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화
* * *
- 데둥이들 데뷔 첫 1위 너무너무 축하해♥
- 엔카 앵콜 무대 눈물 없인 볼 수 없어ㅠㅠㅠ 와이엠 아이 꾸라잉ㅠㅠ
└ 눈물의 1위 앵콜ㅠㅠㅠㅠ
- 그런데 1위 발표 때 왜 백야 혼자 셔츠 입었지?
└ 심지어 조금 늦게 올라왔어요. 무슨 일 있었나..?
- 민성이 앵콜하는 내내 3분 동안 바들바들 떨면서 울었어... 나잉이 억장 무너짐 (영상)
- 웃으면 안 되는데 백야 우는 거 너무 뿌에앵ㅋㅋㅋㅋㅋ (백야.gif)
- 형 라인 눈물 없다면서요ㅠ 민성이랑 율무가 제일 많이 울던데?
└ 저 둘이 연생 제일 오래 한 애들이라 그래요
- 유연이 안 울려고 입술 꾹 깨문 거 맴찢 (유연.gif)
- 저기.. 저희 집 햄스터가 꽃가루를 먹었는데 뱉지를 않았어요... 아무래도 먹은 게 틀림없는 것 같은데 (백야.gif)
└ 저도 직캠 다 봤는데 뱉지를 않았다고요! 진짜 먹은 거야???
- 복숭아 울어서 그런가 오늘따라 볼따구가 더 분홍빛♡
- 오늘 음방 복도에서 남자 아이돌 피 토하고 난리도 아니었음. 일하면서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아이돌 극한 직업 맞음. 저런 몸 상태로 무대하고 스케 뛰면 골로 가는 거 순간인데 개불쌍. 저러고 1위 발표할 때 다시 올라왔던데 진짜 리스펙
└ 피를 토했다고요..? 님 완전 놀랐겠어요ㅠㅠ 근데 그 아이돌은 음방 뛸 게 아니라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괜찮아야 할 텐데
└ 그러니까요ㅋㅋ 진짜 호러였어요.. 다행히 매니저가 와서 데려감
└ 인증 없으면 믿거
└ 초멘 죄송한데 어느 그룹인지 알 수 있을까요?
└ 나도 들었는데 코피 아니었나? 피토였음??
- (인용) 너무 멀리 간 거 아는데 오늘 백야 혼자 옷 갈아입고 올라온 거도 그렇고.. 이거 우리애 이야기 아닌가 싶어서 나 지금 손떨려...
└ 저도 저 글 봤어요.. 백야 앵콜 부를 때도 호흡이 좀 버거워 하는 것 같긴 했는데 설마요ㅠㅠㅠ 애들 곧 팬싸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봐요ㅠㅠ
└ 그렇겠죠? 제가 너무 간 거겠죠?ㅠㅠㅠ
[데이즈 팬 사인회 : 당첨자 확인 (1층 로비)]
NAN 첫 1위를 한 날에 첫 팬 사인회라니!
사인회 참석을 위해 꽃단장을 한 복쑹이 안내를 따라 로비로 이동했다.
“저… 팬싸 당첨됐는데요.”
“신분증하고 당첨 문자 보여 주세요.”
“여기요.”
복쑹은 간단한 본인 확인을 거친 후에야 입장권을 교환할 수 있었다.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든 그녀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바로 입장했는데.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공연장은 벌써 꽉 차 있었다.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 복쑹은 먼저 도착했다던 SNS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 저 도착했어요! 이따가 끝나고 봬용! 오늘 집에 안 보내드림. 첫차 타고 들어갈 생각하세여.]
생애 첫 팬싸에 복쑹은 많이 들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시윤뷘에게 팬싸 주의 사항과 꿀팁을 전수받은 그녀는 앨범 사이로 삐죽삐죽 튀어나온 포스트잇을 내려다봤다.
시윤뷘 가라사대. 멤버별로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미리 포스트잇에 적어 가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조금 더 욕심을 내면 주접 드립을 준비해 가도 좋다 했지만, 데이즈도 사인회를 몇 번 경험해 본 만큼 웬만한 드립은 거의 다 들어 봤을 거라며 크게 추천하진 않았다.
복쑹이 말주변이 없는 친구라는 건 누구보다 그녀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드디어 백야를 본다!’
복쑹이 설레는 마음에 다리를 달달 떨었다.
시계를 보니 8시 5분. 데이즈는 예정 시간을 조금 넘긴 뒤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둘 셋.”
“For your days! 안녕하세요. 데이즈입니다!”
나란히 선 데이즈가 허리를 숙이자 화답하듯 커다란 함성이 돌아왔다.
간간이 들리는 셔터음에 복쑹이 주변을 돌아보자 누구의 홈인지 모를 홈마들이 몰래 멤버들을 찍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민성입니다. 음… 저희가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 조금 늦었어요. 기다리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 그리고 백야가 눈이 조금 충혈돼서 부득이하게 안대를 착용하게 됐어요.”
“민성도 안경 썼어!”
첫 1위에 평소보다 텐션이 올라간 청이 소리쳤다. 생목인데도 소리가 커 뒤까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하하. 네, 제가 아까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이 조금 부었더라고요.”
“Crybaby!”
“울보…. 아무튼 그렇게 됐어요. 나잉이 여러분 괜찮죠?”
긍정의 함성이 돌아왔다.
“네. 그럼 바로 사인회 시작할게요. 아! 너무 보고 싶었어요.”
민성의 애교 섞인 멘트를 끝으로 멤버들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중간 번호인 복쑹은 아직 제 차례가 오려면 한참 남았으니 그사이에 생눈으로 백야나 실컷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충혈이라니! 아까 너무 울어서 그런가?’
그녀의 최애는 보이는 것만큼이나 연약한 게 틀림없었다.
눈물로 엉망이 된 메이크업을 수정하면서 볼 터치에 힘을 줬는지 백야의 볼은 유독 분홍빛이 돌았다. 발그레한 두 볼이 잘 익은 복숭아 같아서 너무 귀여웠다.
그런데 옆에서 안타까움 섞인 혼잣말이 들려왔다.
“백야 진짜 아픈가 봐….”
“초멘, 아니, 초면에 죄송한데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복쑹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앗. 안녕하세요. 그게…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짹에서 안 좋은 글을 좀 봤는데….”
초면의 나잉이는 자신이 리짹한 글을 보여 주었다.
남자 아이돌이 복도에서 피를 토했다. 그런데 백야는 오늘 1위 발표 때 혼자만 옷을 갈아입고 올라왔고, 앵콜 때 거칠게 호흡하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고스란히 들어왔다.
고로 저 글의 주인공은 데이즈 백야가 의심된다는 꽤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에이… 설마요.”
고개를 번쩍 든 복쑹이 앞을 바라봤다. 그녀의 작고 귀여운 복숭아는 방긋방긋 웃으며 팬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글을 보고 나니 갑자기 애가 좀 아파 보이기는 것 같기도 하고….’
저 핑크빛 볼이 블러셔가 아니라 열감으로 인해 달아오른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 새끼가 아픈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의 싹이 튼 순간부터, 복쑹은 백야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안대를 추켜올리는 것도 눈이 아파서 그러는 것 같고, 긴장감을 떨쳐 내려 작게 숨을 내뱉는 것도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처럼 보였다.
‘안 돼에에에.’
복쑹의 눈물이 마음속에서 한강을 만드는 동안 어느새 그녀의 차례가 다가왔다.
“다섯 번째 줄 준비해 주세요.”
눈물을 머금은 복쑹이 선물과 앨범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첫 사인은 공룡 모자를 쓴 율무였다.
“안녕하세요~ 식사는 하셨어요? 사인회 시간이 너무 늦죠.”
“네, 저는 밥 먹었어요. 율무… 님도 식사하셨나요.”
“그럼요~ 저는 먹기 위해 운동하거든요.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셔도 돼요. 율무라고 그냥 부르셔도 되는데?”
아까 중학생 팬분도 자신을 ‘율무야’라고 불러 주셨다며, 친근감이 느껴져서 오히려 좋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사이 복쑹이 미리 표시해 둔 페이지를 찾아 사인을 시작한 그는 한쪽 귀퉁이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을 발견했다.
“어? 이거 혹시 제가 체크하면 되는 건가요?”
“네? 네!”
[Q. 백야가 율무를 때렸다. 이때 잘못한 사람은?
① 때린 백야
② 맞은 율무
③ 보고 있던 지한이
④ 지나가던 청]
포스트잇을 본 율무는 고민할 것도 없이 3번을 체크했다.
“에이~ 이건 너무 쉽다. 3번, 보고 있던 지한이. 왜 보고만 있어요? 어서 날 구해 줘야지~ 그래, 안 그래?”
율무가 막 사인을 끝낸 지한에게 치대며 장난을 걸었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지한은 옆을 돌아보며 얼결에 그렇다 대답했다.
“들으셨죠? 지한이가 잘못했대요~”
“그런데 뭘 잘못해?”
“그런 게 있어~”
이동하라는 스텝의 말에 복쑹이 한 걸음 옆으로 움직였다.
“안녕하세요. 복쑹 님.”
“아, 안녕하세요.”
핸드메이드 귀도리를 한 지한이 새침하게 인사했다.
고양이 상 연예인을 많이 봐 왔지만, 지한만큼 완벽한 고양이는 처음이었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눈꼬리에 실례인 줄 알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편 복쑹이 표시해 둔 페이지를 찾느라 앨범을 뒤적이던 지한은 강렬한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입술을 달싹이는 게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잠깐 행동을 멈추고 눈을 맞춘 지한은 복쑹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전 준비됐어요.”
“…네? 뭐가요?”
복쑹이 어리둥절해 하자 지한은 살짝 당황했다.
“아… 뭐 준비해 오신 거 아니셨어요? 저한테 할 말 있으신 줄 알고, 죄송해요.”
“앗! 아니에요. 전 그냥 너무 잘생기셔서….”
“가, 감사합니다.”
지한이 쑥스러운지 볼을 붉혔다.
고개 숙인 지한은 얼른 앨범 위로 사인을 하는데, 마찬가지로 귀퉁이에 붙은 포스트잇을 발견했다.
“이건 저한테 물어봐 주시는 건가요?”
“네! 하나만 골라 주세요.”
[Q. 어느 날 갑자기 고양이가 됐다! 집사로 간택하고 싶은 멤버와 이유는?]
진지하게 고민하던 지한이 포스트잇 위로 이름을 적었다.
[민성]
“율무랑 청이는 절 놀아 준다는 이유로 귀찮게 굴 것 같고, 백야는 제 뒤를 졸졸 따라다녀서 오히려 제가 챙겨 줘야 할 것 같아요. 그럼 남는 건 민성이 형이랑 유연인데, 아무래도 반려견을 키워 본 쪽이 좀 더 편하지 않을까 해서 민성이 형을 골랐습니다.”
지한은 이유까지 들어가며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과연 래퍼라 그런지 귀에 때려 박히는 딕션하며 적당한 타이밍에 끊어지는 호흡과 중저음 톤의 목소리는 황홀하기까지 했다.
‘순간 잠들 뻔.’
지한의 목소리를 듣고 불면증이 나았다는 후기를 본 적이 있는데 오늘로써 복쑹도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저… 그럼 혹시 제가 질문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대화 주제가 고갈된 복쑹이 쭈뼛거리자 지한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네! 물론이죠!”
“피자 몇 조각까지 드실 수 있으세요?”
“…피자요?”
조또의 기습 공격에 복쑹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울산 어딘가에서 쌀이나 축내고 있을 자신의 혈육이었다면 얼굴을 문대버렸겠지만, 눈앞에 있는 건 다름 아닌 지한.
반짝거리는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고양이를 차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손가락을 접어 가며 진지하게 계산해 보던 복쑹은 마침내 세 조각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지한 님은요?”
“저는 여섯 조각이요.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한이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앨범을 돌려주자 경호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동하실게요.”
얼떨떨한 복쑹이 스텝의 안내에 따라 옆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감기약에 취해 물렁해진 복숭아가 저를 올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태어난 지 527일♡]
백야는 리본 화환을 목에 걸고 있었는데, 차마 맨정신으로는 볼 수 없는 귀여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