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66화 (66/340)

제66화

* * *

그 시각 복쑹의 복숭아.

S사의 합동 무대 스케줄에 참석한 그는 남의 회사 연습실에 와 있었는데. 여기서 이놈을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또 보네. 우리 본 적 있죠?”

백야의 앞에는 불미스러운 사고의 당사자로, 데뷔 직전 퇴출당한 하랑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 데뷔한 거지?’

활동에 안무 연습만으로도 24시간이 모자란 백야에게 대환이 벌여 놓은 엄청난 프로젝트까지 더해졌다. 무대 모니터링은커녕 잠을 잘 시간조차 부족한 백야가 하랑의 데뷔 소식을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백야는 불안을 감지하는 촉이 좋다는 것이었다.

“그, 글쎄요….”

상대의 사생활을 본 유일한 목격자와 들킨 당사자가 마주한 상황. 저를 보는 눈빛이 전보다 훨씬 날카로운 게 하랑은 여전히 저를 의심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아는 척 해 봤자 좋을 거 없다.’

하는 일마다 어설프고 하찮아 멤버들에게 깍두기 취급을 당하는 백야였지만, 나름 인생 2회차로 눈치 하나만큼은 제법 쓸 만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러나 어색하게 올라가는 말끝. 눈치는 쓸 만했지만 연기는 쓰레기였다.

“모른 척 하시겠다? 그래요, 그럼. 근데 아직 연기 수업은 안 받나 봐.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하랑이 백야를 비웃듯 코웃음 쳤다.

‘…나 지금 무시당한 건가?’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아까부터 묘하게 저를 하대하는 말투에 긴가민가했는데 하랑은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근데 왜? 내가 뭐 했다고?’

남경도 멤버들도 없이 혼자인 상황.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내가 이래서 하기 싫었는데. 이 망할 율무차.’

화살은 자연스레 율무에게로 돌아갔다.

하랑도 더는 할 이야기가 없다는 듯 등을 돌려 버린 상태라 대화를 이어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백야는 입꼬리를 비죽이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마침 단톡방에 숫자가 떠 있었다.

[유연 : 백도 할 만해?]

[율무 : 왜 나는 안 물어봐?]

[유연 : 형은 알아서 잘하잖아~ 백도는 사회성이 없어서 큰일임ㅠ]

[율무 : 그건 그래ㅋㅋㅋ]

‘내가 사회성이 없다고? 이 인간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있는 앞 담에 백야가 부들거리며 자판을 눌렀다.

[나 : 죽을래?]

[율무 : 와~ 인성 뭐야?ㅋㅋ]

[지한 : 한백야 언제 와?]

[나 : 몰라… 나 좀 데려가]

[유연 : 아 왜 이렇게 웃기지ㅋㅋ 하고 싶다고 해서 가 놓곤 왜 그래]

“하!”

내가 하고 싶다 했다고? 내가?

유연의 선을 넘는 발언에 백야가 치를 떨었다. 다시 한번 입장 표명을 하자면 백야는 절대 하기 싫었다.

당장 내일 있을 대환과의 녹음도 그의 걱정거리 중 하나였는데 저를 대놓고 싫어하는 하랑 때문에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단 말이다.

[민성 : 맡은 일에 집중하렴^^ 그래야 빨리 끝나지ㅎㅎ]

리더의 꼰대력 다분한 발언에 단체방이 잠시 멈췄다. 첫인상과는 많이 다른 민성의 실제 성격에 백야는 가끔 괴리감을 느끼곤 했다.

맞추기라도 한 듯 한날한시에 스케줄을 잡아 버린 방송 3사. 청은 연락이 없는 걸 보아 이미 연습을 시작한 것 같았고, 율무는 방구석에 쭈그러진 강아지 모양 이모티콘으로 답을 대신했다.

‘이게 뭐야….’

백야가 못마땅한 얼굴로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옆에서 하랑이 핸드폰을 곁눈질했지만 개복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때 BB9의 멤버인 금발1과 에임의 활동기 때 데뷔한 신인 그룹의 금발2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벌써 인사 나누고들 계셨구나.”

이어서 마지막으로 등장한 또 다른 금발3을 마지막으로 S사의 합동 무대 출연자 전원이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곡은 주제에 맞게 저희끼리 정하면 될 것 같습니다.”

혹시 생각해 둔 곡이 있냐며 의견을 물어보는 하랑. 그는 데뷔한 지 이제 막 한 달이 되어가는 생신인이었지만, 오랜 연습생 생활을 증명하듯 능숙하게 회의를 이끌어 갔다.

“와~ 역시 리더님이라 그러신지 진행 능력이 장난 아니시네요.”

금발2의 아부에 하랑이 피식였다.

“연습생을 오래 해서 이런 조별 과제 회의에는 이골이 났거든요.”

“실례가 안 된다면 몇 년 하셨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6년 정도 했네요.”

상당한 경력에 자리에 모인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독하다.’

하랑을 본 백야가 혀를 내둘렀다.

아니 근데, 쟤 아까 나한테는 반말 찍찍하면서 무시하더니 금발즈 앞에서는 멀쩡하네?

백야가 뚱한 표정으로 입술을 비죽였다.

‘사람 차별하는 거야 뭐야.’

백야의 불만을 알 리 없는 금발 3이 계속해서 질문했다.

“이 회사에서 쭉 계신 거예요?”

그에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백야를 쳐다보는 하랑. 순간 마주친 눈에 문 앞까지 튀어 나가 있던 입술이 단번에 돌아왔다.

“큼. 흠.”

개복치가 헛기침을 하며 급하게 표정을 관리했다.

“아니요. ID에 꽤 오래 있었어요.”

“ID요?! 근데 왜….”

금발3이 급하게 입을 다물었지만, 생략된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는 자는 없었다.

“그러게요. 데뷔가 급해서 옮겼는데 데이즈가 먼저 나올 줄은 저도 몰랐네요.”

개뻥이었다.

처음엔 그걸 왜 절 보면서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진실을 알고 있는 백야는 하랑의 눈빛에서 무언의 압박을 느꼈다.

말하면 죽는다 뭐 그런 건가.

‘으응. 나도 너랑은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아.’

비밀 연애 현장을 목격한 거로도 모자라 이제는 신분 세탁의 현장을 목격 중인 백야는 하랑이 불편해 죽을 것 같았다.

‘얼른 노래나 정하고 빨리 헤어졌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금발즈는 여전히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었다.

“그럼 두 분은 원래 알던 사이세요?”

“아니요. 제가 회사를 옮기고 나서 들어오신 분이라 뵌 적은 없네요.”

보자마자 아는 척을 해 오던 태도와는 다른 발언이었지만 백야는 대충 맞장구쳐 주었다.

“네. 오늘 처음 뵀어요.”

이제 슬슬 대화가 끝나가나 싶어 앉은 자세를 바로 하던 백야. 그러나 하랑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데이즈를 언급했다.

“그래도 다른 멤버들이랑은 친해요. 로즈데이에는 동기도 있고.”

하랑은 금발즈들 앞에서 ID 인맥들과의 친분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올해 데뷔한 신인 남자 그룹 친목회에 데이즈 대표로 참석한 건가?’

안무로 굴러질 미래를 예상하고 편안한 차림으로 왔는데 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대로 하루를 날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다른 팀은 안 바빠? 데이즈만 바쁘고 나만 잠도 못 자는 거야?’

아이돌 그룹은 일 년 중 연말이 제일 바쁘다더니 그 말도 다 구라인 건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요즘도 자주 연락해요. 민성이가 제 연습생 동기거든요.”

그렇구나~ 우리 집 꼰대, 아니 리더랑 동갑이었구나~

백야가 고개를 주억이며 대충 리액션했다. 실제로 백야가 멤버들을 알고 지낸 기간보다 하랑이 ID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을 테니 달리 할 말이 없기도 했고.

‘아… 숙소 가고 싶다.’

작은 리액션을 한 뒤, 손톱이나 뜯으며 대화가 끝나기만을 바라던 개복치.

“에임 선배님들은 어떠세요?”

금발3! 제발 그만!

청보다 더한 물음표 살인마에 백야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가고 있었다. 대체 ID 소속인 나를 두고 왜 하랑한테 저런 질문들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개복치는 슬슬 이 자리가 괴로웠다.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수다에 그는 충동적으로 상태창을 띄웠다.

‘그래. 뽑기나 하자.’

많이 컸다 한백야. 이제는 사람들 앞에서도 상태창을 척척 띄우다니.

스스로도 간이 많이 부었다고 생각하며 그가 마음속으로 뽑기 5회를 외쳤다.

‘제발. 이번에는 제발 쓸 만한 스킬이 나오게 해 주세요.’

잠시 후 백야가 세상에서 가장 불길 해하는 네 글자가 허공에 떠올랐다.

[스킬 획득!]

하도 뒤통수를 맞다 보니 이제는 저 글자만 봐도 손발이 덜덜 떨려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게 옆자리 금발1에게도 들렸는지, 그가 백야를 힐끔대는 게 느껴졌다.

“하하.”

저는 괜찮습니다.

입꼬리를 올려 억지로 미소 지은 백야가 금발1을 안심시켰다. 그리곤 상태창의 두 번째 줄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안녕! 클레오파트라(S)>, <컨셉 장인(A)>, <뚝딱뚝딱(C)>, <케이팝 망령의 영혼(C)>]

“헙!”

처음 보는 S등급에 놀란 개복치가 소리쳤다. 뒤늦게 입을 틀어막아 보지만 모두의 시선은 저를 향해있었다.

“저, 그, 다리에 쥐가 나서.”

백야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으시겠어요? 다리에 쥐….”

아 맞다.

부상자치고 너무나 멀쩡하게 일어난 백야가 왼쪽 다리에 힘을 풀며 허벅지를 통통 두드렸다.

“너무 긴장해서 그랬나 봐요. 저는 괜찮으니까 대화들 나누고들 계세요.”

서 있을 때는 왼쪽 다리를 절더니 걸을 때는 오른쪽 다리를 절며 퇴장하는 모습에 하랑이 수상하게 바라봤다. 어쩌다가 저런 게 ID에서 데뷔해 승승장구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지 못마땅해하는 얼굴이었다.

한편 연습실을 나온 개복치는 신이나 발을 동동 구르는 중이었다.

“S급이라고? 진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등급의 스킬에 행복 100%가 된 백야. 지난번에 댄스 스킬이 다운그레이드된 건 오늘의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던 거다.

“후우. 일단 침착하고.”

평정심을 되찾은 백야가 스킬 상세 창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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