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8화
시작하기에 앞서 지한은 70dB을 넘긴 죄로 X 마스크를 5분 동안 쓰고 있어야 했다.
짧은 묵언 수행이 끝나자 그 앞에 B부터 F까지의 학력 평가 문제지가 주어졌다. 지한은 고민 끝에 D형을 골랐다.
응시도 중 70dB이 넘으면 해당 문제는 무효 처리가 된다는 유의 사항을 전달받은 끝에 그는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1. 율무가 좋아하는 음식과 이유를 말하시오. (1점)]
[지한 : 그냥 말씀드리면 되는 건가요.]
[스텝 : 네. 말씀해 주세요.]
[지한 : 사실 먹는 건 다 좋아해서 순위를 매기는 게 의미 없긴 하지만, 프라이드치킨을 제일 좋아해요. 데뷔조에 뽑히고 나서 체중 관리를 시작하자마자 제일 먼저 금지당한 음식이 치킨이었 습니다.]
긴장한 지한이 스텝을 빤히 바라봤다.
잠깐의 정적 끝에 시험지 위로 빨간색 동그라미가 크게 그려졌다.
[2. 메신저 단체방에서 제일 말이 많은 멤버와 적은 멤버는 누구인지 말하시오. (1점)]
[지한 : 말이 많은 건 청이요. 혼자 물어보고 혼자 대답해요. 답이 없어도 계속 말해요. 그리고 적은 멤버는… 저인 것 같습니다. 말주변이 없기도 하고, 그냥 멤버들 이야기를 듣는 게 더 좋아요.]
[3. 데뷔 전 기억에 남는 한 가지를 고른다면? (2점)]
[지한 : 음….]
지한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술을 뗐다.
[지한 : 처음 예명을 들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유연 : 아, 기억난다. 대박이었는데.]
[지한 : 율무나 청이랑 다르게 제 이름은 흔한 편이라 원래는 본명을 쓰지 않을 계획이었어요. 대표님께서 멤버 한 명쯤은 임팩트 있게 가도 좋겠다고 하셔서 후보가 세 가지 정도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먼치킨이었어요.]
[스텝 : 아…….]
[지한 : 고양이 종류 중 하나이기도 하고… 또 가요계의 먼치킨이 되어 세상을 제패하라는….]
말하다 보니 현타가 오는지 지한이 입술을 살짝 짓씹었다.
[지한 :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어서 네 번째 문제.
[4. 청의 핸드폰 배경화면은? (1점)]
[지한 : 가족사진이요. 데뷔조에 막 뽑혔을 때 청이 부모님께서 한국에 오신 적이 있어요. 그때 민성이 형이 가이드해 드리면서 찍어드린 거로 알고 있습니다.]
[5. 잠버릇이 특이한 멤버를 말하고 설명하시오. (1점)]
[지한 : 백야요. 피곤할 때면 잠꼬대를 하는 버릇이 있는데 말을 걸면 다 대답해 주더라고요. 본인이 개복치래요. 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물어보려고요.]
[6. 민성이 자주 쓰는 이모티콘은? (1점)]
[지한 : 귀만 분홍색인 토끼랑 촐랑대는 먼지 같은 이모티콘을 제일 많이 써요.]
[7. 요즘 데이즈가 빠져 있는 게 있다면 무엇인지 말하시오. (2점)]
마지막 남은 보너스 문제. 질문을 읽은 지한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지한 : 나잉이요.]
세상 시크한 고양이는 츤데레 기질이 있었다. 무심한 척하면서 툭 내뱉는 한마디가 가끔 팬들을 미치게 했다.
[스텝 : 일곱 문제 모두 맞히셨습니다.]
정답을 모두 맞힌 지한도 뱀파이어에 대한 힌트가 담겨 있는 서적의 청구 기호를 받아 냈다.
그사이 책을 찾아온 유연은 지한의 옆으로 다가가 내밀었다.
[유연 : 늑대 소년 동화책이야. 아무래도 청을 가리키는 힌트인 것 같은데. 형은? 문제 다 맞혔어?]
[지한 : 응. 책 찾아야 해.]
두 사람은 지한의 손에 들린 청구기호를 확인하며 서재 안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던 그때, 서재 문 쪽에서 큰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문을 강제로 열려는 소리가 들렸다.
[유연 : 쉿.]
지한을 끌어당긴 유연이 책장 뒤로 숨자, 한 번 더 큰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지한 : 내가 잠갔는데?]
[유연 : 문을… 부쉈어?]
팀 내에서 괴력의 소유자는 단 한 명, 율무뿐이었다.
불길한 예감에 몸을 더 깊이 숨긴 두 사람이 책장 틈 사이로 인영의 정체를 확인했다. 그러나 그들의 앞에 나타난 건 의외의 인물이었다.
[백야 : 아무도 없나? 근데 왜 문이 잠겨있지?]
식당에 들러 마늘을 털어 온 백야가 말간 얼굴로 고개를 휙휙 돌려보고 있었다.
최약체 주제에 뽈뽈거리면서 잘도 돌아다니는 햄스터에 지한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백야 : 거기 누구야!]
인기척을 느낀 백야가 주머니 가득 채워 온 마늘을 한주먹 꺼내며 경계 모드에 돌입했다. 여차하면 마늘 폭탄을 던지고 도망갈 기세였다.
[지한 : 나야, 한백야.]
[유연 : 손에 그건 또 뭐냐.]
유연과 지한이 구석에서 걸어 나왔다.
백야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양손을 어깨 옆으로 든 자세였지만, 햄스터의 경계 모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백야 : 내가 너희를 어떻게 믿지?]
[유연 : 백도. 나 못 믿어?]
[백야 : 널 믿느니 차라리 뱀파이어가 되겠어.]
[유연 : 죽겠다고? 나에 대한 믿음이 그 정도밖에 안 돼?]
[지한 : 둘 다 진정해. 한백야, 청이랑 율무가 뱀파이어야. 지금쯤이면 민성이 형도 뱀파이어가 됐을지도.]
어깨를 으쓱인 지한이 다가오려 했다. 그러자 오지 마라며 소리친 백야가 그를 향해 노란빛의 무언가를 던졌다.
툭-.
지한의 가슴을 맞고 떨어진 마늘 한 쪽이 바닥을 뒹굴었다.
[백야 : 거짓말하지 마! 걔 뱀파이어 아니야. 뱀파이어인 척하는 거라고!]
[지한 : …마늘?]
[유연 : 이런 건 왜 들고 다니는 거야. 설마 그 터질 것 같은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게 다 마늘은 아니지?]
[백야 : 그렇다면!]
[유연 : 골 때리네.]
유연이 대놓고 어이없어했다.
툭-.
경계 모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백야가 이번에는 유연에게 마늘을 던졌다.
백야가 얻은 단서에 의하면 뱀파이어는 마늘을 무서워한다고 했다. 마늘을 맞으면 1분 동안 행동불능 상태에 빠진다고 적혀 있었는데….
두 사람은 놀라울 만큼 멀쩡해 보였다.
[백야 : 뱀파이어 아니야?]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햄스터의 원맨쇼를 직관한 사슴과 고양이가 심드렁한 얼굴로 대꾸했다.
[유연 : 아니라고 했잖아.]
이로써 네 말을 믿을 바에 뱀파이어가 되겠다며 소리친 백야만 난감해졌다.
[백야 : 저기, 아까 그 말은 그냥 컨셉….]
[지한 : 진심이었네.]
유연은 마음이 심란한 듯 입술을 말아 물며 고개를 숙였다.
그를 보고 안절부절못하던 백야가 얼른 다가갔다. 자기가 갖고 있던 마늘을 반이나 덜어 준 백야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백야 : 미안. 나 이제 너 믿어.]
[유연 : 이제 와서? 됐거든.]
[백야 : 이거 내 목숨 줄인데 너한테 반 줄게. 뱀파이어한테 던지면 1분 동안 못 움직인대. 그만큼 네가 소중하다는 뜻이야. 아까 그 말은 정말 오해야.]
빵빵하던 백야의 주머니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를 지켜보던 지한이 냉랭하게 물었다.
[지한 : 나는.]
[백야 : 어? 너…?]
유연에게 반이나 덜어 준 바람에 제 몫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 셋 중 가장 약한 본체를 지닌 백야는 당황했다.
그러나 밸런스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먼치킨의 협박에 햄스터는 또 그만큼을 고스란히 바쳐야만 했다.
5분 만에 빈털터리가 된 햄스터의 손에는 겨우 마늘 세 쪽만이 남았다.
[백야 : 저런 악마 같은 놈들….]
[유연 : 뭐라고?]
[백야 : 아무것도 아니야.]
백야가 남은 세 쪽마저 빼앗길까 봐 등 뒤로 숨기며 도리질 쳤다.
[지한 : 그래도 다행이야. 우리가 모여 있어서 저쪽에서 안으로 쉽게 들어오진 못하겠어. 먼저 책부터 찾자.]
[백야 : 책?]
지한이 학력 평가를 완료하고 얻어낸 쪽지를 내밀었다.
[백야 : 여기에 뱀파이어를 처치할 수 있는 단서가 적혀 있다는 거지?]
서재 안으로 흩어진 세 사람은 책을 찾아 다시 가운데로 모였다.
[유연 : 그러니까 모체 뱀파이어의 목에 마늘 목걸이를 걸면 끝나는 거네.]
[지한 : 그게 청이인 거고.]
지한이 찾아낸 ‘내 손으로 만드는 기상천외 DIY’에는 마늘 목걸이를 만들 수 있는 줄과 고리가 들어있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꼼지락거리며 마늘을 끼우던 백야가 삼산을 발견한 심마니처럼 외쳤다.
[백야 : 다했다!]
[유연 : 잘했네.]
별 모양의 마늘 꽃 펜던트를 줄에 거니 제법 근사한 목걸이가 완성되었다.
[지한 : 이제 청이를 어떻게 유인하냐가 문제인데….]
쿵쿵-!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마침 노크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뱀파이어 3인조의 등장이었다.
[청 : 너희는 포위됐다! 오버!]
[율무 : 어차피 갈 데도 없어~ 힘 빼지 말고 한 명씩 줄 서면 차례대로 예쁘게 도장 찍어 줄게~]
[민성 : 한지한. 나 버리고 도망간 데가 고작 여기니?]
한바탕 난리가 났었는지, 얼핏 봐도 민성의 목에는 빨간 도장이 다섯 개는 넘게 찍혀있었다.
떨떠름한 얼굴로 지한의 위아래를 훑던 그는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선언했다.
[민성 : 난 한 놈만 노린다.]
[지한 : 할 수 있으면 어디 한번 해 보시든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 친 지한이 어깨 위로 도끼를 걸쳤다.
[청 : 저거 모냐. 엄청 강해 보이는데?]
[율무 : 저 또라이…. 그거 아직도 안 버렸냐고.]
플라스틱 주제에 진짜같이 생겼다며 율무가 질색했다.
그사이 몰래 유연에게 목걸이를 넘긴 백야는 시선을 끌기 위해 턱을 추켜들며 앞으로 나왔다.
[백야 : 여기 대장은 나야. 나랑 이야기해.]
처음 듣는 이야기에 지한이 눈을 크게 뜨며 백야를 봤지만 햄스터는 당당했다.
[백야 : 청청! 감히 나를 가지고 놀았겠다.]
[청 : 백야만 특별하게 봐준 거야!]
[백야 : 아니?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내가 속는 거 보면서 재미있었냐?]
청의 얼굴을 삿대질로 가리키던 백야가 자연스럽게 주먹을 쥐었다.
[백야 : 넌 주거써.]
청백 2차 대전의 발발이었다.
제작진과의 회의 끝에 3 대 3 전면전을 하기로 한 멤버들은 등 뒤에 이름표를 하나씩 붙인 채 나타났다.
뱀파이어 팀과 헌터 팀으로 나뉘어 서로의 이름표를 뜯어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팀이 이기는 게임.
장소는 서재로 제한했다.
[율무 :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술래가 된 민성과 율무, 청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명씩 흩어져 책상 아래와 커튼 뒤를 살피며 포위망을 좁혀오는 뱀파이어 팀.
반면 백야와 유연, 지한은 흩어지지 않고 조용히 민성의 뒤를 쫓고 있었다.
[민성 : 이놈들이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어디 간 거야.]
리더는 바닥의 카펫을 들춰 보며 지한을 찾고 있었다.
헌터 팀의 대장인 백야가 눈짓하자 나머지 두 사람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성 : 얘네 밖으로 나간 거 압,]
민성이 큰 소리로 외치던 그때, 번개처럼 나타난 유연이 입을 틀어막으며 한쪽 팔을 붙들었다.
반항하듯 몸부림치는 토끼에 반대 팔을 잡아챈 백야가 매달리듯 늘어지자 민성도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민성 : 우읍! 읍!]
[지한 : 형은 내 적수가 못돼.]
마지막에 나타난 주인공 먼치킨은 뱀파이어의 이름표를 뜯으며 한 번에 아웃시켰다.
[뱀파이어 아웃!]
이름표가 뜯기자마자 스텝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청 : 누가 죽었어? 율무냐!]
[율무 : 뭐라는 거야, 민성이 형이겠지. 청 어디 있어? 일단 만나.]
방심하고 있다가 선방을 맞은 뱀파이어 팀이 접선을 시도했다. 그러나 먼저 공격을 개시한 헌터 팀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유연 : 가자. 이제부터는 보이는 사람 아무나 뜯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