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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20화 (120/340)

제120화

자기도 무서우면서 아닌 척 발뺌하다니. 청이 괘씸해 일부러 세게 말했더니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생각해 보니까 그냥 싫어. 귀신 생긴 게 마음에 안 든다.”

“너도 본 적 있어?”

“아니.”

“그런데 어떻게 알아. 난 오늘 진짜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티비 보면 나와.”

청의 경우에는 학습된 공포였다.

데이즈 공식 쫄보 두 사람은 화해의 의미로 서로의 어깨를 털어 주었다. 귀신은 자기 이야기를 알아듣고 몸에 붙어 해를 입힐 수도 있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있잖아.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저 방에 귀신 있다며.”

“응. 내가 분명히 봤어. 내 머리도 이렇게 만졌다고.”

“아악! Hey! Don’t touch me!”

저를 건드리는 손가락에 청이 소스라치며 멀어졌다.

“아니, 그냥 설명해 주는 거잖아. 재연! 귀신 하나도 안 무섭다더니 완전 개뻥이구먼!”

“모라는 거야. 그러지 말고 우리 율무 깨워서 저 방에 집어넣자. 율무보고 잡으라 그래!”

백야가 저 방에서 귀신을 봤다고 하니 청도 조금은 꺼려지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막내 둘이서 바들바들 떠는 사이 새벽이 밝았다. 알람이 울리기 10분 전에 눈이 떠진 민성은 거실로 나오다 소파에 널브러진 인영을 보고 뒷걸음질 쳤다.

“뭐야, 왜 여기서 이러고 자?”

민성이 불편한 자세로 소파에 구겨져 있는 두 장정에게 다가갔다.

“창문은 왜 또 열어 놨어?”

귀신을 내보내기 위한 행동이었음을 모르는 민성은 닭살이 돋은 팔을 문지르며 창문을 닫았다. 6월이라도 새벽 공기는 제법 차가웠다.

“아니, 이것들이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야, 일어나. 백야야, 청아.”

민성이 막내들의 어깨를 흔들었다.

“…모야.”

청이 눈을 끔뻑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밤새 한숨도 못 잔 백야는 낑낑거리며 소파 구석으로 파고들었다.

“…스케줄 가?”

“아니, 좀 남긴 했는데…. 너희 왜 여기서 이러고 자?”

“몰라. 방에 Ghost 있어.”

“귀신?”

상상도 못 한 대답에 민성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백야가 봤어. 진짜래.”

그 말은 밤새 거실에서 이러고 있었단 말이었다. 작게 한숨을 쉰 민성은 백야를 한 번 더 흔들어 깨웠다.

“백야야, 너 피곤해서 그래. 여기서 이러지 말고 청이랑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제대로 자.”

그러나 백야는 싫다며 칭얼거릴 뿐이었다. 자기는 방을 버렸다나 뭐라나.

곧 죽어도 소파에 있겠다는 똥고집에 민성은 결국 제 침대를 내어 주었다.

“그럼 내 침대에 가서 자.”

그러자 벌떡 일어난 백야가 민성의 방으로 비척거리며 움직였다. 눈을 반만 뜬 청도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 * *

[뱀파이어는 이 안에 있어! : Vampire Castle #2]

퇴근길 지옥철.

지난밤 공개된 자컨을 재생한 뱁쌔는 엄청난 균형 감각으로 흔들림 없이 편안한 시청을 하고 있었다.

로우킥 시리즈의 카페 엔딩 패러디로 끝났던 1편은 팬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다.

- 정원 : 꽃에 물 주기 (0/2)

놀란 율무의 모습으로 시작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2편은 백야 캠으로 시작됐다.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중앙에 자리한 실내 정원. 정원에 입장한 복숭아가 물뿌리개를 찾아 꽃밭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다 나무 뒤로 삐져나와 있는 옷자락을 발견하고 경계 모드에 돌입했다.

[백야 : 거기 누구야!]

[청 : 백야?]

나무 뒤에 숨어 있던 청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백야 : 왜 거기 숨어 있어?]

[청 : 뱀파이어 온 줄 알고.]

[백야 : 네가 뱀파이어인 거 아니야? 너 숨어 있다가 나 죽이려 그랬지.]

개복치가 청을 의심했다. 그러나 양손에 물뿌리개를 든 청은 아니라며 고개를 도리질 쳤다.

[청 : 나 아니야.]

[백야 : 그런데 왜 물뿌리개를 두 개 다 네가 들고 있어? 어쩐지 찾아도 안 보이더라.]

청은 뱀파이어가 미션을 하지 못하도록 물뿌리개를 없앨 생각이었다고 한다.

[백야 : 뱀파이어는 미션 안 해도 돼. 우리가 미션을 못 하게 만드는 게 뱀파이어의 미션이라고.]

[청 : 응. 알아.]

[백야 : 안다고? 근데 왜…. 아니, 너 게임 제대로 이해한 거 맞아?]

[청 : 당근하지!]

[백야 : 근데 왜 방금은 모른척했어? 물뿌리개 숨기고 있었다며.]

[청 : 응!]

열심히 설명하던 백야는 청이 말장난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백야 : 장난치지 말고. 설마….]

[청 : 설마가 사람 잡아.]

의미심장한 대사에 백야는 빠르게 탈주각을 세웠다. 마음속으로 셋을 센 백야가 냅다 줄행랑을 치려는데 청이 조금 더 빨랐다.

[백야 : 아악! 이거 놔!]

[청 : 왜 도망가?]

도망치는 햄스터를 포획한 청이 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백야 : 나 진짜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응? 나 달걀프라이 하나 구웠단 말이야. 벌써 죽을 수는 없어!]

[청 : 죽어?]

[백야 : 네가 죽일 거잖아!]

[청 : 내가? 왜?]

[백야 : 네가 뱀파이어니까!]

[청 : 나 뱀파이어야?!]

바보들의 대화를 끝으로 잠시 화면 조정이 이루어졌다.

오해를 푼 막내즈의 위치는 조금 전과 사뭇 바뀌어 있었다.

[백야 : 너 말을 그렇게 오해하게 하면 돼, 안 돼.]

[청 : 안 돼….]

[백야 : 잘못했어, 안 했어.]

[청 : 했어….]

[백야 : 물뿌리개 이리 내.]

말장난을 치다 백야에게 혼난 청이 물뿌리개를 순순히 바쳤다.

[백야 : 내가 미션 하는 동안 너는 여기서 누가 오나 안 오나 망만 보는 거야. 알겠어?]

[청 : 응.]

양손에 물뿌리개를 쥔 백야가 수돗가로 향했다. 물을 반쯤 채워 마른 화단 앞으로 간 백야는 신나게 물을 뿌렸다.

- 정원 : 꽃에 물 주기 (2/2)

친구 덕에 한 번에 미션을 성공한 백야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물건을 숨겼다.

[청 : 다 했어?]

[백야 : 응. 이제 너도 가서 해.]

[청 : 근데 물 주는 거는 어디 있나?]

백야의 허전한 손을 발견한 청이 눈을 깜빡였다.

[백야 : 자, 따라 해. 자업자득.]

[청 : 자업자득.]

[백야 : 자신이 저지른 일의 결과는 자신이 돌려받게 된다는 사자성어야. 물뿌리개와 말장난으로 나를 속였으니까 그 대가를 돌려받는 거지. 다시 찾아.]

[청 : What?! 너무해!]

[백야 : 네가 나를 속인 게 더 너무하다 이놈아.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찡찡거리며 따라오는 청에 따라오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은 백야가 정원을 뛰쳐나왔다.

같은 시각 지한 캠.

셰프의 속성 과외에도 4차 시도 만에 달걀프라이 굽기에 성공한 지한은 다음 미션 장소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 지하실 : 박쥐 잡기 (0/1)

지하실 계단을 내려온 그는 금방 인기척을 느끼고 걸음을 멈춰 세웠다.

[민성 : 얍! 얍!]

잠자리채를 든 토끼가 낚싯대에 걸린 박쥐 인형을 잡느라 깡충거리고 있었다.

[지한 : 형 뭐 해?]

[민성 : 어, 왔냐? 야 지한아. 박쥐 좀 잡아 봐라.]

투명한 줄에 연결된 인형은 스텝들이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한 : 형 뱀파이어야?]

[민성 : 내가 뱀파이어면. 여기서 이렇게 땀 뻘뻘 흘려가면서 박쥐를 잡고 있겠니?]

이마에 송골 하게 맺힌 땀이며 몰아쉬는 숨소리며, 필요 이상으로 열심히 미션을 수행 중인 민성에 지한도 금세 수긍했다.

[지한 : 아닌 것 같아.]

[민성 : 그래. 난 이제 더는 못하겠으니까 네가 한번 해봐.]

민성이 다음 타자에게 순순히 잠자리채를 넘겨주었다.

[지한 : 그냥 잡으면 되잖아.]

[민성 : 쉬워 보이지? 저래 보여도 생각보다 만만치 않,]

그러나 민성은 말을 잇지 못했다.

[지한 : 잡았는데.]

[민성 : …….]

지한의 잠자리채에 담긴 검은 물체는 민성이 10분을 넘게 폴짝이며 구걸하던 박쥐 인형이었기 때문에.

[민성 : …넌 뭐가 그렇게 쉬워?]

[지한 : 형이 좀 짧나?]

[민성 : 뭐 인마?]

조용히 민성의 몸을 훑는 지한의 시선에 토끼가 앞니를 드러냈다.

사실 민성은 지한과 몇 센티 차이 나지 않았지만, 가운데 숫자가 다르다는 이유로 늘 백야와 묶여 단신 취급을 받고 있었다.

[민성 : 내가 1cm만 커봐라. 나 무시한 놈들 다 복수해 줄 거야.]

[지한 : 뭘 또 복수씩이나. 방금 발언 되게 백야 같았어.]

눈을 부릅뜨며 이를 가는 민성에 지한이 피식 웃었다.

[지한 : 하던 거나 마저 해.]

인형을 꺼낸 지한이 민성에게 다가가 잠자리채를 쥐여주었다. 위로하듯 어깨를 토닥이는 손길에 자존심이 상한 리더는 봉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민성 : 으디 어른을 놀려!]

[지한 : 꼰대야?]

[민성 : 꼰…!]

조또의 발언에 또 한 번 말문이 막힌 리더는 입술을 벙긋거렸다. 평소답지 않게 올라간 지한의 입꼬리가 상당히 얄미워 보였다.

[민성 : 방금 진심이었는데?]

[지한 : 그럴 리가. 말이 헛나왔어.]

그러나 대답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바짝 약이 오른 민성은 지한을 향해 잠자리채를 겨누며 선언했다.

[민성 : 저 그냥 박쥐 대신 고양이 잡을게요.]

[지한 : 여기 고양이가 어디 있어.]

[민성 : 있어. 말하는 고양이.]

[지한 : …나? 그래도 돼?]

[민성 : 되겠니?]

그냥 저를 놀린 지한에게 응징을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민성의 발언에 흥미를 느낀 지한은 오히려 역제안을 해왔다.

[지한 : 그거 재밌겠다. 그럼 형이 나 잡으면 이 박쥐 인형 넘길게.]

갑자기 켜진 또라이 스위치에 민성이 카메라 너머를 힐끔거렸다. 허락을 구하는 눈빛이었다.

다행히 자체 컨텐츠인 만큼 촬영이 자유로운 편이라 스텝들도 딱히 제지하진 않았다.

그리하여 주최 측의 공식 허가를 받고 시작된 민성의 번외 미션 ‘고양이 잡기’.

[민성 : 거기 서!]

[지한 :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네, 저 형이.]

그러나 민성은 철저히 농락당하고 있었다. 민첩한 고양이는 토끼가 휘둘러대는 잠자리채를 요리조리 잘도 피하고 있었기 때문에.

[민성 : 뭐가 저렇게 빨라?]

[지한 : 형. 확실히 짧은 것 같아.]

무릎을 짚은 채 멈춰서 숨을 고르는 민성과 바닥에 앉아 여유를 부리는 지한의 모습이 보였다. 고양이를 노려보는 토끼의 눈이 승부욕으로 번쩍였다.

[지한 : 그냥 박쥐 잡을래?]

[민성 : 아니? 내 사전에 포기란 없어.]

과연 ID 최장기간 연습생다운 발언이었다.

민성도 지쳐 보이고 지한도 슬슬 흥미가 떨어지려던 차라 물어본 거였는데. 저렇게 진심으로 반응해 주니 조또의 입꼬리가 다시 호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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