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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79화 (79/340)

제79화

다행히 뼈에는 큰 문제가 없어서 일주일 정도만 부목을 대면 될 것 같다는 게 의사의 소견이었다. 생각보단 희망적인 상태에 백야도 한시름 놓았다.

자고 일어났더니 팅팅 부어 있는 손가락에 얼마나 놀랐는지. 비몽사몽 하는 유연에게 다가가 보여 줬더니 눈알이 튀어나오려 했다.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자 웃음이 난 백야가 킥킥거렸다.

“아픈 놈이 뭐가 그렇게 즐거워?”

“웃긴 게 생각나서요. 저희 회사로 가죠?”

“그래야지. 호랭이가 너희 언제 오냐고 그렇게 재촉한다.”

다쳤는데 쉬지도 못해서 어떡하냐는 말에 백야가 희미하게 웃었다.

“이게 쉬는 거죠 뭐. 저희도 얼른 가요.”

호랭이가 연습실에 들이닥치기 전에 할 게 있다며 백야가 재촉했다.

그냥 한 말은 아니었는지 개복치는 도착하자마자 멤버들과 열심히 머리를 맞대고 있었는데.

“쟤네 뭐 하는 거야?”

“글쎄요. 작전회의라고 하던데요?”

덕진의 대답에 조금 불안해진 남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것들이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저 나이대의 남자애들은 방심할 수 없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백야가 멀쩡한 손가락을 아작내서 나타나지 않았던가. 본인 말로는 어제 무대를 하고 내려와서 다친 거라는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남경이 은밀하게 접근했다.

한 손엔 마른걸레, 다른 손엔 분무기. 유리를 닦는 척 게걸음으로 다가가자 유연과 백야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단 모르는 척 가만히 있자.”

“그러다 들키면 어떡해? 나 거짓말 잘 못 한단 말이야.”

“알아. 그리고 환자가 뭘 해. 너한테는 아무것도 안 시킬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유연의 말에 율무가 반박했다.

“그래도 역할은 줘야지~ 마침 딱 맞는 역할이 있기도 하고.”

“뭔데? 나 할래.”

“깍두기. 이거 되게 좋은 거다? 특별히 너니까 시켜 주는 거야.”

“죽을래?”

보자 보자 하니까 이게 누굴 바보로 아냐며 백야가 이를 드러냈다. 언제나처럼 놀리는 자와 당하는 자의 평범한 대화. 그러나 남경은 그 속에 숨겨진 뜻을 간파했다.

“이것들이!”

남경이 눈을 희번덕이며 걸레를 팽개쳤다. 자객이 분무기를 뿌리며 난입했다.

“으갹!”

놀란 백야가 뒤로 나동그라졌다.

“앗 차가!”

연습실 화초 대신 물을 맞은 민성이 얼굴을 찡그리며 뒤를 돌아봤다.

“뭐야, 왜 거기서 나와?”

민성이 놀라 물었으나 남경은 다섯 중 제일 만만한 백야를 잡고 늘어지는 중이었다.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야! 바른대로 말하지 못해?!”

뒤로 넘어간 백야를 일으켜 세운 남경이 그의 얼굴 앞으로 분무기를 들이대며 협박했다.

칙-.

“으갹!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물을 맞은 백야가 얼굴을 와락 찡그리며 어깨 옆으로 손을 들었다.

어느 조직에서든 말단은 아는 게 없는 법. 깍두기를 붙잡고 늘어져봤자 건질 게 없다고 판단한 남경은 몸을 반대로 돌렸다.

“그럼 주동자가 누구야!”

분무기는 지한을 향해 들이밀어졌다. 다행히 이번에는 번지수를 잘 찾았는지 그는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한유연, 나율무. 목표는 청청.”

지한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주동자의 신상과 목표물까지 순순히 자백했다. 유연이 그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래퍼의 입은 손보다 빨랐다.

“저런 배신자…!”

유연이 괘씸하다는 눈으로 흘겨봤다.

“역시. 너희 둘일 줄 진작에 알고 있었지.”

요주의 인물인 청청이 자리를 비우고 없는 지금, 이런 일을 계획할 만 한 놈은 너희 둘뿐이라며 남경이 분무기의 방향을 바꿨다.

마침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사람에 매니저는 분사구를 요리조리 조준해 가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뭐 하려고 그랬어.”

입을 꾹 다물며 묵비권을 행사하는 유연과 민성을 힐끔거리며 사인을 주고받는 율무. 두 주동자의 얼굴에 고운 입자의 H2O가 뿌려졌다.

칙- 칙-.

“악! 으웩!”

“이 형이 왜 물을 뿌리고 그래?”

그거 썩은 물 아니냐며 몇 달째 정수기 위에 놓여 있는 걸 봤다며 율무가 발끈했다.

“그러니까 좋게 말로 할 때 이실직고 해라.”

남경의 재촉에 율무가 한숨을 쉬었다. 물을 맞아 촉촉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그는 시큰둥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 이 형 발 연기라서 안 끼워 주려고 했는데.”

“누가 누굴 보고 발 연기래.”

남경은 진심으로 어이없어하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에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캘린더를 보니 청의 이름과 함께 케이크 이모티콘이 적혀있었다.

“내일 청이 생일이냐?”

그렇다. 오늘은 데이즈의 막내, 청의 생일 전날이었다.

그는 안타깝게도 귀국하자마자 K사의 스페셜 무대 연습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리고 형들은 이때를 틈타 막내의 깜짝 생일 파티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는데.

“근데 왜 날 빼고 해?”

백야는 깍두기라도 시켜 주지만 남경은 작전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이 사실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매니저가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러자 유연이 정말 몰라서 묻느냐는 얼굴로 바라봤다.

“형 때문에 율무랑 지한이 형 생일 파티 다 들킨 건 기억도 못 하나 봐?”

다소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였으나 남경은 눈썹을 움찔거릴 뿐, 곧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그, 그게 왜 나 때문이야!”

자신은 이래 봬도 백야의 몰래카메라를 성공으로 이끈 주역이라며 남경이 뒤늦게 큰소리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여전히 싸늘했다.

“쟤는 3살짜리도 속여.”

“내가 뭐.”

뭔진 모르겠지만 저를 무시하는 듯한 느낌에 개복치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WANT ME에 참새 소리 들어간다 그랬지?”

“…응. 그때 녹음했다고 몇 번을 말하냐.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너 말 돌리는 거지 지금.”

“봤지?”

유연이 한쪽 눈썹을 삐죽 들어 올리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남경의 1패였다.

그럼에도 매니저는 자신의 평가를 인정할 수 없다며 항의했다. 표정에서 드러나는 속마음에 유연이 안타까워했다.

“하…. 내가 꼭 말해 줘야 해? 율무 형 생일 때 잠깐만 연습실에 붙잡고 있어 달라 하니까 뭐라 그랬다고?”

“어우~ 율무야, 날씨가 참 좋다! 다른 애들은 다 같이 화장실이라도 갔나 봐. 복도에는 없더라고. 내가 봤어.”

율무가 그때를 회상하듯 남경의 성대모사를 하며 대신 대답했다.

당시 깜짝 파티의 주인공이었던 율무는 문 앞에 어색하게 선 남경의 첫 대사만 듣고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했다.

“그건 쟤가 눈치가 빨라서 그래.”

남경이 변명했다.

율무가 남들보다 눈치가 빠르다는 건 인정. 유연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나 지난달엔 생일이 무려 두 명이었다. 유연의 시선은 자연스레 다음 생일자였던 지한에게 향했다.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피해자는 당시 상황을 진술하기 시작했다.

“난 형이 단톡방 헷갈린 거 같아서 그냥 말해 준 거였는데.”

지한의 생일은 시도도 해 보기 전에 들통났다는 사실. 남경은 이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분무기를 빼앗은 유연이 남경의 얼굴 위로 물을 분사했다.

칙-.

“그러니까 끼고 싶으면 형도 이번엔 깍두기야.”

백야와 함께 김치 선고를 받게 된 남경이 억울한 눈으로 백야를 봤다. 너는 서운하지도 않아?

그러나 원조 깍두기는 아무 생각 없어 보였다.

어차피 남경에게 들킨 거 덕진까지 끌어들이기로 한 데이즈는 빠르게 작전을 정리했다.

“더 이상의 실수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빠르고 정확하게.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제작 한유연.

“제가 드린 대본에 없는 대사는 될 수 있는 대로 하지 말아 주세요. 애드리브 나오는 즉시 다음 작품 없습니다~”

각본 나율무.

“불 껐다 켰다 하는 것쯤이야.”

조명 한지한.

“리허설 때 맞춰 본 동선대로만 움직여주시면 됩니다. 만에 하나 목표물이 돌발 행동을 했다! 그러면 뭐… 이번에도 망한 거지. 하핫!”

연출 도민성.

“뽑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볼게요!”

촬영 김덕진.

“나는 진짜 가만히 있어? 손 괜찮은데….”

깍두기 한백야.

“아무리 그래도 촬영은 덕진이보다 내가 하는 게 낫지 않겠니 애들아…?”

외 1.

막내를 깜짝 놀라게 해줄 준비는 모두 끝났다.

배급 유앱.

* * *

룸메이트인 복쑹이 홍콩 여행을 떠나고 없는 지금. 기숙사를 독차지한 그녀의 룸메이트는 자기 직전 우연히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린 유앱 라이브 썸네일을 보게 된다.

[막내를 속여라! (부제 : HAPPY CheongX2 DAY)]

현재 시각 11시 53분.

룸메의 포털 앱 진입과 동시에 생겨난 썸네일은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K사의 마스코트인 펭귄 인형을 손안에 넣어 찌부를 만들고 있는 냉미남과, 옆에 바짝 붙어 관심을 보이는 토끼를 닮은 남자.

“얘 걔 아닌가…?”

지난번 복쑹과 함께 본 예능에서 구수한 바이브로 트로트를 기깔나게 불러 뇌리에 인상 깊게 남은 얼굴이었다.

“청 엑스 이?”

암호 같은 제목에 이끌려 룸메이트는 결국 썸네일을 누르고 말았다. 접속자가 폭주하는지 로딩 화면이 제법 길게 이어졌다.

이내 왼쪽 상단에 라이브 표시와 함께 연습실 풍경이 화면에 가득 찼다. 썸네일에서 보이던 구도에서 살짝 오른쪽으로 치우친 각도는 몰래 카메라 같은 느낌이었다.

- 헉 자려고 누웠는데 유앱 알람!

- 청아 생일 축하해~

- 홍콩에서 오늘 귀국했는데 아직 연습실이라고? 애들 체력 괜찮나ㅠ

- 깜짝 파티 해주려나 봄!!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에 룸메의 시선이 잠시 하단에 머물렀다.

“생일?”

그래서 제목이 ‘막내를 속여라’였나.

잠깐보다 끌 생각으로 눌렀는데 룸메는 어느새 화면 비율을 전체로 전환하고 있었다.

왼쪽 가까이에서 인형을 갖고 노는 두 사람의 옆으로, 멀리 떨어져 홀로 앉아 있는 분홍색 머리의 남자애. 백야는 네모난 은박지 같은 걸 열심히 까고 있었다.

- 백야 혼자 저기서 뭐 하는 거야?

- 대장이다 대장! 나잉이 창시자!

- 초콜릿?

- 햄스터가 초코 먹는 모습 더 자세하게 보여줘 제발...

- 잠깐 내 새끼 손이 왜 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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