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00화 (100/340)

제100화

“무슨 영화 같네.”

역시 센터는 센터였다.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하는 얼굴 덕에 고개를 들었는데도 눈앞에 유연의 얼굴이 잔상처럼 떠다녔다.

“녀석 잘생겼,”

“너 나 좋아하냐? 그건 좀 곤란한데….”

“으갹! 소, 소리 좀 내고 다녀 이 미친놈악!”

“악!”

내동댕이치듯 바닥으로 던져 버린 태블릿에 유연의 발등이 찍혔다.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졸지에 봉변을 당한 유연이 발등을 움켜쥐며 한 발로 깡충거렸다.

“헉. 괘, 괜찮아?!”

놀란 개복치가 유연의 발치로 다가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 어디 봐. 부러진 거 아니야?”

“너 이…! 새벽에 여기서 혼자 뭐 하는데?”

“그냥 잠이 안 와서….”

유연이 두 발로 서기 무섭게 발등을 꾹 눌러 주던 백야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봤다.

“미안…….”

내려간 입꼬리와 축 처진 눈썹이 자기 잘못을 아는 것 같아 보여 유연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왜. 오늘 촬영 때문에?”

“아니. 그냥….”

“넌 맨날 그냥, 그냥.”

유연이 발을 치워 백야의 손을 떨쳐냈다.

“됐어. 그만해.”

그리곤 방에서 나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엌으로 향하자 백야가 뒤를 졸졸 따랐다.

“발 진짜 괜찮아?”

“멀쩡히 걸어다니는 거 보면 모르겠냐.”

물 한 컵을 그대로 원샷 한 그는, 이내 새 잔을 꺼내 냉수를 가득 받아 손에 들려 주었다.

“남의 얼굴 그만 훔쳐보고. 이거나 마시고 들어가서 잠이나 자라.”

“그런 거 아니라고!”

“야! 애들 다 깬다고.”

발끈하는 백야의 입을 유연이 틀어막았다. 얼굴을 뭉개는 무자비한 손길에 백야가 몸부림치다 그만 컵을 놓쳐 버렸다.

챙그랑-!

바닥을 적신 흥건한 물과 유리 조각. 놀란 두 사람이 토끼 눈을 뜨고 굳어 버린 순간, 뒤에서 민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염병…. 너네 끌어안고 뭐 하니?”

유연과 백야가 삐거덕거리며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눈이 빨갛게 충혈된 민성이 시큰둥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밀회 뭐 그런 거야?”

다시 방으로 돌아가 줄까 묻는 민성에 유연이 이를 악물며 짓씹듯 뱉었다.

“아니거든?”

백야는 대답 대신 썩은 얼굴로 민성을 바라봤다. 리더를 향한 눈이 ‘극혐’이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표정 살벌한 거 봐라…. 근데 왜 사람 오해하게 새벽에 몰래 나와 있어.”

민성 또한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붙어 있는 두 사람을 위아래로 훑는 떨떠름한 얼굴.

“그게 아니라 컵이,”

“봐. 지금도 계속 안고 있네.”

“이게 어딜 봐서 안은 거야! 이렇게 거리가 먼 데!”

끝까지 저희를 놀리려 드는 민성에 유연이 질색하며 받아쳤다.

“오. 발끈하는 것 좀 봐.”

유연의 반응이 재밌는지 민성이 실실 웃으며 다가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백야가 소리를 질렀다.

“안 돼! 오지 마!”

“부엌이 너희들 거야? 그나저나 우리가 저녁을 좀 짜게 먹었나? 왜 이렇게 물이….”

컵이 깨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해명하려 했는데. 민성이 중간에 말을 끊어버리는 바람에 가장 중요한 사실을 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차 싶은 백야가 뒤늦게 손을 뻗었으나, 이미 발을 내디딘 민성은 결국 유리 조각을 밟고 말았다.

“악! 내 발!”

어쩐지 심장이 뛰고 컵이 깨질 때부터 불길하더라니. 아무래도 자신은 불운을 몰고 다니는 개복치인 것 같았다.

* * *

데이즈 컴백까지 남은 기간은 일주일 남짓. 오늘은 두 번째 티저 영상이 공개되는 날이었다.

첫 정규 앨범답게 데이즈는 티저 에서부터 남다른 자본력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썸네일이 정말 예술이었다.

“미쳤네.”

정면을 노려보며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고 있는 무쌍 고영이 오늘의 주인공. 심지어 입고 있는 옷은 제복이었다.

가쁘게 심호흡을 한 복쑹은 경건한 마음으로 동영상을 재생했다.

[DASE 데이즈 ‘NAN’ MV Teaser #2]

시작과 동시에 Inst가 흘러나왔다.

높은 절벽 위에 지어진 커다란 고성. 성의 지붕 뒤로 걸려 있는 붉은 달.

컷이 전환되며 안개 낀 숲속을 헤매고 있는 율무가 보였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 손에는 은으로 된 십자가가 들려 있다.

걸음을 내딛자 박쥐 떼가 날아오르며 장면이 바뀐다.

같은 시각 성안의 복도를 걷고 있는 백야. 커다란 문을 열자 제복 위로 꽂혀 있는 허리춤의 단도가 살짝 보인다.

백야를 지나 문 너머를 비추는 카메라. 열린 창틈 사이로 쏟아지는 한줄기 밝은 빛.

방 한편에 놓인 침대 위엔 빛을 피해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인영이 보인다.

- Night After Night

Na na na na na

후렴 멜로디가 나오며 조각상을 보고 있는 민성과, 총으로 누군가를 겨누고 있는 지한, 유연의 모습.

화살을 쥔 채 손장난을 치는 청의 모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 내 뜨거운 숨을 앗아가

총소리와 함께 달빛 아래 서 있는 지한이 등장했다.

그가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자 빨간 립스틱이 엉망으로 번지며 영상은 끝이 났다.

[DASE]

“세상에.”

영상이 끝나기 무섭게 복쑹은 이마를 내리쳤다.

“이런 미친 쌉변태들!”

NAN이 무슨 뜻인가 했더니 Night After Night의 약자였다니.

매일 밤 내 뜨거운 숨을 앗아가라니!

거기다 제복이며 총이며, 특히 몇몇 멤버들의 빨간 눈동자는 이번 컨셉이 인외 존재라는 걸 암시하고 있었다.

곱씹을수록 어마어마한 정규 컨셉에 이마를 빡빡 내리치기 바쁜 복쑹. 그녀의 이마는 어느새 지한의 입술만큼이나 빨개져 있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그녀는 얼른 핸드폰을 들어 SNS를 켰다.

첫 번째 티저가 공개되고 난 이후, 지난 일주일 동안 데이즈 공식계정에 올라온 티저 이미지가 제일 먼저 보였다.

팔로우한 보정계에서 자신의 취향대로 티저 사진을 편집해 올린 듯했다.

공개된 백야의 머리는 빨간색. 셔츠를 입은 그는 한 손으로 목을 짚고 있었다.

원래는 갈색 눈동자였지만, 두 번째 티저가 뜨고 나서 붉은색으로 보정했는지 웬 사과의 탈을 쓴 복숭아가 저를 보고 있다.

“윽…! 저장.”

같은 사진만 다섯 개째 저장 중인 복쑹.

- 티저만 벌써 847261번 돌려 보고 있음ㅜㅜㅜ

- 한지한!! 내 목을 물어라!!!

- 앨범 상세 뜸 > 뱀파이어ver, 헌터ver 2종

- 됐다. 이번에야말로 애들 1위 한다. 완전 대박 날 것 같으니까 다 같이 앨범 지르러 갑시다!!! 원미 초동 넘기자구요!

- 퇴폐고영에 번진 립스틱이요? ID 미쳤나봐;;; (뮤비 캡쳐.jpg)

└ 저도 그 부분이 정말 돌았다고 생각해요...

- 뱀파이어 : 유연, 지한 / 인간 : 백야, 율무, 민성, 청 이건가? 근데 애들 총은 왜 들고 다님??

└ 총 든 애들이 헌터래요

- 현상 수배 종이 속 여자가 뱀파이어 같음 ㅇㅅx 지한이랑 유연이 총 들고 있는 걸 봐서 그 뒤를 쫓는 것 같은데...

└ 미친; 뱀파이어 vs 헌터 이거네. 상세 올라온 거 보고 달려옴

- 상세 드릅게 안 올려주길래 일 안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이번엔 아닌 건가...

└ ㄴㄴ 일 안 한 거 맞음

- 좀 다른 얘긴데 현상 수배분 존예다.. ID 연습생일까

- 팬싸 언제 뜰까ㅠㅠ 혹시 원미 팬싸컷 얼마였는지 아는 사람

└ 30? 모르겠다. 근데 신인치고 높은 건 확실

- 유연이 인간이었는데 저 여자 뱀파이어한테 물린 거 아닐까? 첫 번째 티저 보면 유연이 현상수배 포스터 보면서 한숨 쉬었잖아

└ 율무도 티저에서 뒷모습만 나와서 뱀파이어 좀 의심됨

- 백야 빨간 머리!!!!

└ 지한, 청 : 흑발 / 율무, 민성 : 갈발 / 유연 : 백금발

코앞으로 다가온 데이즈 컴백에 모두가 폭주하고 있었다.

* * *

“사고뭉치 왔냐.”

“죄송합니다….”

“에이~ 당백이 반성 많이 했어. 그치잉~”

차에 올라탄 백야의 눈꼬리가 시무룩 내려갔다.

“근데 왜 형이 와 있어? 덕진이 형은?”

“새벽부터 불려 나가서 잠도 못 잤을 것 같아서 내가 들여보냈어.”

지난밤 민성이 유리 조각을 밟아 새벽부터 난리가 났던 데이즈 숙소. 다행히 작은 조각이고 깊게 박히지도 않아서 큰 부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뭐 놔두고 온 거 없지? 그럼 출발할게. 안전벨트 매고.”

막 샵에서 나온 두 사람은 지금 컴백 스케줄을 가는 중이었다. 데이즈의 정규 활동 첫 녹화는 바로 <불타는 금요일>.

“알아서 잘하겠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특히 율무.”

“예예~”

백야는 걱정이 안 되는데 너는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며 남경이 한숨을 쉬었다.

남경의 잔소리를 들으며 도착한 촬영장.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퀘스트 알림이 떠올랐다.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Q. 뜨고야 말겠어!(3) : 눈에 띄는 활약으로 예능계의 샛별이 되어 보자!

※ 실패 시 패시브 강화]

‘예능계의 샛별이요? 제가요?’

할 말을 잃은 개복치가 허공을 멍하니 바라봤다.

“뭐 해? 가자.”

“어? 어어.”

율무의 손에 이끌려 선배들의 방을 돌고 나온 백야. 인사를 마친 두 사람은 게스트 전용 대기실로 돌아왔다.

“또 안마 의자 모드네.”

의자에 앉아 있는 백야의 다리가 달달 떨렸다.

“넌 걱정도 안 되냐?”

“걱정해서 뭐해?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그냥 최선을 다하는 거지~”

남의 사정도 모르고 실실 웃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후로 1분에 한 번씩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는 백야. 이제 촬영 시작까지 5분도 채 남지 않았다.

“야, 회사에서 왜 나를 보냈지? 유연이나 청이가 더 낫지 않나? 하…….”

여기를 오지 않았더라면 예능 샛별 퀘스트 따윈 뜨지도 않았겠지.

백야가 초조한 듯 손톱을 물어뜯자 율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난 아는데~”

“…뭔데? 너 뭐 들은 거 있어?”

“아니? 근데 알아.”

자꾸 뜸을 들이는 율무에 백야가 빨리 말하라 협박했다. 불끈 쥐어진 솜 주먹에 그가 개복치를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너 하트 깨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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