 모인 대다수가 그녀와 같은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옆에 앉은 나라는 아까부터 돌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중이었으니까.

“뱁쌔 님 백야, 백야 베레모 돈 거 아니에요?!”

방송에서 한번 입고 나온 적 있는 옷이었지만 소품이 조금 달랐다.

일단 반바지가 긴바지로 바뀌었고, 민성의 옷에는 보석 견장이, 백야와 청은 하얀색 베레모를, 유연과 지한은 빅 카라 대신 비슷한 패턴의 스카프를 매고 있었다.

“백야도 돌았는데 율무도 돌았어요. 어흑.”

율무는 짙은 남색 세라복의 단추를 하나도 잠그지 않고 무대에 등장했다. 당연히 맨살은 아니었고 안에 어두운색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움직일 때마다 팽팽하게 당겨지는 저 가슴을 보라.

“미쳤다 진짜.”

뱁쌔가 미쳤다는 말을 20번 정도 했을 때쯤, 데이즈는 첫 번째 곡을 무사히 마쳤다. 조명이 모두 켜지자 전광판 속 멤버들의 얼굴이 더 빛나 보였다.

“일단 저희 인사 먼저 드릴까요?”

민성의 선창에 데이즈의 팀 구호가 울려 퍼졌다. 팬들도 그에 화답하듯 함성이 메아리쳤다.

“그럼 앞으로 나가면서 이야기를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전에 말을 맞춘 대로 세 명씩 나눠 돌출 무대로 이동하는 멤버들. 자기 혼자만 보기엔 미안했던지 나라가 뱁쌔에게 망원경을 권했다.

“잠깐이라도 보실래요?”

“앗. 그럼 조금만 볼게요.”

내심 성능이 궁금했던 뱁쌔는 거절하지 않았다.

초점은 모두 맞춰 놨으니 백야만 찾으면 된다는 나라 님. 스탠딩 구역을 방황하던 뱁쌔의 망원경이 이내 목표물을 발견했다.

“우와!”

망원경 성능 무슨 일이야.

이 조그만 물건 하나로 뱁쌔의 좌석은 3층 하느님 석에서 1층 중간 열쯤으로 바뀌었다.

“완전 잘 보이죠? 애들 미모 오늘 돌았다고요. 진짜.”

“미친!”

콘서트가 끝나자마자 망원경부터 구매하기로 결심한 뱁쌔는 열심히 눈으로 백야를 관찰했다.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놀이 무대를 하니까 데뷔 무대가 생각나네요~”

임진각? 전설의 레전드였지.

살짝 방향을 틀어 율무를 본 뱁쌔가 감탄했다. 쟤는 체격부터가 달랐다.

“사실 WANT ME 활동이 너무 금방 지나간 것 같아 많이 아쉬웠는데, 이렇게 케이 콘서트로 팬분들을 만나 뵐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지한도 무난한 소감을 말했다.

“그나저나 백야 씨. 아까부터 왜 그렇게 눈을 부릅뜨고 계세요?”

멤버들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복숭아. 결의에 찬 표정이 유연의 시선을 끌었다.

“…저요?”

“네. 백도 씨.”

유연이 백야를 향해 ‘백도’라 지칭하자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어… 저는 열심히 하려고요.”

“대답을요?”

“다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올라온 것 같은 모습에 민성도 거들었다.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눈에서 불꽃 튀겠어요.”

민성은 백야가 아까부터 눈에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 무대 하다가 잠깐 마주쳤는데 제가 실수라도 한 줄 알았다며 가볍게 웃었다.

“그럴 리가요. 저희 팀은 저만 잘하면 되는데요?”

당연히 백야는 별 뜻 없이 한 말이었다. 유연과 청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저희 모두가 노력해야죠. 그리고 백야 씨는 저희 중에 제일 열심히 하고 계시잖아요.”

“맞아! 햄스터 요즘 나랑 유연이랑 매일 춤 연습해요. 우리 댄스 라인!”

그러나 해당 발언을 가볍게 받아들이지 못한 몇몇이 존재했다.

“아니야 백야야! 아니라구!”

망원경을 든 채 부르짖는 뱁쌔와 해당 멘트에 자기 의견을 덧대어 곧바로 SNS에 올린 일부 팬들이.

- 복숭 멘트 중인데 데이즈에서 자기만 잘하면 된다 그랬다. 맴찢.. 설마 다른 멤들이 눈치 주니

- 100 그때 라방에서 댓글 본 거 맞네. 애가 춤 연습 맨날 한다잖아ㅠㅠ 살도 그래서 빠진 거?

물론 멤버들은 알 리 없었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율무가 씩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자 백야가 실소하며 따라 들었다.

[토크 종료 > 무대 준비]

그러는 사이 데이즈에게 주어진 시간이 모두 지났다.

멘트를 끝내고 다음 무대를 준비하라는 프롬프터의 사인을 본 민성이 슬슬 대화를 마무리하며 다음 곡을 소개했다.

“이어서 마지막 곡 WANT ME 들려드리겠습니다.”

데이즈가 다시금 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둥글게 선 멤버들 사이에 백야가 서 있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뱁쌔는 망원경을 돌려주었다.

“잘 봤어요, 나라님.”

뱁쌔는 손에서 망원경을 놓기 무섭게 입을 틀어막았다.

“내 새끼 너무 잘하고 있는데 어째서 그런 생각을…!”

과몰입 덕후는 최애의 말을 가볍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애들 사이좋다던데요?”

“…진짜요?”

“네. 제 지인 중에 ID에서 일하시는 분이 계신데 백야가 ID의 아이돌이래요. 쪼그마해서 멤버들도 다 귀여워하고 에임도, 앗! 무대 시작한다. 있다가 알려 드릴게요.”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전주에 뱁쌔도 나라도 전광판을 돌아봤다.

♬♪♩♬♪♬♪♩

멤버들 틈에 가려져 있던 백야가 뒤를 돌며 첫 소절을 시작했다.

- 매일 아침 눈 뜨길 기다려

너의 하루는 나로 시작해

몇 번을 봐도 상큼한 도입부. 일전에 복숭아 과즙이 터지는 걸 볼 수 있을 거라던 율무의 인터뷰가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꺄아아악!”

전광판 가득 잡히는 백야의 원샷에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타 그룹 팬으로 보이는 몇 명이 백야를 가리키며 수군거리는 게 느껴졌다.

- Morning 좋은 아침이야

투정 부리는 게 좋아

나를 보는 눈이 사랑스러워

곡을 이어 나가는 청. 그도 백야와 같은 색상의 베레모를 쓰고 있었지만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앞머리를 내려 머리카락이 보이게 쓴 백야는 귀여운 느낌이 강했다면, 청은 머리를 모두 넘겨 이마가 깔끔하게 드러났다.

대중적이기보단 특정 마니아층의 취향을 타는 날카로운 인상의 외모.

그러나 실물 앞에서는 취향이고 나발이고 할 말을 잃게 만든다는 그의 얼굴은 베레모와 만나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었다.

“얼굴이… 베레모를 이겼네….”

넋을 놓은 뱁쌔가 전광판을 보며 중얼거렸다.

-너에게 난 항상 우선순위

나도 같은 마음이야

나를 안아줘 세게 안아줘

청과 바통 터치하듯 센터로 나온 유연. 두 손을 겹쳐 가슴 위로 포갠 그가 어깨를 으쓱이자 경기장은 한 번 더 달아올랐다. 과연 작정하면 큐티도 가능하다던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저, 저 폭스가 또…!”

데뷔 초, 유연은 안무에만 집중하느라 카메라를 매번 놓친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단체를 잡고 있던 화면이 유연 원샷으로 바뀌자, 그는 단번에 카메라를 찾아냈다. 확실히 전보다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 숨이 터져 버려도 좋아

나는 너라면 다 좋은걸

놓지 말아줘 내 손을 잡아

나왔다 율무!

혼자만 해군 제복을 입으신, 아니 풀어헤치신 분.

WANT ME는 여름을 노리고 나온 청량 컨셉이었지만 계절을 타는 곡은 아니었다. 덕분에 선선한 가을 하늘 아래에서도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와 씨, 쟤 누구야?”

옆자리 에임 팬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가장 대중적인 외모의 미남을 고르라면 단연 율무가 아닐까.

두말하기 입 아플 만큼 완벽한 피지컬에 속쌍꺼풀의 커다란 눈. 항상 웃고 있는 얼굴이라 대형견 이미지가 강했지만, 이렇게 무대에 올라왔을 때만큼은 의외의 카리스마를 뽐내곤 했다.

“유, 율무야악!”

뱁쌔가 모르는 척 율무의 이름을 소리쳤다.

“나율무욱!”

옆자리 숙녀분들에게 보내는 뱁쌔의 마음이었다.

그대의 안목에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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