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40화 (140/340)

제140화

* * *

[도복순 : 자니..?]

[도복순 : 야, 나 어디 가도 네 얘기 절대 안 해. 알지?]

민성은 최근 사촌으로부터 이상한 연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연예인이 된 제가 부담스러워서 지인들에게 비밀로 하고 다닌다는 말인가 싶었는데, 마지막 내용이 신경 쓰였다.

[도복순 : 그러니까 길 가다 만나도 아는 척 ㄴㄴ 내 얘기도 금지]

[도복순 : 혹시 모르니까 네 번호는 다시 차단할게. 그럼 20000.]

제가 어디 가서 사촌의 이야기를 하고 다닌단 말인가.

민성은 황당한 얼굴로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잠시 사칭인가 의심도 해 봤지만, 자기 할 말만 하고 먼저 차단을 박아 버리는 것도. 출처를 알 수 없는 낡은 인터넷 용어까지 모두 제가 아는 괴짜가 맞았다.

무엇보다 프로필 사진 속 주인공이 너무 낯익었다.

“쫑이 맞는데.”

참고로 쫑이는 시고르자브 종으로 할머니 집 마당에 묶여 있는 강아지 이름이었다.

답장을 보내 봐도 사라지지 않는 1에 민성은 아침부터 스트레스만 얻었다.

“얘는 갈수록 정신이….”

데뷔조가 확정된 후, 명절은커녕 휴가 한번 제대로 다녀온 적 없었으니 친척들의 얼굴을 못 본 지도 3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소식이 재수였던 것 같은데.’

학업 스트레스가 상당했는지 하나뿐인 사촌은 못 본 사이 완전체로 거듭나 있었다.

민성은 찝찝한 기분을 뒤로하고 방을 나섰다. 거실로 나가자 소파에 앉아 있는 남경과 마주쳤다.

“일찍 일어났네? 너희는 좀 더 자도 되는데.”

“웬 이상한 사람 때문에 깼어.”

“스팸? 또 번호 털렸어?”

“그건 아니고.”

부엌으로 향한 민성은 하품을 하며 냉동실 문을 열었다. 얼음을 한 조각 꺼낸 민성은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건 뭐 하려고?”

“청이 깨우려고. 내가 어제 인터넷에서 기막힌 방법을 알아냈어.”

다시 방으로 돌아간 민성은 자고 있는 청의 얼굴에 얼음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야, 일어나.”

차가운 감촉이 닿자 청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얼음을 피해 몸을 반대로 돌렸지만, 그럴수록 민성의 손은 더욱더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그러다 목에 닿은 순간, 비교적 약한 부위라 냉기를 제대로 느꼈는지 청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Aw, shit!”

“일어나. 네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찍 깨워 달라며.”

청은 어젯밤 잠들기 전, 민성에게 자신을 제일 먼저 깨워 달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아아……. 나 후회해….”

피곤한지 다시 누우며 어리광을 부리는 청에 민성이 혀를 찼다.

“마니또 챙겨 주려고 일찍 깨워 달라 한 거 아니야?”

“모야. 어떻게 알았나?”

데이즈는 최근 시즌2 리얼리티 촬영을 시작했다.

NAN 활동이 마지막 주에 접어들기도 했고, 리패키지 컴백에 맞춰 공개할 예정이라 가벼운 촬영부터 시작됐다.

“네 마니또 백야지.”

“모라는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저 사람.”

청이 시치미를 떼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어기적거리며 부엌으로 향한 청은 전기 포트에 물부터 담았다.

“네가 웬일이야? 벌써 일어나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밥을 만드는 법이야. 햄스터는?”

“백야? 씻는 중.”

고개를 끄덕인 청은 냉장고로 향했다. 그는 노란빛의 유리병을 꺼냈는데, 처음 보는 물건에 남경이 호기심을 보였다.

“그건 뭐야. 살구 쨈? 냉장고에 그런 게 있었나.”

“청이래. 나 말고.”

“어?”

남경이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으나 청은 더 이상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의 손에 들린 노란 유리병으로 말할 것 같으면, 덕진이 멤버들의 목 건강을 위해 가져다 놓은 수제 배도라지청이었다.

제일 큰 텀블러에 한 숟가락 듬뿍 떠 넣은 그는 끓는 물을 부어 젓가락으로 대충 휘저었다.

“남경. 이따가 이거 가져가.”

“설마 내 거야?”

“No. 햄스터 먹이.”

“걔 뜨거운 거 별로 안 좋아할 텐데….”

“에어컨 바람 때문에 추워.”

시크하게 대답한 청은 비밀을 보장받은 뒤에야 방으로 돌아갔다.

연습실 출근인 멤버들과 달리 백야는 MC 스페셜 무대 연습으로 개인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말소리 들리던데. 누구 일어났어요?”

뽀송해진 복숭아가 방문을 조심히 열며 나왔다.

“아니야, 그냥 혼잣말.”

“대화하는 것 같았는데….”

“준비 다 됐으면 가자.”

활동 마지막 주여도 데이즈의 스케줄은 여전히 빽빽했다.

활동에 본격적인 리패키지 스케줄까지 겹쳐져 컴백 주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는데, 백야는 MC 스페셜 무대까지 더해져 두 배로 바빴다.

“백야야, 그런데 정말 연습 두 번으로 되겠어?”

“네. 저 안무도 다 외웠고 유연이랑 청이가 틈틈이 맞춰 주고 있어요. 그리고 저보다는 단아 님이 연습 더 많이 하고 계실 것 같고.”

단아 측의 배려로 두 사람의 연습은 백야에게 맞춰졌는데, 신세를 지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백야는 최대한 스케줄을 늘리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었다.

“우리 백야 대단한데? 호랭이한테 혼나서 울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안무도 곧잘 외우고.”

“제가 언제 울었다고 그래요?”

백야가 그런 적 없다며 반박했다.

“그리고 지금 연습하는 건 안무가 쉬워서 그래요.”

“잘하면서 엄살은.”

동선이 시시때때로 바뀌는 안무만 하다가 정적인 춤을 추려니 쉽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었다.

‘춤이 조금 늘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백야의 댄스 스킬 등급은 여전히 C였다.

* * *

- 오늘 백야 쇼플리 엠씨 첫방♥

- 데이즈 활동 일주일만 연장하면 안 됨? 제발ㅠㅠㅠ 복숭아가 소개하는 데이즈 보고 싶어

- 데이즈 지난주가 막방이었구나... 요즘 아이돌 활동 기간 너무 짧아.....

“매앰~ 매앰~”

“백야 씨. 어디서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이제 정말 여름이 오려나 봐요.”

“벌써 7월이잖아요~ 매미가 쇼 플레이리스트에 여름을 알려 주러 왔나 봐요.”

원형 테이블에 앉은 백야와 단아는 MC 데뷔를 앞두고 첫 대본 리딩을 하는 중이었다.

형광펜을 칠해 놓은 종이를 넘겨 가며 차근차근 호흡을 맞춰 보는데, 처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합이 좋았다.

“둘이 따로 만나서 연습한 적 있어요? 대본은 어제 오후에 전달됐을 텐데.”

“아니요. 처음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잘한단 말이에요? 저희가 이번에 MC를 잘 뽑긴 했나 봐요.”

작가의 칭찬에 단과 백야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네. 잘 부탁해요. 이따가 리허설이랑 생방송 때도 이만큼만 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거듭되는 칭찬에 두 사람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쉬고 있어요. 리허설하려면 아직 시간 조금 남았으니까.”

“네. 감사합니다.”

백야와 단아가 대기실을 나서는 작가를 배웅했다.

데이즈는 지난주에 NAN 활동을 마무리하고 다시 컴백 준비에 돌입했다.

늘 함께 오던 방송국에 남경과 둘만 출근하는 것도 어색한데, 대기실에 홀로 앉아 있으니 멤버들이 언제라도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았다.

‘차라리 빨리 리허설 시작했으면.’

아직 낯을 가리는 두 사람은 필사적으로 서로를 못 본 척하고 있었다.

날씨 이야기는 사전녹화 때 해 버려서 대화 소재도 고갈된데다, 단아와 이야기라도 나누고 있으면 상대 쪽 매니저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봐서 부담스러웠다.

차라리 어색한 공기에 질식하기를 택한 개복치는 애꿎은 대본만 만지작거리는데, 그때 남경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백야야 이거 마셔.”

“이게 뭐예요?”

“배도라지 차. 누가 줬어.”

뚜껑을 열자 김이 솔솔 올라왔다.

‘이 한여름에 날 죽이려고….’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잘못한 게 있는 것 같았다.

“누가 준 거예요?”

“몰라. 말 안 하기로 약속했어.”

“알려 주세요. 모른 척할게요.”

사과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아 그런다며 남경을 졸랐지만, 그는 청과의 약속을 지켰다.

얼죽아인 백야는 열기가 올라오는 도라지 차를 빤히 내려다봤다. 기포가 올라오며 톡 터지는 방울에 백야가 경악했다.

‘심지어 끓고 있어…?’

텀블러의 성능이 과하게 좋았다.

겁먹은 백야는 김이 좀 식으면 먹겠다며 청의 정성을 잠시 보류했다. 그리곤 다시 대본을 집어 드는데 마침 새로운 퀘스트가 나타났다.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Q. MC 꿈나무 (1) : 안정적인 진행 실력으로 MC로서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으세요!

물론 천재 아이돌에게 실수란 없는 거 아시죠? 작은 실수도 No! 절대 용서 못 해.

※ 실패 시 패시브 강화]

이것들이 지금 장난하나…….

‘사람을 부려 먹으려거든 오류나 고쳐 놓고 부려 먹으라고!’

백야는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처참하게 구겨진 대본이 그의 손아귀에서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업데이트를 해 줄 거면 빨리빨리 해 줘야지. 이게 뭐 하는 짓이지? 해 줄 생각이 없는 거면 애초에 말을 꺼내지를 말든가!’

희망 고문하는 것도 아니고 벌써 일주일이 넘도록 업데이트 준비 중인 게 말이 되냐고!

흑화를 앞둔 개복치가 분노로 부들거리고 있었다.

한편 옆에서 핸드폰을 하던 남경은 이상한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배, 백야야…?”

[청 : 형! 백야 줬어?]

[청 : 먹었어???]

[청 : 먹었나 안 먹었나?]

[청 : 아직 안 줬나??]

남경은 문자에 답장을 보내던 중이었는지 화면에 청의 프로필 사진이 떠 있었다.

테러에 가까운 일방적인 문자는 보기만 해도 숨이 막혔다.

[청 : 언제 먹어?]

읽음 표시로 바뀌었음에도 답이 없자 청이 한 번 더 메시지를 보내왔다. 떨리는 진동에 정신을 차린 남경은 얼른 답장을 보냈다.

[남경 : 그러게 내가 뜨거운 건 아니라고]

[남경 : 아니야 먹일게]

[남경 : 먹일 테니까 제발 그만 보내...]

핸드폰을 내려놓은 남경은 얼른 손을 뻗어 백야의 손등을 살살 두드렸다.

“백야야, 내가 식혀 올게. 얼음 넣어올 테니까 진정해.”

“…네?”

저를 달래는 목소리에 백야의 이성이 돌아왔다.

손에서 힘이 풀리고 아방함을 되찾은 눈이 남경을 향하자 그도 확신했다. 역시 저 뜨거운 배도라지 차 때문이었다고.

아티스트의 건강과 컨디션을 최상으로 고려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그는 얼른 텀블러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기다려. 내가 금방 다녀올게!”

“네? 아, 아니, 형!”

나만 두고 가지 마…!

허공에 멈춘 손이 아련했다.

남경의 착각으로 벌어진 해프닝이었지만 제삼자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게 분명했다.

졸지에 갑질 아티스트가 된 백야는 삐거덕거리며 팔을 내렸다. 저를 힐끔거리는 단아와 매니저의 시선이 느껴졌다.

“날씨가 참 좋네요…. 하하….”

어색할 때마다 나타나는 날씨무새는 오늘만 세 번째 등장이었다. 그런데 그걸 또 친절하게 받아 주는 단아에 백야는 더 비참해졌다.

조용히 고개를 숙인 백야는 꾸깃꾸깃해진 대본을 펴며 남경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아……. 멤버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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