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64화 (64/340)

제64화

대환은 시윤의 말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입꼬리를 올릴 뿐.

“활동 끝나서 좀 한가하죠?”

무슨 의도로 묻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신인이 한가할 새가 있나. 백야는 어색하게 웃으며 지한의 옷을 잡아당겼다.

S.O.S. 신호였다.

“아직 스케줄 관련해서 전달받은 건 없지만, 한동안은 연말 무대 준비로 많이 바쁠 것 같습니다.”

“아 맞다. 시상식.”

잠시 고민에 빠진 것 같던 대환.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는 백야를 한 번 더 보고 나서야 몸을 돌렸다.

“…나 뭐 잘못한 걸까.”

“글쎄. 그냥 너한테 관심 있는 것 같은데.”

“으엥?!”

“그 관심 말고.”

얼토당토않는 오해에 지한이 정색했다. 발음이 뭉개지는 걸 보니 살짝 이를 악문 것 같기도 했다.

“닭살 돋을 뻔했어.”

“누가 할 소리를.”

* * *

- 역시 에임. 에임이 케이콘 씹어먹음. 떼창 레전드

- 시윤이 후배 그룹 계속 챙겨주고 앞으로 나가라고 밀어주고 완전 정다정♥ 근데 그 와중에 햄스터같이 생긴 애 자기 멤버 옆에만 딱 붙어있는 거 좀 귀여워

- 데이즈 4단 고음 미쳤더라

- 티엔터 남돌 데뷔하나 봐~ 짹에 광고 엄청 뜸. 근데 가운데 있는 애 ID 연생으로 유명하던 걔 아님? 데이즈 안 하고 왜 티엔터에서 데뷔함?

└ 왜겠냐?

└ 데뷔조 확정될 때 밀렸나 보지. 저기 메보 노래하는 거 못 봄?

- 혹시 데이즈 백야가 대환 돈 떼먹었어? 얼굴 뚫리겠는데 (백야 쳐다보는 대환 사진.jpg)

└ 울 황금 막내 표현을 못 해서 그렇지 저거 엄청 관심 있어 하는 거라구요ㅠㅠ

└ 이거 마지막 무대 끝나고 전 출연진 단체로 올라왔을 땐가ㅋㅋ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 핸드폰으로 모니터링을 하던 율무가 백야에게 장난치듯 말을 걸었다.

“백야야 돈 빌린 거 있으면 빨리빨리 갚아라~”

“무슨 소리야 그게?”

마찬가지로 무대 반응을 찾아보던 민성이 관심을 보였다.

“이거 봐.”

에임의 홈마가 찍은 대환의 프리뷰였는데, 유연의 옆에 딱 붙어 있는 백야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대환의 모습이었다.

“…얼른 갚으세요?”

팬들이 농담으로 적어 놓은 멘트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민성이 백야에게 물었다.

“너 진짜 돈 빌렸어?”

“장난해? 오늘 처음 봤는데 무슨 돈을 빌려.”

백야가 황당해했다. 조수석에서 멤버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경이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

“걔가 너 마음에 들었나 보다.”

“저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너희 무대 하는 건 봤을 거 아니야. 혹시 알아? 대환이가 곡 하나 줄지.”

“에이, 설마요.”

대환은 많은 가수의 러브콜에도 곡을 안 주기로 유명했다. 그는 오직 에임의 노래만 썼기에 멤버들도 그건 너무 나간 것 같다며 남경의 말을 웃어넘겼다.

그때 백야의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d : 백야 맞죠?]

알 수 없는 사용자로부터 온 메시지.

고등학교 동창들이 어디서 제 번호를 팔고 다니나…. 요즘 들어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자주 오고는 했다.

‘진짜 번호를 바꿔야 하나.’

오래 써 오던 번호라 제법 정이 들었는데 이런 식이면 진지하게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d : 숙소 가는 중? 나가는 거 못 봤는데.]

[d : 언제 나갔어요?]

[d : 혹시 내일 회사 가요?]

상대는 데이즈의 스케줄을 알고 있었다. 개복치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 갔다.

높은 확률로 사생일 게 분명한 상대에 백야는 곧바로 사용자를 차단했다. 이런 문자가 하루에도 수십 통씩 오곤 했으니까.

그런데 얼마 안 가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오는 게 아닌가.

“…뭐지?”

왠지 d일 것 같은 예감에 소름이 끼쳤다. 거절을 누를까 했지만 그러기엔 또 미안한 개복치는 상대가 제풀에 지쳐 그만둘 때까지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러나 d는 백야의 예상보다 훨씬 집요한 놈이었다.

“너 전화 오는 것 같은데?”

계속해서 울리는 진동에 민성이 백야를 봤다.

“모르는 번호라서.”

이 한마디로도 설명은 충분했다. 모두가 비슷한 고충을 안고 있었으니까.

민성은 다시 모니터링에 집중했다.

[부재중 2통]

백야는 잠깐 전화가 끊어진 틈을 타 화면 잠금을 해제했다. 연락처 목록으로 들어간 그는 해당 번호를 차단하려는데, 그 타이밍에 또 전화가 걸려 왔다.

“아, 안 돼…!”

차단 대신 통화 버튼이 눌러진 핸드폰. 저번부터 자꾸 엇나가는 손가락에 백야가 검지를 노려보며 부들거렸다.

“이 망할 손가락!”

더 늦기 전에 전화부터 끊으려는데 상대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차 안이 워낙 조용해서 그런지 스피커폰을 하지 않았는데도 내용이 선명하게 들렸다.

[드디어 받네. 백야 씨? 저 대환이에요.]

‘대환? 대환이가 누구지?’

렉이 걸려버린 개복치가 눈알을 굴리며 생각했다. 그 사이 가까이에 있던 멤버들도 소리를 들었는지 반응을 보였는데.

“나 환청 들리는 것 같은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민성이 귀를 후비적거렸다.

“어디서 대환 선배님 목소리 들리지 않아?”

율무도 목소리의 출처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여보세요? 백야 씨?]

재차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드디어 버퍼링이 풀린 백야.

……대환? 대환!

“서, 선배님?!”

화들짝 놀란 백야가 얼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핸드폰이 마치 대환이라도 되는 양 두 손으로 아주 공손하게.

[터널이에요? 통화 연결이 잘 안 되는 것 같네요.]

터널은 무슨. 서울까지 직선으로 뚫린 4차선 고속도로였지만 백야는 대충 맞장구쳤다.

“네, 방금 터널을 막. 예….”

[어쩐지. 메시지를 보내도 답이 없더라고요. 차단당했나 했어요.]

정답.

대환은 현재 백야에게 차단당한 상태가 맞았다.

“그, 그럴 리가요. 제가 어떻게 선배님을…. 아휴. 절대 아니죠.”

개복치는 양심이 없는 편이었다.

주제가 더 이상 길어지는 걸 원치 않았던 백야는 얼른 화제를 돌렸는데.

“그런데 어쩐 일로 전화를….”

주눅 든 목소리. 그를 눈치챈 대환이 용건을 밝히며 짧은 사과를 덧붙였다.

[내일 회사 나오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메시지에 답이 없길래요. 피곤할 텐데 미안해요.]

“회사요? 자, 잠시만요.”

잠깐 귀에서 전화를 뗀 백야가 남경에게 물었다.

“형, 저희 내일 회사 가요?”

“응. 왜? 누군데?”

“대환 선배님이요.”

얼른 대답한 그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네! 저희 내일 간대요.”

[그래요? 알겠어요. 얼른 들어가서 쉬고 내일 봐요. 오늘 무대 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네, 내일 뵙겠… 네?”

[아, 이 번호는 내 거니까 저장해 두고 차단 풀어요. 그럼 들어가요.]

끊긴 전화를 멍하니 보던 백야.

“아… 인생…….”

차단한 걸 들켰다.

지그시 눈을 감은 그가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자판기 앞에서 번호 준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래. 그냥 최대한 마주치지 말자.’

극단적인 결정을 내린 백야가 남경을 불렀다. 내일 대환을 피하려면 저희의 방문 목적과 에임의 동선 파악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저희 내일 회사는 왜 가는 거예요?”

“아, 이제 곧 연말이잖아. 시상식 스케줄 확정하고 무대 준비 관련해서 회의 잡혀 있어.”

그러고 보니 데이즈가 데뷔한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 * *

데이즈가 데뷔한 12월은 방송 3사를 비롯한 각종 굵직한 시상식들이 몰려있는 달이기도 했다.

“현재 3사랑 JAMA, 키위 뮤직 어워드, K사 연예 대상 축하 공연, 이렇게만 확정 지어 놓은 상태입니다.”

“JAMA는 이번에도 홍콩에서 한대요?”

“네, 그럴 것 같아요.”

오랜만에 찾은 회의실. 데이즈의 연말 무대를 위해 멤버들과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나머지는 아직 날짜가 확정되지 않아서 정확하게 말씀은 못 드리겠는데, 대충 내년 초쯤일 테니까 일단은 여섯 개 정도만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열심히 연말 스케줄을 읊어 주고 있는 이 남자는 ID 매니지먼트 팀의 실장.

“연예 대상 쪽은 따로 준비할 필요 없고. 그럼 다섯 갠가? 근데 여기에 에임까지 있잖아.”

카리스마를 풍기며 노트 위로 낙서를 휘갈기고 있는 또 다른 남자. 이자는 ID의 안무가이자 퍼포먼스 디렉터인 호랭이였다.

‘그런데 저 사람은 왜…?’

두 사람을 지나 회의실 한쪽을 힐끔대는 백야. 그곳에는 백야가 필사적으로 피해 보려 했던 대환이 있었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펜을 돌리고 있었는데. 혼자 온 건지 다른 멤버들은 보이지 않았다.

“JAMA 측에서 무대 하나 정도는 더 줄 수 있다 했다고요.”

“맞습니다. 그런데 그쪽에서는 에임이랑 데이즈의 합동 무대를 했으면 하는 눈치던데….”

실장이 대답하면서도 호랭이와 대환의 눈치를 살폈다. 그와 눈이 마주친 호랭이는 차라리 자신을 죽이라며 펜을 던지며 의자에 눕듯 기댔다.

“저도 그건 아닌 것 같고. 대신 다른 콜라보는 가능할 것 같아요.”

에임은 기본 편성된 무대만 12분. 거기다 축하 공연을 제외한 나머지 일정도 데이즈와 동일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남아 있는 해외 투어 스케줄까지 더해지면?

“에임도 죽고 나도 죽으라는 거야 그건. 안 그렇냐?”

호랭이가 절대 안 된다며 실장의 기대를 단칼에 끊어냈다. 한편 완강한 안무가와 달리 대환은 무대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다.

“신인이니까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죠. 우리 힘들다고 후배들 기회를 날릴 수는 없지.”

아까부터 멀뚱히 앉아만 있는 데이즈를 본 대환이 물었다. 정확히는 백야를 향해.

“혹시 워킹데드 알아요?”

에임에게도 먼 선배이자 지금은 해체하고 없는 ID 소속 5인조 남자 그룹 ‘비바’. 워킹데드는 그들의 두 번째 정규 앨범 타이틀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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