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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42화 (142/340)

제142화

‘율무차 놈. 갑자기 왜 눈치가 멸망했지.’

민성이 얼마나 티 나게 챙겨 줬는데 그걸 모르다니.

남의 일에는 눈치가 빠삭한 놈이 제 일에는 또 둔한 모양이었다.

“다 와 가니까 천천히 내릴 준비들 해.”

“와! 여행이다 여행!”

곧 공항에 도착한다는 말에 청이 가방을 챙겼다. 왓츠 인 마이 백을 하며 보여 주었던 백팩이었다.

든 것이 없어 형태가 찌그러져 있던 가방은 기내에서 사용할 목베개와 군것질거리로 가득 차 모처럼 볼륨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게 다 뭐야?”

창밖을 보던 백야가 눈을 크게 떴다. 단순한 여행객 무리인 줄 알았던 군중은 알고 보니 데이즈의 출국을 취재 나온 기자들과 촬영 스텝들이었다.

커진 스케일만큼이나 인원도 늘어났는지 시즌 1을 촬영할 때보다 카메라가 더 늘어난 느낌이었다.

기자들 사이로 모자를 깊게 눌러쓴 팬들도 보였는데, 저분들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건지 의아했다.

“백야 짐 다 챙겼어?”

“나? 응.”

민성이 창밖에 정신이 팔려 있는 백야를 챙겼다. 그 뒤로도 멤버들이 준비를 마쳤는지 확인한 리더는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문 열게.”

“Go! Go!”

청의 재촉에 민성이 문을 열어젖혔다.

한 명씩 차에서 내린 데이즈는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기자들과 마주 본 채 섰다.

공식적인 포토 타임은 아니었지만, 내리기 전 남경에게 언질을 받은 데이즈는 눈치껏 나란히 대형을 갖춰 섰다.

그때 멤버들의 뒤로 슬쩍 다가온 남경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당부의 말을 전했다.

“개인행동 하지 말고 공항 들어가면 절대 떨어지지 마. 알겠지?”

뒷사람이 잘 따라오는지 서로 확인하면서 걸어야 한다는 남경은 백야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곤 앵글 밖으로 벗어났다.

‘뭐지?’

어리둥절한 백야가 감각이 남아 있는 머리를 만지며 뒤를 돌아봤다.

왜요?

입 모양을 벙긋거리자, 그냥 물어보지 말 걸 그랬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귀여워서.

“우웩.”

“아까부터 왜 자꾸 구역질을 하지? 쓰읍. 당백이 뭐 주워 먹었어. 지지야, 얼른 뱉어.”

얼굴만 한 율무의 손이 백야의 턱을 받쳤다.

시큰둥한 얼굴로 내려다보던 백야는 무시할 것처럼 굴더니 갑자기 입을 벌려 손을 물려고 들었다.

와앙!

“우왓! 깜짝이야.”

“아깝다. 물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반응 속도가 빠르다며 백야가 입맛을 다셨다.

“와……. 진짜 물릴 뻔했어.”

“야, 한 번만 더 해 봐. 나 이번에는 진짜 물 수 있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시 해 보라며 부추기기까지 하는 모습에 율무의 얼굴은 점점 사색이 됐다.

가슴 위로 두 손을 공손히 포갠 율무는 도리질을 치며 지한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너 대체 당백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내 친구 돌려내.”

“무슨 말이야.”

지한이 뒤를 돌아봤다.

심각한 표정의 율무와 달리 청과 장난을 치며 따라오고 있는 백야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무래도 당백이는 나랑 방을 같이 써야 할 것 같아. 너랑 청이는 너무 위험해.”

“헛소리 그만하고 눈에서 힘 빼.”

갑자기 다가와선 알아듣지 못할 소리만 늘어놓는 율무에 지한이 손을 들었다. 미간 사이를 꾹 누르자 율무의 고개가 기우뚱 뒤로 밀렸다.

“아!”

“진짜 때려 줄까.”

“아니요.”

“빨리 와.”

율무가 자꾸 뒤를 돌아보느라 뒤처지자 결국 지한이 옷깃을 잡아끌었다. 공항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에 모여 있던 기자와 팬들이 본격적으로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소속사 측에서는 최대한 조용히 출국시키고 싶어 했으나, 에임의 군백기가 시작된 지금 데이즈는 ID에서 가장 주목받는 남자 아이돌 그룹이었다.

거기다 최근 대중들의 반응 또한 뜨겁게 쏟아지고 있었으니 ‘조용히 출국’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다행히 회사에서 붙여 준 넉넉한 경호 인력 덕에 멤버들은 큰 소란 없이 출국장을 통과할 수 있었다.

“또?”

“또라니….”

비행기에 올라탄 백야는 자신의 옆자리가 유연임을 확인하곤 눈썹을 찡그렸다.

“네놈이 한 짓을 생각해.”

“그건 남경이 형이 한 거지.”

“그래서 너는 잘못이 없다고?”

유연의 입이 다물어졌다.

분명 홍콩에서 잘못을 반성하고 충분히 대가를 치른 것 같은데. 저를 빤히 보는 갈색 눈과 마주치니 차마 부정하긴 힘든 모양이었다.

“…형. 카메라 무겁진 않으세요? 제가 들게요.”

“오냐.”

안 그래도 부담스러웠는데 잘 됐다며 백야가 기내 캠을 넘겨 버렸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제작진은 멤버들에게 소형 카메라를 지급했다. 기내 캠은 두 명당 한 대씩으로 유연과 백야, 지한과 율무, 민성과 청에게 각각 하나씩 전달됐다.

가까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옆을 돌아보니 이미 자리에 앉은 율무와 지한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잉이 여러분~ 저희 드디어 비행기 탔어요. 곧 있으면 출발할 거예요.”

캠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고 있던 율무가 큰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옆을 돌아보며 카메라를 좀 더 길게 뻗었다.

“지한이도 인사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지금 시간은 10시 28분이고요, 저희는 이제 리얼리티를 촬영하러 떠납니다. 저희 첫 여행이에요~”

저희가 가는 곳이 어디냐 묻자, 마찬가지로 렌즈를 보고 있던 지한이 짤막하게 답해 주었다.

“일본입니다.”

“맞습니다. 바로바로, 오~”

율무가 말을 잇다 말고 지한을 돌아봤다. 무언가를 해 주길 기대하는 눈빛에 지한의 철벽이 발동됐다.

“왜. 뭐.”

“오~”

“…….”

“내가 오~ 하면 사카 해 줘야지. 우리 오사카 가니까. 다시 하자.”

할 말은 많지만 카메라 때문에 참는다는 눈이 잠시 율무를 향했다.

“오~”

“…사카.”

“세상에. 여러분 보셨죠? 지한이가 방금 오사카 해 줬어요. 아무래도 얘가 제 마니또인 것 같아요.”

“아니라니까.”

“지한아, 근데 마니또는 그렇게 티 나게 하는 거 아니야.”

안 해 주면 해 줄 때까지 귀찮게 굴 걸 알기에 대충 장단을 맞춰 준 것뿐인데, 자꾸만 헛다리를 짚는 게 어이가 없어 지한이 실소를 터뜨렸다.

“어어? 너 찔려서 웃은 거지? 여러분~ 지한이 연기 진짜 못 한대요~”

“미치겠네, 진짜.”

율무는 지한이 자신의 마니또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한편 율무의 진짜 마니또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기내 캠을 촬영 중이었다.

“청 씨. 오늘 기분이 많이 좋아 보이는데.”

“당근 하지! 비행기는 많이 타 봤는데 멤버들이랑 여행 가는 거는 처음이어서 너무 신나!”

“저번에 우리 홍콩 갔잖아. 연말 시상식.”

“그거는 무대하러 간 거잖아. 여행 아니야.”

청은 여행 철학이 확고한 편이었다.

뒤이어 가방에서 네모난 물건을 꺼낸 청은 카메라 앞으로 내밀며 자신의 소지품을 소개했다. <일본 여행의 모든 것>이라고 적힌 가이드 책이었다.

청은 멤버들과 떠나는 첫 여행에 너무 들뜬 나머지 가이드 책을 보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고 했다.

“어젯밤에 민성이랑 가고 싶은 집 골랐어요! 여기도 가고, 여기도 가고, 이거도 꼭 먹어!”

“타코야끼?”

“응! 나 한 번도 안 먹어 봤어.”

“그래. 가서 먹어 보자.”

민성이 웃는 얼굴로 청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아까 차에서 발견했는데 도쿄에는 유명한 귀신의 집도 있어! 세계에서 제일 큰 고스트 하우스래.”

“도쿄? 오사카 아니고?”

“응! 여기는 백야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할 곳이야.”

“맞아. 거기 가면 백야 죽을지도 몰라.”

민성이 옆을 보자 유연과 캠을 찍고 있는 백야가 보였다.

“이제 곧 비행기가 출발한대요.”

“멤버들이랑 좋은 추억 쌓고 오겠습니다. 그런데요, 백도 씨.”

“넵.”

백야가 카메라를 빤히 쳐다보며 대답했다.

“안전벨트 매세요.”

“아!”

백야가 놀란 눈을 뜨며 허겁지겁 벨트를 찾아 맸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머쓱해하던 백야는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럼 저희는 오사카에서 만나요. 안녕히 계세요.”

* * *

간사이 국제공항.

공항을 여유롭게 빠져나온 데이즈는 준비된 차량에 올라탔다.

멤버들의 화려한 외모와 각종 촬영 장비, 함께 이동하는 스텝들 덕분에 이목이 집중되긴 했으나, 일본에서는 정식 데뷔 전이라 데이즈를 알아보는 이들은 없었다.

“여러분~ 드디어 오사카에 도착했습니다!”

본격적인 촬영을 알리는 율무의 오프닝에 멤버들이 환호했다.

버스 뒷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데이즈는 수학여행이라도 온 것처럼 들떠 있었다.

“여러분, 오느라 힘들진 않으셨나요?”

“비행기 타서 좋았어요~”

PD의 질문에 율무가 센스 있게 대답했다.

시즌 2는 해외 촬영으로 진행되는 만큼 사전 답사가 중요했다.

제작진은 이미 두 차례의 사전 답사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당일 현장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먼저 도착해 촬영 2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데이즈가 일본에서는 정식 데뷔 전이라고는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K-POP 열풍이 무섭게 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저는 4박 5일 동안 데해데 시즌2 촬영을 담당하게 된 김 PD입니다. 반갑습니다.”

김 PD의 인사에 멤버들이 앉은 자세로 허리를 꾸벅였다.

“먼저 간단히 소개를 드리자면 이곳은 일본의 오사카고요. 일본 제2의 도시로 우리나라의 부산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어요.”

“부산 맛있는 거 엄청 많아! 우리 가족 한국 왔을 때 민성이 부산 데려가 줬어요!”

“오~ 기억하네?”

“당근 하지!”

청의 대답에 민성이 뿌듯해했다.

“맞습니다. 오사카도 유명한 먹거리가 많은데요. 여러분에게 최고의 여행을 선사해 드리기 위해 저희 제작진이 딱 알맞은 코스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으아아~ 저 너무 기대돼요.”

보조개를 띤 유연이 발을 동동거리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먼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을 텐데 점심 식사로 먼저 이동할게요.”

카메라는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라는 말에 백야가 앞자리에 앉은 율무의 정수리를 톡 건드렸다.

문득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점심 메뉴가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우리 뭐 먹으러 가?”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물어봐 줄까?”

“응.”

고개를 끄덕이자 백야의 갈색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백야는 NAN 활동을 하는 동안 빨간색을 유지하기 위해 3일에 한 번꼴로 염색을 해 왔는데, 잦은 염색으로 머릿결이 상해 출국 하루 전날 어두운색으로 덮어 버렸다.

시야에 걸리는 머리카락이 어색한지 백야가 앞머리를 잡아당기며 딴청을 부렸다.

그사이 팔을 들며 제작진의 관심을 모은 율무는 백야가 준 임무를 착실히 수행했다.

“PD님~ 저 질문 있어요. 저희 지금 뭐 먹으러 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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