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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34화 (134/340)

제134화

4포인트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계산해 봤지만 그리 오래가진 않을 것 같았다.

한참 활동 기간인 데다 리패키지 준비도 동시에 하고 있는 터라, 체력적 피로도에 의한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초조한 마음에 손톱만 물어뜯는데 누군가 노크를 해 왔다.

똑똑-.

일단 상태창을 모두 닫아 버린 백야는 대충 문을 두드리며 안에 사람이 있다는 티를 냈다.

그런데 바깥에서 한 번 더 노크를 두드려 오는 게 아닌가.

살짝 짜증이 난 백야는 뾰로통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사람 있어요.”

“햄스터?”

상대는 다름 아닌 저를 찾으러 온 청의 목소리였다.

“똥 싸?”

그런데 이런 심각하고 중대한 상황에 똥이라니!

어이가 없어진 백야는 기가 차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니야.”

“근데 왜 안 나와?”

“다른 칸 써.”

“난 똥 안 싸. 유연이 백야 변기에 빠졌다 그래서 구경하러 왔어.”

“야 이…! 진짜 빠졌다는 게 아니라 비유한 거잖아. 내가 너무 늦는다고.”

“나도 알아. 내가 바보야? 근데 백야라면 빠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냥 확인하러 왔어.”

“나는 바보냐?!”

청의 페이스에 말리기 시작한 백야가 칸막이 문을 벌컥 열었다.

“우. 똥 냄새. 물 내려.”

“똥 안 쌌다고!”

백야가 발끈하자 청이 웃으며 백야를 이끌었다.

“그럼 가자. 멤버들 기다려.”

“……가려고 했어.”

여기서 땅굴 파고 있는다고 오류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백야는 못 이기는 척 청의 손에 잡혀 주었다.

“근데 넌 진짜 여기 왜 왔는데.”

“화장실에 빠진 거 구경하러 왔다니까?”

“장난치지 말고.”

“그냥 유연이랑 싸웠나 하고. 녹다운 당해서 울고 있나 했지.”

“한유연 나한테 완전 껌이거든?”

“모라는 거야. 사람이 어떻게 껌이 되나?”

백야는 청이 자신을 걱정했음을 눈치챘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에 어떤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청은 연습실 문을 열자마자 백야를 놓아 버리곤 유연에게 달려들었다.

“이 사기꾼! 백야 화장실에 안 빠졌잖아!”

“너 거기 갔었냐? 어쩐지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나가더라니.”

“내가 왜 도둑이야!”

감동이 채 1분을 가지 못했다.

기분이 착잡해진 백야가 둘을 말리려 다가서는데, 처음 보는 유형의 상태창이 나타나며 시야를 가렸다.

[알림!]

[v.1.2 업데이트]

[v.1.2는 새롭게 추가된 기능을 업데이트합니다.

- 스킬 기능 개선

- 새로운 퀘스트 추가

- 버그 수정]

▶ 업데이트

“우오옵!”

‘버그 수정’이라는 네 글자를 발견한 백야가 너무 기쁜 나머지 소리 질렀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오늘 여러 번 급발진 하는 백야에 멤버들도 슬슬 수상함을 느꼈다.

“쟤도 가끔 보면 많이 이상해….”

민성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당백이가 변비 탈출해서 기분이 좋은가 보다~”

“뭐 인마?”

율무의 날조가 못마땅하지만, 지금 당장 백야에겐 한 줄기 빛처럼 내려온 업데이트 알림이 더 중요했다.

늬들이 망겜을 알아?

죽음의 문턱에서 구사일생 당한 백야는 넓은 아량으로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주기로 했다.

“너희 뭐 마실래?”

주섬주섬 옷을 뒤지던 백야가 핸드폰 케이스에 꽂혀 있던 체크카드를 치켜들었다.

“가자! 내가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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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오늘 카페에서 남돌 봤다!!

추천 167 반대 1 (+84)

분홍색 모자 보고 한눈에 알아봤어ㅜㅜ 요즘 핫한 핑크 보이 (복숭아 이모티콘)

연습하다 나온 건지 편한 차림이었고 계산할 때 리더분이랑 서로 카드 내려고 아등바등하는 사이에 매니저님이 결제함ㅋㅋㅋㅋ 이때 복숭아랑 리더분 표정 딱 이거였어!

(솜사탕 너구리 짤.gif)

멤버들 다 있었는데 복숭아 님이 맛있는 거 사 준다고 나온 거였나 봐ㅠㅠ

계속 찡찡거리니까 매니저님이 빵 하나 사 오라고 했는지 뽈뽈거리면서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옴.

그리고 잠시 후 그들 앞에 놓인 1인 1 허니브레드ㅋㅋㅋㅋ

나 연예인 본 건 처음인데 진짜 잘생겼더라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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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숭아? 분홍색??? 백야?!

- 오늘이야?

└ 아닝 어제 낮이야~

- 미쳤다 너무 부러워....

- 우리 백야 배포가 크네! 역시 내 남자♡

- 조그맣지? 사진으로 봐도 작아 보이던데

└ 키 말하는 거야? 아니야 생각보다 컸어! 다른 멤버들이 키가 엄청 크더라

└ 앗 아니 얼굴..! 내가 질문을 이상하게 했네ㅠ

└ 아 얼굴? 어... 진심 주먹만 해...

- 사람 몰리진 않았어? 애들 요즘 스케줄 풀이라 힘들 텐데ㅠㅠ

└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어! 카페가 작기도 했고 월요일 낮이라 사람도 거의 없었어ㅎㅎ

- (수련 브이앱 캡처.jpg) 이분 맞나요?

└ 넹넹! 맞아요! 저 왼쪽 분이 허니브레드 다 못 먹는다니까 복숭아님이 나약하다 그랬어요ㅋㅋㅋㅋ 자기는 여기 있는 거 다 먹을 수 있다고ㅋㅋㅋ

└ 미친.... 백야 최약체면서 센 척하는 거 진심 너무 귀여워...

* * *

요즘 백야는 허공을 보며 멍을 때리는 일이 더 잦아졌다. 이유는 기약 없는 업데이트 때문이었다.

[v.1.2 업데이트 준비 중...]

업데이트를 누른 지 이틀이나 지났는데 프로그레스 바는 아직 절반도 채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뭐가 이렇게 느려.”

기다리다가 숨넘어가겠네.

구시렁거리던 백야는 상태창을 꺼 버렸다.

“다 됐어, 백야야. 얼른 가 봐.”

“네! 감사합니다.”

머리 손질을 마친 백야가 꾸벅 인사하며 멤버들 곁으로 달려갔다.

한동안 예능 스케줄은 율무와 유연, 청, 민성이 번갈아 가며 소화했는데, 오늘은 모처럼 단체 스케줄이라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요즘 핫한 아이돌이라면 무조건 출연한다는 프로그램에 데이즈는 살짝 들떠 보이기도 했다.

“I’m Genie for your wish. 소원 말해 봐!”

“나는~ 우리 단독 콘서트?”

“Wait. 율무는 양심 없어? 그건 내가 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니잖아. 패스! 백야 말해.”

“나? 나는….”

이들이 소원 이야기로 들떠 있는 이유는 대기 중인 촬영이 <지니의 선물 램프>라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게스트가 요정이 되어 팬들의 소원을 이뤄 준다는 컨셉의 웹 예능으로, 아이돌이 직접 물건을 만들고 팬에게 선물까지 할 수 있어서 반응이 좋은 컨텐츠였다.

“청아~ 내 소원은?”

“없어졌어. 까마귀가 가져갔어.”

“그게 무슨 소리야?”

산으로 가는 대화에 율무가 혼란스러워하자 유연이 해석해 주었다.

“형 소원은 날아갔대.”

과연 청 언어 1급 소지자는 달랐다.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칠 뻔한 율무는 유연에게 비결을 물었다.

“넌 어떻게 청이 말을 그렇게 잘 알아들어?”

“조카가 딱 저렇게 말하거든.”

“몇 살인데?”

“4살? 이제 5살인가. 아무튼 좀 비슷해. 나중에 소개시켜 주려고. 둘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농담을 주고받으며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서자 관계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데이즈가 만들게 될 물건은 드림캐처고요. 설명서도 함께 드릴 거니 어렵지는 않으실 거예요. 그럼 이쪽으로.”

스텝의 안내에 따라 들어선 세트장 내부는 화려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과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썬캐처는 마치 지니의 요술 램프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게 했다.

“잠시만 앉아 계시면 금방 녹화 진행할게요.”

공식 대형대로 앉은 데이즈는 분주히 움직이는 스텝들과 소품을 눈으로 구경했다.

“오~ 이게 우리가 만들 드림 케첩인가?”

율무가 지한을 건드리며 재료 바구니를 눈짓했다.

“드림캐처. 케첩은 먹는 거고.”

“내가 케첩이라 그랬어?”

“응.”

율무는 기억이 안 난다며 웃는 얼굴로 넘겨 버렸다.

두 사람의 대화에 호기심이 일은 백야도 고개를 내밀며 구경했다. 그러나 간발의 차로 뜬 상태창에 몸을 바로 해야만 했다.

[새로운 퀘스트(히든)가 도착했습니다!]

[Q. 예능 새싹(1) : 천재 아이돌이 되기 위해서 예능은 필수!

하지만 예능감이라고는 쥐뿔도 없어서 죽다 살아난 당신을 위해 준비했어요.

가장 많은 벌칙을 받아 눈에 띄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봅시다!

※ 거절 시 패시브 강화]

‘이게 누굴 멕이나…….’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보상은 못 받을 게 뻔한데 퀘스트를 수락한다? 바보짓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웬만하면 퀘스트를 하지 않고 남은 포인트로 업데이트까지 버텨 보려 했는데. 제 의도를 눈치챈 시스템은 페널티 강화를 인질로 삼았다.

심지어 그것만으로는 모자란지 저를 죽일 뻔했던 예능 관련 퀘스트를 들이밀었다.

‘이 나쁜!’

눈 뜨고 코를 베인 백야는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찌하리. 힘없는 개복치는 어쩔 수 없이 수락을 눌렀다.

상태창이 사라진 순간, 촬영 시작을 알리는 스텝의 목소리가 울렸다. 자세를 바로 한 데이즈가 정면을 보자 스텝이 슬레이트를 치고 빠졌다.

“For your days! 안녕하세요. 데이즈입니다!”

리더의 선창에 데이즈가 구호를 외쳤다.

“저희는 42대 지니고요. 램프를 발견한 나이트가 소원을 빌었다고 해서 지금부터 선물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민성의 오프닝 멘트로 본격적인 녹화가 시작됐다.

“나잉이들의 소원이 뭔지 궁금해요~”

율무가 호응하자 이번에는 지한이 준비된 대사를 읽었다.

“우리 나이트(Night)들을 나쁜 꿈으로부터 지켜 줄 수 있는 기사 나이트(Knight), 드림캐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드림캐처~”

율무가 호응하며 재료 바구니를 앞으로 당겨 왔다. 안에는 드림캐처를 만들 때 쓰일 색색의 실과 끈, 깃털, 구슬 장식, 원형 틀, 양면테이프 등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만들 때 한 가지 주의하실 점이 있어요.”

율무가 재료를 꺼내는 족족 주워 담던 지한이 설명을 이었다.

“멤버별로 금지어가 정해져 있는데, 선물을 만드는 동안 해당 단어를 말하는 멤버에게는 작은 벌칙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지니의 선물 램프>는 단순히 물건을 만들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사전 인터뷰를 통해 멤버들이 자주 쓰는 단어를 전달받은 제작진은 개인별로 금지어를 정해 두었고, 당연히 멤버들은 알지 못했다.

데이즈는 선물을 만드는 동안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게 될 텐데, 촬영 중에 금지어를 말하는 멤버에게는 우스꽝스러운 아이템이 페널티로 주어지게 됐다.

“자, 그럼 지금부터 드림캐처를.”

삐이-.

민성이 멤버들의 시선을 모으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경보음이 울리더니 제작진이 첫 번째 아이템을 건네주었다.

“제가 뭐라 그랬죠? 자?”

삐이-.

하와이 꽃목걸이를 목에 건 민성이 허망한 얼굴로 두 번째 아이템을 받아 들었다.

민성의 오른쪽 귀 옆으로 하와이 꽃핀을 대신 꽂아 준 백야가 그 모습이 웃긴지 키득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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