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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94화 (94/340)

제94화

“뭐… 좀 귀엽긴 하네.”

데이즈 로고가 5초 정도 나오더니 하단에서 추천 영상이 떠올랐다. 하나는 WANT ME의 무대 영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멤버의 브이로그 영상인 듯했다.

“보다 보니 재미있는 것 같은데.”

[지한이의 브이로그 (한강, 농구, 눈 오리, 그림)]

늦은 밤, 야외에서 후드를 뒤집어쓴 지한이 농구 코트를 비추고 있는 썸네일이었다.

어차피 할 일도 없겠다, 룸메의 손이 다음 영상을 눌렀다. 이번에도 영상은 광고 없이 바로 재생됐다.

[지한 : 안녕하세요. 지한입니다.]

카메라에 대고 혼잣말을 하는 게 어색한지, 그는 잠시 렌즈 너머를 살피는 등 눈치를 봤다.

퉁- 퉁-.

지한의 목소리 뒤로 바닥에 공을 튕기는 듯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지한 : 그… 여기가 어디냐면요.]

농구 코트를 비추며 자리를 빙그르르 도는 지한. 반쯤 돌다가 현타를 느꼈는지 그는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말아 물었다.

그러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남은 반 바퀴를 돌자, 어깨 너머로 데이즈 멤버로 추정되는 남자가 스쳐 지나갔다.

[지한 : 저는 한강에 나왔습니다. 지금 시간이 11시 30분.]

[지한 : 원래도 이 시간에는 사람이 없긴 한데, 오늘은 정말 저희밖에 없어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인 것 같다며 지한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지한 : 율무랑 같이 나왔어요. 율무는 지금 제 앞에서 몸을 풀고 있습니다.]

지한이 카메라 렌즈를 반대편으로 돌리자, 바닥에 공을 튕긴 율무가 점점 속도를 내 골대 안으로 공을 넣는 장면이 보였다.

[지한 : 왜 잘해?]

[율무 : 당연하지~ 내가 이래 봬도, 뭐야. 너 지금 나 찍어?]

[지한 : 응.]

지한의 옆으로 다가온 율무가 어깨에 팔을 두르며 카메라에 인사했다.

[율무 : 안녕하세요~ 지한로그 특별 출연. 같이 운동하러 나왔어요.]

[지한 : 가끔 율무랑 운동하러 나오는데 한동안 바빠서 못 나왔거든요.]

데이즈 내에서도 과묵한 편인 지한은 오디오가 비든 말든 조곤조곤 필요한 말만 했다.

[지한 : 그럼 잠깐 놀고 올게요.]

카메라가 넘어지지 않게 벤치 위에 세워 둔 그는 코트 가운데로 달려갔다.

처음엔 외투를 입고 있던 두 사람은 어느새 후드티 하나만을 입은 채 코트 위를 뛰어다녔다.

막 율무의 공을 빼앗은 지한이 골대 위로 공을 던졌다.

철컹-.

녹슨 골대 안으로 공이 들어가며 쇳소리가 들렸다. 벤치로 돌아온 두 사람의 얼굴이 열기로 달아올라 있었다.

[율무 : 아~ 더워~ 이거 벗고 싶다.]

[지한 : 감기 걸려.]

[율무 : 형한테 혼나겠지?]

[지한 : 당연한 소리를.]

[율무 : 음료수 마실래?]

두 사람은 벗어 둔 옷과 카메라를 챙겨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자판기로 걸어갔다. 캔을 따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지한이 이온 음료를 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지한 : 원래 청이도 같이 나오려고 했는데 요즘 감기 기운이 있어서 못 나오게 했어요.]

[율무 : 옷을 얇게 입고 다녀서 그래~ 캘리포니아 3월이랑 여기 3월은 다르다니까?]

[지한 : 반팔 입고 있는 네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결국 참지 못하고 후드를 벗어 목에 걸치고 있는 율무. 지한과 눈이 마주치자 과장된 몸짓으로 놀란 척했다.

[율무 : 어?! 이게 언제 이렇게 됐지? 바람에 벗겨졌나 봐.]

율무가 능청스레 팔을 다시 끼워 넣었다.

한 게임 더 할 거냐 묻는 말에 고개를 저은 지한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지한 : 눈 온다.]

봄을 앞두고 찾아온 꽃샘추위가 눈을 몰고 온 모양이었다.

[율무 : 이거 쌓이겠는데?]

눈이 더 내리기 전에 얼른 숙소로 돌아가야겠다며 지한이 인사했다.

화면이 잠깐 끊어지며 이번에는 밝은 공간에 있는 지한의 모습이 나왔다.

[지한 : 밤사이에 눈이 정말 많이 내렸어요.]

이례적인 폭설에 한겨울이라 해도 믿을 만한 풍경이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눈을 보여 드리고 싶어서 일어나자마자 카메라를 들고 산책을 나왔다는 지한.

[지한 : 눈이 발목까지 쌓였는데도 새벽 운동을 나오신 분들이 꽤 계세요.]

지한이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봤다. 걸을 때마다 눈이 밟혀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기분 좋게 울렸다.

[지한 : 사실 제가 나오면서 뭘 챙겨 오긴 했는데….]

지한이 반대 손에 쥐고 있던 노란색 플라스틱 막대기를 들어 보였다. 막대 끝에 달린 앙증맞은 새끼 오리가 눈에 띄었다.

[지한 : 생일 선물로 받은 건데, 올겨울엔 여러모로 바빠서 써 볼 시간이 없었거든요.]

[지한 : 눈 내리면 인증사진을 보내 주기로 친구들이랑 약속해서…. 일단 들고 나왔습니다.]

지한이 삼각대를 세워 바닥에 카메라를 고정했다.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간 그는, 아무도 손대지 않은 눈밭 위로 노란색 오리 집게를 크게 벌렸다가 오므렸다. 그러나 밀도가 낮은 눈은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금방 흐트러졌다.

[지한 : …….]

[지한 : 이렇게 하는 게 아닌가?]

같은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하던 지한은 결국 손으로 눈을 퍼담기 시작했다. 손으로 꾹꾹 눌러 집게를 오므린 그는 이를 악문 채 허공에서 마구 흔들었다.

[지한 : 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얻게 된 앙증맞은 새끼 오리. 외마디 감탄사를 뱉은 지한이 핸드폰을 꺼내 오리 사진을 찍었다.

찰칵-.

그리곤 렌즈 앞으로 뛰어와 카메라를 챙겨 다시 오리가 놓인 곳으로 달려갔다.

[지한 : 제가 만들었어요. 오리.]

눈 오리를 만드는 게 재밌었던 모양인지, 카메라를 가까운 곳에 세운 지한이 2차 오리 제조에 들어갔다.

그렇게 완성된 여섯 마리의 오리.

[지한 : 데이즈.]

지한 나름의 팀에 대한 애정표현이었다. 잠시 오리 데이즈를 비추던 그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이만 숙소에 돌아가야겠다며 일어났다.

그러나 몇 걸음 내딛다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는 지한. 오리 앞에 멈춰 선 그는 가장 예쁘고 단단한 한 마리를 골라 품에 안았다.

[지한 : 기념으로 데려가려고요. 멤버들 보여 주면 좋아할 것 같아서.]

고양이에게 간택된 눈 오리는 그렇게 숙소 냉동실에 고이 모셔졌다.

영상이 끊어지며 장소가 한 번 더 바뀌었다. 방으로 추정되는 공간이었다.

[지한 : 연습 다녀왔어요.]

[지한 : 다들 쉬고 있어서 저도 오랜만에 그림을 그려 볼까 합니다. 요즘 그림 공부하고 있어요.]

팬 사인회 때 그림을 그려 달라는 팬분들의 요청이 많았다는 지한. 형편없는 실력에 팬분들께서 실망하시진 않았을지 걱정된다며 파란색 분필을 꺼내 들었다.

[지한 : 오일 파스텔이에요. 선물 받았어요.]

[지한 : 오늘은 고양이를 그려 볼까 합니다. 고양이를 많이들 그려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지한의 책상 위에는 색색의 오일 파스텔과 하얀 도화지가 펼쳐져 있었다.

[지한 : 저희 집 고양이는 아니고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사진이에요. 오늘 참고할 거예요.]

핸드폰을 도화지 옆으로 나란히 놓아둔 지한이 선을 긋기 시작했다. 눈을 먼저 그릴 모양인지 동그란 점 두 개가 하얀 도화지 위로 생겨났다.

그림에 집중한 지한의 모습.

노란색, 주황색, 보라색 등 사용하는 파스텔이 점점 늘어나면서 고양이 그림도 윤곽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빨간색 파스텔로 두 볼에 홍조를 그리자 마침내 완성되는 그림. 주인을 닮은 새침한 얼굴의 새끼고양이가 탄생했다.

[지한 : 완성입니다.]

지한이 도화지를 집어 얼굴 아래로 들어 보였다.

[지한 : 이렇게 하면 잘 보이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화면에 그림이 나오는지 확인하는 모습이 잠깐 보였다.

[지한 : 아직 연습을 좀 더 해야 하지만, 그래도 오늘 그림은 마음에 들어요.]

그때 방 밖에서 청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청 : 오리다 오리! 아이스크림?!]

[지한 : ……잠깐!]

놀란 지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가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백야 : 우와. 이게 뭐야?]

[율무 : 눈 오리네~ 누가 냉동실에 넣어 놨어?]

[민성 : 뭔데. 왜 난리야. 먹는 거야?]

[청 : 빙수 만들어 보자!]

[지한 : 안 돼!]

[민성 : 이거 네 거야?]

[유연 : 형 이런 거 좋아해?]

[지한 : …그냥 기념이야.]

[유연 : 뭘 기념하는데?]

[지한 : …….]

[백야 : 왜 애 걸 뺏으려 그래. 지한이 돌려줘. 근데 잘 만들었다.]

[율무 : 역시 손재주가 좋아~ 너 그림도 잘 그리잖아.]

텅 빈 의자와 열린 방문 너머로 멤버들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그러다 잠깐 기다리라는 소리와 함께 지한이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책상 아래에서 뭔가를 뒤적거리더니 오리 집게를 들고 다시 밖으로 달려가는 뒷모습.

[지한 : 이거로 새 거 만들어.]

[청 : 오오! 나 이거 너튜브에서 봤다! 나가자!]

[민성 : 안 돼. 이 시간에 나가긴 어딜 나가.]

[율무 : 와~ 순간 남경이 형 온 줄? 아직 눈 안 녹았던데 잠깐만 나갔다 올게~ 바로 앞에. 엎어지면 코 닿음!]

[유연 : 나도 갈래. 백도, 가자.]

[백야 : 나? 나는 그냥 지한이 거 구경할래. 귀찮아.]

[유연 : 체력이 없으니까 그러지. 옷 입어. 나가서 눈 오리 10개씩 3세트 실시.]

[백야 : 그거랑 내 체력이 무슨 상관인데. 눈 오리가 근력 만들어 주냐?]

[청 : 백야 빨리 와!]

[백야 : 아 싫어어….]

[율무 : 거절은 거절한다~]

[청 : 거절한다!]

[백야 : 나는 괜, 아니, 나 안 간니까? 아악! 이것 좀 놔!]

[청 : 형도 가?]

[민성 : 백야 빌려줄 테니까 30분만 놀다 오렴. 누가 훔쳐 갈지도 모르니까 난 숙소를 지켜야지.]

멤버들에게서 눈 오리를 지켜낸 지한이 다시 책상으로 돌아왔다.

[지한 : 어떻게 그걸 보고 먹을 생각부터 하지? 무서운 놈들….]

진이 다 빠진 듯 피곤한 얼굴의 지한이 조용히 책상을 정리하며 영상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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