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70화 (70/340)

제70화

“근데요 실장님… 저 너무 더워요.”

모자가 덥다며 지한에게 눈빛으로 도움을 청하던 백야는, 직접 말하라며 스타일리스트를 가리키는 눈짓에 개복치가 용기 내 말했다.

“어머. 더워?”

단번에 달려온 실장이 더우면 안 된다며 모자를 벗겨 주었다.

“매니저님 말 듣고 보니 확실히 벗은 게 얼굴이 더 살긴 하네요.”

백야의 이마에 땀을 본 그녀가 메이크업 수정을 요청했다. 그리고는 메고 있던 가방을 주섬주섬 뒤지기 시작하는데.

“그럼 우리 이거 해 볼까?”

말만 의문형일 뿐, 당연히 백야에게 의사 결정권은 없었다.

그녀의 손은 이미 백야의 얼굴 옆으로 뻗어져 있었으며, 손에 들린 건 파란색 보석 알맹이를 흰색의 작은 보석들이 둘러싼 화려한 모양의 귀찌였다.

‘…공주님 귀걸이?’

잘게 떨리는 개복치의 눈이 남경을 향하지만, 그도 힘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백야는 마지막으로 민성에게 도움을 눈빛을 보냈으나, 그는 은은한 미소로 파이팅 동작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윈터 백야.

“스페셜 스테이지 모일게요!”

데이즈의 대기실을 연 스텝이 백야의 차례를 알렸다.

“다녀오겠습니다.”

스텝과 멤버들에게 인사한 백야가 덕진과 대기실을 나섰다.

“긴장돼서 그러시는 거예요?”

“네?”

“표정이 안 좋아 보여요.”

덕진은 귀걸이 때문이라면 정말 잘 어울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격려해 주었다. 여차하면 근처 대기실에 들어가 거울이라도 빌려 올 기세라 백야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에요. 긴장돼서 그런 거 맞아요.”

사실 귀걸이도 귀걸이지만 차마 스페셜 무대를 망칠 것 같아서 그런다고는 말할 수는 없었기에 백야는 적당히 둘러댔다.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럼 다녀오세요. 백야 님 파이팅!”

덕진의 열렬한 응원에 꾸벅 인사한 백야가 윈터 송 멤버들 곁으로 합류했다.

“왔어? 이야~ 화려하네.”

금일이 자기 귀를 두드리며 귀걸이를 언급했다.

“이상하지 않아?”

“잘 어울리는데?”

너는 얼굴이 밋밋해서 화려한 게 잘 어울린다며 그가 장난을 걸어왔다.

“그래 고오맙다. 넌 내가 나율무 꼭 소개해 줄게. 둘이 잘 맞을 것 같다.”

“율무 씨? 나야 좋지.”

시시한 대화를 주고받으니 잡생각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백야는 대화 중에도 계속해서 귀걸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이때 가장 늦게 도착한 하랑이 백야의 어깨를 치면서 지나갔다.

“아.”

제법 세게 부딪힌 탓에 금일이 잡아 주지 않았더라면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실수.”

누가 봐도 고의였으나 하랑은 뻔뻔하게 모른 척했다. 사과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고개를 까딱이는 게 전부일 줄이야. 금일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낮게 욕을 읊조렸다.

“보자 보자 하니까 선 넘네, 저게.”

“아니야. 됐어.”

백야가 찌푸린 미간을 펴며 한숨을 삼켰다.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피한다고 했다.

‘이 무대만 끝나면 다시는 저 재수 없는 얼굴이랑 한 팀으로 엮일 일은 없다.’

세 번은 진작에 넘었지만 간신히 마음을 다스린 백야가 하랑에게서 등을 돌렸다. 유치해 보일지 모르겠으나 조금 티 나게 돌았더니 반동에 귓불이 덜렁이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한쪽과 다르게 허전한 반대편. 어쩐지 불길한 느낌에 오른쪽 귀를 더듬어 보지만 잡히는 게 없었다.

“…어?”

귀걸이가 없어졌다.

허리를 굽혀 바닥을 살피는데 너무 어두워 신발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왜 그래?”

“귀걸이. 아까 부딪히면서 떨어졌나 봐.”

“뭐?”

하랑과 부딪혔을 때 떨어진 게 틀림없었다.

금일도 함께 바닥을 살펴 보지만 사정은 마찬가지. 무대 뒤는 대개 어두운 편이었는데, 콘서트나 규모가 큰 행사의 경우 무대 연출과 관객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주변엔 최소한의 빛만 남겨 두곤 했다.

이렇게 이동이 있을 때만 손전등을 켜 주는 게 전부일 정도로.

“윈터 송 팀 올라갈게요.”

헤드셋을 낀 스텝이 무대로 이어지는 계단을 비추자 곡의 1절만 한 앞 팀이 내려오고 있었다. 왜 무대를 하다 말고 내려오나 싶겠지만, 양쪽에 달린 커다란 전광판 속에서는 해당 팀의 무대가 차질 없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연말 시상식은 그해에 활동한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무대를 선보이는 특별한 날이었다. 그래서 방송 자체는 생방송이지만, 실제로 송출되는 화면은 사전 녹화와 현장 무대가 번갈아 가며 나간다고 보면 됐다.

사전 녹화를 한 팀이 현장 관객을 위해 1절 정도만 무대를 한 뒤 내려오면, 생방송 무대를 이어 갈 다음 팀이 미리 올라가서 준비하는 식으로.

“포기해. 일단 올라가자.”

“그래도….”

바닥에서 눈을 떼지 못한 백야가 미련을 보이자 금일이 계단 위로 등을 떠밀었다.

“됐어. 그냥 올라가.”

하기 싫다고 멤버들에게 도움을 청할 땐 언제고, 막상 잃어버리고 나니 미련이 흘러넘치는 모양이었다.

“스탠바이 할게요.”

결국 짝짝이인 상태로 대형을 맞추고 선 백야. 돌아서 있는 하랑의 뒤통수를 흘겨본 개복치가 얼른 눈알을 바로 했다.

그 사이 앞 팀의 영상이 끝나고 인이어에선 ‘Snow flake’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 * *

“야! 한다!”

“야라니. 우리도 눈 있거든?”

청이 대기실 TV를 가리키며 소리치자, 주변에 모여 있던 멤버들이 그를 가볍게 밀치며 타박을 주었다.

머리를 흔들며 과하게 휘청이는 막내에 지한이 목덜미를 잡아 멈춰 세웠다.

“에휴. 저건 언제 철들려나 몰라.”

남경이 청을 보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철을 왜 들어? 무거워. 너나 들어.”

“뭐 인마? 그런데 너 요새 은근슬쩍 반말한다?”

“…남경이 꼰대야?”

남경은 괜히 한마디 했다가 엄청난 인신공격을 당하고 녹다운당했다.

“파리 들어갈라.”

민성이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턱을 닫아주었다.

꼰대라는 말을 처음 들은 남경과 달리 자주 들어 본 그는, 청이 말하는 단어가 그저 ‘저에게 잔소리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모르지 않았다.

“꼰대 그거 별 뜻 없이 하는 말이야. 그리고 쟤도 지가 잘못한 거 알아. 알아서 저러는 거야.”

You가 번역하면 ‘너’가 맞지 않냐며 은근히 실드까지 쳐 주는 리더. 확실히 얌전해진 청은 못 들은 척 앞만 보고 있었다.

머릿속으론 ‘지가? 쥐?’ 따위의 생각이나 하는 중이었지만 쫑긋거리는 귀는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이 또한 오래가진 못했다.

“진짜 나온다!”

[가요대전 스페셜 스테이지]

[DASE 백야]

화면 속에는 라인업을 소개하는 인트로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윈터 송 멤버들의 간단한 프로필. 교복 의상을 입은 백야의 무대 영상이 이름과 함께 제일 먼저 공개됐다.

“좀비 햄스터~”

율무가 화면 속 백야를 가리키며 환호했다. 그의 팔뚝엔 아직도 백야의 잇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차례로 금발즈의 소개가 지나가고 마지막으로 공개된 멤버는 하랑. 그가 데뷔한 줄은 알았지만 백야와 함께 무대를 준비한 줄은 몰랐던 멤버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야? 형 알았어?”

“…아니?”

백야의 개인 스케줄은 항상 덕진이 수행했기에 남경도 알지 못했다. 백야도 BB9의 금일 빼곤 딱히 언급하지 않았던 터라 모두가 놀랐다.

“어떻게 저렇게 만나냐….”

남경도 황당한 듯 이마를 긁적였다.

“그래도 회사에서 만난 적은 없지 않나? 속사정은 모르니까 쟤네 둘이 불편할 건 없지.”

이상 남경의 희망 사항이었다.

[다섯 명의 겨울 요정즈]

둘 하나 둘씩 나비 모양 대형으로 뒤돌아 서 있는 윈터 송 팀. 센터에 선 백야의 분홍색 머리가 눈에 띄었다.

전주가 시작되자 가운데로 모이며 일자 대형이 만들어졌다. 제일 앞에 서 있는 멤버는 금삼.

뒤 돌며 손을 흔든 그가 재빨리 옆으로 빠지자, 차례대로 금이, 백야, 하랑이 잔망을 부리곤 각자의 자리를 찾아갔다.

제일 뒤에 서 있던 멤버는 금일. 헤드 마이크를 착용한 그가 활짝 웃으며 첫 소절을 불렀다.

- 어젯밤 소원을 빌었어

Let it snow

너를 만나러 가고 싶다고

무난한 시작이었다. 팀에서 서브 보컬을 맡고 있는 그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실력으로 팬들에게 인사했다.

백야는 대형의 끝에서 열심히 율동을 소화하는 중. 금일을 시작으로 금발즈의 파트가 이어졌다.

“백도 귀걸이 한쪽은 어디 갔냐?”

다리를 꼰 채 여유롭게 무대를 감상하던 유연이 등받이에서 몸을 떨어뜨리며 관심을 보였다.

“그러게. 그새 잃어버렸네.”

억지로 하고 나가더니 결국 반은 성공했다며 지한이 피식 웃었다.

마침 곡의 후렴구가 나오며 센터로 이동한 백야. 가운데 선 좀비 햄스터가 대각선으로 뻗은 양팔을 가슴으로 모으며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 Falling for you

네 마음에 소복이 쌓여

움직일 수 없을 거야

결 좋은 핑크빛 머리카락이 포물선을 그리자, SNS에서는 백야의 샴푸 향기를 맡았다는 자들이 속출했다.

- Falling for you

너에게로 쏟아지는 중이야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어

이어서 하랑의 파트. 속은 밴댕이 같은 놈이 보컬만큼은 시원했다.

퇴출 전, ID에서도 하랑을 주축으로 데뷔조를 꾸릴 만큼 그의 실력은 흠잡을 곳 없었으니까. 이는 백야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풋풋하다, 풋풋해.”

민성이 흐뭇한 얼굴로 대선배들이나 할 법한 소리를 늘어놨다.

다섯 팀의 멤버들이 한 명씩 모인 무대라 그런가 동선과 파트 분배가 칼 같았다.

- 발자국에 내려앉아

너의 뒤를 쫓아 소리 없이

금삼의 2절 도입부.

하랑보다 앞서 후렴 파트를 부른 백야가 금삼의 음에 화음을 넣어 곡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어서 금일과 금이가 나눠 부른 2절의 후렴. 후렴이 지나자 멜로디가 바뀌었다. 데이즈 활동에서 여러 번 선보인 적 있는 백야의 전매특허 고음 파트 구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고개 들어 눈 맞추면

너에게 스며들어

그러나 아직 나올 타이밍이 아닌데 이르게 등장한 백야. 무대를 보던 멤버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부분 백야가 안 하나 보네? 나 왜 당연히 백야가 지를 거라 생각했지.”

율무가 의아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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