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65화 (65/340)

제65화

“으어어~ Walking Dead?”

청이 좀비 흉내를 내며 장난을 치려고 하자 백야가 그의 팔을 잡아 내렸다.

“네. 알아요.”

비바는 1세대 아이돌로 지금 ID의 기둥을 세운 그룹이나 다름없었다. 아이돌계의 레전드라 불리는 그룹답게 그들은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워킹데드는 개중에서도 가장 인지도가 떨어지는 곡이랄까.

‘저 시대에 좀비라니.’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가긴 했다. 그래도 작곡가들 사이에서는 꾸준히 명곡으로 언급되는 곡 중 하나였다.

“전부터 그 곡을 리메이크해 보고 싶었는데. 이 친구들이라면 잘 따라와 줄 것 같기도 하고.”

대환이 실장과 호랭이 쪽을 보며 허락을 구하듯 의견을 물었다.

“어떠세요?”

사실 곡은 이미 준비되어 있고 안무는 동선을 정리하는 선에서만 다듬으면 된다는 대환.

“편곡도 프로듀싱도 제가 할 거니까 콜라보 무대 맞고. 형은 열두 명보다 여섯 명 동선 정리하는 게 더 낫지 않나?”

그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때 주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은 대개 하나밖에 없었다.

“네. 그럼 JAMA 측과 A&R 실에는 제가 전달해 두겠습니다.”

“이 답정너 새끼. 너 이러려고 오늘 회사 나왔지.”

“다들 찬성이라니 기쁘네요.”

뒷목을 잡은 호랭이 따위는 가볍게 무시한 대환이 데이즈를 보며 빙긋 웃었다.

“우리 잘해 봐요.”

그리하여 데이즈의 명곡 리메이크 프로젝트가 급하게 결성됐다.

진두지휘 대환. 졸병 데이즈.

백야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대환과 호랭이를 바라봤다.

‘이렇게 얼렁뚱땅 결정해도 되는 거야 이거?’

회의에는 참석했다만 데이즈는 발언권이 없는 거나 다름없는 상태. 그나마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남경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그런데 애들 시간이 될까요?”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보통 연말 무대라 하면 원곡의 일부분을 수정해 댄스 브레이크 구간을 넣는다던가. 혹은 무대 시작 전 인트로 무대를 추가 구성하면서 기존과는 다르게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데이즈는 리메이크 무대를 제외하고도 위와 같은 무대가 이미 다섯 개. 사실 이것만으로도 준비 기간은 빠듯했다. 그런데 아직 저 개수에 포함되지 않은 또 다른 무대가 있었으니.

“왜 아무도 스페셜 스테이지는 염두에 두시지 않는 건지…?”

남경이 자신의 수첩을 뒤적이며 메모해 둔 페이지를 찾아냈다.

“방송 3사에서 멤버들을 한 명씩 요청한 상태입니다.”

먼저 K사는 각 팀의 막내들을 모아 서커스 풍의 ‘막내 쇼’를 계획하고 있는 상황. 이건 상의해 볼 것도 없이 청이 당첨이었으므로 빠르게 넘어가도록 하자.

이어서 M사에서는 올해 데뷔한 그룹의 멤버들을 모아 선배 가수의 히트곡 커버 무대를 계획 중이었고.

S사에서는 올 한해 엔딩 포즈로 이슈됐던 남자 그룹 멤버들을 모아 윈터 송 스테이지를 진행하겠다 선언한 상태였다.

“청이는 이미 확정이고. S사랑 M사 측 무대에도 두 명 더 빼 줘야 해요.”

“아 맞다.”

실장이 짧게 손뼉 치며 메모를 확인했다.

“적어 놨는데 깜빡했어.”

“깜빡하실 게 따로 있지….”

애초에 이거 정하려고 모인 자리 아니었냐며 남경이 불경한 눈으로 상사를 바라봤다.

“작년에는 글래시더니 올해는 데이즈냐? 하여간에 방송국 놈들.”

호랭이는 자기 일 아니라 이건지, 그저 스케줄만 빨리 알려 달라 할 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혹시 나가고 싶은 사람 있어?”

남경이 멤버들을 향해 물었다.

“저희는 아무나 나가도 상관없어요.”

민성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데 엔딩 포즈로 이슈된 멤버면 우리 중에는 백야 아닌가?”

율무가 백야를 쳐다봤다.

“놀이 때였나? 우리 내기했을 때 네가 져서 깨물하트 한 적 있잖아. 그때 반응 좋았던 거 같은데.”

“좋았어.”

율무의 말에 지한이 옳다구나 거들었다.

“왜 또 나야. 엔딩 컷은 돌아가면서 골고루 잡혔던 거로 기억하는데.”

이대로 있다가는 꼼짝없이 스페셜 무대 행 열차에 탑승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 노래인 데이즈의 무대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새로 안무를 익혀야 하는 무대가 두 개다? 압도적 무리였다.

도리질 친 백야가 자기는 아니라며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청이! 청이는 어때? 얘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그림 같다고 팬분들이 좋아하시잖아.”

자고로 엔딩 요정이라 함은 서 있기만 해도 아우라가 느껴져야 하는 법. 마음이 급했던 백야는 청과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그를 들먹였다.

그러나 청은 이미 다른 방송사 무대에 차출된 상태라는 걸 잊고 있었다.

“애를 죽일 생각이니 백야야?”

민성이 진심이냐는 얼굴로 백야를 바라봤다. 청은 한국어로만 진행되는 회의를 따라오기 버거운지, 중간쯤부터 집중력을 잃은 게 눈에 보였는데.

두 사람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다짜고짜 자기가 죽는다는 대목만 듣곤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 죽어? 왜?”

“아니 그게 아니라….”

“아까 Zombie 얘기하는 거야?”

“그 얘기는 이미 끝났어.”

“그럼? 근데 나 왜 죽어?”

끝이 보이지 않는 물음표 살인마의 공격에 오히려 백야가 죽을 맛이었다.

한편 그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대환. 그는 백야를 향해 무미건조한 투로 물었다.

“스페셜 무대 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예요?”

순간 심장이 철렁이며 눈앞에 경고창이 뜰 뻔한 개복치.

“즈, 제가요?”

“네. 뭔가 그래 보이길래.”

“아니요?”

비바만큼은 아니지만 그가 ID에서 데이즈에게 대선배 위치의 존재인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데뷔한 지 1년도 안 된 신인 주제에 선배 앞에서 무대 하기 싫다는 소리를 입에 담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기다 성격을 알기 쉬운 시윤, 연하와는 다르게, 숨겨 둔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대환이라면 더더욱. 사실 여부와 별개로 백야는 무조건 아니라고 부정해야만 했다.

[선배한테 찍혀서 사망!]

들키는 순간 이따위 엔딩이 뜰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눈앞이 아찔해져 말을 많이 더듬긴 했지만, 백야는 있는 힘껏 부정했다.

“저, 저, 저는 너무 하고 싶죠. 그래도 저희는 그룹이고, 음…. 저보다 다른 멤버들의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해서,”

그러나 백야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아닌데? 내 눈에는 백야 씨 나름대로 훌륭한 부분이 보이는데.”

대환이 멤버들을 향해 안 그러냐 물었다.

“그럼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율무가 간신배처럼 두 손 모아 대답했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되지, 왜 멤버들 눈치를 봐요?”

“…네?”

“남경이 형, 쟤 하고 싶대.”

“그래? 그럼 S사는 백야가 나가면 되겠다.”

마침 깨물하트로 화제 됐던 무대도 S사의 방송이지 않았냐며 남경이 만족스러워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M사인가? 백야처럼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빨리빨리 말해.”

“아니, 저는 그게 아니라…!”

이렇게 넘어갈 수는 없었다.

백야가 쩔쩔매며 남경과 멤버들의 눈치를 보자, 그 행동을 오해한 유연이 팔을 툭 건드리며 작게 미소 지었다.

“미안해서 그래? 괜찮아.”

“…….”

엄청난 오해에 할 말을 잃은 개복치. 그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도대체 얘네는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지?’

멤버들은 괜찮지만 본인은 괜찮지 않은 백야가 입술을 달싹였다.

‘글쎄 내가 안 괜찮다고요….’

이 사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백야가 작게 한숨 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는 중에도 한쪽에서는 남은 멤버를 정하기 위해 토론이 한창이었다.

‘아무래도 오늘이 뽑기를 돌려야 하는 날인가 보다.’

오늘 밤 거사를 결심한 백야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나만 죽을 수는 없지.’

이 사태의 원흉!

대환을 엿 먹일 능력 같은 게 저에게 있을 리 만무하니, 아쉽지만 제 이름을 언급해 화두에 올린 율무차 놈을 끌어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 해서든 율무를 M사 무대에 밀어 넣는다.’

개복치가 비장한 얼굴을 들었다.

* * *

- 에임이랑 데이즈 뭐 한다는 얘기 있던데 연말 무대겠지?

- JAMA 탑10&부문별 투표 시작!

- 현재까지 공개된 연말 시상식 일정 업뎃 (스케줄 정리 사진.jpg)

- 3본부 스페셜 스테이지 볼만하겠다. 올해 남돌 꽤 많이 데뷔하지 않았나? 나는 신인들 합동 무대가 제일 재밌더라ㅋㅋㅋㅋ

이제는 루틴이 된 ‘자기 전 SNS 한 바퀴’와 ‘시상식 투표 인증’. 오늘도 임무를 완료한 복쑹이 뿌듯한 얼굴로 투표 결과를 확인했다.

작년 12월 31일.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데뷔한 데이즈가 올해 신인상 후보에 오르는 게 맞는 거냐며 팬들 사이에서 잠시 갑론을박이 펼쳐졌지만, 데이즈는 무사히 후보에 올라 현재 투표수 1위를 달리는 중이었다.

- 레전드 신인 S.AM에게 투표해주세요!

“엥? 레전설은 우리 애들인데.”

데이즈의 WANT ME 활동이 끝남과 동시에 데뷔한 중소 기획사의 6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 S.AM. 복쑹은 귀찮아서 샘이라 부르고 있지만, 정식 명칭은 식스에이엠으로 ‘S.AM’이라 표기했다.

“얘네 데뷔하고 나서 짹 물도 흐려진 기분이랄까.”

매일 자정마다 리셋 되는 투표권을 데이즈에게 몰빵한 복쑹. 그녀가 2위에 랭크된 신인 그룹을 보며 혀를 찼다.

“쌤통이다.”

계산해 보지 않아도 투표수가 한참 뒤처지는 게 눈에 보였다.

일 년 가까이 활동을 해 온 데이즈와 데뷔한 지 한 달이 되어 가는 신인 그룹. 이 둘을 같은 선에 두고 평가하겠다는 게 형평성에 어긋나 보이긴 했으나, 여태 모든 신인상이 그랬듯 올해도 같은 기준으로 수상하겠다는데 자기들이 뭐 어쩌겠나.

“억울하면 티엔터에 따져야지 왜 데이즈를 걸고넘어져?”

하마터면 투표도 못 해 보고 데이즈의 신인상을 날릴 뻔했다.

복쑹은 데뷔 전부터 데이즈의 라이벌을 자처하며 엮이고 싶어 안달이 난 회사도, 신인 인터뷰에서 백야를 콕 찍어 실력을 겨뤄 보고 싶다 말한 하랑이라는 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신인상은 울 복숭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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