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화
* * *
[백야 오늘 말랑 복숭아 그 자체였음ㅠㅠ 애기 1위 했다고 신나서 볼 발그레해 가지고 누나 누나 하는데 진짜 죽고 싶었다]
[청이 말 너무 많이 해서 오히려 팬들이 “아 진짜요?” 하고 있음ㅋㅋㅋㅋㅋ]
[포카에 사인 안 된다는 소리를 들어서 지한이한테 몰래 <립스틱 포카> 내밀면서 이거 해 주시면 안 되냐고 했는데... 지한이가 머뭇거리면서 스텝들 눈치를 보는 거예요.
그래서 역시 안 되나, 하고 포카를 다시 숨겼는데 갑자기 지한이가 제 앞에서 개 섹시하게 입술을 문질렀습니다. 여러분.
나는 사인 말한 건데 흑... 근데 오히려 좋아.
(한지 립스틱 프리뷰.jpg)
└ 한지 프리뷰 떴을 때 애 입술이 왜 저런가 했더니 이분 때문이었어ㅠㅠ 감사합니다 선생님ㅠㅠㅠ]
[민성이한테 이 중 하나만 골라서 유앱을 한다면 뭘 고를 거냐 물었더니 전부 해주겠다면서 제 포스트잇 가져갔어요ㅠㅠ 도스윗♡
1. 교복 입고 놀이동산 유앱
2. 제주도 한 달 살기 유앱
3. 데이즈 콘서트 티켓팅 유앱
4. 크리스마스 유앱]
[백야 1위 한 거 너무 기뻐서 엉엉 울었더니 눈이 충혈됐다고 안대 끼고 나왔어요ㅠㅠ 마음 아픈데 그게 또 너무 잘 어울려서 하...]
[백야 안대가 너무 하얘서 더 아파 보인다니까 애기 시무룩해서
백 :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스티커 같은 걸 좀 붙여볼까요?
나 : 헉! 저 스티커 있어요!
마침 탑꾸하려던 스티커가 있어서 그거 줬더니 민성이가 바로 붙여 줬다♡]
[율무한테 요즘 제일 하고 싶은 거 뭐냐고 물어보니까 여름에 드리밍 콘서트 나가보고 싶다 함! 드콘 관계자분들 뭐 하세요? 당장 데이즈 부르지 않고
└ ID 일해라]
[청이 한국 오기 전까지 샌프란시스코에서 쭉 살았대요! 수영 엄청 잘해서 별명이 샌프란 Sea lion (바다사자)였답니다ㅋㅋㅋ 수영 좋아한대요!]
[백야한테 1위 앵콜 때 왜 혼자만 셔츠 입고 올라왔냐니까 진짜 예쁘게 웃으면서 비밀이랬다ㅠㅠ 얼굴에 홀려서 왜 비밀이냐고 물어보지도 못함]
[유연이한테 깨물하트 해달라 했더니 하트 깨물었다가 다시 뱉어서 동그라미 만들어 줌ㅋㅋㅋ 깨물하트는 백도가 전문이래요~]
[율무 평소보다 좀 텐션 낮지 않았어? 1위 하고 텐션 개 높아져서 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차분했음.. 평소보다 장난도 덜 치고 어디 아픈가?]
침대에 누워 서치를 하던 율무가 머리를 헝클였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그는 발을 튕기며 답답해했다.
나름 표정 관리를 한다고 한 것 같은데 티가 난 모양인지 태도를 언급하는 글들이 간간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왜 그랬지….”
앵콜 무대 이후, 제 눈치를 보며 졸졸 따라다니는 백야를 시종일관 무시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아 몰라.”
사실 숙소에 오면 얘기나 좀 나눠 볼까 싶었는데 민성이 홀라당 채가는 바람에 씻고 눕는 것밖에 할 게 없기도 했다.
마음이 답답한 율무가 한숨을 쉬며 몸을 뒤집었다. 그러자 빨간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남자 귀신이 절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악!”
“나율무.”
“아 씨, 깜짝이야.”
율무가 가슴을 짚으며 몸을 반대로 돌렸다. 그러자 햄스터의 앞발이 그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나랑 이야기 좀 해.”
“뭐. 할 얘기 없어.”
방금까지 후회했으면서 입만 열면 말이 제멋대로 튀어나왔다.
뱉자마자 후회한 율무는 입술을 짓씹으며 마음속으로 이불 킥을 마구 날렸다.
다행히 백야는 개의치 않는지 먼저 침대에 걸터앉으며 그의 옷을 죽 잡아당겼다.
“좀 일어나 봐.”
“왜 이래.”
“일어나 보라고. 애도 아니고 삐쳐 가지고.”
“너 시비 걸려 왔냐? 아픈 주제에 가서 잠이나 자. 내일도 스케줄 풀이야.”
율무가 발끈하며 받아쳤다. 대형견의 입질에 움찔거린 햄스터가 옷자락을 놓으며 사과를 툭 던졌다.
“이건 또 뭐…. 너 지금 나랑 장난하냐?”
“왜, 너 장난 좋아하잖아. 기껏 생각해서 가져왔더니.”
“이거 먹고 닥치라고?”
“아오, 저 조동아리 진짜. 왜 그렇게 유치하냐? 미안해. 미안하다고.”
계속해서 유치하게 나오는 율무에 백야도 살짝 발끈할 뻔했으나 참아 냈다. 그리곤 계속해서 간지러운 소리를 이어 갔다.
“그리고 고마워. 저번에도 그렇고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서.”
“…….”
“변명 같겠지만 오늘 일은 정말 몰랐어. 나 진짜 멀쩡했는데 갑자기 그러네.”
율무가 무표정한 얼굴로 백야를 바라봤다. 그러자 제 발 저린 개복치가 안 해도 될 말을 꺼내 그의 심기를 더욱 거슬렸다.
“아픈 거 티 내면 너희가 걱정할까 봐 그랬어. 그리고 어차피 시간 지나면 다 나을 거고….”
백야는 말하면서도 율무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어차피 시간 지나면 낫는다고? 넌 그게 지금 하루 종일 너 걱정한 사람 앞에서 할 소리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됐다. 너랑 할 얘기 없을 것 같으니까 그냥 나가라. 앞으로 코피가 터지든지 말든지 신경 안 쓸 테니까.”
다시 누우려는 율무에 마음이 급해진 백야가 손을 뻗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잡아당긴 게 멱살일 건 또 뭐란 말인가.
“야.”
“미, 미안! 고의는 아니고 네가 자꾸 나랑 말 안 하려고 하니까….”
“야, 선을 내가 그었냐? 네가 먼저 그었지!”
율무의 목소리가 제법 커서 방문 너머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그 시각 바깥에서는….
“율무 형 단단히 삐쳤나 본데? 저 형 한 번 삐치면 뒤끝 작렬인데. 백도 어떡하냐.”
방문에 귀를 댄 유연이 안타까운 얼굴을 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율무가 서운할 만했지. 쟤가 그동안 백야 신경 많이 쓴 건 사실이잖아. 우리도 놀랐는데 쟤는 어떻겠어. 두 번 다 같이 있었잖아.”
유연의 옆에서 같이 이야기를 듣던 지한이 생각을 밝혔다. 그러자 쪼그려 앉아 방문에 귀를 바짝 붙이고 있던 청이 고개를 들었다.
“지한, 왜 율무 편들어?”
“편드는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거야. 백야 쓰러질 때도 같이 있던 게 율무였잖아. 그날 불안해하던 거 못 봤어?”
불금 녹화 당일, 덕진과 숙소로 돌아온 율무는 충격을 크게 받은 것 같았다.
하루 종일 같이 있었는데 아픈 것도 몰랐다며 어찌나 자책하던지. 지한과 민성이 저 덩치만 큰 놈을 달래느라 꽤 애를 먹었다.
“덩치만 컸지 알맹이는 애야.”
지한이 무심한 얼굴로 율무의 여린 성정을 대변했다. 그러자 이야기를 듣던 민성도 그 부분은 인정하는 바라며 고개를 주억였다.
“강한 척해도 확실히 여리기는 하지. 정도 많고.”
“맞아. 생각해 보니까 저 형은 시끄러울 때가 제일 나아.”
유연이 민성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때까지도 방문 너머에서는 율무와 백야의 투닥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저러다 진짜 싸우기라도 하면 어쩌냐며 청이 문고리를 잡으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가라앉으며 백야의 진지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진짜 이것까진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내가 어렸을 때 조금 아팠어. 그래서 부모님이 많이 힘들어하셨어.”
갑자기 튀어나온 백야의 개인사에 율무도, 엿듣고 있던 멤버들도 모두 당황했다.
어쩐지 들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방문에서 떨어지려는데 민성이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밤마다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우는데 나는 그게 너무 싫었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걱정하고 힘들어하는 게.”
“…….”
“웬만하면 참는 게 습관이 돼서 그래. 그래서 내 상태에 좀 둔한가 봐. 정말 일부러 말 안 한 거 아니야.”
갑자기 쓰러진 건 퀘스트 실패로 인한 페널티였고 코피가 터진 건 스트레스 지수 관리 소홀로 인한 사고였지만, 이대로 말할 수는 없으니 백야는 적당히 둘러댈 뿐이었다.
물론 민성에게도 똑같이 말했다.
그러다 마지막은 너희도 힘든데 티 안 내는 건 똑같지 않냐며 멤버들을 걸고넘어졌다.
“그러면서 왜 다들 나한테만 힘든 거 말하래? 내가 진짜 뛰어내리기라도 할까 봐 그러냐? 그때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지.”
“응…. 그때 나도 네 대답에서 확신을 받았어.”
“그럼 이제 내 말 믿는 거야?”
“믿을게. 아니, 믿어.”
얌전해진 율무가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며 무릎을 꿇었다. 백야의 과거사를 듣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만들어진 자세였다.
“아무튼. 그런데 그것 때문에 네가 이렇게 식음을 전폐하면서까지 속상해할 줄은 몰랐다. 내 불찰이야.”
“아니, 뭘 또 그렇게까지…. 나도 식음을 전폐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돌도 씹어 먹는 애가 6년 만에 처음으로 저녁 굶었다고 민성이 형이 걱정 많이 하더라.”
“그건 그냥 팬 사인회 때문에 긴장해서 그런 거지. 유난은….”
“그치? 네가 생각해도 유난이지?”
“응.”
“거봐. 나도 네가 누나보다 날 더 끔찍이 생각하는 것 같아서 가끔 좀 징그럽고 그래.”
“뭐라고?”
기분을 풀어 주려는 듯 먼저 농담을 건네는 백야에 율무의 기분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아까 민성이 형이 그러더라. 혹시 멤버들이 아직 불편하냐고.”
“형이 말 잘했네.”
“절대로 내가 너희를 의지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야. 너희 아니었으면 나도 여기까지 못 왔을 거야. 이건 진심이야.”
“…….”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는 건 그냥 내 성격이 그래. 그리고 나 스스로 해결하던 게 버릇이 돼서 그런 것도 있고.”
“아…….”
“누나한테 짐 되는 게 싫어서 웬만한 건 내가 알아서 했거든.”
사실은 상태창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게 정확한 이유였지만 아무렴 좋았다.
“그리고 너희가 아직 내가 불편해하는 사람을 대할 때 어떤 태도인지 못 봐서 그러는데, 나 완전 성격 있거든? 지금 한 놈 패 주려고 점 찍어 뒀다고.”
“네가 퍽이나 그러겠다.”
백야가 하랑을 떠올리며 주먹을 쥐었다.
“이왕 말 나온 거 나도 뭐 하나만 묻자. 너 숙소 들어오기 전까지 누나네 집에서 살았다며.”
“응.”
“그럼 혹시 부모님은….”
“부모님? 내가 말 안 했던가? 조금 멀리 계신다고. 저기,”
백야의 대답에 율무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그러다 이내 눈시울이 붉어지며 백야를 와락 끌어안았다.
“으갹!”
“너 이 새끼…. 많이 힘들었겠다.”
“아악! 미쳤어?! 징그럽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좀 가만히 있어 봐. 부모님 없이 이렇게 밝게 자란 걸 보니까 너무 기특해서 그래.”
순간 품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리던 백야의 몸부림이 멎었다.
“이 미친놈이? 멀쩡히 살아 계신 남의 부모님은 왜 보내고 지랄이야. 뒤질래?!”
저번엔 저를 죽이려 하더니 이번엔 부모님이냐며 백야가 발끈했다.
율무는 갑자기 입이 걸걸해진 순수 100% 복숭아, 순백이의 태도에 적잖이 당황했다.
“아, 아까 분명히 저 멀리 계신다고…. 누나한테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탁!
백야가 율무의 머리통을 손날로 내려치며 소리 질렀다.
“저 멀리 제주도에서 귤 농장 하신다, 미친놈아! 사람 말을 좀 끝까지 들어!”
율무가 머리통을 움켜쥐며 억울해했다. 눈물이 핑 도는 게 쪼그마한 게 손이 제법 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