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22화 (122/340)

제122화

* * *

[나 : 선배님.. 주무세요?]

[나 : 다름이 아니고 혹시 숙소에서 귀신 본 적 있으세요? 남자 귀신이요ㅠㅠ]

[나 : 키도 엄청 크고 턱도 무슨 빗살무늬 토기처럼 날렵하게 생긴 남자 귀신이었어요!]

[나 : 눈을 ㅡㅡ 이렇게 뜨고 뒤에서 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는데 무슨 깊은 원한이 있는 것 같았어요.]

[나 : 이거 보시면 꼭 연락 주세요. 꼭이요! 꼭!]

민성의 침대에서 숙면을 취한 백야는 눈을 뜨자마자 숙소의 전 주인이었던 대환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 뒤로 10시간이 지난 지금.

백야는 음악방송 무대와 1위 후보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서야 그토록 기다리던 답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백야야, 너 없을 때 대환이한테서 전화 와서 내가 받았어. 작업실이었다고 하더라.”

“선배님이요?!”

한달음에 달려간 백야가 남경에게서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메신저 어플 위로 빨간색 배지가 떠 있었다.

[대환 : 백야야 미안. 작업할 때는 폰을 꺼둬서 이제 봤어.]

[대환 : 그런데 숙소에서 귀신이 나왔다고? 어디서?]

무대를 마친 데이즈는 이제 마지막 1위 발표 전까진 자유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통화 버튼을 누르고 싶었지만, 방송국에는 듣는 귀가 많으니 백야는 조금 자제하기로 했다.

흥분한 목소리 대신 현란한 손가락이 액정을 빠르게 두드렸다.

[나 : 선배님ㅠㅠㅠㅠ 한강 보이는 큰 방이요!! 선배님도 보신 적 있으세요?]

[대환 : 스케줄 중이라며. 방금 엔카 봤는데 잘하더라. 라이브가 더 는 것 같네? 유연이도 카메라 잘 찾는 것 같고.]

[나 : 아.. 넵! 감사합니다!]

[대환 : 응. 그런데 그 방이면 나랑 시윤이 형이 쓰던 방인데 난 한 번도 본 적 없어.]

[대환 : 그냥 피곤해서 잘못 본 거 아닐까.]

심지어 대환은 백야, 청이 쓰고 있는 방을 썼다고 한다.

[나 : (덜덜 떠는 햄스터 이모티콘) 아니요??? 심지어 귀신이 제 머리통을 움켜쥐면서 자기랑 놀자 그랬어요.]

[나 : 싫다 그러면 제 두개골을 부숴 버릴 기세였다고요!!]

[대환 : 음... 많이 놀란 것 같네.]

[대환 : 그런데 진짜 못 봤어.]

대환의 본 적 없다는 말에 백야가 좌절했다.

“대환이가 뭐래? 본 적 있대?”

“아니요…. 모르는 귀신이래요….”

백야가 울상을 지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던 남경은 묵묵히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럼 네가 잘못 본 거겠지. 피곤해서 그런 걸 거야. 안 되겠다. 너 자꾸 쓰러지고 헛것도 보고 그러는데 아무래도 기가 허한 것 같아.”

남경이 아주 용한 곳을 안다며 비장하게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지금 당장 연락하면 이번 주 안에는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말에 백야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럼 굿을…?”

“한약 짓자!”

같은 상황 다른 해석에 지켜보던 멤버들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

숙소에 사람이 숨어 있었다면 모를까, 귀신이라는 허황된 주제에 멤버들은 공감해 줄 수도 없어 난감한 상황이었다. 백야와 청을 제외한 멤버들은 모두 귀신을 믿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홀로 심각한 복숭아 앞에서 웃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말을 아낄 뿐이었다.

“백야야, 그럼 당분간 내 침대 쓸래? 내가 청이랑 한방 쓸게.”

헛기침을 하는 척 웃음을 삼킨 민성이 동생에게 선뜻 침대를 내주었다.

“어? 아니야. 그렇게까지 민폐 끼치고 싶진 않은데….”

“괜찮으니까 써. 어차피 짐도 별로 없으니까 침구만 바꾸면 될 것 같은데.”

백야만 챙겨 주는 민성에 또 다른 쫄보가 서운해하며 끼어들었다.

“Hey! 나는?”

“나 있잖아. 나타나면 내가 잡아 줄게.”

귀신의 집에서 유일하게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은 강심장의 발언에 청도 안심했다.

“그래도 조금 미안한데….”

“미안할 것도 많다. 어차피 방이야 돌아가면서 쓰는 건데 뭐. 리더가 괜히 리더겠어? 이런 거라도 해 줘야지.”

“혀엉….”

“그러니까 걱정은 그만하고 투표나 해.”

민성이 대기실 한쪽을 가리키며 주의를 돌렸다. BB9의 무대가 한창인 TV에는 생방송 로고와 함께 문자 투표가 진행 중이었다.

[6월 둘째 주 1위 후보 #1010]

[데이즈 VS 러브유]

“아! 맞다.”

귀신에 정신이 팔려 백야는 음악방송 1위 퀘스트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개복치는 얼른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보냈다.

엄청난 앨범 판매량 덕분에 데이즈는 컴백 1주일 만에 1위 후보에 오르게 됐다.

멤버들과 스텝들의 표를 모두 합쳐 봤자 12표라 결과에 큰 영향은 미치지 못하겠지만, 0.1%의 확률이라도 올릴 수 있다면 백야는 무조건 해야 했다.

투표를 마친 백야가 한결 홀가분해진 얼굴로 핸드폰을 반납했다.

“남경이 형,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래. 1위 발표 얼마 안 남았으니까 얼른 다녀와.”

“넵.”

“백야, 혼자 가지 말고 같이 가야지. 방송국에서 개인행동 금지 잊었어?”

“알고 있어요. 같이 갈 사람?”

“저요~ 저요~”

율무가 손을 들며 일어났다.

마침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며 성큼 다가온 그는 백야의 어깨 위로 팔을 두르며 대기실을 나섰다.

“이것 좀 하지 말라고.”

“그치만 편한걸~ 그런데 오늘따라 좀 따끈하다? 너 열나?”

“아악! 징그럽게 왜 남의 얼굴을 만지고 난리야!”

“윽.”

자비 없는 엘보우 공격에 율무가 배를 움켜쥐며 걸음을 멈췄다.

약하게 한다고 했는데 저도 모르게 힘이 실렸나.

당황한 백야가 움찔거리며 율무를 살폈다.

“야. 괘, 괜찮아?”

백야가 율무의 어깨를 살며시 흔들었다. 그러던 그때,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백야야, 율무야. 오랜만이다.”

하랑이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던 중인지 그의 손에는 물기가 묻어 있었다.

웬일로 저에게까지 인사를 다 해 주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보는 눈들이 많았다. 투리구슬이 따로 없었다.

불청객의 등장이 아니꼬웠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백야도 웃는 얼굴로 하랑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그러게, 오랜만이다.”

백야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던지 찰나지만 하랑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런데 율무는 왜 이래? 아까 잠깐 봤는데… 네가 때린 거야?”

목소리가 조금 전보다 커진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하랑의 웃는 낯짝을 보자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 백야는 마음속으로 ‘참을 인’자를 새겼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내가 율무를 왜 때려?”

“방금 때렸잖아. 율무야, 괜찮아? 많이 아파 보이던데.”

하랑은 여전히 사람 좋은 척을 하며 백야를 멕이고 있었다.

지난 연말 시상식에서 얻은 하랑 PTSD가 올 것 같은 백야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일종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사이 하랑은 율무의 어깨 위로 손을 뻗고 있었는데. 누구보다 치대기를 좋아하는 애가 웬일로 닿기도 전에 먼저 몸을 피했다. 마치 닿기를 꺼리는 것처럼.

“아뇨, 그럴 리가요. 관심 좀 받아 보려고 일부러 아픈척한 건데.”

“아… 그래?”

“네. 신경 써 주신 건 감사한데 사람들이 오해하겠어요.”

둘이 친한 거 아니었나. 웬 존대.

딱딱해진 율무의 말투에 백야가 옆을 힐끔거렸다. 묘하게 기분 나빠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 다행이고. 아, 그런데 데이즈 1위 후보 올랐던데. 축하해. 이번 앨범 반응 좋은 것 같더라.”

“감사합니다~ 저희 팀워크가 워낙 좋아서요.”

율무는 백야가 알던 모습으로 금방 돌아왔다.

그러나 하랑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스트레스 지수가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중인 백야는 중간쯤부터 율무를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갑자기 머리가 좀 띵한데.’

기분 탓일 확률이 컸지만, 당장 눈앞의 하랑이를 치우든 제가 자리를 뜨든 해야 할 것 같았다.

“저기, 우리는 이만 가 볼게.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나율무 가자.”

백야가 팔을 잡아끌며 보채는데 갑자기 코안으로 따뜻한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투둑-.

신발코와 바닥 위로 붉은 액체가 떨어졌다.

[경고!]

[스트레스 지수가 ‘심각’ 단계입니다. 90%]

“아… 미친.”

창백해진 백야가 급히 코를 틀어막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스트레스 지수를 안정권으로 낮춰 놓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90%라니.’

하랑이가 이렇게나 강력한 존재였나 싶어 머리가 핑 도는데, 순간 새벽에 있었던 귀신 소동이 떠올랐다.

기억이 가물가물했으나 그때 ‘주의’ 단계의 경고창을 본 것도 같았다.

결론은 제 부주의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었다.

“너 왜 그래?!”

“야, 나 괜찮아. 호들갑 떨지 마.”

“괜찮긴 뭐가 괜찮아!”

제법 쏟아지는 코피에 백야의 손과 소매는 어느새 피로 범벅이었다.

“코 뒤로 젖히면 안 돼. 숙여.”

“…어? 어.”

하랑도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지 벙찐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지혈하듯 백야의 콧잔등을 누른 율무가 다시 대기실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하랑은 이미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백야야~ 어… 하랑 님도 계셨네요.”

마침 지나가던 BB9의 금일이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그러나 백야의 상태를 확인하곤 금방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너 왜 그래. 얘 왜 이래요?”

“아… 금일아. 오랜만.”

“너 꼴이 이게 무슨…. 설마 저 새끼가 쳤어? 옆에 너희 멤버도 있는데?”

하랑과 율무를 번갈아 본 금일이 작게 속삭였다.

‘팰까.’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금일은 백야에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 오케이. 너의 텔레파시는 충분히 통했어. 일단 잠깐만 기다려.”

화장실로 달려간 금일은 휴지를 뭉텅이로 뽑아와 백야의 손에 들려 주었다. 하필이면 하얀 의상을 입고 있어서 붉은 선혈이 더 눈에 띄었다.

“좀 닦아 봐, 너 지금 완전 호러야. 그런데 율무 씨 왜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

“아, 그게…. 피도 안 멈추고 얘가 너무 어지러워해서 움직일 수가 없네요.”

율무가 곤란해하며 대답했다.

“초면에 죄송하지만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매니저분 모셔오면 될까요?”

“네? 네. 감사합니다. 부탁 좀 드릴게요.”

마음 같아서는 들쳐 업고 가고 싶지만, 지혈도 잘되지 않아 복도 가운데 발이 묶여 버린 상황이었다.

졸지에 동물원 원숭이로 전락한 백야가 바닥에 앉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아파?”

“아니…. 쪽팔려서….”

“정신은 멀쩡한가 보네.”

쪼그려 앉아 숨을 고르는 사이, 백야는 포인트를 털어 스트레스 지수를 1%로 낮춰놓았다.

‘죽을 뻔했다.’

반면 개복치, 개복치 하더니 정말 개복치라도 되어 버린 거냐며 율무는 속상해했다.

남경과 금일을 기다리는 사이 시간이 다가오는지 대기실 문이 열리며 가수들이 한두 팀씩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야, 안 되겠다. 난 됐으니까 너라도 빨리 가.”

“장난해? 입 다물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할 거면.”

“내가 무슨 죽을병 걸린 것도 아니고 그냥 코피잖아. 그래도 우리 1위 후보인데 올라는 가야지.”

이제는 괜찮아진 백야가 율무의 손을 떼어 내며 등을 떠밀었다. 그러자 율무가 얼굴을 굳히며 정색했다.

“그게 아니라 나는 너까지 혼날까 봐….”

“조용히 해.”

개복치의 난 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화가 나 보이는 율무에 백야도 더는 재촉하지 않았다.

결국 본전도 못 건진 백야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말없이 휴지를 돌돌 말던 개복치는 율무의 눈치를 보며 슬쩍 콧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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