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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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역대급 개판이었던 연말 아이돌 콜라보 무대
추천 274 반대 26 (+202)
타이틀은 M사 가요대전인데 웬 애견 유치원이 나옴.
한 마리씩 등원하는 오늘의 주인공들. 잠시 후 선생님이 나와서 출석을 부르기 시작함.
“초코~ 레오~ 민트~ 율무~”
신나게 놀다가 낮잠 자는 댕댕이들. 완전 천사가 따로 없음.
일어나면 간식 시간인지 잠깐 자리를 비우는 선생님.
멈머만 남겨진 교실. 그런데 갑자기 펑! 하면서 연기가 나더니 하나둘씩 사람이 되기 시작함. 인간이 된 율초레민.
강아지 귀 머리띠하고 잠에서 막 깨어난 척 연기 중.
근데 얘들도 초면에 이런 연기하려니까 어색한지 서로 민망해하는 게 눈에 보임ㅋㅋㅋㅋ 그러다가 화면 바뀌면서 급 무대 시작함.
[노래 : 3시 25분 어느 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 원곡 : 텍스트]
리프트 타고 등장하는 푸들 수인 초코. 주인은 블라스트.
바닥에서 솟아오른 시고르자브종 수인 레오. BB9네 강아지. (실제로 성이 오씨라 팬들이 오레오라 부른다고 함)
이어서 머리가 파란 치와와 수인 로이드네 민트. 이름이랑 머리 깔 맞춤한 듯.
마지막으로 밝은 갈색 머리의 리트리버 수인 율무. 데이즈네 강아지로 작년에 반려동물 등록 완료됨.
어느 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인트로를 지나 이제 본 무대 시작.
[노래 : Waf Waf / 원곡 : 에임]
와프와프는 우리나라 멍멍처럼 미국식 강아지 울음소리. 댕댕즈라서 저 노래 고른 것 같은데 기획 누가 했는지 진정으로 돌은자같음ㅋㅋㅋㅋ
민트의 댄스 브레이크로 시작되는 와프와프.
(율무 무대 캡쳐.jpg)
소형견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는 대형견. 춤도 곧잘 춤.
센터도 돌아가면서 한 번씩 서고 마무리는 사이좋게 일자로 서서 엔딩.
살면서 지금까지 본 연말 무대 중 제일 황당하고 어이없음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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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트린 거 없나 잘 확인했지?”
매니저들이 이른 아침부터 숙소에 들이닥쳤다. 덕진은 조금 전 목적지로 먼저 출발한 터라 남경이 멤버들을 챙기고 있었다.
“없어. 가도 돼.”
덕진 대신 조수석을 차지한 민성이 안전벨트를 매며 대답했다. 그러자 뒷좌석에서 청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Wait! 복숭아 안 실었다!”
“뭐?”
남경과 민성이 눈을 크게 뜨며 뒤를 돌아봤다.
“도민성, 백야 어쨌어?”
“먼저 내려간 거 아니었어? 난 형이랑 같이 있는 줄 알았는데…?”
도리어 민성이 백야의 행방을 되물어 왔다. 그의 얼빠진 대답에 남경은 멘붕이 왔다.
백야랑 같이 내려온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남경이 사색이 된 얼굴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마침 백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야 인마, 너 어디야?!”
- 혀, 형…. 저 차 잘못 타서 덕진 매니저님이랑 같이 새 숙소로 가고 있어요. 저 때문에 아직 출발 못 하고 계실지도 모른다고 얼른 전화 드리라고 해서…. 죄송해요.
오늘은 데이즈의 이삿날.
멤버가 여섯 명씩이나 되는 데다 매니저에 이삿짐센터 직원들까지 왔다 갔다 하니 숙소 안은 온통 정신이 없었다.
서두르라는 재촉에 백야는 자신의 캐리어를 챙겨 미리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있었는데. 덕진은 자신을 보자 쫄래쫄래 따라오는 복숭아에, 멤버들의 캐리어와 함께 실어 새 숙소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너 없어진 줄 알고 놀랐잖아. 알겠어. 이따 보자.”
하마터면 제일 중요한 걸 빠뜨리고 갈 뻔한 남경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통화를 종료했다.
“백도 덕진이 형 차 탔대?”
“어. 하여간에 작은 놈이 제일 빨라.”
남경이 안도의 숨을 쉬며 시동을 걸었다.
“우리도 얼른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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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둥!”
율무가 숙소 문을 열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과연 유명한 아파트답게 고급스러운 외관은 물론, 완벽한 보안 시설과 훌륭한 한강 뷰는 멤버들의 마음을 홀라당 훔쳐 갔다.
“우와아~”
창문에 쪼르륵 달라붙은 여섯 명의 장정들. 남경은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켰고, 덕진은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에 담았다.
“바닥에 침 떨어지겠다 이놈들아.”
남경의 기분 좋은 타박에 백야가 얼른 고개 숙여 두리번거렸다. 진짜 바닥에 침이 떨어진 건 아닌가 살펴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확인은 고사하고 연달아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와… 바닥도 대리석!”
멤버들의 고개가 이번에는 일제히 아래를 향했다.
“이, 이런 델 정말 우리가 써도 된다고?”
민성이 말을 더듬으며 숙소를 눈에 담았다. 데뷔한 지 이제 1년을 막 넘긴 신인 그룹이 쓰기엔 너무나도 과분한 집이었다.
“확실히 과하긴 하지.”
남경은 아마 에임 멤버들이 독립선언을 하지 않았더라면 기존 숙소에서 몇 년은 더 살았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니까 만나면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 친해지면 너희도 좋잖아.”
“당근하지!”
청이 걱정하지 말라며 엄지를 척 들었다.
“침대랑 소파는 아마 오후쯤 도착할 거야. 그전까지는 숙소 좀 둘러보면서 방이나 정하던가.”
가구는 에임이 쓰던 것들을 거의 다 두고 가서 그대로 사용하면 될 것 같다던 그는, 자신이 살펴보긴 했으나 혹시라도 더 필요하거나 바꿔야 될 게 있으면 말해달라 했다.
“그럼 나는 덕진이랑 회사 좀 들렀다 올 테니까 꼼짝 말고 집 안에만 있어야 돼.”
활동도 끝났겠다. 제가 없는 사이에 몰래 숙소를 빠져나갈까 걱정이 된 남경이 진지하게 경고했다.
“Okay! 가 버려!”
매니저들은 청의 친절한 배웅을 받으며 떠났다.
문이 닫히며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가 나자, 데이즈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운데로 모여들어 어깨동무를 하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숙소 겁나 좋아!”
텐션이 극에 달한 율무의 목소리가 백야의 고막을 강타했다.
부엌으로 향하던 지한은 청이 낚아채 강제로 무리에 끼워 넣었고, 민성은 자진해서 뛰어들었다. E의 레이더망에서 홀로 벗어나 있던 백야만이 저 요란스러운 무리에 속해 있지 않았는데.
‘밟힐 것 같아….’
팽이야 뭐야.
제법 빠르게 도는 속도에 개복치가 흠칫하며 몸을 뒤로 물렸다.
‘그나저나 지금 소파도 되게 좋은데?’
백야는 아까부터 눈여겨보던 소파에 엉덩이를 걸친 참이었다. 빵빵한 쿠션을 손가락으로 눌러 보며 조용히 감탄하는데, 뒤늦게 머릿수가 부족한 걸 알아차린 민성이 강강술래를 잠시 중단했다.
“잠깐, 왜 또 하나가 없어?”
귀신 같은 인간.
다 돌 때까지 몰랐으면 했는데 민성은 여섯이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 다섯 바퀴쯤 돌았나….’
멤버의 부재를 눈치챈 리더가 홱 고개를 돌리며 옆을 봤다.
“우, 왜.”
“요놈 봐라? 너 아까부터 자꾸 개인행동 할래?”
“당백아. 빨리 껴.”
리더와 율무의 눈치 주기에 백야가 쭈뼛거리며 일어났다.
“내가 언제 개인행동을 했다고…. 근데 이거 왜 하는 건데….”
“신나니까!”
청이 소리쳤다.
‘으응. 신나 보여….’
백야도 기쁘긴 한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얼굴로 지한을 슬쩍 바라봤다.
백야가 자신을 볼 줄 알았는지 그가 눈을 맞추며 어깨를 으쓱였다. 지한은 이미 멤버들에게 장단을 맞춰 주기로 결심한 듯 보였다.
‘그래. 그냥 몇 바퀴 돌자.’
그러나 율무와 유연, 청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흥분한 상태였다.
결국 백야가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바닥으로 넘어졌다. 지옥의 강강술래는 두 명의 부상자를 배출해내고 나서야 끝이 났다.
“백야야… 나 아직도 돌고 있니?”
“토할 거 같아…….”
민성과 백야가 거실에 나란히 누워 후유증을 토로했다.
펄럭-.
그러자 어디선가 이불을 가져온 청이 두 사람의 위로 덮어 주었다.
“차가운 데서 자면 입 돌아가!”
그러나 얼굴까지 덮어버리는 바람에 안 그래도 좋지 못한 상태가 더욱 악화됐다.
“우욱!”
백야가 입을 틀어막으며 옆으로 돌아누웠다. 민성은 두통이 이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이불을 아래로 젖혔다.
“도대체 얘한테 누가 이런 거 가르치는 거야? 너 입 돌아간다는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바보야? 너튜브에 다 나와.”
민성의 옆에 쭈그려 앉은 청이 뿌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너 제발 이상한 거 좀 보지 마. 형 부탁이야.”
“당근하지. 나 이상한 거 안 봐.”
이상한 거 아니고 인기 있는 작품들만 엄선해서 본다는 캘리포니아 청 씨. 그는 최근 한국 시트콤 역사에 획을 그은 로우킥 시리즈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당근… 뭐 중고 거래하니? 당연하지라고 형이 몇 번을 말하니….”
“당근!”
어지러움이 가신 민성은 이제 두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사이 몸을 회복한 백야가 바닥을 짚고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차갑긴 개뿔. 찜질방이 따로 없구먼.”
보일러를 켜 놨는지 뜨끈한 대리석과 극세사 이불 사이에 갇혔던 백야는 말 그대로 익어 버리는 줄 알았다.
“좀비 햄스터 일어났다! 너도 빨리 일어나.”
청이 민성의 이마를 찰싹 때리며 백야 곁으로 달려갔다.
“백야 나랑 방 같이 써! 우리 방 저기 해.”
“싫어.”
“왜? 나랑 쓰면 좋아. 내가 잘해 줘.”
거실에 안 보이길래 다들 어디서 뭘 하고 있나 했더니 방을 고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데이즈의 새 숙소인 스카이캐슬로 말할 것 같으면 일단 방이 네 개에 드레스 룸이 두 개, 화장실이 세 개였다. 한강과 서울숲을 끼고 있는 훌륭한 입지 조건 때문인지 거실과 부엌이 크게 빠진 구조로 뷰에 몰빵한 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한이 그러는데 두 명은 방 혼자 쓸 수 있어! But 백야는 귀신 무서우니까 내가 살려 준다.”
겁쟁이에 맵찔이, 알콜 쓰레기는 방을 혼자 쓰면 큰일 난다며 청이 백야를 꼬셨다. 그러나 가만히 있다가 3연타를 맞은 백야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