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04화 (104/340)

제104화

공기를 울리는 외마디 비명.

물론 뱁쌔의 소린 아니었고 그녀의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하이에나1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첫 번째 앨범에서 나온 멤버는 유연이었다. 이번 활동에서 백금발로 염색한 센터는 요망한 보조개를 지으며 웃고 있었다.

‘과연 셀카 장인.’

목에 주렁주렁 달린 진주 목걸이와 얼굴의 합이 환상적이었다. 침착함을 유지하며 앨범 위로 진주 유연을 올려 둔 뱁쌔는 두 번째 앨범깡을 시작했다.

어느새 그녀의 곁에는 더 많은 나잉이들이 모여 있었다.

‘제발 이번에는 백야…!’

다시 한 번 앨범의 가운데가 펼쳐졌다.

“우옼!”

그러나 이번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2 유연.

연속으로 유연이 나온 뱁쌔는 포카를 확인했다.

‘안 돼애애애.’

싫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문양이 새겨진 피스톨을 든 센터는 총을 들고 있었는데. 총구 위를 후, 불고 있는 퇴폐 사슴은 가히 치명적이었다.

“잘 생기긴 오지게 잘 생겼,”

뱁쌔가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수많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곤 그대로 굳어 버렸다.

‘뭐지. 여기서 뜯으면 안 되는 거였나.’

당황한 유연잡이는 허겁지겁 물건을 챙겼다. 그런데 헌터 버전에서 나온 포카가 유독 두꺼운 느낌이 드는 게 아닌가.

“엥?”

총유연의 포카를 살짝 비틀어 보자 카드가 두 개로 나뉘었다.

“헉. 미친!”

옆에 있던 유연 팬이 입을 틀어막았다.

로또만큼이나 걸리기 힘들다는 포카 두 장! 그 엄청난 현장을 눈앞에서 본 이름 모를 나잉은 부러움에 미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럭키걸의 등장에 술렁이는 교복문고. 지켜보는 이들만큼이나 그녀의 심장도 빠르게 뛰었다.

‘앨범은 두 갠데 포카는 세 장이다?’

그런데 하나는 또 중복이야. 그럼 교환해야 인지상정 아닐까.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린 뱁쌔가 슬쩍 중복 포카 한 장을 들며 운을 띄웠다.

“저….”

그러자 그녀를 둘러싼 열 명 가량의 나잉이들이 자신이 가진 카드를 내밀었다.

“저 살색 율무 있어요!”

“전 립스틱 지한이요!”

“안경 민성이!”

뱁쌔를 향한 나잉이들의 구애가 시작됐다.

2n년 인생. 살면서 처음 갑이 되어 보는 뱁쌔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짜릿하다…!’

갑의 삶이란 이런 건가.

뱁쌔의 눈앞엔 그녀의 간택을 기다리는 수많은 포카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나 갑은 원하는 물건이 확고했다.

“전 백….”

최애의 이름 앞글자만 꺼냈을 뿐인데 여섯 명의 손이 안타깝게 내려갔다. 선택받지 못한 나잉이들이 뒷줄로 밀려나고, 백야를 가진 승리자들이 앞줄로 뛰쳐나왔다.

“저 꽃받침 백야요!”

“저도 꽃받침 있어요!”

두 명의 나잉이가 동시에 달려들어 곤란할 뻔했지만, 뱁쌔는 사회인답게 정중히 거절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죄송해요. 먼저 오신 분이랑 교환할게요.”

간발의 차로 선택받지 못한 꽃받침 백야가 쓸쓸히 돌아갔다.

* * *

그 시각 복쑹.

현장 예약을 걸어 놓은 뱁쌔와 달리 그녀는 온라인으로 주문해 놓은 탓에 아직 실물 앨범은 구경도 못 해 보고 있었다. 대신 뱁쌔보다 빠른 건 하나 있었다.

“뮤비! 뮤비!”

바로 뮤직비디오 감상.

커다란 보름달 아래 선 여섯 명의 실루엣이 보이는 썸네일이었다.

[DASE 데이즈 ‘NAN’ MV]

보름달이 뜬 산속. NAN은 데이즈의 단체 안무로 시작됐다.

몸에 핏되는 단정한 슈트. 어깨에 달린 금 버튼 견장. 판판한 가슴 위를 가로지르는 샘 브라운 벨트를 한 데이즈.

달빛을 받은 민성이 가운데 서 있고 멤버들은 그의 뒤를 감싸듯 모여 있었다.

인트로가 시작되자 해당 파트를 맡은 민성의 손이 시선과 함께 아련히 솟구치고, 달빛을 움켜쥐듯 아련한 손이 클로즈업됐다.

- Under the Moonlight

반주와 동시에 흘러나오는 민성의 목소리. 낮고 먹먹하게 울리는 패드 음 위로 민성의 목소리가 조화롭게 어울렸다.

멤버들의 시선도 민성의 손짓을 따라 움직였다.

다음 가사가 이어지며 민성의 손이 내려오자 멤버들의 얼굴도 정면을 향하며 대형이 넓게 퍼졌다.

- 만월 아래로 널 유인해

향기에 취해 갈망하고 있어

장면이 바뀌며 벨벳으로 싸인 텅 빈 관이 보인다. 주변으로 마른 장미와 꽃잎들이 흩뿌려져 있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천천히 줌 아웃 되며 시선이 옆을 향하자, 열린 문 너머로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뒷모습이 비친다.

누구인지 모를 남자의 손이 여자에게 무언가를 내미는 장면. 여자의 눈은 붉은색을 띠고 있다.

- 닿은 손끝 타들어 갈 듯 뜨거워

그래 그렇게 다가와

난 마지막이 될 온기를 느껴

장면이 넘어가며 율무의 파트가 흘러나왔다.

사제복을 떠올리게 하는 검은색 롱 코트를 입은 율무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 찼다.

점점 줌 아웃 되며 그가 있는 공간 전체를 비추는 카메라. 율무가 걸터앉아 있는 책상 뒤로 십자가, 거울, 초 등이 보인다.

연기가 서서히 깔리며 장면이 전환됐다.

텅 빈 미술관에 가운데 놓인 여신상. 조각상을 보는 민성의 뒷모습이 잠깐 비치다 한 번 더 장면이 바뀌었다.

- 내 뜨거운 숨을 앗아가

Night After Night

Na na na na na

후렴이 시작되며 멤버들의 군무가 다시 보여졌다.

안무 컷 사이로 멀리서 여자를 바라보고 있는 유연과 지한, 청의 모습이 지나가고. 작업복을 입은 백야가 태양에 조각칼을 비추자 빛이 반사된다.

눈이 부신지 살짝 찡그린 얼굴이 클로즈업되다 장면이 넘어가며 곧바로 2절이 시작됐다.

- 쏟아지는 달빛에 눈을 맞춰

더는 도망갈 수 없어

나는 이미 너의 것이니

마른 장미 넝쿨로 뒤덮인 성.

꼭대기에 걸린 보름달.

반쯤 열린 철문 앞에 선 데이즈가 안으로 걸음을 옮기자 군홧발에 마른 장미 꽃잎들이 부서진다.

음산한 외부와 달리 호화로운 성안. 장면이 바뀌며 화려한 만찬장과 비어 있는 여섯 개의 의자가 보인다.

- 얼어붙은 입술이 내려앉아

날카롭게 파고들어

환희의 눈물이 흘러내려

서로를 경계하는 멤버들의 모습이 잠깐 비치다, 빨간 사과를 집어 한입 베어 무는 유연의 입술이 클로즈업된다.

장면이 바뀌며 화살을 겨누고 있는 청의 모습이 보인다. 그의 화살이 향하는 방향은 민성이 바라보던 조각상.

시위를 놓은 화살이 날아감과 동시에 멜로디가 바뀌었다.

- 눈을 떠 마주친 순간

마침내 붉은 꽃이 피어나

흩날리는 꽃잎 속 우두커니 선 유연을 비추던 화면은 금방 백야의 컷으로 넘어갔다.

멤버들의 목소리가 겹겹이 쌓이며 점점 풍성해지는 화음. 메인 보컬의 시원한 고음이 끝을 향해 올라가자 랩 파트가 바로 이어졌다.

- 빛을 삼켜 버린 Eclipse

달이 가려지면 본색을 드러내

몰아세워 숨도 못 쉬게

오로라가 펼쳐진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여섯 명의 소년들.

자신의 파트를 마친 지한이 옆으로 비켜서자 대각선에 있던 청이 나오며 그의 랩을 이었다.

- 깊게 박아 도망 못 가게

카메라를 노려보는 삼백안. 청의 얼굴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됐다가 멀어진다.

그리고 다시 지한의 턴.

- 지독한 목마름으로 날 삼켜 줘

등을 맞댄 채 랩을 이어 가는 두 사람. 카메라가 지한과 청의 주위를 속도감 있게 돌자 긴장감이 더 고조됐다.

- 너와 나 같은 시간을 걷게 돼

이 밤에 숨어 영원을 기약해

청과 지한이 등을 맞댄 자세 그대로 동시에 카메라를 쳐다보자, 컷이 바뀌며 장면은 다시 만찬장으로 돌아왔다.

비어 있는 와인 잔이 잠시 클로즈업되고 잠든 멤버들의 모습이 순차적으로 보인다.

힘없이 늘어진 팔목과 목덜미 위로 보이는 송곳니 자국. 열려 있던 만찬장의 문이 닫히며 하얀 드레스 자락이 자취를 감췄다.

- 내 뜨거운 숨을 앗아가

Night After Night

Na na na na na

마지막 후렴이 이어지며 백야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시선을 따라 카메라가 움직이자 달빛을 받고 선 지한의 모습이 보인다.

지한의 몸을 훑듯 발치에서부터 느리게 올라가는 카메라 무빙.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던 그가 팔을 내리자 입 주변으로 번진 빨간 자국이 눈에 띈다.

지한이 시선을 드는 순간 붉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며 뮤직비디오는 끝이 났다.

“…….”

뮤직비디오가 끝났음에도 말을 잊지 못하던 복쑹은 한참 뒤에야 입술을 뗐다.

“미쳤다.”

다른 말을 하고 싶어도 이건 정말 미쳤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니, 근데 뱀파이어랑 헌터의 싸움이라면서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나 피 터지는 한판승을 예상했던 팬들의 기대는 모두 빗나갔다.

감히 짧은 식견으로나마 뮤비를 궁예 해 보자면 ‘인간(헌터)였던 데이즈가 뱀파이어를 쫓다가 결국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건가.

사실 생각해보면 ID는 헌터랑 뱀파이어 버전이 표기된 앨범 상세만 던져 줬을 뿐. 두 존재의 대결이 될 거라며 설레발친 건 자신들이었다.

ID랑 데이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근데 왜 사람 헷갈리게 티저에서 현상수배 포스터 같은 걸 들고 있냐구…. 허리에 칼 차고 있는 건 또 왜 보여 줘서 사람 마음 설레게. 쳇.”

복쑹이 구시렁거렸다.

사실 그녀는 최애의 화려한 액션 신을 꽤 기대하고 있었다. 비록 백야가 칼을 휘두르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허리에 매달고 있는 모습이라도 봤으니 만족해야 하나.

팬들의 세계관 궁예를 보면 백야는 높은 확률로 잭(기사)인 듯했다.

‘그럼 언젠가는 칼 휘두르는 모습 한번은 볼 수 있겠지.’

뮤비 스케일을 보니 이렇게 허무하게 끝낼 것 같진 않아 보였다.

‘자컨을 내주든 라방을 해 주든 뭐라도 해 줄 거야.’

복쑹은 ID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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