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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75화 (75/340)

제75화

“못 받으면 못 받는 거지 뭐~ 그리고 그게 왜 너 때문이야? 다 같이 부족해서 그런 건데.”

“나한텐 그렇게 가벼운 문제가 아니야.”

“아이고~ 그러세요? 상 욕심 있는 줄은 몰랐네, 또.”

“하지 마.”

율무가 백야의 턱 아래를 살살 긁으며 장난쳤다.

“울 백야 혹쉬 야망 있는 타입?”

“하지 말라고 했, 하……. 그러는 넌 매를 버는 타입이냐?”

“악!”

두 차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던 율무가 결국 한 대 얻어맞고서야 물러났다. 조용히 지켜보던 민성이 혀를 찼다.

“학습 능력이 없는 건지 원.”

그때 지한이 백야를 빤히 쳐다보며 한마디 툭 내뱉었다.

“원래 꿈은 반대래.”

그러니 네가 우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며 그가 위로해 주었다. 진중한 성격 때문인지 백야는 그의 말이라면 왠지 믿음이 갔다.

“그럴까….”

“응. 가자.”

어느새 차례가 다가온 레드카펫 입장. 그가 손을 내밀었다.

* * *

- 와 유연 실물 미쳤네

- 데이즈 레카 스타일링 존멋 (올블랙 수트 단체 사진.jpg)

- 백야만 핑머고 나머지는 염색했네? 갈발도 존잘ㅜㅜ 그래도 핑머 지한 한 번 더 보고 싶었다ㅠ

- 애들 확실히 신인 티 나더라ㅋㅋㅋ 레드카펫 사진 찍을 때 라인이랑 발 모양까지 맞춰서 찍음

- 애들 오늘 선배 그룹이랑 무슨 특별무대 한다 하지 않았음?

홍콩 전역에 흩어져 있던 한국인 관광객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침부터 서둘러 꽃단장을 한 복쑹과 시윤뷘은 일찌감치 공연장 안으로 입장했다.

마음 같아서는 레드카펫까지 생눈으로 보고 싶었지만, 시윤뷘이 구한 티켓은 무려 스탠딩석. 시간이 여유 있는 좌석과 달리 스탠딩은 몇 시간 전부터 입장을 시작했기 때문에 두 사람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아쉽지만 핸드폰으로 보는 수밖에.

그러나 30초에 한 번씩 끊기는 유앱은 그녀들의 성질을 돋우기만 했다.

“에잇!”

“난 포기. 에임 언제 나올지도 모르겠고 그냥 레드카펫은 나중에 한국 가서 볼래.”

어차피 잠시 후면 눈앞에서 원 없이 볼 수 있는 실물이었다. 무슨 행운인지 입장하고 보니 가수석 앞 구역이지 뭔가!

복쑹과 시윤뷘은 서로를 얼싸안고 한동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두 사람이 있는 구역은 스탠딩답게 홈마들이 80% 이상 포진한 곳이었다. 사실상 대포존. 감히 DSLR에 비비진 못하겠지만, 몇 달 전에 산 최신 핸드폰으로도 최애의 사진은 충분히 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공항 백야처럼 엄청난 사진을 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푼 복쑹의 마음이 설렜다.

시간은 어느덧 6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언뜻 살펴본 2층도 대부분 좌석이 채워진 상태.

‘드디어 최애 영접!’

팬 사인회보다는 거리가 멀었지만 스탭 바이 스탭. 복쑹은 최애와의 거리를 천천히 좁혀 가기로 했다.

“꺄아아악!”

옆에 있던 중국인이 다짜고짜 중국어로 말을 걸어오는 통에 ‘왓?’만 연발하던 그녀는 갑자기 들려오는 함성에 가수석을 돌아봤다. 레드카펫에 첫 번째 순서로 입장했던 걸그룹이 무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옥께이! 니하오!”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외친 복쑹이 시윤 뷘의 옆으로 찰싹 달라붙었다. 에임은 당연히 마지막에 올라올 테고. 데이즈는 신인이니까 금방 모습을 드러낼 게 분명했다.

“야, 저기 데이즈 아니야?”

“우옼!”

백야를 발견한 복쑹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입을 틀어막았다. 솜사탕 같은 머리를 한 백야가 지한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배, 백야야!”

저도 모르게 최애의 이름을 불러버린 복쑹. 언제 꺼냈는지 모를 슬로건이 그녀의 코 밑으로 영롱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최애가 내 목소리에 반응한다…?

자리로 향하던 백야가 걸음을 멈춰 복쑹이 있는 쪽을 돌아봤다.

“네?”

심지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까지 했다.

복쑹과 눈이 마주친 백야가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리자, 반사광으로 번쩍이는 슬로건 문구가 보였다.

[백야야 깨물하트]

백상의 피치건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스윗백의 하트건이었다.

잘 걷다 멈춰선 햄스터에 뒤따르던 청이 어깨를 짚었다.

“뭐 봐?”

시선을 따라가자 번쩍이는 일곱 글자가 보였다. 활짝 웃은 청이 복쑹을 가리키며 외쳤다.

“가랏 백야! 깨물어!”

어그로에 낚인 개복치와 부추기는 새끼 늑대의 등장. 지나가지 않고 멈춰선 막내즈에 신이 난 홈마들만 연사를 찍어 댔다.

“백야야! 사랑한다악!”

크게 외치는 어그로의 사랑 고백이 이어졌다. 복쑹은 마음 약한 개복치의 심장에 쐐기를 박았다.

자리에 앉았던 민성은 부족한 머릿수에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그러다 아직도 계단 근처에서 꾸물거리는 막내들을 발견했다. 허겁지겁 일어나 잡으러 오는 민성과 복쑹 사이에서 망설이던 백야.

개복치는 결국 소심하게 하트를 깨물고 도망쳤다. 그녀의 최애는 빨개진 귀를 가리며 제일 구석진 자리에 몸을 구겨 넣고 있었다.

“허억! 백야, 백야가…!”

언감생심 꿈도 꿔 본 적 없는 덕계못 파괴에 복쑹이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비틀거렸다.

조금 전 작별 인사를 한 중국인이 다시 다가와 말을 걸었으나 아웃 오브 안중. 복쑹은 지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야?”

“몰라. 아까부터 자꾸 나한테 말 걸어. 시윤뷘, 나 심장 터져서 죽을 것 같아…. 어떡해?”

“부러운 년.”

슬로건을 품에 안은 복쑹이 눈물을 훔쳤다. 이 영광을 스윗백에게.

* * *

웅장한 난타 퍼포먼스 영상으로 시작된 JAMA. 오늘 시상식에 출연할 가수들의 이름이 북소리와 함께 튀어 올랐다. 오랜 기다림 끝에 시작되는 공연에 관객석에서도 뜨거운 함성과 박수가 들렸다.

영상이 끝나자 본무대에 설치된 커다란 스크린이 열리며 첫 번째 시상을 할 배우가 걸어 나왔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두루 인기가 많은 남자 배우였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마친 그는 준비된 멘트를 이어 갔다.

“우리는 일상의 많은 순간을 음악과 함께합니다. 카페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잠들기 직전까지도요.”

남자는 자신도 음악을 참 좋아하는데, 이렇게 현장에서 가수들의 무대를 직접 보고 듣는 것뿐 아니라 시상까지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럼 오늘의 첫 시상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남자가 손안의 빨간색 카드를 열어 보았다.

“올해의 TOP10 그 첫 번째 수상자입니다.”

카드와 맞은편을 번갈아 보던 남자가 첫 번째 본상 수상자를 호명했다.

“JAMA TOP10. 에임.”

관객석에서 엄청난 함성이 쏟아졌다. 가수석의 1열에 앉아 있던 에임이 일어나자 주위에 있던 후배 가수들이 축하를 건넸다.

같은 소속사인 로즈데이와 글래시도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고 있었는데, 데이즈는 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에임입니다.”

상을 쥔 연하가 조금 낮은 마이크에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먼저 올해도 저희 음악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무한한 사랑과 응원을 보내 주시는 맠둥이들, 제가 많이 사랑해요.”

살며시 짓는 미소에 함성 소리가 공연장을 찢어버릴 듯이 터져 나왔다.

감사하다는 소감을 끝으로 팬들을 향해 인사한 에임이 자리로 돌아가자, 스크린 가득 떠 있던 JAMA 로고가 사라지며 동화 속 마법의 성이 나타났다.

[The Kingdom of Dolls]

JAMA 퍼포먼스의 문을 열 첫 번째 가수의 등장이었다.

몽환적인 인트로 음악.

굳게 닫힌 성문.

잠시 화려한 영상을 비추던 카메라가 문 앞에 서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천천히 클로즈업했다. 어깨를 덮은 빨간색 짧은 케이프. 모자를 뒤집어쓴 이는 금발의 유연이었다. ‘인형의 나라’라는 컨셉과 어울리는 깜찍한 의상이었다.

댕- 대앵-.

성의 꼭대기에 달린 시계가 12시를 가리키자 공연장에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연은 소리의 출처를 찾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잠시 후 모자를 벗은 그는 카메라를 그제야 발견한 척, 보조개를 지으며 한걸음 옆으로 물러났다.

스크린의 가운데가 열리고 등장하는 다른 멤버들의 모습. 핀 조명이 비추는 중앙을 비워 둔 채 원형으로 넓게 퍼져 있었다.

다리를 쭉 뻗고 앉은 멤버들은 서로의 등을 지고 있었는데. 중앙으로 걸어간 유연이 무릎을 꿇으며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치자, 묵직한 사운드가 추가되며 곡에 한층 무게감이 더해졌다.

처음엔 유연만 비추던 조명도 지금은 넓게 퍼져 무대 전체를 비췄다.

흘러나오는 전주는 데이즈의 최근 활동 곡이었던 ‘WANT ME’. 통통 튀는 플럭 사운드와 몽환적인 트랙, 압도적인 무대 연출까지 더해져 마법의 성에 사는 요정들의 무대를 보는 느낌이었다.

마리오네트가 된 것처럼 유연의 손짓에 맞춰 안무를 선보이는 데이즈. 앉아서 동작을 선보이던 멤버들은 바닥을 한 바퀴 구르며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형을 바꾸는 순간에도 안무는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줄곧 뒤에서 움직이던 백야가 센터로 들어오며 WANT ME의 익숙한 후반부 대형이 갖춰졌다.

- I wa-a-a-ant

힘든 기색 없이 쭉 올라가는 4단 고음. 가수석에서 데이즈의 무대를 지켜보던 대환이 저도 모르게 실소했다.

동생의 웃음소리를 들은 시윤이 옆을 돌아봤다. 그의 얼굴에도 마냥 흐뭇해하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넌 왜 웃어?”

“그냥. 갖고 싶어서.”

은은한 광기가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곱씹어 보니 제법 섬뜩한 소리에 시윤이 혀로 입술을 축였다.

“…범죄는 안 돼.”

“내가 형인 줄 알아? 군대나 가.”

나름 조크였으나 누울 자리도 봐가며 발 뻗으랬다고, 대환은 형들의 농담을 단 한 번도 받아 준 적 없었다. 차가운 말에 상처받았다며 시윤이 우는 척을 하자 홈마들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 매일 아침 눈 뜨길 기다려

너의 하루는 나로 시작해

시작부터 클라이맥스를 터뜨린 백야가 다소 긴장한 얼굴로 파트를 소화했다. 누워서 바닥을 구르는 안무에 모자가 씌워져 자칫 실수할 뻔했던 백야는 표정이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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