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8화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안 들어간 게 아닌데!
짠내 나는 제목에 팬들은 눈물을 훔치며 다시 한번 입장을 시도했다.
- 드디어!!!ㅠㅠㅠㅠㅠㅠ
- 민성아 아까 들어오려고 했는데 무한 로딩때문에ㅠㅠㅠ
- 유앱 진짜 욕 나온다... 애들 처음 켠 방송도 올라오겠지? 애들이 무슨 이야기 했나요ㅠㅠ 녹화하신 분 계시면 올려 주세요 제발
- 아 미친 사복 너무 예뻐
- 청이 왜 입꾹꾹이 하고 있어? 귀여워ㅠㅠㅠ
이번에는 순조롭게 올라가는 시청자 수에 민성도 금방 자리로 돌아왔다.
“인사 먼저 드릴까요? For your days!”
“안녕하세요. 데이즈입니다!”
음악방송 스케줄을 끝내고 곧장 연습실로 갔는지 멤버들은 편한 사복 차림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방금 전에 저희의 첫 정규 앨범. 이클립스 판매량이 50만 장을 넘어 하프 밀리언 셀러가 됐다는 소식을 전달받았어요.”
민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멤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앉은 자세에서 콩콩거리며 율무와 엇박자로 들썩이는 백야부터, 늘 차분함을 유지하던 지한까지 함박웃음을 짓자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 미미미친 지한이 치아 보이게 웃는 거 처음 보는 것 같은데..?
- 백야 텐션 무슨 일이야ㅋㅋㅋㅋㅋ 저 복숭아가 저희 집 복숭아가 맞나요?
- 이 맛에 돈 쓰지ㅠㅠㅠ 너희가 좋아하는 모습 보니까 내가 더 기쁘다ㅠㅠ
“자, 자. 진정하세요, 여러분.”
멤버들을 한차례 진정시킨 민성은 분위기가 조금 진정되자 다시 말을 이었다.
“저희가 어느덧 3주 차 활동에 접어들었는데요. 음악방송 1위라는 소식에 이어 이렇게 기쁜 소식을 연달아 나누게 되어 너무 행복합니다. 이게 다 나잉이 여러분 덕분이에요.”
“I love you 나잉! 우리 더 열심히 할게요!”
청이 손가락으로 카메라를 가리키며 미국식 제스처를 취하자 옆에 있던 유연이 따라 했다.
“지금 다들 너무 신나서 조금 통제가 안 되는데…. 이 자리를 빌려 팬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순서대로. 차근차근. 손을 들어서 한 명씩 이야기해 보도록 할게요.”
토끼 반 선생님의 ‘순서대로’라는 말에 꽂힌 율무가 1을 외치며 몸을 일으켰다.
“1!”
당연히 아무도 받아 주지 않을 거라 생각한 그는 일어나는 척만 하다 다시 앉으려 했는데, 허스키한 목소리가 다음 숫자를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2.”
“세상에.”
그런데 그 인물이 너무나도 의외였던지라 율무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지한아…! 역시 너는 내 마음을 알아줄 줄 알았어~”
어깨에 얼굴을 비비며 치대 오는 율무에 지한이 정색하며 몸을 굳혔다.
보통은 소리 없는 주먹이 먼저 날아오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방송 중인 만큼 떨어지라는 경고가 먼저 들려왔다.
“떨어져.”
“오케이~”
율무가 해맑은 얼굴로 치대기를 멈췄다.
율무는 저 덩치에 외향성인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애교까지 더해진 완전체였다.
어쩌다 보니 친해졌고 같은 그룹으로 데뷔까지 하게 되어 감당은 하고 있다지만, 정반대 성향을 가진 지한에게 율무는 폭탄 그 자체였다.
한편 생전 안 하던 짓을 하는 지한에 민성은 많이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지한아…?”
“3!”
민성이 한눈을 파는 사이 유연이 다음 숫자를 외쳤다.
율무와 하이 파이브를 한 유연은 민성이 잔소리를 하려는 것 같자, 타고난 말주변으로 자신들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했다.
“게임이 아니라 순서 정하기 아니었어? 나잉이들한테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서 뽑는 건 줄 알았는데.”
-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주옥같네ㅠㅠㅠ 어깨는 왜 으쓱하는데ㅠㅠ
- 저 미친 폭스 오늘도 능글미+1
- 한유연 유죄...
- 그래 어디 한번 사랑한다고 말해봐!!! 내 통장을 바칠 테니까!!
이제 남은 멤버는 단 세 명.
유연의 발언을 듣고 나니 꼴등만큼은 면하고 싶어진 세 사람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재밌냐는 댓글들이 올라오고, 이미 순위권에 든 율무와 지한, 유연은 흥미로운 얼굴로 멤버들을 구경했다.
- 백야 눈알 굴러가는 소리 여기까지 들리는데요ㅋㅋㅋㅋ
- 민성이 아까부터 말할 듯 말 듯 입술만 달싹이는데 토끼가 풀 뜯어 먹는 입 같다고ㅠㅠㅠ 귀여워
- 4!!! 4!!!!
- 청이 냅다 4 질러버릴 것 같았는데 은근 신중한데?ㅋㅋㅋ
- 이게 뭐라고 이렇게 진지하냐고ㅋㅋㅋ 숨막혀ㅋㅋㅋㅋ
그때 유연을 건드린 율무가 댓글을 읽어 보자며 카메라 앞으로 데리고 나왔다.
“아~ 여기는 ID 지하의 눈치 게임 경기장입니다. 세 선수의 경기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어요. 유연 캐스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선 민성 선수의 경우 워낙 신중한 타입이라 지금 머릿속으로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어서 청의 경우, 일단 지르고 보는 편인데 오늘따라 신중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백야 선수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 선수는 말이죠,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사실 어떻게 보면 청 선수보다 더 종잡을 수 없는,”
그때였다.
숫자를 외치는 척 백야가 입을 크게 벌렸다. 시선을 돌린 다음 숫자를 외치려던 작전이었던 것 같은데 정작 숫자는 다른 선수가 외쳤다.
“Four! 와악!”
- 청이 신났어ㅋㅋㅋㅋ 뛰어다니는 것 좀 봐ㅋㅋㅋ 와 진짜 정신없다
- 그러니까 평소에 이러고 논다는 거지?ㅠㅠㅠㅠ
- 백야 이용당했어ㅋㅋㅋㅋ 청청 정신 차려! 지금 당신 반려동물이 실망했다고ㅜㅜ
“와……. 진짜 나빴다. 너 얌생이구나?”
“유남생? You know what I’m saying?”
“뭐라는 거야. 넌 날 이용했어!”
“모라는 거야. 사람은 물건이 아니야. 그런데 어떻게 백야를 이용해?”
“방금 너처럼!”
“What? 모라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어려운 단어도 아니었으나 청은 자신이 불리하다는 걸 눈치채고 이해 못 한 척 어깨를 으쓱였다.
“너 지금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거지!”
“No. 나 지금 세상에서 제일 억울해. 내가 한국어를 잘한다고 천재일 거라는 생각은 버려!”
“너 천재라고 한 적 없거든?”
“천재는 억울한 법이지. 하….”
- 너 얌생이구나?=유남생=유노왓암세잉이 되는 기적ㅋㅋㅋㅋㅋ 얌생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냐고ㅋㅋㅋ 나 저런 단어 쓰는 애 처음 봐
- 천재는 외로운 법 아닌가요ㅋㅋ
- 싸우는 건가..? 근데 왜 타격감이 1도 없지.. 애들 너무 귀엽잖아ㅠㅠ
- 민성아 지금이야!! 5를 외쳐!!!
- 둘 다 겁나 삐악거려ㅋㅋㅋㅋ 데이즈 유치원 아니냐고ㅋㅋㅋ 진짜 무해하다
- 저 둘이 룸메라고 하지 않았어?
- 유연이랑 율무 웃겨 죽으려하는데요ㅋㅋㅋㅋㅋㅋㅋ
“5!”
그리고 많은 나잉이들의 바람대로 민성이 남은 숫자를 외치며 경기가 종료됐다.
“청아, 잘했어!”
민성이 청과 하이 파이브를 하며 흡족해했다. 반면 백야는 세상을 잃은 것처럼 바닥으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이럴 수가…. 내가 지다니!”
“한두 번도 아닌데 뭘 새삼스럽게. 일어나.”
“쓰읍. 당백이 바닥 지지야~”
패배의 쓴맛에 흐물거리던 백야를 유연과 율무가 소파 위로 건져 올려놓았다.
- 막내즈 싸운 거 아니에요?
- 싸운 거 같진 않고 그냥 둘 다 찐 바이브가 잠깐 나왔던 것 같은데ㅋㅋㅋㅋ
“아, 청이랑 백야는 절대 싸운 게 아니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냥 평소 대화예요.”
“맞아요! 우리는 절대 안 싸워.”
언제 투닥거렸냐는 듯 어깨동무를 하는 막내즈에 채팅창은 눈물과 귀엽다는 글로 도배됐다.
“잠시 이야기가 다른 길로 새긴 했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갈게요.”
아까 정한 순서대로 소감을 한마디씩 전해 보자는 리더에 율무가 엄치를 치켜들었다.
“그럼 저 먼저인가요~? 멤버들이 신나 하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기분이 좋네요.”
율무는 모든 게 팬 여러분이 저희를 사랑해 주시고 곁에 계셔 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앞으로 만들어 나갈 데이즈의 또 다른 기록들을 함께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뒤를 이은 지한은 여러분께 절대로 부끄럽지 않은 가수가 되겠다는 말을 전했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던 유연이 그의 무릎을 살살 긁으며 장난을 걸어오자, 저항 없는 웃음을 터뜨리며 손목을 잡아챘다.
“하지 마.”
“율무 형이 시켰어.”
- 율무한테 뒤집어씌우는 게 너무 자연스럽잖아ㅋㅋㅋ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데 저건ㅋㅋㅋㅋㅋ
- 지한이가 치아를 너무 많이 보여 주는데??? 조금만 더 벌리면 몇 갠지 세 볼 수도 있을 듯
- 나잉이들 뭐 해? 애들이 저렇게 좋아하는데 하프 밀리언 한 번 더 시켜주자
- 한지한 뭐야? 맨날 조용히 미소만 짓던 애가 활짝 웃으니까 너무 황홀하잖아 당신......
그리고 유연과 민성, 청을 지나 마지막 백야의 차례가 되었다.
“여러분이 있어서 저희는 너무 행복해요. 여러분께 걸맞은 아티스트가 될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야가 꾸벅 고개를 숙이자 멤버들도 따라서 허리를 굽혔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방송 종료가 다가왔음을 느낀 나잉이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가지 말라는 댓글들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이때 햄스터 한 마리가 카메라 앞으로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뒤를 따라온 토끼도 백야의 옆자리에 멈춰 섰다.
“가지 마세요, 유유.”
댓글을 소리 내 읽는 백야에 민성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댓글 읽은 거야?”
“많이 아쉬우신가 봐. 다들 울고 있어.”
팬들의 반응을 잠시 살펴본 민성이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누러 간 듯했다.
- 데이즈 조금만 더 놀다 가ㅜㅜ
- 저녁 뭐 먹었어?
다른 멤버들도 어느새 백야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데이즈는 채팅창을 보고 있었는데, 개중 참신한 댓글을 발견한 율무가 소리 내 읽었다.
“백야 볼 깨물면 복숭아 맛 나냐고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한 번도 물어 본 적이 없어서~”
“네? 저는 아무 맛 안 나요, 여러분…….”
백야가 당황한 얼굴로 해명했다. 그러나 참신한 주제에 신난 건 율무뿐만이 아니었다.
“한번 물어 보고 알려 달라고요? 알겠습니다. 저는 나잉이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하죠~”
율무가 백야에게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