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80화 (80/340)

제80화

확실히 초콜릿 포장을 벗기는 손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한 팬이 의문을 제기하자 다른 팬들도 백야의 손을 유심히 살폈는지, 깁스를 한 것 같다는 내용의 댓글이 물밀듯이 올라왔다.

“다쳤나 보네.”

저도 모르는 사이 룸메는 안쓰러운 얼굴로 백야를 보고 있었다.

1초면 까는 걸 장장 10초를 넘게 낑낑거리다 드디어 한입 베어 무는 복숭아. 뇸뇸거리며 쉬고 있던 그가 앞을 향해 초콜릿을 내밀었다.

카메라엔 보이지 않지만 누가 맞은편으로 다가와 서 있는 모양이었다.

- 아 카메라 개 답답. 발로 찍어도 이거보단 잘 찍겠다ㅠ 남매니?

- 몰래 찍는 거라 어쩔 수 없는 듯

- 남매가 누구예요?

- 청이 생파 할 때까지만 좀 기다려봐요 우리. 카메라도 청이 몰래 켠 거잖아요 지금

이제 5분 지났을 뿐인데 팬들은 저희끼리 싸우고 걱정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룸메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댓글 상황을 지켜봤다.

카메라도 대충 상황을 파악했는지 각도를 조금 조정해 네 사람이 모두 나올 수 있게 움직였다.

- 엥 뭐야. 남경 매니저였네. 그럼 지금 카감 덕매 님이신가

- 청이 생일 2분 전~~

다른 멤버들은 케이크를 준비하러 간 건지 화면에 보이지 않았다.

그때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카메라를 잡더니 화면을 전환했다. 액정을 가득 채운 율무의 얼빡샷에 채팅창이 폭주했다.

[율무 : 지금, 청이 생일 파티 준비하려고 유앱 켰어요. 나이트 분들도 같이 축하해 주세요.]

연습실 문밖 복도인지, 목소리를 한껏 낮춰서 속삭이듯 말하는 바람에 갑자기 분위기는 ASMR이 됐다.

다시 카메라를 덕진에게 넘겨준 율무. 그는 카메라를 향해 손짓하더니 연습실 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쭈그려 앉아 있는 지한과 유연의 곁으로 다가갔다.

[유연 : 라이터 받아 왔어?]

[율무 : 어. 여기.]

남경에게 라이터를 받아 온 율무가 유연에게 건넸다. 알록달록한 영문 초가 꽂혀 있는 생크림 케이크. 지한이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한 : 12시 되자마자 불 끌 테니까 바로 들어와.]

[율무 : 옥께이~]

여전히 속삭이듯 말하는 세 사람에 채팅창엔 앓고 있던 불면증이 방금 다 나았다는 완쾌 환자가 속출했다.

[청 : 어디 갔다 와?]

[지한 : 화장실.]

각본에 충실한 지한은 물을 마시는 척 정수기 앞에 서서 시간을 확인했다.

3초, 2초, 1초.

12시 정각이 되자 손을 뻗어 불을 끈 지한. 연습실은 순식간에 암흑이 되었다.

[청 : 모야!]

[민성 : …정전인가?]

[청 : 핸드폰 켜! Flash!]

빛을 내는 물건은 들고 있지 않기로 사전에 말을 맞춘 덕에 연습실 안은 정수기에서 새어 나오는 작은 초록빛이 전부였다.

청이 핸드폰을 꺼내자 민성이 일부러 손을 건드리며 소파 위로 떨어뜨렸다.

[청 : 왜 때려!]

주우려 들자 한 번 더 손등을 내리치는 민성에 청이 발끈했다.

빛 한 점 없는 곳이라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까지도 시간이 제법 걸렸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일렁이는 붉은 빛이 실내를 밝혔다.

[데이즈 : 해피 벌스데이 투유~ 해피 벌스데이 투~ 유~]

다국적 그룹답게 생일 축하 송도 멤버 맞춤형으로 불러 주는 데이즈. 그러나 뒷부분은 영어로 진행하기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어 급하게 한국어로 대체했다.

[데이즈 : 사랑하는 청이의~ 생일 축하 합니다~]

[청 : What the….]

진심으로 놀란 것 같은 청이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얼른 소원을 빌고 촛불을 끄라는 말에 청이 두 손을 모아 눈을 꼭 감았다.

소원을 빈 청이 초를 불자 깍두기 1, 2가 생일 폭죽을 터뜨렸다.

다시 어두워진 연습실에 얼른 입구로 달려간 조명 담당. 지한이 다시 불을 켰다.

[백야 : 축하해 청아.]

[청 : 선물? 내 거야?!]

이어지는 깍두기의 선물 증정식.

학교 앞 팬시점에서 팔 것 같은 유치한 패턴의 은박 포장지가 바스락거렸다. 멤버들이 직접 포장했는지 어설픈 솜씨가 화면 너머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저건 포장이 아니라 대충 뭉쳐 놓은 거 아닌가….”

스카치테이프도 아닌 박스 포장에나 쓸법한 커다란 유리 테이프가 선물을 둘둘 감싸고 있었다. 이사 준비에 쓰라며 남경이 숙소에 가져다 놓은 테이프였다.

[청 : 옷이잖아!]

포장 센스는 없었지만 다행히 선물을 고르는 센스는 있었던 모양이다. 룸메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청이 펼쳐 든 후드티는 한 스포츠 브랜드의 인기 상품이었는데, 왼쪽 가슴 위로 데이즈의 이름과 흰색 데이지꽃이 자수로 새겨져 있었다.

[청 : 우리 이름도 있어! 이게 뭐야? 여기가 팔아?]

대충 이 브랜드에서 저희 이름이 새겨진 옷을 파느냐는 말이었다.

[민성 : 파는 건 아니고, 옷만 사서 실장님한테 부탁했지.]

[율무 : 우리 막내가 단체 티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잖아? 형 된 도리로서 모른 척 할 수 없지~]

[청 : 그럼 이거 우리 모두 있어?]

[지한 : 응. 숙소에.]

검은색 후드를 펼쳐 든 청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입고 있던 옷을 훌러덩 벗어 던졌다.

태그도 떼지 않은 상태로 머리를 밀어 넣는 막내에 민성이 모자를 잡아당기며 빠르게 옷핀을 제거해 주었다.

- 이게 힐링이지ㅠㅠㅠ

- 나도 단체 후드... 할미도 데이즈 후드티 입고 싶다 애들아..

- 민성이가 말하는 실장님이 스타일리스트인가? 센스 돌았네. 팀명 DASE > 팀 구호 for your DAYS > 팀 로고 DAISY까지 완벽 서사

[민성 : 맞다. 이거 나이트도 같이 보고 있었어, 청아.]

[청 : 나이트! Thank you!]

멤버들은 선물 증정식을 마친 뒤에야 유앱의 존재를 떠올렸다. 민성이 덕진이 든 카메라를 가리키자 청이 양팔을 번쩍 들며 외쳤다.

신나 하는 모습에 채팅창은 생일 축하와 케이크, 하트 등 각종 이모티콘으로 도배됐다.

- 근데 백야 손 왜 그래요?ㅠㅠ

댓글을 읽기 위해 핸드폰을 건네받자, 축하 말 사이로 백야를 걱정하는 팬들의 댓글이 제법 보였다. 고개 든 청이 카메라를 백야 쪽으로 향하게 돌려 주었다.

[청 : 햄스터 무대 내려오다가 넘어졌어! 그래서 middle finger 안 접혀서 율무한테 Fuck you 했어, 아까.]

[율무 : 그치? 네가 봐도 다분히 고의적이었지?]

[백야 : 아니야, 그냥 이마가 간지러워서 긁은 거라니까? 네가 내 앞에 있었잖아!]

[청 : 고이? 몰라. 그래서 아까 율무 형이 햄스터한테 왁! 해서 매니저 형이 야! 했어요. 둘이 접근 금지야 지금.]

이는 남경이 김치 선고를 받을 때의 에피소드로, 보란 듯 가운뎃손가락만 펴 이마를 긁는 백야에 율무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벌어진 일이었다.

수상한 동작을 참지 못한 그는 백야의 옆구리를 향해 손을 뻗었고, 간지러움에 취약한 개복치는 몸을 비틀며 바닥을 뒹굴었다.

무방비 상태로 나동그라진 백야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는 율무는 개복치를 온몸으로 깔아뭉갰고, 백야도 반격하며 난장판이 벌어졌는데. 일주일이면 나을 부상이 자칫 한 달짜리가 될지도 모르는 광경에 매니저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결국 남경이 냅다 소리를 지르며 둘 사이를 떼어 놓았고, 청은 지금 그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지한 : 그렇게 말하면 오해하시잖아. 싸운 거 아니에요.]

[율무 : 맞아요~ 그냥 저랑 놀다가 더 다칠까 봐 그런 거예요.]

[백야 : 형 그런 거였어요? 저 나율무 이길 수 있는데….]

백야는 누가 봐도 데이즈 싸움 서열 6위였다.

그러나 본인은 의견이 다른 듯, 당당히 내지르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채팅창은 키읔으로 도배됐다.

[백야 : 아무튼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손가락은 살짝 접질린 것뿐이라 금방 나을 거예요.]

백야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다친 손을 아래로 숨겼다. 정말 가벼운 부상인데 큰일이라도 당한 것처럼 눈물로 도배되는 채팅창이 민망하고 부담스러웠다.

[유연 : 그런데 나잉이가 뭐지? 아까부터 팬분들이 자꾸 나잉이를 찾으시는데.]

유연의 말에 멤버들이 카메라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옹기종기 모였다.

- 전지적 펫캠 시점

- 깜빡이 켜라고ㅜㅜ 이렇게 갑자기 들어오면 심장 터진다고 제발

- 나이트=나잉이! 창시자는 백야!

한순간에 가까워진 얼굴에 팬들은 심장 통증을 호소했다. 개중 빠르게 정신을 차린 몇몇이 나잉이가 나이트라고 알려 주었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멤버의 이름에 데이즈의 시선이 그에게로 몰렸다.

[백야 : 나 아니야. 나잉이가 뭔데…? 나도 처음 들어.]

[지한 : 나잉이 창시자가 너라는데.]

[민성 : 아~ 어제 수상 소감에서 네가 나이트를 나잉이라고 말했대. 그래서 팬분들이 나잉이가 됐다네?]

그 말에 율무가 웃음을 터뜨리며 백야를 놀려댔다.

대체 나잉이는 어디서 나온 거냐며 손뼉까지 쳐 가며 뒤집어지는 율무에 백야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백야 : …실수였어.]

[율무 : 아~ 실수~ 나이트가 나잉이가 되는 미스테이크!]

참을 인을 새기듯 입술을 꾹 다문 백야가 율무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다 좋은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다친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는 개복치. 맞은편에 있던 율무의 웃음이 천천히 멎었다.

[백야 : 왜? 더 웃어. 난 갑자기 손이 좀 뻐근해져서.]

[율무 : …이번에는 진짜 같은데?]

[백야 : 뭐가. 이거?]

백야가 대놓고 중지만 펼친 손을 들어 보였다.

투닥거릴 두 사람을 일찌감치 예감한 덕진은 다행히 각도를 돌려 백야와 율무를 잘라낸 상태였다.

반면 그마저도 불안한 남경은 화면 밖에서 라이브를 끝내라며 멤버들을 향해 목 언저리를 애타게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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