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02화 (102/340)

제102화

“비바?”

깜짝 놀란 범이 데이즈에게 최근 시상식에서 비바의 곡을 리메이크하지 않았느냐 물었다.

“네, 했어요. 워킹데드.”

백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잠시 뜸을 들이던 MC는 당연히 ‘워킹데드’는 아니라며 해당 앨범의 수록곡인 ‘조각’이라고 발표했다.

“에이~ 그럼 그렇지.”

범이 실망을 숨기지 못했다.

곡 설명을 들은 멤버들은 세트장에 퍼지는 후렴구에 맞춰 신나게 리듬을 타다가, 갑자기 시작되는 카운트다운에 귀를 쫑긋 세웠다.

백야와 율무도 다소 긴장한 얼굴로 집중했다.

3, 2, 1.

[문제 구간 재생 중]

“에이~ 인간적으로 너무 길다. 이 정도면 2절 통으로 튼 거 아니야?”

“너무한다 너무해.”

오늘 첫 번째 문제가 될 파트가 공개됐다. 평소보다 길게 재생된 곡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렸다.

벙찐 백야의 얼굴과 들은 가사를 열심히 정리하고 있는 율무의 모습이 클로즈업됐다.

“자, 이어서 문제 공개합니다. 문제! 보여, 주세요!”

[오답 6개]

“지금부터 오답을 찾아 정답으로 바꿔주시길 바랍니다.”

MC의 진행에 불금 멤버들은 툴툴대면서도 펜을 들었다.

“다 적으셨어요? 그럼 누구 먼저 할까요.”

MC가 운을 떼기 무섭게 백야가 손을 번쩍 들었다.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백야 씨, 자신 없어요?”

“네! 자신 없어요.”

그런데 자신 없다는 말을 굉장히 자신 있게 한다며 MC가 웃었다.

안타깝지만 게스트는 마지막 순서라며 마태의 오답노트가 제일 먼저 공개됐다. 그사이 율무는 백야의 태블릿을 슬쩍 훔쳐봤다.

“푸흡.”

“읏즈므르.”

시끄러운 와중에도 웃음소리를 정확히 들은 백야가 발을 툭 차며 경고했다.

그리고 드디어 돌아온 데이즈의 차례. 두 사람 중 어느 분의 노트를 먼저 공개할까 묻는 MC의 물음에 백야가 한 번 더 손을 들었다.

“저요!”

“그래요. 그럼 율무 씨 것 먼저 보도록 할게요.”

백야의 당황한 얼굴 뒤로 율무의 오답노트가 공개됐다.

[난 > 넌 / 도로를 > 궤도를 / 진실 > 해답 / 삶이란 > 자비란]

제법 많이 적힌 노트에 불금 멤버들이 감탄했다. 지금까지 공개된 오답노트 중 제일 그럴싸한 단어의 나열이었다.

“와~ 진짜 많이 적었다.”

승지가 율무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단어를 캐치해냈습니다. 아무래도 옛날 노래라 그런지 철학적인 단어들이 많아요. 자, 그럼 이어서 백야의 노트도 오픈하겠습니다. 노트, 오픈!”

[또 난 > 도망? / 죄송해요..]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스튜디오가 술렁였다.

“푸하하! 저게 뭐야~ 띄어쓰기도 안 맞아. 아, 너무 귀엽다 진짜.”

범이 뒤로 넘어갈 듯 웃어 댔다. 마태도 웃음을 참는 얼굴로 백야에게 물었다.

“혹시 지금 도망가고 싶은 거 아니죠?”

“아니에요. 저 진짜 저렇게 들었는데….”

백야가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유일하게 고쳐 쓴 게 도망. 쓰면서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작게 ‘죄송해요’라고도 적었어요.”

MC까지 가세하자 백야가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율무는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저런 치사한…!’

눈에 띄는 활약으로 예능계의 샛별 자리를 꿰차야 하는데 시작부터 영 느낌이 좋지 않았다.

“자! 그럼 이쯤하고 원샷, 가도록 하겠습니다. 정답에 가까운 주인공!”

MC가 멘트를 하며 긴장감을 조성했다.

“보여, 주세요!”

“와~!”

우렁찬 멘트와 함께 감탄사가 들렸다. 커다란 LED에 ‘DASE NAN 컴백♡’을 들고 있는 율무의 모습이 잡혔다.

“오늘의 원샷 주인공은 율무 씨입니다! 첫 출연인데 대단해요!”

놀란 듯 눈이 커진 율무가 활짝 웃었다. 그러다 백야도 함께 잡힐 수 있도록 몸을 기울여 브이를 해 보였다.

“데이즈의 율무, 백야 씨가 화면에 잡히고 있습니다. 태어난 지 1년 5개월 된 아기 뱀파이어들.”

촬영은 계속됐다.

2배속 다시 듣기를 반복하며 오답구간부터 찾아낸 불금 멤버들은 토론 끝에 확신이 서지 않는 두 번째 단어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호랑이 찬스는 게스트들의 몫. MC가 데이즈에게 찬스 구호를 외쳐 달라 했다.

“어흥!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율무와 백야가 호랑이 동작을 따라 하며 외쳤다.

“두 번째 단어가 ‘궤도를’이 맞나요?”

율무가 기대하는 얼굴로 MC를 바라봤다. 게스트들과 시선을 주고받으며 길게 뜸을 들이던 MC는 범에게 타박을 듣고 나서야 맞다고 대답해 주었다.

“됐네! 됐어.”

소영이 박수를 치며 1라운드 승리를 예감했다. 다른 불금 멤버들도 완벽하다고 느꼈는지 정답을 확신하는 모습이자, MC가 정답 존으로 가겠느냐 물었다.

“갈게요. 백야랑 율무 중에 한 명이….”

마태가 두 사람을 바라봤다. 둘 중 한 명이 나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가랏! 당백, 아니 백야!”

율무가 장난스럽게 외치며 백야를 일으켜 세웠다. 자신은 이미 활약을 많이 했으니 백야가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네, 그럼 제가 할게요.”

자리에서 일어난 백야가 정답 존으로 이동했다.

“준비되셨나요?”

“네.”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선 백야가 조금 긴장한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특별한 반주 없이 LED 판에 띄워진 노트를 보며 노래하는 백야. 그의 음색에 잠시 세트장이 술렁였다.

“아는 노래야? 너무 잘 부르는데?”

“원래 저 친구가 목소리 좋기로 유명해요.”

가볍게 불렀음에도 반응이 좋았다. 쑥스러운 백야가 입술을 말아 물며 결과를 기다렸다.

“혹시 뭐… 변동 사항이라도?”

“아니요. 없습니다.”

떠보듯 물어보는 MC에 마태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결과!”

세트장을 울리는 목소리.

정답 존에 선 백야가 윙크하듯 반만 뜬 눈으로 벌칙 기계를 경계했다. 마이크 스탠드를 움켜쥔 손과 움츠린 몸이 살짝 뒤로 기울었다.

“보여! 주세요!”

출연진들의 반응을 따기 위해 잠깐 시간을 끌던 제작진. 이내 커다란 화면 위로 ‘정답’ 두 글자가 뜨며 화려한 조명이 켜졌다.

불금 멤버들과 율무, 백야가 자리에서 일어나 1라운드 1차 통과를 진심으로 기뻐했다.

“율무 씨가 1등 공신이네~”

“인정합니다.”

태혁이 율무를 향해 박수를 보내자 승지도 공감했다.

율무의 대활약으로 맛있는 찹쌀 탕수육을 먹게 된 멤버들. 출연진들 앞으로 탕수육 한 상이 정갈하게 세팅됐다.

“잘 먹겠습니다~”

젓가락을 든 율무가 좌우를 살피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따라서 인사한 백야도 젓가락을 집어 드는데 마침 MC가 말을 걸어왔다.

“탕수육이 나왔으니까 이걸 또 안 물어볼 수가 없네요. 데이즈는 부먹입니까, 찍먹입니까.”

탕수육을 집은 율무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찍먹입니다.”

그러나 백야는 의견이 조금 다른 듯했다.

“저는 부먹이요.”

“부먹이라고?”

툭.

백야의 발언이 충격적이었는지 율무는 집고 있던 탕수육을 그만 놓쳐 버렸다.

“부어 먹어야지. 눅눅한 게 맛있어.”

“야, 아니지~ 바삭함이 생명이라고 튀김은.”

두 사람의 논쟁에 불금 멤버들까지 부먹과 찍먹파로 나뉘어 촬영이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그럼 내친김에 몇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 팬분들은 또 이런 거 좋아하시니까.”

MC의 재량으로 진행되는 코너 속의 코너. 밸런스 게임이 시작됐다.

* * *

간식 게임과 쉬는 시간을 가진 뒤 다시 진행되는 촬영. 그러나 백야는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함을 느꼈다. 바로 율무 때문에.

“저 마지막 단어 정확하게 들었어요. 새벽이에요.”

“새벽? 아… 나는 좀 다르게 들었는데. 난 시련.”

“태혁 오빠 정확해요? 다음 주 벌칙 의상 걸고.”

“어? 그 정도까지는…….”

“됐어, 율무가 새벽이라잖아. 그냥 새벽으로 가.”

“아싸~ 정말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저 정말 똑똑히 들었거든요.”

흐름은 율무에게 넘어간지 오래였다. 따라서 개복치는 지금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당백아, 나 믿지? 내가 너 저거 먹게 해 줄게.”

율무는 쾌활한 성격과 특유의 친화력, 타고난 예능감으로 불금 멤버들과 제작진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반면 예능 뽀시래기 백야는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귀엽다는 반응에서 그치는 게 전부였다.

장착 중인 스킬들 중 그나마 예능에 영향을 줄 것 같아 보이는 건 끼 항목뿐이었지만, <컨셉 장인(A)>은 그의 예능감에 개미 똥만큼의 도움도 되질 못했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망할 율무차…….’

개복치의 슬픈 눈이 옆을 향했다.

언제는 죽지 말고 살라며 멱살잡이까지 하더니 지금은 그 손으로 절 떠밀고 있었다.

확신에 찬 율무가 범, 태혁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정답 존으로 이동했다.

당당하게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선 율무는 팝콘을 힐끔 보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백야와는 상반된 태도였다.

“2라운드! 과연! 정답일지 아닐지!”

율무의 감미로운 노래도 잠시. 결과를 보여 달라는 MC의 멘트와 함께 팡파르가 터졌다.

[정답]

“와아!”

결과를 확인한 율무가 백야에게 달려가 어깨를 마구 흔들어 댔다.

“으갹!”

“야! 해냈어! 해냈다고!”

너무 기쁜 나머지 율무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멤버의 손안에서 팔랑거리는 종이 인형. 그를 발견한 태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범에게 얘기했다.

“쟤 저러다 부러지는 거 아니야?”

“율무 씨, 그러다 애 잡겠어요.”

“네? 아, 너무 기뻐서 그만…. 당백이 괜찮아?”

손을 놓으며 뒤로 물러나자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백야가 보였다. 어지러움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겠다는 개복치의 의지가 느껴졌다.

“히히~ 삼겹살.”

백야가 한쪽 눈을 슬쩍 뜨자 율무가 칭찬을 바라는 얼굴로 서 있었다.

“너 이…!”

망할 놈! 삼겹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남의 속도 모르고 생글생글 웃고 있는 얼굴이라니. 죽음을 앞둔 개복치는 이를 악문 채 눈을 부릅뜰 뿐이었다.

어느새 촬영은 클로징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2라운드 메뉴인 제주 흑돼지 삼겹살을 먹기 위해 불금 멤버들이 자리를 이동했다.

‘그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더라…….’

개복치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만찬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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