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95화 (95/340)

제95화

순식간에 영상 3개를 해치웠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룸메는 남은 세 개의 영상까지 보기로 했다. 그편이 깔끔하니까.

[율무의 브이로그 (전시회, 운동, 구내식당, 연습실)]

썸네일은 생각에 잠긴 옆모습이었다. 무언가를 감상 중인 듯, 크림 톤의 벽면 앞에서 턱 끝을 살짝 쥔 채 팔짱을 끼고 있는 체육계 미남.

로딩 바가 잠시 돌아가더니 영상이 재생됐다.

[율무 : 저는 시간이 나면 종종 전시를 보러 다니곤 해요. 그림을 보고 있으면 지친 몸과 마음이 달래지는 기분이랄까.]

[율무 : 마침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신작이 나왔길래 감상하는 중이었어요.]

한껏 폼을 잡은 율무가 카메라 방향을 돌리자, 벽에 붙어 있는 지한의 고양이 그림이 보였다.

[율무 : 자화상을 그리셨더라고요. 실물보다 눈꼬리가 살짝 내려간 것 같긴 한데, 본인이 보는 얼굴은 또 다를 수 있으니까요.]

진지한 얼굴로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율무의 뒤로 민성이 지나갔다.

대사 하나 없는 엑스트라1이었지만, 그의 표정 연기만큼은 주연 못지않았다.

별 희한한 놈을 다 본다는 듯 크게 뜬 눈.

[율무 : 숲을 끼고 있는 자연 친화적인 미술관이라 가끔 이렇게 토끼가 나오기도 한답니다.]

율무의 전시회 컨셉 아무 말 대잔치는 잠시 동안 계속됐다.

[율무 : 네, 여러분. 안녕하세요. 데이즈 율무의 첫 브이로그. 저는 지금 운동을 가려고 나왔습니다.]

편한 차림에 검은색 볼캡을 눌러쓴 율무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고 있었다.

[율무 : 요즘 저의 일상은 운동, 연습실, 숙소. 이렇게 세 가지가 전부예요.]

헬스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 트레이너가 그를 반겨 주었다.

[율무 : 안녕하세요~]

그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지 마주치는 사람마다 하이파이브를 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트레이너 : 몸무게 재 봤어?]

[율무 : 아침에 쟀는데 똑같아요.]

요즘 근육을 늘리기 위해 열심히 운동 중이라는 율무. 티셔츠를 살짝 들춘 그가 배 위를 쓰다듬었다.

[율무 : 요즘 너무 먹었는지 복근이 희미해졌더라고요~]

일시 정지를 누른 룸메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멤버는 ‘희미’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걸까. 옷 틈 사이로 보이는 배에는 복근이 선명하게 잡혀 있었다.

[트레이너 : 유연이는? 너희 항상 같이 왔잖아.]

[율무 : 아침 일찍 회사 갔어요. 오전에 녹음 스케줄이 있어서.]

러닝머신으로 가볍게 시작되는 운동.

장면이 바뀌며 거울 앞에 선 율무가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본격적인 운동이 시작되자 장난스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높은 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하듯 팔 힘만으로 위아래를 오르내리는 뒷모습이 보였다.

영상은 한동안 카운트를 하는 트레이너의 목소리와 호흡을 하는 율무의 숨소리만 들렸다.

[트레이너 : 허리 펴고.]

이번에는 바벨을 어깨에 진 율무가 스쿼트 동작을 하고 있었다.

[트레이너 : 아홉, 열. 휴식.]

눈썹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에 율무가 한쪽 눈을 찡그리듯 감았다. 힘든 모양인지 기구에 걸터앉은 그가 허공을 보며 멍을 때렸다.

잠깐의 휴식이 지나고 다시 반복되는 동작.

[율무 : 와……. 죽겠다.]

[트레이너 : 물 마셔.]

바벨을 내려놓은 율무가 정수기 앞으로 향했다.

좀 살 만해졌는지 종이컵을 이로 물어 까딱거리는 율무. 그새를 못 참고 장난기가 발동한 모양이었다.

[트레이너 : 이리 와. 이제 복근 운동 할 거야.]

[율무 : 벌써?]

[트레이너 : 플랭크 먼저.]

입꼬리를 내리며 일부러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율무.

그러나 순순히 다가간 그는 무릎을 꿇으며 금방 준비 자세를 취했다.

팔을 바닥에 대고 손을 맞잡은 율무가 주먹을 쥐었다. 다리를 펴 발끝을 세우자 다시 한번 카운트가 시작된다.

[트레이너 : 하나, 둘….]

1년 같은 1분을 3번 견뎌내고 나서야 해방된 율무. 트레이너가 고생했다며 율무의 등을 툭 건드렸다.

[율무 : 드디어 끝났습니다.]

카메라를 받아 온 율무가 앞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율무 : 오늘은 어깨 운동하고 등, 하체, 복근 이렇게 한 것 같아요. 이제 근력 운동은 끝났고 유산소운동으로 마무리만 남았습니다.]

[율무 : 빨리하고 회사 가서 밥 먹을 거예요.]

식탐이 많기도 하고 먹는 걸 워낙 좋아해서 운동이 필수라는 율무. 러닝머신 위를 걷는 그의 발이 잠시 보이다 화면이 바뀌었다.

방송에서도 몇 번 소개된 적 있는 ID 엔터테인먼트의 구내식당.

[율무 : 백야랑 같이 밥을 먹으러 왔습니다. 다른 멤버들은 먼저 먹었대요.]

[율무 : 오늘의 메뉴는 소고기 스테이크 덮밥, 계란말이, 깍두기, 그리고 콩나물국입니다. 엄마가 고기를 많이 줬어요.]

율무가 식판을 비추며 음식을 하나씩 보여 주었다. 그때 맞은편에 앉은 백야가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백야 : 어머니시라고? 하, 하나도 안 닮았는데…?]

막 숟가락을 들던 복숭아가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배식대 앞에 서 있는 아주머니와 율무를 번갈아 보는 백야. 자그마한 분홍색 머리통이 휙휙 돌아가자, 조리사의 시선이 자연스레 두 사람에게 향했다.

[조리사 : 왜? 뭐 더 줄까?]

[백야 : 네? 아, 아니요…!]

[조리사 : 아들 뭐 필요해?]

[율무 : 괜찮아요~]

두 모자의 자연스러운 대화에 백야만 사색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야 : 왜 말 안 했어?! 난 너희 어머님이신 줄 몰랐단 말이야…!]

백야가 숟가락을 쥔 채 조리사 앞으로 달려갔다.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화면이 흔들렸다.

[백야 : 죄송해요. 율무 어머님이신 줄도 모르고 그동안 인사를 못 드렸어요.]

[조리사 : 율무? 율무가 누구야.]

[백야 : ……네?]

[율무 : 엄마! 내 이름이 율무라고 몇 번을 말해요~]

[조리사 : 아이고~ 맞다! 그 이름 비슷한 아들이랑 헷갈렸다.]

[율무 : 유연이? 에이~ 걔는 나랑 완전 다르게 생겼잖아요.]

[조리사 : 둘 다 키 크고 잘생겼잖어. 근데, 아휴……. 여기는 좀 더 먹어야겠다. 이래서 마이크나 들겠어? 온 김에 고기나 더 가져가요.]

동공에 지진이 이는 백야.

[율무 : 푸하하! 당백이가 고기를 더 얻어 왔어요. 배가 많이 고팠나 봅니다.]

[백야 : 너 이씨…!]

[율무 : 잘 먹겠습니다~]

백야가 얼굴을 와락 찡그리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장소가 바뀌었다.

연습실 거울 앞에 마주 서 있는 데이즈. 편한 사복 차림의 멤버들은 진지한 모습으로 안무가의 동작을 지켜보고 있었다.

[안무가 : 음악 틀어 줄 테니까 맞춰 보자.]

그러나 다음 장면은 편집된 듯, 컷이 전환되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대열이 흐트러진 멤버들의 모습이 보였다.

[청 : 브이로그? 뭐 찍어?]

[율무 : 그냥 일상~]

율무가 청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화면에 그의 조각 같은 이목구비가 가득 찼다.

피하지 않고 렌즈를 빤히 바라보던 청은 슬그머니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청 : 깊게 박아 도망 못 가게.]

[백야 : 야!]

[청 : 내 뜨거운 숨, 읍…!]

[백야 : 하지 말라고!]

오늘 여러 번 놀라는 백야가 재빨리 청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몸을 비틀며 쉽게 빠져나온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약 올리듯 대답했다.

[청 : 솔직히 아무도 몰라.]

[율무 : 어차피 편집되지 않을까?]

장면은 또 끊어졌다.

거울 앞에 서 있는 멤버는 유연과 율무. 다른 멤버들은 뒤로 보이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율무 : 지금부터 흔한 K 아이돌이 연습실에서 노는 방법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유연 : 뭐 할 건데?]

[율무 : 아무거나~]

[지한 : 그럼 내가 틀어 줄게.]

[민성 : 오~ 랜덤이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지한. 곧바로 묵직한 사운드와 함께 소속사 선배인 에임의 히트곡이 흘러나왔다.

피식 웃은 유연이 모자를 고쳐 썼다. 그런 옆에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 율무.

가사가 시작되자 두 사람은 그 모습 그대로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 Girl 네 꿈에서 우린

(chillin' chillin')

좀 더 가까운 사이

(shimmy shimmy)

한쪽 발을 끌듯이 스텝을 밟으며 나아가는 두 사람. 편안한 분위기 속에 여유로움이 넘치는 모습이었지만, 박자만큼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같은 동작 다른 느낌.

유연의 춤 선이 바람에 살랑이듯 부드럽다면 율무의 동작은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

1절 후렴이 지나자 곡이 바뀌었다. 연말 시상식에서 선보인 비바의 워킹데드 전주였다.

[청 : 나도 할래!]

후다닥 뛰어나온 청이 두 사람의 뒷줄 가운데에 섰다. 청의 나레이션 도입부가 지나고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안무.

- 아무도 나를 쳐다볼 수 없어

총명을 잃은 내 눈동자

청의 파트를 이어 율무, 유연까지. 마침 나와 있던 세 사람의 파트가 차례대로 돌아갔다.

[민성 : 나가, 나가.]

[백야 : 아니, 나는 왜…!]

순서대로라면 유연의 다음 파트는 백야였다.

민성이 소파 밖으로 등을 떠밀자, 방심하고 있던 복숭아가 연습실 중앙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냥 쉬고 싶은데 강제로 연습에 참여하게 된 백야가 울상을 지으며 뒤를 힐끔거렸다.

[율무 : 어허. 집중~]

[백야 : 아니, 난…. (억울)]

그러나 백야의 차례가 끝나기 전, 지한을 데리고 나온 민성이 대열에 합류했다. 팬들이 제발 활동해 달라며 애원하던 '워킹데드'의 안무 영상이 얼결에 탄생했다.

[율무 : 다들 천재야?]

[유연 : 아무도 안 틀렸어.]

오랜만에 추니까 작년 시상식 무대가 생각난다며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멤버들.

그때 민성의 핸드폰이 울렸다.

[민성 : 형 도착했나 보다. 가자.]

바닥에 누워 있던 율무가 데굴데굴 굴러 카메라 앞까지 왔다. 삼각대를 집어 높이 치켜든 그가 누워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율무 : 여러분, 저는 이만 숙소로 돌아가서 씻고 자야겠어요. 우린 다음에 또 만나요~ 율무로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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