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한지한 너 뭐 해?!”
백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지한을 말리려 했으나 이미 청은 공격을 시작했다.
탁!
두 사람의 손바닥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대로 지한이 탈락하나 싶던 순간!
청이 균형을 잃고 몸을 휘청이다 지한의 품에 안겼다.
“봤지?”
가볍게 청을 받아 낸 지한이 턱을 치켜들었다.
청의 손을 받아치지 않고 그대로 손목에 힘을 빼 넘겨 버린 바람에 그가 달려들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진 것이다.
“역시 조또!”
조또…?
갸웃거리는 백야와 달리 조용한 또라이를 향한 민성의 박수가 이어졌다.
“다음 누구야~ 아, 나인가?”
청팀의 두 번째 선수, 율무의 출전이었다. 알아서 귤 라인을 정비한 율무가 지한의 앞에 마주 서며 빙긋 웃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시작하자마자 끝날 텐데.”
“청팀은 입으로 싸우나 봐.”
양 팀의 주장들 못지않은 기 싸움에 숙소 안으로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어… 저기, 싸우지들은 말고….”
당황한 백야가 둘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했다. 나머지 세 사람은 지한과 율무가 싸우거나 말거나 소파에 나란히 앉아 경기를 기다렸다.
“이거 눈싸움 아니고 손바닥 밀치기 맞지?”
민성이 어디선가 팝콘을 가져와 한 주먹 입 안에 넣으며 우물거렸다.
“저기요~ 언제 시작해요?”
유연이 팝콘 봉지 안으로 손을 넣으며 물었다.
“시작해 줘야 하지.”
MC와 보조가 동시에 출전하는 바람에 아무도 진행을 해 주지 않고 있던 상황.
“그냥 눈치껏 하면 될 텐데 거참….”
구시렁거리던 민성이 건성으로 시작을 외쳐주었다. 게임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에 두 사람의 손바닥이 허공에서 세게 부딪혔다.
탁! 타악!
연속으로 두 번이나 맞붙은 손. 그러나 누구 하나 밀리지 않고 잘 버티고 있었다.
흥미진진해지는 경기에 소파에 기대듯 앉아있던 세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이번 거는 좀 볼만한데?”
“…이번 거는?”
갑자기 왜 기분이 나쁘지. 제 경기는 볼품없었다는 소린가 그럼.
유연의 옆자리로 다가가 앉던 백야가 불만 어린 표정을 지으며 옆을 봤다.
타악!
손뼉이 마주치는 소리가 제법 크게 울렸다.
“막상막상!”
청이 흥분해 소리쳤다.
“막상막하란다.”
민성이 정정해주었으나 흥분한 청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벌써 5분째 이어지는 경기는 청의 말대로 박빙이었다. 그러나 10분째 이어지는 대치 상태에 관중들은 조금씩 지쳐갔다.
“그냥 아무나 이겨라.”
반쯤 드러누운 민성과 유연, 청은 자리를 이탈하고 없었다. 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던 백야는 꾸벅꾸벅 조는 중이었는데.
“아싸!”
율무의 외침에 깜짝 놀란 개복치가 고개를 들었다. 장장 8분에 걸친 세기의 승부. 그 결과, 율무의 승리였다.
“누구야! 율무냐?!”
청이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나오며 외쳤다. 세수를 한 건지 세면대에 빠졌다 나온 건지, 회색 후드티가 절반이나 젖어있었다.
“당연히 내가 이겼지~”
청팀이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자축했다.
“수고했어.”
비록 졌지만 지한이 이 정도로 열심히 해줄 줄 몰랐던 백야는 감동한 얼굴로 지한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어서 백팀 세 번째 선수의 출전. 데이즈에서 백야와 함께 최약체 1위 자리를 다투는 민성은 율무의 손뼉 한 방에 그대로 나동그라지며 K.O. 당했다.
[ROUND 2 청팀 승!]
점수는 1대 1.
이번 승부가 진짜 막내를 가리는 결승전이었다. 마지막 뽑기는 모두의 찬성 아래 팀의 리더인 민성이 뽑게 됐다.
“하핫. 나 이런 거 잘 못 뽑는데.”
민성이 쑥스러워하면서 냄비 안으로 손을 넣었다.
[의자 뺏기 게임]
“……형.”
빈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 똥손일 줄이야.
이름만 봐도 몸을 쓰는 게 틀림없는 게임에 백팀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너희가 적었지 이거.”
“당근!”
백야의 심기 불편한 목소리에 청이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그사이 진행을 맡은 두 사람은 부엌에서 식탁 의자를 가져와 거실 가운데 배치를 마쳤다.
“이거 그거야? 노래 나오다가 멈추면 의자에 앉은 사람만 살아남는 거.”
“학교 다닐 때 게임 좀 했나 본데?”
유연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FINAL ROUND START]
멤버는 여섯 명, 의자는 다섯 개. 알람은 30초 ~ 2분까지 무작위로 맞춰 두었다.
잠시 후 신나는 팝송에 맞춰 멤버들이 의자 주위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거 빨리빨리 좀 움직입시다~”
호시탐탐 의자를 노리며 느릿하게 걷는 민성에 뒤에서 항의가 들려왔다.
약 올리듯 어깨를 건드리는 율무에 민성이 그를 경계하며 손을 치워냈다. 그러던 그때 첫 번째 알람이 울렸다.
띠리리리-!
음악이 끊기자마자 잽싸게 의자를 차지한 네 사람이 있는 반면. 민성과 율무는 의자 하나를 두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형, 이러다 다쳐.”
“비켜! 우리 백야 불쌍해서라도 내가…!”
애완묘가 안간힘을 써 가며 온몸으로 밀어내 보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미 체급에서부터 너무 차이가 났다.
툭.
율무가 팔에 살짝 힘을 줘 밀었을 뿐인데 민성이 바닥 위로 철퍼덕 넘어졌다.
“도민성~ 탈락!”
율무가 얄밉게 외쳤다.
“형….”
“백야야 미안하다.”
쓸쓸히 일어난 민성이 백야와 악수를 하며 깨끗이 물러났다.
제일 먼저 탈락했지만, 대신 게임 진행을 맡게 된 리더는 다시 음악을 재생하며 빠르게 돌라 지시했다.
“빨리 돌아! 더 빨리! 더!”
남은 의자는 네 개.
민성을 제외한 멤버들이 탐색전을 벌이며 자리를 돌았다.
띠리리리-!
두 번째 알람이 울렸다.
재빠르게 의자 위로 엉덩이를 들이민 네 사람과 다르게, 율무는 옆구리를 움켜쥐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야! 이건 반칙이지!”
벌떡 일어난 율무가 지한에게 삿대질했다.
그는 이번에도 백팀과 한 의자를 두고 붙게 됐는데, 의자를 차지하기 직전 옆구리를 찔러 오는 손 때문에 넘어졌다며 그는 재경기를 요구했다.
“비디오 판독 필요해요? VAR?”
“…비디오가 있어?”
민성의 말에 백야가 흠칫거리며 주위를 돌아봤다. 오늘 이사 온 숙소는 부엌에 쌓여있는 상자 더미를 제외하면 모델 하우스라 해도 믿을 만큼 깔끔한 인테리어를 자랑하고 있었다.
“예! 비디오 판독 요청합니다!”
그러나 심판은 백팀 출신으로 공정함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응, 그런 거 없어~”
제 눈이 곧 비디오였는데 자신은 보지 못했다며 심판이 시치미를 뗐다. 율무의 억울한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깔끔히 무시한 민성은 게임을 이어 갔다.
이제 남은 의자는 세 개.
각각 두 명씩 남은 청팀과 백팀. 스코어는 동점이었다.
- 나~ 주 평야~ 발발이 치와와~
범상치 않은 음악이 재생되고 탐색전을 벌이는 네 명의 선수들.
곧이어 세 번째 알람이 울리자 백야가 잽싸게 의자 하나를 차지했다.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
이번에 맞붙은 선수는 청과 유연이었다.
“야! 네가 여기 오면 어떡해?”
“당근히 네가 저기 가야지!”
청팀 선수 중 한 명의 탈락이 확정됐다. 서로를 답답해하는 두 사람의 옆으로, 나란히 준결승에 진출하게 된 백야와 지한이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준결승 시작할게요~”
거실에 놓인 의자는 두 개.
만약 이번 게임에서 청이 탈락하면 자동으로 백팀의 우승이었다.
“7개월의 쓴맛을 보여 주지.”
어슬렁어슬렁 의자 주위를 맴돌며 백야가 자기 눈을 한번, 청의 눈을 한번 가리켰다. 개복치의 살벌한 경고였다.
그러나 한국어를 너튜브로 배운 외국인은 오히려 콧방귀를 끼었다.
“얘쨰래걔. 햬냬도 안무섭쥬?”
비아냥이 수준급이었다.
순간 혈압이 오르며 정신이 혼미해질 뻔한 백야는 가까스로 심신을 다스렸다.
‘내가 이기면 너튜브 계정부터 잠근다.’
아무래도 청에게는 어린이 시청 제한 모드가 필요해 보였다.
“내가 이기면 넌 너튜브 키즈부터 깔게 될 거다, 이놈아.”
“내가 이기면 백야가 baby야.”
어디 대사라도 있는 건지 주거니 받거니 죽이 척척 맞았다.
그 시각 함께 의자 주변을 돌던 지한. 그는 돌연 현타를 느꼈다. 쟤네 둘이야 그렇다 쳐도 저는 뭐 때문에 아까부터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건지 뒤늦게 의문이 든 탓이었다.
띠리리리-!
“으갹!”
“저리 가!”
알람이 울림과 동시에 백야와 청이 맞붙었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던 지한이 아차 싶어 몸을 움직이는데, 의자 하나가 그대로 비어있었다.
“……?”
두 개의 의자 중 하나 앞에서만 개싸움 중인 막내즈가 보였다.
“…쟤네 뭐 하냐?”
“빨리 결승전 하고 싶은가 보지.”
유연과 민성이 황당한 얼굴로 앞을 봤다. 율무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인지 난감한 표정으로 청과 백야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율무. 그냥 의자 하나 뺄게.”
“그, 그럴래?”
율무와 즉석에서 합의 본 지한이 의자와 함께 쓸쓸히 퇴장했다.
“으아아악!”
“우오오오!”
막내즈의 입에서 나오는 괴성이 거실을 한동안 울렸다.
1인용 의자 위로 엉덩이를 들이밀며 열심히 밀당하던 두 사람은 어찌나 요란한지. 거실에서 시작된 게임은 밀리고 밀려 부엌까지 가 있었다.
“야, 야! 그냥 대충 가위바위보 해. 이러다 날 새겠다.”
보다 못한 민성이 두 사람을 말렸다. 몸으로 붙으면 당연히 청이 이길 거라 생각했으나, 백야가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바람에 결승이 좀처럼 쉽게 나지 않았다.
형들의 만류에 씩씩 콧바람을 뿜으며 강제 휴전 상태에 돌입한 막내즈. 결국 세 번째 게임은 무승부로 돌아가고, 남자답게 가위바위보 단판 승으로 끝장을 보기로 했다.
뒤돌아 등을 맞대고 선 백야와 청이 한쪽 팔을 높이 들었다.
“가위바위보!”
율무의 구호에 맞춰 주먹, 가위, 보자기 중 하나씩을 내자 소파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승부가 한 번에 난 것이다.
동시에 백야와 청도 뒤돌며 결과를 확인하는데….
백야는 주먹, 청은 가위였다.
“와아악!”
백야가 괴성을 지르며 숙소를 뛰어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