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안녕! 클레오파트라(S)>
: 구사할 수 있는 음역이 다섯 키 높아진다.
“다섯 키라고?!”
과연 S급. 엄청났다.
클레오파트라라고 하길래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같은 끼나 외모 관련 능력일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보컬 스킬이었다.
‘그런데 클레오파트라랑 음역이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알다가도 모를 이 망겜에 의문을 가지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게임을 너무 대충 만들었다는 의심만큼은 지울 수 없었다.
<컨셉 장인(A)>
: 컨셉 소화력 1,000%
제 입에서 주인님이라는 단어를 나오게 했던 모 퀘스트가 생각나게 하는 이름이었다. 그날 일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이불을 몇 번이나 발로 차게 됐지만, 아이돌에게 컨셉 장인이라는 타이틀만큼 유용한 스킬은 없지.
다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저 퍼센트.
‘그냥 0 하나 잘못 붙은 거겠지…?’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기로 하고 다음 스킬로 넘어갔다.
<뚝딱뚝딱(C)>
: 뚝딱거리는 춤 실력.
아무래도 오늘 복권을 사 봐야 하는 건 아닌지. 백야는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비록 뚝딱이지만 혼수상태보다 한 단계나 높은 등급.
‘좀 뚝딱거리면 어때!’
S등급을 처음 봤을 때만큼이나 감동적인 개복치가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서 마지막 스킬.
<케이팝 망령의 영혼(C)>
: 팬들에 대한 이해도가 대폭 상승한다. (단, 스킬을 발동하는 동안 구천을 헤매는 케이팝 망령에게 몸을 내어 줘야 한다.)
는 끔찍하니까 그냥 패스하도록 하자.
“나는 오늘 새로 태어난다.”
심호흡한 개복치가 스킬 장착 단계로 넘어갔다.
* * *
Lv.11 백야 (동기화 중)
외모 : A
보컬 : S
댄스 : C
끼 : A
‘이 정도면 천재 아이돌도 금방 아닐까?’
상태창을 띄운 백야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계속해서 피식거렸다.
중간에 <뚝딱뚝딱(C)>이라는 커다란 구멍이 보였지만 <안녕! 클레오파트라(S)> 등급과 <컨셉 장인(A)>의 후광으로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를 본 청이 관자놀이 옆으로 손가락을 돌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백야 미쳤어? 이상해.”
“안 미쳤거든?”
발끈한 백야가 가늘게 뜬 눈으로 청을 흘겨봤다.
“참 알기 쉬워. 그치?”
개복치는 기분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편이었는데, 어제 합동 무대 연습을 다녀온 뒤로 백야의 표정이 좋아진 걸 멤버들도 모르지 않았다.
“어제 재밌었냐?”
“뭐래.”
“재미있었구먼 뭐. 완전 신나서 입이 귀에 걸려서 들어오던데.”
유연이 백야의 뒷자리에 딱 붙어서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그를 귀찮아하며 머리를 털어 낸 백야가 의자에서 등을 떼어 냈다.
“저리 가. 나 잘 거야.”
“우리보다 어제 처음 만난 멤버들이 더 좋아?”
“뭐라는 거야. 비교할 걸 해야지.”
순간 하랑이 떠오른 백야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이쯤 되면 한마디 거들 법한 율무는 옆에서 곯아떨어진 상태라 차 안이 조용했다.
스페셜 무대에 차출된 멤버들 중 가장 늦게 돌아온 그는 처음으로 앓는 소리를 내며 침대에 들어갔다.
‘차에 타자마자 자길래 오늘은 좀 편하겠다 싶었더니.’
율무가 조용하니 이번에는 유연이 저를 못살게 굴고 있었다.
“나한테 집착하지 말아 줄래?”
“싫어. 할 거야.”
“아악! 징그럽게 왜 이, 읍!”
유연이 목을 조르듯 뒤에서 팔로 백야를 끌어당겼다. 개복치가 꿱꿱거리자 입을 틀어막은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너 때문에 다 깨겠다.”
“흐으느뜨!”
그게 왜 나 때문이냐며 백야가 눈을 부릅떴다. 유연의 팔을 잡아당겨 보지만 햄스터의 앞발질은 하찮았다.
“뒤에 싸우냐?”
요란스러운 기척에 남경이 백미러로 뒷좌석을 살폈다.
“너희는 기운도 좋다. 다른 애들은 다 곯아떨어졌는데 막내 셋만 살아 있네.”
유연에게서 벗어난 백야가 눈썹 끝을 억울하게 내리며 남경에게 일렀다.
“저도 자고 싶은데 얘네가 자꾸 괴롭혀요!”
“햄스터 고자질쟁이야?”
“쟤 고자질쟁이야.”
청과 유연이 키득거리며 백야를 놀렸다.
“애 좀 내버려 둬라.”
남경이 안쓰럽다는 얼굴로 편을 들어 주었다. 살짝 성질이 났는지 찡그린 얼굴을 보며 웃던 그는 순간 할 말이 생각난 듯 다시 입술을 뗐다.
“맞다. 애들아 너희 이사 갈 것 같더라.”
“이사요?”
휴지를 돌돌 말아 백야의 귀를 간질거리던 청. 그 손을 잡아챈 백야가 보지도 않고 비틀며 앞을 바라봤다.
“아아아! Stop!”
“에임 지금 숙소 정리하고 있거든? 작년부터 한두 명씩 독립하다가 지금은 세 명만 쓰고 있었는데, 이번에 시윤이 군대 가면서 나머지 둘도 나온다더라.”
요즘 반응도 좋고 하니 회사에서 그 숙소를 데이즈에게 내주기로 결정했다 한다.
“우리 이사 가?”
“어디로 가는데요?”
“…조폭 햄스터.”
유연도 관심이 생기는지 백야 놀리기를 그만두고 얼른 남경에게 붙었다.
“스카이 캐슬.”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이었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할 거 같고 뭐…. 그러다 지난번의 망한 뽑기가 번쩍하고 떠올랐다.
<스카이 캐슬(C)> - 특수
: 이사를 가게 된다.
아무런 효과 없이 누르자마자 사라진 스킬. 그 스킬의 이름이 스카이 캐슬이었다.
“1월 초면 짐 다 빠진다고 하니까 우리는 중순쯤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자세한 건 정해지면 알려 줄게.”
그래도 이사는 확정이니 남경은 짐을 조금씩 정리해 놓고 있으라며 조언했다. 유연과 청이 얼씨구나 좋다며 합창하듯 대답했다.
“그리고 백야.”
“네?”
“발코니 난간 오늘 수리해 둘 거야. 그래도 추우니까 웬만하면 나가지 말고.”
갑자기 웬 발코니? 싶었지만 뽑기 돌릴 때 빼고는 나갈 일 없는 곳이라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힘든 일 있으면 말하고.”
그런데 저번부터 자꾸 힘듦을 말하라는 주변인들에 개복치가 수상함을 감지했다. 백야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백미러를 살폈으나 태연하게 눈을 맞춰오는 남경에 큰 수확은 없었다.
“그럴게요. 근데 지금은 얘네 말고 힘든 일 없어요.”
백야가 청과 유연을 가리켰다.
“그래… 제발 사이좋게 지내고.”
그사이 회사에 도착한 데이즈. 멤버들은 요즘 매일같이 사옥에 출근 도장을 찍는 중이었다. 평일 낮임에도 회사 앞에 모여 있는 팬들이 많았다.
“큰일 났네.”
데이즈의 차를 알아본 몇몇 팬들이 달려들자 남경이 곤란한 듯 속도를 늦췄다.
“뭐야? 여기 어딘데?”
잠에서 깬 민성이 비몽사몽 한 상태로 창밖을 두리번거렸다.
“다 왔어. 정신 차려.”
결국 잠은 한숨도 못 잔 백야가 리더를 챙기며 내릴 준비를 했다.
남경과 보안팀의 도움으로 무사히 사옥 안으로 들어온 데이즈. 그런데 율무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뭐야? 너 왜 그래?”
충격을 세게 받은 듯한 얼굴의 율무는 반쯤 넋이 나가 보였는데. 이내 그가 심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가 내 엉덩이 만졌어.”
“저런.”
지한이 짧게 탄식했다. 청은 그런 율무가 웃긴지 등을 팡팡 내리치며 웃었다.
청의 뒷덜미를 잡아 민성에게 던지듯 치워 낸 남경은, 율무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나마 위로다운 위로를 건넸다.
“괜찮아, 괜찮아.”
아무리 남경이 신경 쓴다고 해도 사람이 많이 몰리는 장소에서는 한계가 있는 법.
“기분 더럽겠지만 어쩌겠냐. 너희 선배들도 다 같은 경험했어.”
“……이걸?”
“내가 미안하다 율무야.”
다음에는 더 신경 쓰겠다 재차 사과하는 남경에 율무도 얼른 표정을 풀었다. 한 번 더 어깨를 다독이던 남경은 이어서 오늘의 일정을 알려 주었다.
우선 JAMA 촬영 팀과 함께하는 에임X데이즈의 <비바 리메이크 프로젝트> 녹음이 있을 예정이었고. 부수적으로는 데이즈 공식 팬클럽 발표 영상 촬영이 있었다.
“아직 촬영팀 오려면 시간 좀 남았으니까 팬클럽 영상 먼저 찍자.”
편집이 끝나는 대로 발표할 예정이라 빨리 찍을수록 너희에게 좋다는 말에 멤버들도 적극 참여 의사를 비쳤다.
“그럼 지금 찍어!”
“찍자!”
사무실로 올라가는 중인 엘리베이터 안. 청이 당장 찍자고 소리치자 유연이 냉큼 맞장구쳤다.
“그럴까?”
그런데 백야까지 가세할 줄은 몰랐는지, 민성이 배신감 어린 얼굴로 개복치를 쳐다봤다.
“너까지 왜 그래?”
신이 나서 그만…….
백야는 조용히 고개 숙이며 지한의 뒤로 슬쩍 숨어들었다.
한지한, S.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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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E_Official]
나이트 안녕하세요~ 오늘 올라온 영상 보셨나요? 드디어 저희 데이즈도 공식 팬클럽 이름이 생겼어요(신남) Day&Night처럼 저희도 꼭 붙어있어요! 우리는 세트니까~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 저희는 요즘 연말 시상식 무대를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멋진 모습으로 찾아
뵐 테니까 기대 많이 해주세요!
(연습실 단체 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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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ID 진짜 너무 좋아요.”
금발3이 정수기 앞에서 물을 마시는 중인 백야에게 다가왔다.
돌아가며 연습실을 사용 중인 S사의 윈터 송 팀. 하랑과 금발 1, 2의 사옥을 거쳐 오늘은 백야의 차례였다. 회사 측에서도 나름 배려해 줬는지 가장 커다란 연습실을 내어 줬는데.
‘이런 걸 주객전도라고 하지.’
정작 ID의 연습생들은 다른 방으로 쫓겨난 신세였다.
“연습실이 다 비슷하죠, 뭐.”
“와~ 역시 대형은 기준이 다르네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꾸 급을 나누는 듯한 뉘앙스에 백야는 말하기가 조심스러웠다. 한마디를 해도 이런 식으로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기 일쑤였기 때문에.
“이런 데서 연습하면 힘들지도 않겠어요.”
“…금삼 님 조금 전까지 힘들어 죽을 것 같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제가요?”
네. 당신이요.
백야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빤히 쳐다보자 금발3은 시치미를 떼곤 화장실로 도망가 버렸다.
“하…….”
이 스페셜 무대 팀만 만나면 백야는 없던 두통이 생기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