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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13화 (113/340)

제113화

* * *

6월의 새벽은 생각보다 더 쌀쌀했다.

‘패딩을 입고 왔어야 했나….’

추위에 약한 뱁쌔는 새벽의 찬 공기 속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 나라 님. 달이 참 예쁘네요….”

“뱁쌔 님, 괜찮으세요?”

“네에…. 그런데 저희 언제 들어가나요…?”

뱁쌔가 아련한 눈으로 코앞의 방송국을 바라봤다. 그림의 떡이 따로 없었다.

상암의 아스팔트 바닥에서 노숙, 아니 밤샘을 시작한 지도 벌써 5시간째. 불그스름하던 노을도 어느새 완전히 져 버려 달이 떠 있었다.

“곧 서포터즈 오면 순위 확인하고 픽스될 거예요. 그럼 금방 들어가요!”

“서포터즈…?”

그게 뭐냐는 눈빛에 돌판 경력자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팬클럽 활동 도와주시는 분들을 서포터즈라고 불러요. 공방 같은 거 뛸 때 오셔서 순위 확인하고 입장 전에 줄 세우고. 대충 팬들 통솔하는 일 하신다고 생각하면 돼요. 아마 오늘 겪어 보시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예요.”

“그렇구나…. 그런데 픽스는 또 뭐죠…?”

“고정시킨다고요. 지금은 저희 1시간마다 한 번씩 출석 체크 하잖아요? 서포터즈 와서 순위 확인하고 픽스되면 이제 그 줄 그대로 입장 전까지 못 움직이는 거예요.”

출석 체크는 소속사마다 방침이 조금씩 달라서 어디는 시간마다 셀카를 찍어서 보내야 하고, 또 어떤 곳은 그냥 명단 순서대로 입장해서 그나마 덜 고생할 수 있다고 한다.

‘어렵다. 공방의 세계.’

뱁쌔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손목에 적힌 숫자를 내려다봤다.

[64]

회사가 연남동이라 근처에 방을 얻은 게 신의 한 수였다. 상암이랑은 나름 가까웠으니 말이다.

나라의 손목에 적힌 숫자는 63.

인천 시민인 나라는 폼림을 넣자마자 출발해 상암 근처 카페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나 뭐라나.

‘아무튼 대단한 사람….’

먼저 번호를 받았으면 더 앞에서 입장할 수 있었을 텐데. 공방이 처음인 자신을 위해 기다렸다가 받아주는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덕메는.

울컥 올라오는 감동에 뱁쌔가 나라를 보는데, 마침 주변에 있던 팬들이 하나둘씩 돗자리를 접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예요? 저희 이제 들어가요?”

누워 있던 뱁쌔가 상체를 일으키며 나라를 돌아봤다.

“서포터즈 도착했나 봐요. 저희도 얼른 가요.”

나라가 신발을 신으며 짐을 챙겼다.

돗자리를 대충 말아 안은 두 사람은 방송국 앞 공터로 달려갔다. 다들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오는 건지 슬금슬금 모여드는 인파가 엄청났다.

“저… 혹시 몇 번이세요?”

“87번이요.”

“앗. 감사합니다.”

뱁쌔를 챙긴 나라가 조금 더 앞으로 이동했다.

“혹시 몇 번이세요?”

“62번이요.”

두 번째 시도 만에 자리를 찾게 된 두 사람. 나라와 뱁쌔가 자신들의 번호를 보여 주며 팬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슬쩍 앞을 보니 총대와 서포터즈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순위를 확인할 테니 가져온 물건과 신분증을 꺼내 달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뱁쌔는 가방에서 앨범과 음원 다운로드 내역서 등을 꺼내 양손에 쥐었다.

“어떡해요? 저 너무 떨려요.”

길바닥에 누워 달만 바라보고 있을 땐 그렇게 춥더니 지금은 춥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1순위 받으면 이 번호 그대로 들어가는 거예요?”

“네.”

“그럼 만약에 하나라도 없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2순위 받고 300번 받으신 분 뒤에 서면 돼요. 손목 번호 상관없이 마지막 입장.”

“그런 잔인한…!”

뱁쌔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 개고생을 하고도 마지막 입장이 될 수 있다니!

집을 나오기 전, 세 번도 넘게 확인했으나 노파심이 든 뱁쌔는 자신의 물건을 다시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했나?”

앞을 살펴보니 서포터즈는 아직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상암에 나타난 데이즈 서포터즈는 총 세 명. 그녀들은 원활한 진행을 위해 끊어서 확인하기로 했는지 100명씩 세 줄로 서 달라 요청하고 있었다.

“천천히 하세요, 뱁쌔 님. 저희는 그대로 있으면 돼요.”

“네, 네.”

물건을 찾는 뱁쌔의 손이 분주했다. 그러던 그때, 뒤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 혹시 공방 처음이세요?”

“저희요? 아, 저는 몇 번 와 봤고 친구가 처음이라서요.”

“말씀 나누시는 게 들렸는데 너무 귀여우셔서…. 혹시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 주세요. 저는 공방 자주 뛰거든요.”

공방을 자주 뛴다는 이름 모를 나잉은 그를 증명하듯 어깨에 노란색 담요를 두르고 있었다.

병아리가 그려진 앙증맞은 담요. 저 무늬를 보아 상대는 높은 확률로….

“혹시 최애가 청이…?”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당신의 병아리 담요….”

햄스터 vs 다람쥐 vs 복숭아 vs 말티즈파로 나뉘는 백야만큼이나 청의 쪽도 파벌이 상당히 나뉘었다.

늑대 vs 뱀 vs 병아리.

65번 나잉은 그중에서도 후자인듯했다.

“혹시 저도 끼어도 되나요…?”

이어폰을 꽂은 채 SNS 삼매경에 빠져 있던 66번이 슬그머니 대화에 참여했다.

“네네! 그럼요!”

나라가 66번을 흔쾌히 받아 주었다.

“감사합니다. 덕메랑 같이 신청했는데 저만 당첨되는 바람에…. 저는 다 좋아하긴 하는데 그래도 최애는 백야예요. 차애가 유연이.”

그러자 뱁쌔가 기쁨에 소리쳤다.

“와악! 아, 저도 모르게…. 죄삼다. 저도 백야가 최애예요.”

나라와 뱁쌔 빼고는 모두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네 사람은 초딩 동창이라도 만난 것처럼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데이즈로 하나 되는 나이트.

서포터즈가 나눠 준 종이를 보며 응원법도 속성으로 마스터한 네 사람은 1순위를 확정받고 어느새 입장을 앞두고 있었다.

“큽. NAN 무대를 생눈으로 볼 수 있다니.”

밤샘 8시간째.

드디어 방송국 안으로 들어가는 뱁쌔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엔넷 안으로 입장했다.

천천히 계단을 타고 녹화장 안으로 들어가나 싶던 순간!

“여기서 잠시 대기할게요.”

“……네?”

문을 코앞에 두고 뱁쌔는 또다시 멈춰 섰다.

‘아니, 무슨 놈의 대기를 안에서 또 해요?’

동공이 텅 비어 버린 뱁쌔가 서포터즈를 한 번, 나라와 친구들을 한 번 번갈아 봤다.

“대기가 좀 길죠? 원래 그래요….”

최애를 본다는 것은 그런 것….

66번이 뱁쌔를 위로해 주었다.

그래도 살짝 열린 녹화장 입구 사이로 번쩍이는 조명과 음향 소리가 새어 나왔다.

빰-!

“꺄악!”

NAN의 반주로 추정되는 MR이 짧게 재생되자, 복도에서 대기 중인 나잉이들이 숨죽인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또 무한 대기.

그러다 잠시 후, 녹화장 안에서 ‘팬클럽 입장’을 운운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다들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서포터즈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스텝과 이야기를 나누던 삼총사는 저만 바라보는 나잉이들 앞으로 다가와 정식으로 선언했다.

“지금부터 입장하겠습니다.”

나잉이들이 웅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대 뛰지 마세요. 뛰다가 걸리면 바로 퇴장 조치하겠습니다.”

무거운 장비들이 많은데다 300명의 인원이 들어갈 공간이었기 때문에 서포터즈는 안전에 유의해 달라며 신신당부했다.

“나라 님, 저희 이번에는 진짜 들어가는 거 맞나요? 진짜?”

“네, 이번에는 진짜예요.”

“큽. 드디어…!”

뱁쌔는 정말이지 눈물을 흘릴 뻔했다. 장장 9시간의 대기 끝에 걸친 입장은 감격에 겨울 수밖에 없었다.

뛰지 말라는 서포터즈의 협박이 제대로 먹혔는지 녹화장 문턱을 넘은 나잉이들은 절대 뛰지 않았다. 빨리 걸을 뿐.

“뱁쌔 님! 빨리 오세요.”

“네? 네!”

이어서 64번째로 입장한 뱁쌔. 그녀는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을 놓을 뻔했다.

생각보다 가까운 무대에 눈빛이 흔들리던 그녀는 얼른 나라의 뒤로 따라붙었다. 60번 대였음에도 2.5열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미친. 이게 무슨 일이야?’

아체대보다 가깝다고만 했지, 이렇게 코앞에서 본다는 말은 없었잖아요.

과장 조금 더 보태서 팬싸만큼이나 가까운 거리에 뱁쌔는 손이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미쳤다. 이따가 백야 나오면 나 기절하는 거 아니야?’

마른 장미와 부서진 조각상. 정면의 커다란 LED 판에는 몽환적인 느낌의 하얀 달이 빛나고 있었고, 천장에서 아래로 떨어진 반투명한 천은 작은 바람에도 금세 살랑였다.

컴백 최초 공개인 만큼 무대 세트에 신경을 쓴 게 느껴졌다. 마음속으로 합격점을 준 뱁쌔는 처음 와 본 방송국이 신기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람 엄청 많아 보였는데 금방 들어왔네.’

어느덧 팬 입장도 마쳤는지 스텝이 문을 닫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닫히는 문을 보며 멍을 때리는데, 순간 틈 사이로 빨간색과 백금발의 머리통이 지나갔다.

“우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분명 백야였다. 왜냐하면 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으니까.

* * *

현재 시각 5시 3분, 백야시.

사녹 후기를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어 버린 복쑹은 백야의 생일과 같은 시간에 눈을 떴다.

“으앗, 사녹!”

허겁지겁 SNS를 켠 복쑹이 타임라인을 새로 고침 했다.

[엔카 NAN 사녹 후기

연습 1번, 녹화 2.5번 총 3.5번 함. 의상은 애들 뱀파이어 캐슬(자컨)에서 입었던 제복 카키 버전 입었고 율무만 긴(?) 제복

└ 카메라는 나름 괜찮았던 것 같음. 방송 보면 알겠지만 하이라이트 부분 백야, 민성, 유연이 부르는데 세 명 다 느낌 다르고 지한&청 랩파트 극락. 둘이서 등 맞대고 카메라 쳐다보는데 순간 쫄았음

└ 개인적으로 무대세트도 잘 뽑힌 듯. 뮤비에 나온 조각상은 부서져 있고 달이랑 장미 이런 것들 때문에 뱀파이어보단 남신 보는 느낌

└ 처음에 백야 먼저 올라와서 인사하고 멤버들 기다리는데 조금 부끄러웠나 봄. 자꾸 멤버들 올라오는 계단 힐끔거리더니 “멤버들 데리고 올게요.”하고 도망감

└ 그러다 청이 데리고 다시 올라왔는데 아까보다 편안한 얼굴. 청이가 백야한테 아가냐고 왜 혼자 못 있냐니까 나잉이들 난리 남

백 : 그런 거 아니야

청 : 괜찮아, 백야 매찌리잖아

백 : 씨이.. 너 다시 가!

백야가 계단 쪽으로 청 막 미는데 청 재밌어하는 게 눈에 보임ㅋㅋㅋ

└ 그리고 율무가 엄청 우렁차게 인사하면서 올라옴. 마이크 안 켜졌는데도 진심 제일 뒤에 있던 나잉이들까지 다 들음ㅋㅋㅋ 발성 머선일

율 : 너 당백이 놀리면 안 돼~ 그러다 물린다?

백 : 물리고 싶다는 말?

율 : 그럴 리가~ 아픈 거 시러 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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