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35화 (135/340)

제135화

“형, 완전 잘 어울려.”

“고맙다. 보셨죠? 금지어를 말하면 여러분도 이렇게 예뻐질 수,”

삐이-.

“난리 났다. 난리 났어.”

시작부터 3연타를 날리는 민성 덕분에 유연이 진한 보조개를 만들었다. 리더의 수난 시대에 멤버들은 즐거워했다.

하와이 세트에 이어 복고 선글라스까지 장착한 민성은 제가 생각해도 어이없는지 헛웃음을 터뜨렸다.

“나 감 잡았어. 이제 절대 이 단어 말 안 할 거야.”

멤버별로 금지어는 두 개씩이었는데 민성은 ‘자’와 ‘여러분’이었다.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요?”

금지어를 의식하고 말하려다 보니 말투가 작위적으로 변했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만들어?”

앞에 놓인 완성품을 만지작거리던 백야가 민성을 돌아봤다. 그러자 유연이 기다렸다는 듯 대꾸했다.

“내가 알아. 먼저 바구니에서 원형 틀을 챙기고 원하는 색의 실을 하나씩 골라 주세요.”

유연의 진행에 멤버들이 털실을 고르기 시작했다. 가는 실부터 굵은 실까지 종류별로 다양했는데, 바구니별로 들어 있는 색깔은 랜덤인 것 같았다.

자신의 바구니에서 분홍색 털실을 찾아낸 청이 백야를 불렀다.

“백야! 여기 분홍색 있다!”

“백도 주면 되겠네.”

“당근 하지!”

삐이-.

백야에게 분홍색 실을 내밀려던 청에게 첫 번째 아이템이 도착했다.

“모야!”

삐이-.

다른 멤버들도 하나둘씩 벌칙에 걸리기 시작하자 민성이 즐거워했다.

금지어인 ‘당근 하지’와 ‘모야’를 연달아 쓴 청은 투명한 사이버 펑크 안경에 꽃무늬 팔 토시를 하게 됐다.

“고마워. 그럼 너는 이거 할래?”

“모, 온데? 무슨 색이야?”

엄청난 순발력으로 세 번째 벌칙을 피해 간 청이 상체를 내밀었다.

“노란색.”

“청이한테 딱이네. 병아리잖아.”

노란 실을 대신 받은 민성이 청에게 넘겨주었다.

“나 병아리 아닌데? Wolf야.”

이렇게 큰 병아리를 봤냐며 청이 부정했다.

“팬분들이 병아리라고….”

백야가 얼버무리자 청은 제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팬들이 저를 병아리에 비유하는 글을 본 적 있던 청은 다급히 수습에 나섰다.

“나, 나처럼 큰 병아리는 나 혼자지! Wolf처럼 크다고. 난 자이언트 병아리야!”

청이 탈룰라를 시전했다.

“그래요, 병아리 씨. 그만 삐악거리고 노란색 할 거예요, 말 거예요. 안 할 거면 다시 백도 주고.”

유연이 제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노란 실을 가리켰다.

“할 거야?”

“당근 하지!”

삐이-.

방심하고 있던 청은 유연의 낚시에 제대로 걸렸다.

고개를 돌린 유연은 소리 없는 웃음을 터뜨리며 백야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실 다 고르셨으면 이어서 해 볼게요.”

원형 틀을 자세히 보면 숫자가 표시되어 있을 거라며 유연이 설명을 이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부분만큼 양면테이프를 붙인 뒤, 실을 면적만큼 길게 붙여 달라며 먼저 시범을 보였다.

그런데 집중한 입으로 테이프와 실을 붙이기 시작한 민성, 백야, 청과는 달리 오른쪽 자리는 다소 소란스러웠다.

“좀 떨어져.”

“잘 안 보여서 그래~”

가장자리에 앉은 율무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핑계로 지한에게 몸을 기대고 있었다.

밀어내도 다시금 붙어 오는 율무에 지한은 언짢음을 숨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를 본 민성이 눈치껏 유연과 자리를 바꿔 주었다.

“유연아, 네가 가운데 앉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왜?”

“율무가 잘 안 보인대.”

“그래, 그럼.”

민성과 유연이 자리를 바꾼 뒤 다시 촬영이 재개됐다.

“이제 잘 보여?”

“네~ 선생님~”

“좋아요. 그럼 다시 보여 드릴게요. 틀 위에 테이프를 붙인 다음, 그 위로 실을 이렇게 길게 붙이고 돌돌 감아 주세요.”

멤버들이 유연의 시범을 따라 실을 감기 시작했다.

민성이 자리를 바꿔 준 덕에 제일 좋은 자리를 꿰차게 된 백야도 열심히 실을 감았는데. 틀 안으로 손을 넣었다 뺐다를 몇 번 반복하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 실이 손목에 감겨 있었다.

“아니, 이게 왜….”

삐이-.

당황한 백야가 엉킨 실을 풀어 보려 바둥거리는 사이 그에게 첫 번째 아이템이 건네졌다.

“왜? 나 이거 왜?”

“왜긴 왜야. 금지어 말했으니까 주셨지.”

백야는 노란색 병아리 모자를 받았다. 그러나 손목에 엉킨 실 때문에 난감해하자 유연이 대신 씌워 주었다.

“저기요. 손목 말고 틀에 감으시라고요.”

“아니, 나도 아는데.”

삐이-.

어깨에 고양이 인형을 한 마리 얹게 된 백야가 가늘게 뜬 눈으로 유연을 흘겨봤다.

“너 일부러 그랬지.”

“네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내가 일부러 그래. 나는 너 도와주려고 그랬어. 그러게, 틀에 감으라니까 왜 손목에 감냐?”

유연이 결백을 주장했으나 눈을 가늘게 뜬 백야는 믿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해명을 포기한 유연은 쪽가위를 들어 실을 끊어 주려 했다.

“손 내밀어 봐.”

“왜. 또 뭐 하려고.”

“아니, 다시 하라고.”

삐이-.

백야와 실랑이를 벌이던 유연도 벌칙을 받게 됐다.

“너 때문이잖아.”

“푸핫! 뭐래. 너도 ‘아니’가 금지어,”

삐이-.

“바보냐?”

“…….”

허망한 얼굴로 굳어 버린 백야에 유연이 배를 잡고 웃어 댔다.

나란히 소품을 받은 두 사람의 모습은 화려했다. 면사포 머리띠를 쓴 유연과 병아리 모자 위로 리본 머리띠를 낀 백야가 서로를 보며 어이없어했다.

“선물 안 만들 거야? 나잉이 줘야지! 둘이 그만 놀고 빨리해!”

시범을 보여 준 부분까지 끝낸 청이 유연과 백야를 재촉했다.

유연의 도움으로 간신히 첫 감기에 성공한 백야는 이어지는 시범을 집중해서 봤다.

“반대쪽도 같은 원리로 감아 주면 되는데 이때 주의할 점은 반대 방향으로 감아 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식으로 여섯 번을 반복해서 가운데 별 모양을 만들어 주면 끝이라며 설명을 마쳤다.

“유연이가 금손이네~”

율무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화려한 모습의 네 사람과 달리 스타일리스트의 손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나율무. 너도 빨리해.”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는 율무를 본 지한이 그의 목덜미를 잡아 지압하듯 세게 눌렀다.

“아, 알았어. 할게, 할게. 나 집중했다~”

지한은 율무가 원형 틀을 쥐고 나서야 잡은 목을 풀어 주었다.

데이즈의 본격적인 드림캐처 만들기가 시작되자, 제작진은 준비해 두었던 질문을 하나씩 띄우기 시작했다.

작가가 든 스케치북을 발견한 지한이 질문을 소리 내어 읽었다.

“데이즈 막내즈. 브이로그를 통해 졸업식 모습을 보여 줬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돼서 가장 좋은 점이 있다면?”

지한이 유연과 청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바로 옆자리인 백야와 눈이 마주쳤는데, 백야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답변을 내놓기 시작했다.

“좋은 점? 아! 저 이제 자동차 면허증 딸 수 있어요.”

“아…….”

삐이-.

유연과 청이 대답할 거라 생각했던 지한은 저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냈는데, 하필 그게 금지어였던 모양이다.

큐빅 눈물 안경을 쓰게 된 지한은 움직일 때마다 찰랑이는 금속이 당황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우리 면허증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

민성이 멤버들을 둘러보며 말하자 청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요! 나 있어! 근데 미국에서 운전할 수 있어. 우리 집 가면 내가 태워 줄게!”

“오~ 베스트 드라이버~”

삐이-.

청의 자랑에 호응해 주던 율무까지 벌칙 아이템을 개시했다.

꿀벌 머리띠를 받은 율무는 어쩐지 신이 나 보이기까지 했는데. 내심 자기가 금지어를 뱉길 기다리고 있던 눈치였다.

“나도 질문! 율무는 팬싸 남친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카메라를 보고 팬싸 남친을 재연? 해 주세요!”

“팬싸 남친? 나한테 저런 별명이 있었단 말이야?”

별명이 마음에 드는지 율무가 만족스러워했다. 그러자 지한이 생각나는 게 있다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너 그거 유명하잖아. 제 여자친구랑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으아악!”

그 말을 듣던 백야가 항마력이 떨어졌는지 몸서리치며 괴로워했다.

때는 바야흐로 WANT ME 활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년에 수백 개씩 쏟아지는 각종 아이돌 팬 사인회 후기 중에서도 레전드로 꼽히는 몇몇 일화가 존재했는데, 개중 하나가 바로 율무의 것이었다.

최근 음악방송 1위를 하며 상승세를 타더니, 지난 과거 행적까지 화제가 되며 온갖 커뮤니티에 퍼지고 있었다.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패기가 엄청났네~”

“재연 가능해?”

“당연히 가능하지~”

율무가 지한 쪽으로 몸을 돌아앉았다. 그 탓에 당황한 지한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왜 날 봐?”

“네가 도와줘야지~ 난 데이즈고 넌 나잉이야.”

불길한 예감이 엄습한 지한은 곧장 몸을 빼며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뒤에서 끌어안듯 팔을 결박한 백야 때문에 지한은 움직일 수 없게 됐다.

“한백야, 이거 놔.”

“싫은데~”

어디선가 소형 캠을 받아온 유연은 카메라를 들이밀며 율무의 얼굴을 담고 있었다.

“나 안 도망갈게. 일단 놔.”

“진짜지?”

“응. 약속.”

백야가 팔을 풀어 주자 지한이 몸을 바로 했다.

종이와 펜을 받아 온 민성이 옆으로 넘겨주자, 데이즈의 팬싸 남친은 자신의 역할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어? 예쁘다.”

사인을 해 주기 위해 고개를 든 율무가 처음 내뱉은 대사였다.

잠시를 못 참고 또 장난을 치는 율무에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졌다.

“아, 소름. 타임. 나 못 찍겠어.”

소형 캠을 들고 있던 유연이 시작과 동시에 파업을 선언했다. 지한은 눈을 감으며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었고, 백야는 얼굴을 찡그리며 율무를 경계했다.

물론 모두의 반응이 세 사람 같진 않았다.

청은 너튜브에서 유명한 사람의 대사라며 즐거워했고, 민성은 지한이 눈으로 욕하던 찰나를 포착하곤 웃음이 터졌다.

“아하학! 아, 배 아파.”

“모야. 이 사람 왜 이러나?”

삐이-.

청이 눕기 일보 직전인 민성을 잡아 세웠다. 그 과정에서 금지어를 뱉은 청은 기존의 아이템을 벗고 갓을 쓰게 됐는데.

“오! 이리 오너라~”

새로 받은 벌칙 모자가 꽤 마음에 드는 듯했다.

한편 그 순간까지도 정리가 되지 않은 오른쪽 동네는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나율무, 그거 하지 마.”

“알겠어. 진짜 안 할게. 약속~”

율무가 새끼손가락을 펴며 지한의 앞으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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