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71화 (71/340)

제71화

백야의 4단 고음이 아직까지 화제 되고 있는 만큼, 무대의 화제성을 생각해서라도 당연히 저희 멤버에게 줬을 거라 생각한 데이즈.

조금 아쉬웠지만, 백야는 맡은 파트를 매력적으로 소화했다.

이어지는 대망의 고음 파트. 백야가 사이드로 빠지자 이번에도 아는 얼굴이 등장했다.

- 우린 하나가 될 테니까

Ooh ah

센터에서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가창력을 뽐내는 이는 하랑이었다. 그의 고음은 백야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나름 스페셜 무대라고 절정으로 치솟는 타이밍에 천장에서 하얀 꽃가루가 눈송이처럼 내렸다.

하랑을 제외한 멤버들은 서로 팔짱을 끼며 빙글빙글 제자리를 돌고 있었다.

- Falling for you

네 마음에 소복이 쌓여

노래가 끝나기 전 한 번 더 이어지는 후렴 멜로디. 다시 백야의 순서였다. 원래대로라면 고음이 터진 직후라 기존과 다르지 않은 멜로디가 이어질 예정이었으나.

- 움직일 수 없을 거야

마지막 소절에서 음을 높여 길게 끌고 가는 백야. 스포트라이트는 다시 백야에게 향하고, 메인 보컬들의 본격 고음 대결에 실시간 반응 또한 뜨겁게 달아올랐다.

- 너에게로 가는 중이야

이 겨울을 너에게 줄게

마지막 소절을 끝으로 가운데 모인 멤버들.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다섯 명의 모습이 줌아웃 되며 잡혔다.

생각보단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 * *

[<연예인의 연예인(4)> 완료!]

무대가 끝남과 동시에 눈앞에 뜬 상태창. 생각도 못 한 결과에 백야도 깜짝 놀랐다.

비슷한 순간 콧잔등 위로 떨어진 종잇조각. 덕분에 화면에는 꽃가루에 놀란 모습처럼 보였다.

- 꽃가루 때문에 놀란 건가ㅋㅋㅋ

- 꽃가루 맞고 놀란 햄스터라니ㅠㅠㅠ 내 새끼 너무 귀여워ㅠㅠ

하찮음이 3 증가했다.

가루를 털어내는 척 상태창을 닫은 복숭아. 뜻밖의 수확에 얼떨떨하면서도 기분은 좋았다.

“얼른 내려오세요.”

카메라가 꺼지자 무대 아래에 있던 스텝이 재촉했다. 그 덕에 서로를 끌어안으며 감동을 나눌 시간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지.’

금일의 등을 툭 건드린 백야가 먼저 계단으로 향했다. 하랑과 눈이 마주쳤지만, 그도 백야도 못 본 척 서로를 무시했다.

‘이제 무대도 끝났다 이거지.’

어쩌다 이렇게까지 감정이 상한 건지 모르겠으나 하랑은 볼 때마다 싸가지가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멤버들이 저놈과 같은 그룹으로 데뷔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차라리 망돌이 낫지.’

백스테이지로 내려온 윈터 송 팀. 공동의 과제를 해치우고 나자 분위기는 다시 첫 만남 때로 돌아왔다.

모여서 연습한 건 몇 번 되지 않았지만 마무리 인사 정도는 해야겠다 싶어 백야가 먼저 입술을 뗐다.

“저기, 모두 고생 많으셨어요.”

“형, 저희 이제 못 봐요? 갑자기 너무 아쉬워요. 같이 무대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애틋했다고 눈물을 글썽이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눈시울을 붉히는 금발즈에 백야가 감동을 쥐어 짜냈다.

“으응. 나도 좋았어.”

하랑은 저를 한번 보더니 고개를 홱 돌려 버렸고, 금일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팔짱을 꼈다.

“앞으로 활동하면서 계속 보게 될 텐데 뭐.”

백야와 눈이 마주친 금일이 너도 고생 많았다며 하랑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저 녀석의 비위를 맞추느라 고생했다는 뜻 같았다.

“백야 님, 저희 다음 무대 준비하려면 얼른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복도 한편에서 타이밍을 엿보고 있던 덕진이 얼른 끼어들어 시간이 없음을 알렸다. 이 중에서 아직 본 무대를 하지 않은 사람은 백야뿐이었다. 무대가 끝나면 얼른 돌아와야 한다며 신신당부하던 남경의 말이 떠올랐다.

“맞다! 나 가 봐야 한다. 연락할게, 얘들아!”

허겁지겁 인사한 백야가 덕진과 함께 복도를 달렸다.

그 시각 대기실에서 백야를 기다리던 데이즈.

“좀비 왔다! 잡아!”

대기실 문을 열자 청이 양팔을 번쩍 들며 달려들었다. 무릎을 굽혀 가볍게 피한 햄스터는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듯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리곤 곧장 실장에게 다가가 시무룩한 얼굴로 쭈뼛거렸다.

“저… 실장님 죄송해요. 귀걸이 한쪽 잃어버렸어요….”

“일부러 뺐니?”

“네? 아니요?! 절대 그런 거 아니에요. 실수로 누구랑 부딪혀서….”

누가 봐도 속상해하는 얼굴이었다. 장난 좀 쳐 볼까 했더니 이렇게 순진해서야 원.

가볍게 웃은 실장이 괜찮다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장난이야. 오히려 유니크하고 좋던데? 내가 잠깐 반응 살펴봤는데 장난 아니야. 다들 내가 노린 줄 알더라니까? 오호호.”

실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살짝 흔들었다.

“그러니까 걱정 그만하고 얼른 가서 옷부터 갈아입어.”

백야가 무대를 하는 동안 멤버들은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던지듯 탈의실로 떠밀려진 백야는 의상을 허겁지겁 갈아입었다.

- 데이즈 언제 나와요?

- 아까 스노우 플레이크 부른 애 중에 분홍 머리 누구야? 여돌 귀걸이 한 거 보고 엥? 했는데 너무 잘 어울려서 계속 생각나

- 백야한테 귀걸이 해 주신 분 어느 방향에 있는지 좀.. 그쪽으로 절하게요ㅠㅠ

- S사 노렸네. 청팀 에임 vs 백팀 소년천하 아니냐고ㅋㅋㅋ 지금 문자 투표 완전 박빙인데 청팀이 조금 앞서는 중

- 울 복숭 말랑하게 생겨서 화려한 거 세상 잘 어울림. 코디 잘알

- 데이즈 이번에도 의상실 옷 입고 나오니? 이왕이면 할미 위시리스트 중에 하나였으면 좋겠구나...

할미의 간절함이 닿았는지 데이즈는 그녀의 위시리스트 중 하나를 입고 있었다.

멤버들이 복도를 지날 때마다 멈춰선 스텝들이 한 번씩 돌아볼 만큼 파격적인 의상.

“어허! 고개 들고! 당당하게 걸으란 말이야, 나처럼.”

“악! 아퍼!”

율무가 백야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손은 또 왜 저렇게 큰지 화끈거리는 등 전체에 개복치가 몸을 배배 꼬았다.

그러다 맞은편에서 오던 스텝과 눈이 딱 마주친 백야. 그녀는 못 볼 걸 보기라도 한 듯 충격으로 굳어 있었다.

“미친.”

스텝은 실례인 줄도 모르고 입을 벌린 채 백야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제가 욕을 내뱉은 줄도 모르는 눈치였다.

“하하….”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썩소에 가까운 미소를 지은 개복치가 다시 바닥으로 시선을 처박았다.

아무래도 낮에 장난치다 묶은 그 리본은 복선이었던 것 같다.

하얀 셔츠에 분홍색 바지. 그래,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목에 있는 이 부담스러운 초커였다.

‘왜 나만…! 나만 이런 건데!’

차라리 율무가 잘못 묶었던 리본이 훨씬 나았다. 백야가 앞서 걷고 있는 멤버들을 보자 한 사람씩 목에 메고 있는 초커가 눈에 들어왔다.

깔끔한 의상에 시상식이라 자제하셨구나, 하고 방심한 제가 어리석었다. 실장님의 열정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백야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기 무섭게 그녀가 꺼내 든 건 다양한 굵기의 리본 꾸러미.

율무와 지한, 민성의 목에 묶여 있는 리본 끈은 허리 중간까지 길게 떨어지는 길이였지만, 굉장히 얇아 얼핏 보면 그냥 긴 끈 같았다.

그다음으로 굵은 리본은 유연과 청의 것이었는데. 이 또한 손가락 한 마디 굵기 정도로 비교적 양호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것은 길이가 짧아 부담스럽진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왜!’

백야의 것은 저 두 개가 합쳐져 두 배가 된 왕 리본이었다.

굵고 길고 크고!

다른 그룹들 보면 이런 건 보통 센터한테 몰아주던데. 어떻게 된 게 이 그룹은 과한 건 저에게 다 몰빵이었다.

‘어디서 나만 모르는 망겜 유저의 법칙 같은 게 적용되고 있나?’

눈과 입술을 꾹 다물며 마음을 다스리던 백야. 무대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스텝이 다가왔다.

“데이즈는 MC 멘트 시작하면 바로 올라갈게요.”

조금 전에는 하랑 때문에 우울했는데 이번에는 리본이 저를 슬프게 만들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지…?’

뭐 하나 쉽게 되는 게 없었다.

* * *

===========================

[DASE_Official]

나이트~ 오늘 가요대전은 어떠셨나요? 오랜만에 입어 보는 의상실 옷인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ㅎㅎ

리본이 뒤로 가 있어서 카메라에 잘 안 잡혔다고 하길래 제가 사진을 몇 장 가져와 봤어요~

마지막은 가위바위보 꼴찌 벌칙! 이상 데이즈 공식 홈 마스터 율무였습니다~

(에임이랑 찍은 단체 사진.jpg)

(리본 초커 단체 뒷모습.jpg)

(손목에 청팀 리본 메고 가운데로 모은 단체 사진.jpg)

(머리에 파란 리본 주렁주렁 달고 있는 백야 사진.jpg)

===========================

- 그거 아세요? 선생님들께서 지금 남돌 코디 새 역사를 쓰고 계시다는걸...

- 백야 애들한테 머리 쥐어 뜯겼냐고ㅋㅋㅋ 너무 마구잡이로 묶어놓은 거 아니야?

└ 백도 표정 너무 귀여워ㅠㅠ 저 해탈한 얼굴

└ 영혼이 몸 버림ㅋㅋㅋㅋ

- 와 개 과한데 어울리네 저게...

- 살면서 본 남성 중 리본이 제일 잘 어울림. 특히 백야 왕 리본은 우리를 죽이려던 ID의 암살 시도였던 게 분명하다!

- 온 우주랑 데이즈, 코디, ID가 돕는 울 복숭아의 큐티♡

연습 중 쉬는 시간. 바닥에 누워 핸드폰으로 댓글을 읽던 율무가 별안간 웃음을 터트렸다.

“You crazy?”

아무래도 연습실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게 틀림없다며 청이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가까이 있던 지한이 바닥을 구르는 율무를 발로 멈춰 세웠다.

“뭔데. 거기서 말해.”

조금만 다리를 늦게 뻗었으면 저 덩치가 그대로 지한을 덮칠 뻔했다.

“이거 봐.”

지한이 다가가자 율무가 핸드폰을 보여 주었다. 화면에는 드라마 속에서 사업에 실패해 몇 달째 길거리를 헤매는 거지꼴의 남성과, 머리에 중구난방으로 리본을 묶은 백야의 얼굴이 합성되어 있었다.

해탈한 듯 초점 없는 눈동자가 사진 속 풍경과 퍽 어울렸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