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화
마지막 만찬을 즐긴 개복치는 부른 배를 통통 두드렸다. 음식을 먹는 과정에서 살짝 논쟁이 있었지만, 촬영은 무사히 끝났다.
“촬영이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
선배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온 두 사람은 남경이 기다리고 있을 차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백야가 팔을 잡으며 걸음을 멈춰 세우는 게 아닌가.
“자, 잠깐만!”
“이번엔 또 왜?”
물건을 놔두고 온 것 같다, 화장실만 들렀다 가자, 등. 갖은 핑계를 대며 건물 밖으로 벗어날 생각을 않는 백야에 율무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이를 악물었다.
“무, 물 좀….”
“아까 마셨잖아. 5분 전에.”
“생각해 보니까 PD님께 인사를 한 번 더 드리는 게….”
“한백야.”
아까부터 시답잖은 변명으로 시간을 끄는 백야에 율무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졌다.
“왜 그러는데. 숙소 가기 싫어?”
“아니….”
백야가 손을 꼼지락거리며 창밖을 힐끔거렸다. 다른 출연진들은 모두 떠나고 주차장에 남아 있는 건 스텝들과 데이즈의 차량뿐이었다.
기다리던 남경도 슬슬 답답한지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뭔데. 말해.”
백야가 눈알을 굴려 율무를 슬쩍 올려다봤다.
‘죽을까 봐 못 나가겠다고 하면 정신 나간 놈 취급받을 것 같은데…….’
둘러댈 말이 없을까 고민하는 백야의 눈알이 도르르 굴러갔다.
“머리 굴릴 생각하지 말고. 3초 준다. 그 안에 대답해.”
“아니, 그게….”
빠르게 줄어드는 카운트에 백야가 에라 모르겠다 외쳐 버렸다.
“주, 죽을까 봐!”
말도 안 되는 변명에 율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다 짚이는 게 있는지 금세 허탈한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난 또 뭐라고. 남경이 형 무서워서 그래? 유연이랑 사고 친 거 때문에?”
율무는 새벽에 있었던 사고를 떠올렸다. 민성이 깨진 유리컵을 밟아 발바닥에 동그란 밴드 하나를 붙이게 된 그 일을.
“에이~ 괜찮아, 괜찮아. 남경이 형이 뭐라 하면 내가 막아 줄게.”
“아니, 그게 아닌데….”
마음이 가벼워진 율무가 백야의 목에 팔을 걸며 이끌었다.
“걱정 그만하고 얼른 가자~”
“안 돼…! 이거 놔!”
인간에게 잡힌 개복치가 몸부림쳤다.
그러나 멱살잡이로 저 하나쯤은 거뜬히 드는 율무였다. 당해 낼 재간이 없는 개복치는 속수무책으로 질질 끌려갔다.
“아악! 나 죽는다! 개복치 살려! 엄마! 누나아악!”
“얘가 왜 이래, 진짜? 야, 안 죽어, 안 죽어. 내가 몸빵 해 준다니까~”
몸을 뒤로 젖히며 있는 힘껏 버텨 보는 백야와 힘으로 잡아끄는 율무.
두 사람이 승강이를 벌이는 사이 개복치의 발은 어느새 건물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야 이 망할 놈아!”
“아악! 야, 머리! 머리!”
백야가 율무의 머리를 잡아 뜯는 순간 눈앞에 상태창이 나타났다.
[업적 정산 중……]
[<뜨고야 말겠어!(3)> 실패!]
실패라는 두 글자를 보기 무섭게 백야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아니…?]
[‘백야’의 상태가……!]
“야! 너 진짜 왜 이러는,”
“허억, 끅….”
백야에게 따지려 들던 율무가 멈칫했다. 갑자기 가슴을 짚으며 숨을 헐떡이는 백야에 사고가 멈춰버린 것이다.
몸에 힘이 풀려 쓰러지는 백야를 받아 든 율무가 사색이 된 얼굴로 손을 떨었다.
“야. 왜, 왜 이래…. 장난치지 마.”
“수, 숨이….”
“누, 누가 좀 도와주세요. 형! 남경이 형!”
소리치는 율무와 놀란 남경이 멀리서 달려오는 모습을 끝으로 백야의 의식은 끊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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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컴백 맛집 데이즈 (feat.공홈)
추천 227 반대 4 (+250)
작년에 데뷔하자마자 인형놀이 컨셉으로 돌판을 뒤집어 놓으셨던 아이돌 명가 막냉이들이 컴백한다고 함.
정규 앨범+단체 성인 됐다고 그런가 좀 무게 있는 컨셉으로 돌아옴. (난 이번에도 청량을 예상했으나 장렬하게 빗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ID는 뭐다?
프로모션 맛집이다!
첫 번째 티저가 공개된 날 공홈에 유연의 신분증? 이미지가 올라옴.
(헌터 라이센스.jpg)
늘 그렇듯 시작은 센터.
흑백의 신분증에는 유연의 이름이랑 소속, 생년월일, 직업이 영어로 적혀있음.
다른 건 다 칸이 채워져 있는데 직업란만 비워져 있고 하단에는 각종 장비가 놓여있음. 혹시나 싶어서 눌러보니까 눌러짐!
무기는 여섯 가지고 단총, 장총, 검, 창, 십자가, 활, 이렇게 있음.
아무 생각 없이 가운데에 있는 십자가를 끌어다 올려봤는데 튕겨져나감. 그래서 이번에는 단총을 올렸더니 라이센스에 도장처럼 찍히면서 자켓 이미지가 팝업으로 뜸!
(흰색 제복 유연.jpg)
(검은 셔츠 유연.jpg)
걍 미쳤다는 소리가 절로 나옴.
의상실 때도 그러더니 이번에는 저 무기들이랑 멤버들 매칭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으로 예상됨.
컨셉은 제복인 걸 봐서 기사..?
+ 추가) 뱀파이어 vs 헌터 컨셉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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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래서 ID를 못 놓는 걸까... 덕후 취향 저격하는 거만 어디서 이렇게 가져오는 건지ㅠㅠ
- 제복 유연에 총이라니 그냥 날 죽여ㄹ 탕! (총 이모티콘)
└ (죽은 자의 온기만 남았다)
- 헌터? 제복 컨셉인가? 청량 들고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넹
- 지금까지 뜬 애들 주무기(?) 정리
└ 유연 : 단총 / 지한 : 장총 / 율무 : 십자가 / 청 : 활 / 백야 : 검 / 민성 : 창
└ 청청 활ㅋㅋㅋㅋㅋ 아체대 신궁 여기서도 활 잡았네ㅋㅋㅋ
└ 그래 뮤비에서라도 잘 쏘면 됐지... 내 새끼 하고 싶은 거 다 해ㅜㅜ
- ID 저 헌터 라이센스 굿즈로 내줬으면... 제발 팔아줘.......
- 애들 이번에는 예능 안 나오나? 전왔 또 나왔으면 좋겠다ㅜㅜ
└ 불금 촬영했다는 얘기 있던데
- 제발 쇼케이스 당첨 제발!! 근데 3일 남았는데 언제 나는 걸까 심장 떨려 주글거 같음
└ 어제 발표 났어요...
└ 광탈이신 듯
- 스읍~ 하아..... 컴백에서 돈 냄새 난다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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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특히나 월요일은 직장인에겐 최악의 요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를 들이부어야만 하루를 버틸 힘이 생기는 최악의 요일.
그러나 오늘만큼은 다르다.
밤새 SNS를 달리는 바람에 눈썹만 겨우 그리고 출근한 뱁쌔. 그녀는 몰아치는 업무에 카페인 수혈을 하지 못했음에도 정신이 또렷함을 느끼고 있었다.
‘왜냐? 오늘은 바로 천도복숭아가 공개되는 날이니까!’
이틀 전까지만 해도 쇼케이스 광탈의 슬픔에 잠겨 있던 그녀는 유앱으로 라이브 방송을 해 준다는 혜자 소식을 듣자마자 활기를 되찾았다.
현재 시각 5시 58분.
직장인 나 대리의 손이 키보드 위를 헤엄치듯 유영하고 있었다. 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라도 강림한 듯 예사롭지 않은 손놀림이었다.
[5:59]
음원 공개까지 남은 시간은 1분.
‘정각이 되자마자 수록곡 전체 재생을 한 다음 예약 앨범을 찾으러 가야지.’
컴백일이 확정되자마자 세워 둔 계획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한 뱁쌔는 초조한 마음으로 시계를 노려봤다.
[6:00]
“들어가 보겠습니다!”
시스템 종료도 아닌 어댑터 파워로 컴퓨터를 잡아 끈 뱁쌔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눈썹을 휘날리며 달려간 교복문고. 아직 수령을 시작하지 않았는지 근처에 대기 중인 팬들이 보였다.
눈알을 굴리며 사태를 파악하는 뱁쌔. 카운터 옆으로 산처럼 쌓인 박스와 브로마이드를 보니 곧 시작될 것 같았다.
다들 같은 생각을 했는지 서로 눈치를 보던 나잉이들이 한 줄로 서기 시작했다. 뱁쌔도 얼른 대열의 끝으로 합류했다.
“데이즈 예약판매는 이쪽으로 서 주세요~”
정리를 끝낸 직원이 마침내 수령 시작을 알렸다. 뱁쌔는 지갑에 꼭꼭 넣어 두었던 영수증을 꺼냈다.
뱁쌔가 예약한 앨범은 총 2장. 버전별로 각각 한 장씩이었다.
기다렸다가 팬싸 공지가 뜨면 사려고 했으나 공지가 언제 뜰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그녀는 앨범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예판 공지가 올라온 날, 뱁쌔는 나라에게서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나라 님 : 뱁쌔 님! 사녹 가실래요?]
[나 : 사녹이요?]
[나라 님 : 사전 녹화요! 애들 음방이용]
솔직히 아체대 때 너무 힘들어서 선뜻 대답하기 망설여졌지만, 음악방송은 아체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가깝다는 말에 그녀는 덥석 미끼를 물어 버리고 말았다.
아체대도 나름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그거랑은 비교할 수도 없다니!
어느새 차례가 다가온 뱁쌔가 카운터 앞으로 걸어가며 영수증을 내밀었다.
“2장 맞으세요?”
“네!”
“포스터는 누구 드릴까요?”
“백야랑 민성이요!”
뱁쌔는 침착하려 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바로 아까부터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들 때문에.
- 우와….
- 뱀파이어 청이 있어요!
“봉투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이 공간에서 침착한 건 직원들뿐이었다.
점원에게 브로마이드와 앨범을 받아 든 뱁쌔는 한산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화구통을 미리 준비해 온 그녀는 민성이랑 백야를 넣어 조심스레 뚜껑을 닫았다.
‘오늘 이 화구통 때문에 그림 그리냐는 소리만 몇 번을 들었는지.’
아니라는 데도 자꾸 관심을 보이는 부장님 때문에 뱁쌔는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였다.
“하. 떨린다.”
뱁쌔가 뒤편에 모인 팬들을 힐끔 바라봤다.
‘포카 교환’이라 적힌 안내판이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넓은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먼저 앨범을 개봉한 나잉이들이 모여 자신의 최애를 애타게 구하고 있었다.
“제발 한 번에 나오면 좋겠는데.”
뱁쌔가 손톱으로 비닐을 주욱 그었다. 그사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 네 마리의 하이에나.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동태를 살피는 그녀들은 교환 장터에서 최애를 구하지 못하고 안으로 흘러든 존재였다.
‘백야. 제발 백야.’
첫 번째 앨범을 깐 뱁쌔가 심호흡을 하며 앨범의 가운데를 펼쳤다.
“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