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09화 (109/340)

제109화

[MC : 일단 유연 씨는 성공이고요~ 계속해서 청 씨 뽑아 보도록 할게요.]

다행히 백야는 복숭아 말랭이가 되기 전에 구조됐다.

검지와 중지를 편 청이 자신의 눈을 한 번, 백야의 눈을 한 번 가리키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유연을 놀려 먹을 수 있는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 버린 자에게 보내는 경고였다.

[MC : 네, 청 씨도 미션지를 뽑으셨고요. 큰 소리로 읽어 주세요.]

[청 : 이거 제발 청이가 해 줬으면. 오! 내가 뽑았어! 나잉아, 이거 내가 뽑았다!]

[민성 : 뭔데 그래?]

궁금증을 참지 못한 민성이 슬쩍 다가가 종이에 적힌 내용을 확인했다.

[민성 : 푸핫!]

[청 : 인소 남주 재질? 청청 보고 싶어요. 오글거리지만 설레는 대사해 주세요. 이게 뭐냐?]

[유연 : 으아악!]

호락호락하지 않은 미션에 나잉이와 멤버들이 환호했다. 유연은 몸을 꼬며 시작 전부터 못 견디어 했다.

[MC : 인소 남주! 미션지가 다행히 주인을 잘 찾아갔네요.]

[청 : 인소 남주가 뭐야?]

[MC : 인터넷 소설 남자 주인공이라고 제가 학교 다닐 때 유행하던 거예요. 학교를 배경으로 한 소설인데, 잘생긴 사대 천왕이 나만 좋아하는 그런~]

앨리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지한 : 대사가 뭔가요?]

[민성 : 들어 봐. 들어 보면 알아.]

[MC : 청 씨는 준비되는 대로 바로 대사 해 주시면 됩니다.]

[청 : Okay!]

제가 하는 것도 아니면서 온몸으로 부끄러워하는 멤버들에 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청 : 왜 저래?]

외국인은 본인이 들고 있는 대사가 얼마나 엄청난 건지 모르고 있었다.

[청 : 나 한다?]

팬들의 요청인 만큼 진지하게 임하고 싶었던 그는 웃음기를 쫙 뺀 얼굴로 주어진 대사를 읽었다.

[청 : 나를 함부로 대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으아악!”

공연장이 뒤집어지고 뱁쌔도 뒤집어졌다.

세기말 감성을 견디지 못한 율무와 유연은 벌떡 일어나 뒤돌아섰고, 지한은 민망한 듯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웃음을 참았다.

반면 민성은 앨리와 함께 소녀처럼 좋아했고, 백야는 청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청이 대사를 하는 순간 그의 시야에 보이는 데시벨 측정기가 110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었다.

[율무 : 나를 함부로 대한 여자는.]

[유연 : 네가 처음이야. 으악!]

[청 : 모야. 왜 저래.]

유연과 율무가 대사를 주거니 받거니 장난쳤지만, 청은 타격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다른 멤버들의 버전을 듣게 된 나잉이들만 신이 났다.

[MC : 정말 대단합니다~]

[민성 : 이쯤 되면 백야가 어떤 걸 뽑을지 정말 기대되네요.]

자리에서 일어난 백야가 앨리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어떤 걸 뽑으면 좋을지 고민하는 모습이 전광판에 잡혔다.

[MC : 네! 마지막으로 백야 씨까지 미션지를 뽑으셨고요. 지금 내용을 먼저 확인해 보고 계십니다.]

미션지를 얼굴 가까이로 바짝 당긴 백야가 꼬물거리며 종이를 반만 펼쳤다.

[유연 : 그게 보여요?]

[율무 : 안 보일 것 같은데~]

백야가 뒤를 홱 돌아보며 사나운 눈을 치켜떴다. 놀리지 말라는 경고였다.

[청 : 나 궁금해!]

자리에서 일어난 청이 다가오자 백야가 냉큼 등을 돌렸다. 카메라를 등진 복숭아가 멤버들을 경계하며 몰래 종이를 펼쳤다.

[율무 : 아~ 뮤직비디오 장면 중 하나 재연해 주세요~]

[백야 : 뭐야?!]

그러나 내용을 공개하기도 전에 함성이 터져 나왔다.

놀란 개복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카메라가 미션지를 비추고 있는 게 보였다.

[백야 : !!!!! (당황)]

[청 : 백야 바보야, 바보~]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개복치가 입술을 말아 물며 분해했다.

[MC : 뮤직비디오 장면 어떤 게 있을까요? 혹시 멤버들이 보고 싶다거나 기억에 남는 장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지한 : 립스틱?]

[율무 : 오~ 그거 좋다.]

[유연 : 지한이 형이 입술 문지르는 마지막 장면으로 가시죠.]

[백야 : 네? 그거 하면 화장이 다 망가지잖아요.]

[MC : 이게 마지막 코너라서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스타일리스트님 괜찮나요?]

[민성 : 괜찮다고 하시는 것 같은데요? 나잉이 여러분은 어떠세요.]

물어본 게 무색할 정도로 열렬한 환호가 쏟아졌다. 팬들은 당장 백야에게 립스틱을 대령하라며 함성을 부르짖었다.

잠시 후 무대 위로 립스틱 하나가 올라왔다. 데이즈가 실제로 사용하는 제품이었다.

[MC : 혹시 거울은 없나요?]

아무래도 남자분들은 조금 서투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거울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며 앨리가 요청했다.

그러자 청이 립스틱을 채 가며 대뜸 자신이 그려 주겠다 외쳤다.

[청 : 내가 해줄게!]

[백야 : 싫어! 내가 할 거야. 너 이상하게 그릴 거잖아.]

청을 믿지 못하겠다며 백야가 다시 립스틱을 가져왔다. 그사이 준비된 거울을 받은 백야는 무대의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유연 : 그냥 가운데서 그리면 안 돼?]

한 손에는 거울, 한 손에는 립스틱을 든 탓에 마이크를 쥘 손이 부족했지만, 백야는 고개를 도리질 쳤다. 동그란 뒤통수가 제법 단호하게 흔들렸다.

[청 : 어차피 다,]

[지한 : 청아.]

청을 부른 지한은 눈이 마주치자 작게 고개를 저었다. 말하지 말라는 뜻인 듯했다.

“역시. 한마음 한뜻으로 놀리는 백야 몰이.”

뱁쌔는 훈훈함을 느꼈다.

그 시각 미션 내용을 들켰을 때와 마찬가지로 무대를 등지고 앉은 백야. 뱁쌔의 최애는 구석에 쭈그려 앉아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뒷모습을 비추던 카메라는 점점 줌 인되며 백야의 얼굴이 비친 거울을 확대했다. 네모난 손거울에 갇힌 천도복숭아는 퍽 심각해 보였다.

[율무 : 아직인가요~]

[유연 : 못 그리겠으면 청이가 그려 준대.]

[청 : 맞아!]

아직 립을 바르기 전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 멤버들은 모르는 척 백야를 재촉했다.

멤버들의 성화에 백야의 미간이 불만스럽게 찌푸려졌다.

[백야 : 싫어!]

앙칼지게 거절한 백야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싶더니 이내 소심하게 립을 덧바르기 시작했다.

[백야 : 낑.]

[민성 : 방금 어디서 강아지 소리 나지 않았어요?]

거울을 내린 백야가 차마 고개를 못 들겠는지 무릎 위로 얼굴을 파묻었다.

[MC : 백야 씨, 다 그렸어요?]

[백야 : ……네에.]

[청 : 일어나!]

다가와 백야를 일으켜 세우는 스파르타 청에 복숭아가 얼굴을 숙인 채 일어났다.

[MC : 백야 씨, 립스틱 색깔이 그렇게 진하지 않아서 괜찮아요.]

[백야 : 정말요…?]

거짓말이었지만 백야는 앨리의 말에 조금 안심한 듯 보였다.

[유연 : 하나 둘 셋 하면 되나요?]

[MC : 네! 다 같이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한번 외쳐 볼까요?]

[단체 : 하나~ 둘~ 셋!]

카운트에 맞춰 백야가 손등으로 입술을 마구 문질렀다.

“꺄아악!”

현장의 나잉이들은 물론 유앱으로 보고 있던 뱁쌔도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불가항력이었다.

[민성 : 깜짝이야.]

[MC : 이야~ 함성이!]

립스틱 고양이에 이은 립스틱 햄스터의 탄생. 얼마나 열심히 문질렀는지, 손등과 입 주변이 번진 자국으로 엉망이었다.

[MC : 네~ 이렇게 해서 마지막 코너까지 진행을 해 봤는데요. 백야 씨와 청 씨, 유연 씨께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너무 열심히 해 주셨어요.]

[유연 : 아니에요. 나잉이 여러분이 즐거우셨다면 저희도 만족합니다.]

[백야 : 맞아요. 재미있었어요.]

물티슈로 손등의 립스틱 자국을 닦던 백야가 얼른 대답했다. 미션을 수행하기 전보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MC : 네. 그럼 우리 데이즈 분들은 다음 무대 준비를 위해서 잠시 무대 뒤로 내려가 계실게요.]

데이즈를 떠나보내기 싫은 팬들의 아쉬운 목소리가 울렸다.

[MC : 여러분, 벌써 두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시간이 정말 빠르네요. 오늘 두 시간 동안 함께한 쇼케이스 즐거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떠셨나요.]

앨리의 질문에 화답하듯 우렁찬 목소리가 돌아왔다.

[MC : 데이즈의 정규 1집 이클립스 쇼케이스. 저는 여기서 이만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데이즈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서 저에게도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고요.]

[MC : 저는 여기서 물러나지만 데이즈의 NAN 무대가 남아 있으니까요. 끝까지 응원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데이즈와 나잉이의 꽃길을 응원한다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앨리는 퇴장했다.

그리고 암전되는 무대.

스텝으로 추정되는 실루엣이 무대를 오가는 모습이 보이다, 커다란 전광판 위로 축하 영상이 떠올랐다. 데이즈의 선배 그룹인 A.I.M이었다.

[Ready to shoot! 안녕하세요, 에임입니다. 너무 귀여운 후배들이죠, 데이즈의 정규 1집 발매를 축하합니다.]

이어서 같은 소속사인 로즈데이와 글래시의 짧은 응원 영상이 이어지고, 다시 어두워진 틈을 타 데이즈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 Under the Moonlight

붉은 조명, 반주와 함께 울려 퍼지는 민성의 목소리.

NAN의 무대를 끝으로 데이즈의 쇼케이스는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 * *

▷ 현재 보유 스타 포인트 : 3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퀘스트로 1 포인트를 획득한 백야. 백야는 쇼케이스가 끝남과 동시에 또 한 번의 상태창을 마주했다.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Q. 천재 아이돌(2) : 올해 안에 음악방송 1위 하기]

컴백 활동의 신호탄을 쏘기 무섭게 뜬 <천재 아이돌> 퀘스트. 망겜의 메인 스토리를 담당하는 퀘스트라 그런가 요구하는 스케일이 남달랐다.

신인상도 맡겨 놓은 것처럼 세 개나 받아 오라고 하더니 올해 안에 음악방송 1위라니.

‘음방 1위는 아무나 하냐고!’

심통이 난 개복치의 볼이 복어처럼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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