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제발 쉬운 미션.’
인생 처음으로 노숙까지 해 가며 방청이란 걸 뛰어보는데, 뱁쌔는 최애가 기뻐하는 모습을 꼭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사이 미션 내용을 확인한 연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 연하 씨 미션이 뭘까요?
- 지금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죠? 네! 말하는 순간 청팀의 마지막 주자도 미션지를 뽑아 듭니다!
미션을 확인한 청팀도 연하의 뒤를 따라 대기석으로 달려갔다.
“뱁쌔 님, 사람 찾아오는 미션 같죠?”
“네. 어?! 저쪽은…!”
경기장에 모인 모든 팬이 마지막 주자의 행보에 집중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시윤이 연하에게 미션을 묻는 모습이 전광판에 잡혔다.
짧은 대화가 오가더니 갑자기 어수선해지는 주변. 근처에 있던 대환과 데이즈가 백야를 떠밀기 시작했다.
- 네, 지금 백팀 무슨 상황이죠?
도리질 치며 온몸으로 나가길 거부하는 백야가 클로즈업됐다.
‘도대체 뭐길래?’
그러나 반항은 의미 없었다. 연하가 손목을 낚아채 달리기 시작하자 백야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뛰어야 했다.
비슷한 타이밍에 출발한 청팀도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양 팀 동시에 출발합니다!
- 3대3 동점의 상황! 과연 이번 설 특집 아이돌 체육대회의 우승팀은 어느 팀일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해설 뒤로 청팀과 백팀을 연호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메웠다.
- 과연 어느 팀이 우승을, 네! 말하는 순간 동시에 결승점을 통과합니다!
- 심판이 과연 어떤 판결을 내릴지.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시 후 심판이 흰색 깃발을 들어 올렸다.
백팀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제 미션지에 적힌 내용만 제대로 완수했다면 이번 아체대는 백팀의 우승이었다.
- 백야 씨 괜찮아요? 아니, 연하 씨. 후배를 너무 막 끌고 오는 거 아닙니까?
- 아니라고요?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결승점을 통과하자마자 주저앉은 백야가 숨을 고르고 있었다.
MC들의 장난에 난감해하던 연하가 백야를 챙기는 척 머리를 쓰다듬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며 잡히자 엄청난 함성이 쏟아졌다.
- ID는 선후배 사이가 굉장히 좋군요? 카메라에 잡히니까 갑자기 후배를 챙기는 연하 씨의 따뜻한 모습, 잘 봤습니다.
- 달려오느라 많이 지쳐 보이시는데, 양 팀 모두 잠시 숨 고를 시간을 드리도록 할게요.
M사에서 재미 삼아 기획한 프로그램인데 하나같이 죽자고 덤벼든다며 영삼이 농담을 했다.
“물 마시는 백야…!”
백야가 물을 마시는 모습이 전광판에 잡히자, 뱁쌔는 입을 틀어막으며 감격을 금치 못했다.
- 네. 이쯤 시간 드렸으면 숨 고르기는 충분한 것 같은데. 진행해도 될까요?
마지막 경기인만큼 미션 확인은 직접 하겠다며 영삼이 MC 석에서 내려왔다. 연하와 백야의 앞으로 다가간 영삼. 그가 손을 내밀자 연하가 미션지를 건넸다.
- 백팀의 미션은 ‘애교도 많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귀염둥이 데려오기’네요.
미션이 공개되자 어마어마한 함성이 울렸다.
사실 미션지에는 ‘귀여운 사람 데려오기’라고 적혀 있었지만, 뼛속까지 예능인인 그는 재미를 위해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
반면 충격적인 내용에 귀가 빨갛게 달아오른 백야. 그는 할 말을 찾지 못했는지 벙찐 얼굴로 굳어 버렸다.
- 평소 백야 씨가 연하 씨에게 애교를 자주 부리나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데리고 나오시던데.
- 저희 백야가 하트를 아주 잘 깨물거든요.
- 아~ 깨물하트!
이 자리에 모여 계신 분들 중 깨물하트를 한 번도 안 해 본 분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며 연하가 능청을 부렸다.
인정한다며 고개를 끄덕인 영삼이 이번에는 백야에게 질문했다.
- 사탄의 학교에 루시퍼의 등장이라…. 깨물하트 창시자로서 나는 평소에 애교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편인가요?
- 저, 저는….
당황한 백야가 멤버들 쪽을 힐끔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율무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응원이랍시고 이상한 구호를 외쳐 댔다.
- 섹시큐티 한백야!
- 율무 씨, 개인 멘트 금지입니다. 백팀 경고예요.
영삼이 장난스레 받아치자 율무가 두 손을 모으며 합장했다.
멤버의 행동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인 채 대충 끄덕인 백야는 영삼에게서 슬금슬금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꾸 어딜 가냐며 백야를 끌어당긴 영삼.
애교가 많다고 인정하시는 거냐 재차 묻자, 백야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봐도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죽겠다는 얼굴. 그러나 영삼은 굴러 들어온 복숭아를 놓치지 않았다.
- ID와 대한민국 연예계, 그리고 본인도 인정하는 애교왕의 애교! 과연 얼마나 대단할지 궁금합니다. 저희가 안 볼 수 없겠죠?
영삼의 진행에 팬들이 환호했다. 반면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의 백야는 눈빛이 요동치고 있었다.
- 혹시 연습 필요해요? 아니면 시범이라도.
영삼은 혼란스러워하는 백야를 놀리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대답 없이 눈알만 굴리는 백야에 영삼이 연하를 향해 손짓했다.
- 연하 씨, 선배로서 시범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후배가 너무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 애교요? 카메라가 어디죠?
영삼의 갑작스러운 요구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 연하. 그가 카메라를 찾아 윙크를 찡긋해 보였다.
조금 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커다란 함성이 울렸다.
- 연하 씨의 시범 애교 잘 봤습니다~ 그럼 백야 씨, 이제 카운트 셀게요. 애교 검증에 실패하면 기회는 청팀으로 넘어갑니다.
- 네? 그런 게 어디 있…!
- 여기 있어요. 아직 신인이라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원래 이쪽 일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큰 교훈을 얻어 가시는 거라며 영삼이 자신의 짓궂음을 아름답게 포장했다.
- 참고로 윙크 안 됩니다. 연하 씨가 이미 하셨기 때문에 똑같은 건 할 수 없어요. 자, 그럼. 하나! 둘!
영삼의 카운트가 시작되기도 전에 전광판에는 백야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있었다.
남의 불행은 나의 기쁨.
모두가 백야의 고통을 지켜보는 가운데, 마X쮸를 까먹다 끌려 나온 햄스터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웃음을 참고 있는 연하를 향해 잠깐 원망의 눈빛을 보낸 백야. 개복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애교를 선보였다.
영삼이 셋을 외침과 동시에 눈을 질끈 감은 애교킹.
손으로 만든 반쪽짜리 하트를 얼굴 옆에 붙이며 새로운 하트를 선보였다.
“흐억!”
뱁쌔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Q. 특제 떡국 끓이기 :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떡국 끓이고 스타 포인트… (더 보기)]
“이게 뭔….”
늦은 오후. 잠에서 막 일어난 백야는 멍하니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떡국 같은 소리하네.”
아이돌 게임에 나타난 설날 퀘스트에 백야가 눈살을 찌푸렸다.
‘제발 천재 아이돌이랑 관련 있는 것만 시키란 말이야 이것들아….’
부스스한 머리를 헤집으며 백야가 몸부림쳤다.
“백야 일어나! 남경 왔어!”
아체대 녹화를 무사히 마친 데이즈는 회사로부터 하루 휴가를 받았다. 이불을 홱 걷어버리곤 방을 나간 청에 백야가 어기적거리며 침대 아래로 내려갔다.
모처럼 푹 잔 기분. 기지개를 켜며 거실로 나가자 남경이 테이블 위로 가방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건 뭐예요?”
“일어났어? 더 자도 되는데.”
“백야 어제 1등으로 잤어. 그리고 내가 들어가니까 벌써 눈떴어.”
소파에 앉은 청이 지렁이 젤리를 씹으며 대답했다.
“맛있어?”
“자! 왕검이.”
봉지에서 제일 큰 지렁이를 꺼내주는 청. 그러나 백야가 고개를 젓자 옆에 있던 율무가 홀라당 젤리를 가로챘다.
“악! 내 왕검!”
“쌩유~ 그리고 왕건이.”
“이 녀석들아, 밥을 먹어 밥을.”
아침부터 군것질을 하는 멤버들에 남경이 혀를 찼다.
“그래서 이게 뭔데?”
유연이 가방에서 검은색 파우치들을 꺼내며 물었다. 대답해주지 않은 남경 때문에 벌써 두 번째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아, 이거 카메라야.”
손잡이가 달린 액션 캠 한 대와 마이크가 달린 미러리스 카메라였다. 유연의 옆자리에 앉은 백야가 같이 살펴보며 호기심을 보였다.
“너희 브이로그 찍어야 해.”
“브이로그요?”
“아무래도 다음 컴백은 정규앨범이니까 준비할 게 많잖아. 서두른다고 해도 컴백까진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까 최대한 공백기를 줄여 보겠다는 거지.”
그리하여 생각해낸 데이즈 자체 컨텐츠 기획이라고 한다. 지금도 회의 중인 컨셉이 몇 개 더 있긴 한데 브이로그는 그중 하나였다.
“카메라만 주면 너희끼리 찍을 수 있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액션 캠을 손에 쥔 백야가 자신 없이 대답했다.
“나! 나 하고 싶은 거 있어!”
소파에서 내려온 청이 백야 옆으로 바짝 붙으며 카메라를 함께 들여다봤다.
“이거 켜 봐.”
“켜져 있어.”
백야의 손에서 카메라를 가져온 청이 삼각대를 펼쳐 테이블 위로 세웠다. 손잡이에 삼각대 기능이 있는 줄도 몰랐던 백야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청을 번갈아 봤다.
“너 저거 삼각대 되는지 어떻게 알았어?”
“너튜브에 다 나와.”
이런 SNS 중독자 같으니라고.
찐 막내 대결에서 이긴 뒤 청의 너튜브를 정말 키즈 모드로 제한해 버린 백야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옛날에 봤어, 옛날에.”
눈이 마주친 청이 질색하며 해명했다.
“진짜 진짜야!”
“알겠어, 믿을게.”
“하! 참나.”
수상해하는 백야의 눈을 피해 얼른 렌즈 앞으로 젤리를 내미는 청. 그는 손바닥을 펴 봉지의 뒤를 가렸다.
“오늘은 젤리 먹방 할게요.”
잠깐 제품을 보여 주더니 다시 가져와 봉지 안으로 손을 넣어 바스락거렸다. 청은 지렁이 두 마리를 꺼내 입 안에 넣고 열심히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너 뭐 하냐?”
지켜보던 유연이 한심해하는 얼굴로 물었다.
“먹방이야.”
그는 이것 말고도 다양한 아이템이 많다며 메이크업, 게임, 요리 등 제 안의 모든 너튜브 지식을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