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유연 : 나잉이 귀엽고 좋은데? 그럼 우리 이걸 팬분들 애칭으로 할까?]
[청 : Like it! 나잉이 좋아!]
과연 제작자.
능숙하게 주제를 마무리하는 유연에 민성이 율무와 백야를 잡아당겨 다시 화면 안으로 끌어들였다.
[민성 : 그럼 저희는 슬슬 인사드릴게요. 곧 있을 시상식에서 뵙겠습니다.]
[청 : 나 다른 팀이랑 준비한 거 있어요! The Circus! 기대해!]
청의 연말 무대 스포를 마지막으로 유앱은 종료됐다. 별 내용 없었던 것 같은데 시계는 벌써 30분이나 지나있었다.
분명 침대에 누울 때까지만 해도 피곤함으로 가득한 상태였는데 라이브를 보는 사이 잠도 싹 달아나 버렸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됐지…?”
내일은 수업도 없겠다, 이 밤을 즐기기로 한 룸메는 너튜브를 켰다.
[DASE 청 레전드 직캠 모음]
[데이즈 ‘놀이’ 백 보컬]
[병아리랑 복숭아를 붙여보자]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강제 매칭. 유앱 한번 눌러 봤을 뿐인데 데이즈와 관련된 영상이 제법 보였다.
사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복쑹과 예능을 시청할 때부터 유독 눈에 들어오던 멤버가 있었다. 바로 오늘 생일을 맞은 청.
그림으로 그린 듯한 냉 미남은 팀 내에서 막내라는 반전 포지션을 맡고 있었는데. 문법을 파괴하는 어설픈 한국어는 룸메의 취향을 끊임없이 저격하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지독한 병을 앓고 있었으니….
“난 관심 없는데 왜 자꾸 이런 게 뜨고 난리람.”
입덕 부정기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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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E_Official]
나잉아!! 나 청청! 우리 또 상 받았다!!! 오늘 Special stage는 잘 봤나 모른다! 그리고 우리 벌써 신인상 두 개야! 이렇게 고마운 상 줘서 항복하고 너를 사랑해! love you so much!!!
(K사 시상식 단체 사진.jpg)
(막내 서커스 셔츠 셀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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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복..? 행복하다는 거지 청아?! 항복은 우리가 할 테니까 청이는 하고 싶은 거 다 해!!!!
- 오늘부터 흰 셔츠 청은 고유명사다!!!!
- 청아! 다음에는 단추 열 개만 풀어주라!!! 그럼 내가 항복할게!!!
- 얘들아 두 번째 신인상 축하해!!
- oppa I love you
- 댓글 왜 이렇게 파이팅 넘치냐고... 누가 이 사람들 느낌표 좀 뺏어 봐!!!
└ 당신부터가 글렀잖아!!!
- 텍스튼데 개 시끄러워ㅋㅋㅋ
청의 홈마 윈섬은 사진을 보정하다 말고 손가락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공계에 글을 올린 게 다름 아닌 자신의 최애였기 때문에.
존댓말을 어려워한다더니, 첫 문장부터 박력 넘치는 반말에 윈섬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윽! 청청 너무 귀여워.”
제 안의 파괴 본능이 이성을 지배하려 들었다.
“안 돼! 정신 차려!”
윈섬이 비장하게 혼잣말을 외쳤다.
간신히 이성을 되찾은 그녀에겐 청의 말도 안 되는 용안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녀가 보정하고 있던 사진은 JAMA에서 찍었던 데이즈의 본무대 컷. 셔츠에 짧은 리본 초커를 한 마이 리틀 울프는 ‘마음을 끄는, 매력적인’이라는 뜻의 ‘윈섬’ 그 자체였다.
구역 뽑기에 실패한 바람에 찍은 사진의 팔 할 이상이 뒷모습 혹은 측면이었지만, 목뒤로 묶인 리본 덕에 더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다른 홈에서 올린 사진들을 염탐해 봤으나 리본이 이보다 정확하게 나온 사진은 없었다.
하늘도 돕는 윈섬의 사진. 그녀는 보정 막바지 작업에 다시 돌입했다. 화려했던 무대 조명에 원하는 색감을 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때 몇 없는 홈마 친구 중 한 명인 백야현상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백상 님 : 윈섬 님 몸은 좀 어떠세요?ㅠㅠ]
[백상 님 : 아니이.. 어제 K사 시상식 갔는데 웬 천사가 하늘을 날아다니더라구요? 후... 찍지 않을 수가 있어야지]
[백상 님 : 누추한 실력이지만 제가 찍은 청이 놓고 가요! 얼른 쾌차하세용!! (사진 30장)]
“끕! 이게 무슨…!”
백상이 보내온 건 K사 시상식 청의 스페셜 무대 사진이었다.
[나 : 헉 백상니이임ㅠㅠㅠ 이 귀한 걸 제가 어떻게 받아요ㅠㅠ]
[백상 님 : 괜찮아요! 제가 가지고 있으면 만우절 날밖에 더 올리겠어용]
[백상 님 : 그것은 범세계적 손실... 이 얼굴을 나만 볼 순 없지]
[나 : 이런 에인젤ㅠㅠㅠ]
[백상 님 : 아, 그리고 이거 제가 적은 건 줄 알았잖아여ㅋㅋ (링크)]
백야현상은 사진에 이어서 링크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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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K사 막내 서커스 솔직히 연말 무대 찢었다
추천 222 반대 14 (+330)
아이돌 다섯 팀 막내들만 모아서 Rewrite The Stars라는 영화 ost로 무대했는데 솔직히 내 기준 연말 스페셜 무대 중에서는 역대급.
일단 라인업부터가 넘사.
소년천하, 글래시, 임페리얼, 플라워문, 데이즈.
서커스컨셉답게 한 명 / 커플별로 종목 정해서 파트 소화하는 게 신기했는데, 특히 마지막에 글래시랑 소년천하 커플댄스 추는 거는 연출 대박이었다고 생각함.
근데 개인적으로는 무대 시작한 데이즈 청청? 걔가 가장 인상적이었음! (팬 아님)
일단 막내들 모아놓은 사이에서도 제일 으른 같았음. (삭았다는 거 아니고 포스 있었다는 뜻)
핀 조명 하나 떨어진 무대 위에 맨발 냉 미남의 등장은 굉장한 임팩트였음.
흑발+셔츠+맨발+미남=the end.
K사 스페셜 무대는 이 시점에서 이미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고 봄.
아무튼 무반주에 가까운 잔잔한 음 깔리자마자 위에서 실크 천 같은 게 두 줄 떨어짐.
노래도 외국곡이라 영어 가사였는데 발음이 무슨 원어민임. 파워 슬리데린 상이라 영어도 잘하나 봄.
세상 아련한 얼굴로 노래하면서 우리 집 리모컨을 지배하더니 팔에 천을 감아! 막 감아!
그러다 갑자기 원을 크게 그리면서 달리기 시작하는 거야!
노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반주가 제대로 터져 나오는 순간!! 나는 하늘을 날고 있는 천사를 보았음.
나중에 검색해보니까 요즘 4단 고음으로 핫한 분홍 머리 걔 있는 그룹이더라고.
음색도 매력 있고 보컬도 나쁘지 않아서 다 같이 하는 후렴구에서도 튀지 않고 무난했음.
괴물 신인이라더니 선배들 사이에서도 기 안 죽고 무대 씹어 먹은 것 같아서 앞으로가 기대됨!
아직 안 봤으면 한 번쯤 영상으로 보길 추천함▼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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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저 얼굴이 제일 신기하고 놀라워...
- 청이 공중비행 하는 거 보고 떨어질까 봐 쫄았잖아 진짜ㅠㅠ 저 때 숨도 못 쉬고 봤다고ㅠㅠㅠ
- 어제 생일이었다며 쟤ㅋㅋ 사녹에 형들이 사준 옷 입고 온 거 봄
└ 생긴 거랑 다르게 귀엽더라. 입만 열면 뺙뺙 거리던데ㅋㅋㅋ
- 코어 무슨 일이야. 장치 하나 없이 저걸 힘으로 버틴다고??
- 소천 막내랑 데이즈 찐막내 온도 차이 (막내 서커스 대기실 사진.jpg)
└ 누가 봐도 오른쪽이 형인데요..?
└ 오른쪽 어제 19살 됐다는 글 보고 충격 먹음. 저게 어딜 봐서 19년 산 포스예요;
“츠허엉 처헝.”
윈섬이 책상 위로 무너졌다.
최애의 스페셜 스테이지 소식을 듣고 이날만을 기다려왔는데!
윈섬은 하루 전날 몸살이 도져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홍콩 일정을 무리하게 소화한 여파였다.
아이돌에 관심 없는 머글 친구들마저 K사의 막내 서커스를 보고, 저 맨발의 천사는 누구냐며 연락을 해 올 정도로 청의 무대는 대단했다.
앓아누워 있느라 사진은커녕 방송도 실시간으로 챙겨 보지 못한 그녀는 오늘 아침에서야 최애의 무대 클립을 보았다.
사실 그마저도 배가 아파서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러던 그때, 다른 홈마 친구에게서도 메시지가 왔다.
[한지 님 : 윈섬 님 K사 못 뛰셨다면서요]
[나 : 네에... 죽고 싶어요 진짜..]
[한지 님 : (파일.zip)]
지한의 홈마가 보내온 압축 파일. 이건 분명 청의 동영상일 거라고 그녀의 촉이 말해 주고 있었다.
윈섬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타이핑을 쳤다.
[나 : 이이이게 뭐죠]
[한지 님 : 청이 스페셜 무대]
[한지 님 : 심심해서 찍었어요. 가지세요. M사는 오세요?]
“흐어어엉.”
윈섬은 오열했다.
제가 인생을 잘못 살진 않았구나!
나중에 백상 님이랑 한지 님한테 이 은혜를 꼭 갚아야지, 그녀는 굳게 다짐했다.
* * *
12월 31일.
“시간 빠르다.”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창밖을 보던 지한이 나지막이 말했다.
딱 1년 전 오늘. 목적지도 모른 채 차에 올라탔다가 임진각에 내렸을 때의 황당함이란.
오늘 데뷔 1주년을 맞이한 데이즈는 올해 마지막 스케줄을 하러 가는 중이었다.
“설마 이번에도 임진각인 건….”
최근 의심병에 걸린 개복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남경을 봤다.
“자! 내비게이션을 봐. 일산 킨텍스, 남은 시간 20분.”
“그러네요. 혹시 몰라서 여쭤봤어요.”
백야는 직접 목적지를 확인하고 나서야 몸을 물렸다.
“너 이사 가면 꼭 유연이랑 다른 방 써라. 쟤 때문에 더 심해지는 것 같아.”
“형이 잘못해놓고 왜 내 탓을 하지?”
비행기 사건으로 신뢰가 땅에 떨어져 버린 남경은 요즘 유연과 함께 백야의 경계 대상 1순위를 다투는 중이었다.
“걱정 안 해도 돼. 임진각 라인업 떴어.”
지한이 SNS에 공개된 M사 최종 라인업을 보여 주었다. 팬들만큼이나 아이돌들 사이에서도 M사의 유배 명단은 소소한 화젯거리였다.
- 오늘 파주 영하 20도. 임진각 유배 확정 : S.AM, 다온, 뉴사운드, 퍼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