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30화 (130/340)

제130화

초동 42만 장을 기록한 데이즈는 엔카운트다운을 시작으로 공중파 또한 줄줄이 1위를 수상하며, 4세대 아이돌 대표 주자로 이름을 올렸다.

4단 고음으로 화제가 됐던 WANT ME와 비교했을 때, 예상보다 부진했던 NAN의 음원 성적도 조금씩 올라가 지금은 실시간 차트 25위에 안착했다.

물론 음반 판매량은 지금도 꾸준히 오르는 중이라 업계 관계자들은 데이즈가 2주 안에 하프 밀리언 셀러를 달성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사실상 데이즈는 첫 정규 앨범으로 완벽한 커리어 하이를 일궈 낸 것이다.

희소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백야야, 잠깐만.”

남경이 멤버들과 장난을 치고 있던 백야를 몰래 불러냈다.

“저요?”

“응.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저만 따로 불러내는 남경에 백야가 겁먹은 얼굴로 경계했다.

“안 잡아먹을 테니까 표정 풀어. 좋은 이야기야.”

“좋은 이야기요? 그런데 왜 저만….”

기어이 연습실 밖으로 데리고 나온 남경이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다. 그리곤 백야만 들을 수 있도록 작게 속삭였다.

“너한테 음악방송 MC 제의 들어왔다.”

“느에?!”

“조용! 조용히 해, 인마.”

“저, 저요? 왜요?”

백야의 반응을 어느 정도 예상했던 남경은 그럴 줄 알았다며 피식 웃었다.

“왜긴 왜야, 당연히 그럴 만하니까 그러지. 쇼 플레이리스트랑 엔 카운트다운에서 들어왔는데 회사에서는 쇼플리를 생각하나 봐. 아무래도 공중파니까.”

“두 군데씩이나요?”

반응이 좋은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백야는 얼떨떨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도 저 말고 유연이나 율무가 더 잘할 것 같은데…. 청이도 있고요.”

백야는 부담스러워했다.

그 마음도 충분히 알 것 같은 남경은 햄스터의 앞발을 소중하게 쥐며 말했다.

“물론 다른 애들도 잘할 수 있지. 그래도 백야야, 너도 충분히 잘할 수 있어. 방송국 사람들 보는 눈 있는 거 알지? 될 것 같은 애들만 쏙쏙 골라 간다고.”

“이거… 제가 한다고 하면 무조건 되는 거예요?”

“그건 아니고. 오디션 봐서 붙어야 해. 그래도 지난번에 뮤직 스테이션에서 스페셜 MC 했던 게 반응이 좋았나 봐. 너 말고 다른 후보도 몇 명 더 오긴 할 텐데 지금 이 기세면 무조건 네가 되지 않겠냐?”

남경이 백야를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이게 엄청난 기회임에는 틀림없었지만, 멤버들 없이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아직 무리인 백야는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는데….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Q. 뜨고야 말겠어!(3) : 핫한 루키들은 다 거쳐 간다는 음악방송 MC! 오디션을 통과해 그룹에 날개를 달아 보자!

※ 실패 시 패시브 강화]

상태창이 뜨자마자 백야는 의사 결정권을 박탈당했다.

“형. 할게요.”

“그래! 잘 생각했어!”

남경은 제가 다 기쁘다며 백야의 머리를 쓰다듬듯 헝클어뜨렸다.

“참, 이거 비밀 유지해야 하니까 애들한테 말하지 말고.”

“멤버들한테도요?”

“그래. 회사에서도 소수만 아는 거니까. 방송국이 이런 거에 예민하거든. 괜히 말 새어 나갔다가 엎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당분간 조심하자.”

“네.”

그래도 기사보다는 먼저 알게 될 테니 너무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며 남경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김유경 : 술 한잔했슴니다]

[김유경 : 당첨이 안 되더라도 좋슴미다... 하디만 이거 하나만은 기억해 주새오]

[김유경 : 진싱을 다해전합니다..]

[신재현 : 어우 술 냄새]

[신재현 : 미쳤냐? 취했으면 곱게 잠이나 잘 것이지 백야님 알람 울리게]

[김유경 : 가진 용똔을 털어 최서늘 다햇슴니다@@@]

[신재현 : ...너두?]

[신재현 : (야나도 짤.jpg)]

단체방에 대화가 제법 쌓여 있길래 봤더니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얘네 무슨 일 있나?’

데뷔 후 몰아치는 스케줄에 친구들을 만나기는커녕 간간이 안부만 주고받은 지도 어언 1년.

50개가 넘는 메신저를 천천히 읽어 보던 백야는 웃음을 터뜨렸다.

[김유경 : 아... 쪽팔려]

[김유경 : 백야 이거 아무거도 아니니까 그냥 씹]

[신재현 : 헉]

실시간으로 사라지는 1에 재현과 유경이 놀란 이모티콘을 보냈다.

[나 :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셨냐]

[나 : 학교 힘들어?]

[김유경 : (레드 카펫 까는 이모티콘) 아니 이런 누추한 곳에 1위 가수님께서!! 백야님 옥체 강녕하시옵니까!]

[신재현 : 백야 부담스럽게 하지 마! 미친놈아]

[나 : ㅋㅋㅋㅋㅋㅋ]

시계를 본 백야가 아직은 여유 있는 시간에 친구들과의 대화를 좀 더 이어 가기로 했다.

[나 : 무슨 일 있어?]

[김유경 :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신재현 : 점이나 떼고 말할래? 저거 죽여 버릴까]

[나 : 무슨 일인데?]

[김유경 : 저기.. 너 팬 사인회 또 안 해?]

‘사인회?’

답장을 하던 백야가 갸웃거리며 달력을 확인했다.

[나 : 글쎄,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사인 CD 필요해서 그래? 내가 보내 줄게]

[김유경 : (눈물 이모티콘)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고!! 넌 내 맘을 몰라 이 바보야ㅠㅠㅠ]

[나 : 그럼 뭔데...]

[신재현 : 사실 너 서프라이즈 해 주려고 사인회 응모했었는데 다 떨어졌다]

[김유경 : 내가 진짜 학식도 제일 싼 거만 먹고 용돈 아껴서 다섯 장이나 샀는데ㅠㅠㅠㅠㅠ 젠장ㅠㅠㅠ]

[김유경 : 입고 갈 옷까지 다 사놨었다고ㅠㅠㅠ]

[신재현 : 그래도 너희 회사 연습실에 전구 몇 개는 내가 갈아 줬다 생각하니까 마음은 좀 편해...]

친구들의 깜짝 고백에 백야는 멍하니 굳어 버렸다.

[나 : 사인회에 오려고 했다고?]

[신재현 : 너 얼굴 못 본 지도 오래됐고.. 물론 우리는 방송으로 매일 보지만 네가 우리 까먹었을까 봐]

[김유경 : 그냥 심심해서 너 일하는데 한 번 가보려 했지ㅋㅋㅋ 야 근데 너 팬 진짜 많더라]

[김유경 : 우리 과에 네 팬 진짜 많음!! 자칭 유연 님 여친도 한 명 있어ㅋㅋㅋㅋ]

백야는 제가 상태창만 신경 쓰느라 놓치고 있는 게 많다는 걸 느꼈다.

[나 : 미안. 연예인 됐다고 너희 잊은 거 절대 아니야]

[신재현 : 알아, 너 바쁜 거]

[김유경 : 내 말이 그렇게 들렸냐? 그런 뜻 아닌데ㅠㅠ]

유경은 대학 생활도 재밌지만, 역시 하교하고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던 때가 제일 즐거웠다며 고등학교 시절 사진을 몇 장 보내왔다.

아침부터 감성에 젖어 촉촉해진 복숭아가 코를 훌쩍거렸다.

“일찍 일어났네.”

“크흠. 응. 나 먼저 씻는다!”

지한의 기척이 들리자 얼른 핸드폰을 뒤집었다. 목이 잠긴 듯 헛기침을 하던 백야는 도망치듯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

지한의 시선이 막 닫힌 욕실 문을 향했다.

최근 민성과 방을 바꾼 백야는 지한의 새로운 룸메이트가 되었는데, 이 복숭아는 첫날부터 수상한 행동을 보여 의심을 샀다.

허공을 보며 멍을 때리는 거야 늘 있는 일이라지만, 어디서 또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다시 핸드폰을 붙잡고 사는 게 은근히 신경 쓰였다.

지난번에는 안무 영상이더니 이번에는 음악방송 모니터링이라니.

‘카메라 못 찾는다는 악플이라도 봤나? 그래서 저러나.’

지한의 생각이 깊어진 사이, 물기를 머금은 복숭아가 수증기를 내뿜으며 나왔다.

“지한아 들어가.”

백야를 빤히 보던 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갔다.

“한백야.”

“으, 응?”

“누가 괴롭히면 말해. 티 안 나게 처리해 줄 테니까.”

격려하듯 백야의 어깨를 움켜쥔 지한이 그를 지나쳐 욕실로 들어섰다.

“…뭐야? 무섭게.”

또라이가 이유 없이 저런 말을 하진 않을 텐데.

공포에 질린 복숭아가 도망치듯 방문을 열어젖혔다. 지한이 나오기 전에 자리를 떠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을 열기 무섭게 마주친 또 다른 인물에 백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으갹!”

“깜짝이야. 난 너 안 일어난 줄 알고 깨우려고…. 백도 괜찮아?”

가슴을 짚으며 주륵 미끄러지는 백야에 유연도 덩달아 몸을 낮췄다.

“제발 소리 좀 내고 다녀….”

“노크하려고 했는데 네가 나왔잖아. 누가 쫓아오냐? 왜 이렇게 허겁지겁 나와.”

혹시 이 방에서도 귀신이 나왔냐는 물음에 개복치가 정색했다.

“죽을래?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아니, 뭘 또 정색을 하고….”

눈빛이 얼마나 매섭던지. 찢어 버릴 듯 노려보는 안광에 유연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사이 마음을 추스른 백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핏 보니 유연은 나갈 준비를 마친 듯 단정한 사복 차림이었다.

“우리 연습실 가는 거 아니야?”

“맞아.”

“근데 뭘 그렇게 빼입었대.”

“이게? 네가 평소에 너무 막 입는다는 생각은 안 하는 거지?”

백야가 초록색 선글라스 티셔츠와 갈색 반바지를 내려다봤다.

“내가 뭐 어때서.”

“우리 숙소에 이런 옷이 있었다는 게 더 놀랍다. 어디서 났냐?”

“작은방에 있었는데. 다른 색도 있어. 찾아줘?”

“아니.”

데이즈에는 패션 센스가 좋기로 유명한 멤버들이 몇 있었는데, 당연히 백야는 아니었고 유연과 민성이 그 주인공이었다.

팬들 사이에서도 옷을 잘 입기로 소문난 그의 눈에 백야의 차림은 패션 테러리스트나 다름없었다.

“빨리 갈아입어. 갖다 버리게.”

“멀쩡한 옷을 왜 버려? 아깝게.”

작은 드레스룸으로 향한 백야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남친룩의 정석을 차려입은 민성이 그곳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정리하고 있었다.

“우리 옷이 언제 이렇게 늘었지? 활동 끝나면 정리 좀 해야겠다.”

팬 사인회에서 받은 선물과 협찬으로 드레스룸 한쪽이 포장도 뜯지 못한 새 옷들로 쌓여 있었다.

그러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민성은 백야를 발견하고 탄성을 뱉었다.

“이야~ 여기 웬 나무가.”

“나무? 어디?”

“거기 있잖아. 유연이 옆에.”

“……나?”

백야가 어이없어하며 자신을 가리키자 유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나무래.”

“우리 백야 부자네? 선글라스를 하나 둘 셋 넷…. 열 개씩이나 꽂고 다니고.”

심플 이즈 베스트를 실천하는 백야는 겨울에는 후드티를, 여름에는 반팔 티셔츠를 애용했는데. 딱히 스타일이랄 게 없는 그는 가끔 난해한 옷차림으로 멤버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뭐 어때. 어차피 똑같은 옷인데.”

머리를 긁적이며 행거 앞으로 간 백야가 옷을 뒤적거렸다. 그러다 제 이름이 적힌 상자를 발견하곤 그 앞에 앉았다.

“이건 뭐야? 다 분홍색밖에 없네. 색깔별로 모아 둔 건가?”

“아 그거? 팬분들이 선물 주신 건데 그건 섞이면 안 될 것 같아서 따로 빼 놨어. 거기 있는 건 다 네 거야.”

“우와! 엄청 많아.”

그냥 구경만 할 생각으로 상자를 뒤적이는데 상태창이 나타났다.

[새로운 퀘스트(히든)가 도착했습니다!]

[Q. 인증 요정 : 사랑은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는 법! 당신의 팬 사랑을 보여 주세요!]

“좋았어. 오늘은 선물 받은 옷 입어야겠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퀘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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