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7화
촬영은 일곱 팀으로 나뉘어 움직이기로 했다.
촬영 본부의 역할을 할 PD와 메인 카메라 감독님은 광장에서 멤버들을 기다리기로 했고, 나머지 스텝들을 여섯 팀으로 나뉘어 멤버들과 움직이게 됐다.
“그럼 마음껏 놀다 오세요.”
합법적 자유 시간에 멤버들이 신이 나 기념품 샵으로 달려갔다.
선두에 선 민성이 동생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교복 찾아, 교복.”
일사불란하게 흩어지는 멤버들 사이로 어리둥절한 복숭아가 질질 끌려다녔다.
일전에 팬 사인회에서 <데이즈 유앱 버킷 리스트>를 받은 적 있던 민성은 ‘교복 입고 놀이동산 유앱 해 주기’를 이곳에서 수행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물론 어제 오후, 백야가 낮잠을 자는 사이 상의된 내용이라 복숭아는 모르는 게 당연했다.
“갑자기 교복은 왜….”
사정을 모르는 백야는 멤버들이 코스프레에 진심이구나 넘겨짚을 뿐이었다. 이곳은 마법 학교로 유명한 헐리웃 영화 제작사의 테마파크였으니까.
“찾았다! 여기!”
번쩍 손을 든 유연이 멀리서 멤버들을 부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빨간색 망토가 들려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더워 보였다.
‘와……. 벌써 더워.’
교복이라는 게 저걸 말하는 거였나.
백야는 망토를 입을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기분이었다.
“나는 노란 거!”
가까이 다가가자 청이 노란색 안감의 망토를 들고 있었다.
“에헤이~ 그거 지지야. 쓰읍. 청이 내려놔.”
“네가 몬데!”
“너는 누가 봐도 이거야. 관상학적으로도 이게 맞아.”
노란색 망토를 빼앗은 율무가 대신 초록색 망토를 들려 주었다. 그러고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노란색은 백야가 좋겠다며 강제로 안겨 주었다.
“나는 노란 거 싫어. 내가 초록색 할래.”
“그래, 바꾸자!”
청이 신이 나서 망토를 건네주려는데 지한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청의 손목을 잡아챘다.
“아니? 쟤는 절대 초록색을 입을 수 없어.”
쓸데없이 진지한 얼굴에 청이 주춤하며 물러섰다.
“관상학적으로 불가능해.”
“역시~ 지한이가 뭘 좀 아네.”
왜 저래…. 그냥 입고 싶은 거 입으면 되는 거지.
영화를 보지 않은 머글은 눈앞의 오타쿠들이 왜 망토 색깔 하나로 야박하게 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기숙사 분류 모자를 자처한 율무와 지한에 의해 데이즈의 망토 색깔이 정해졌다.
유연과 율무는 빨간색, 지한과 청은 초록색, 민성은 파란색, 백야가 노란색 망토를 입게 됐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데이즈는 30분 만에 기념품 샵을 나올 수 있었다.
“나도 초록색 입고 싶었는데….”
민성이 지한과 청의 뒷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이후, 가능하면 2인 1조로 움직여달라는 부탁에 데이즈는 두 명씩 나뉘어 움직이게 됐다. 놀이 기구를 못 타는 백야와 민성은 당연히 한 조가 되었다.
“더워…….”
“그 정도야?”
건물 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나와 보니 날씨가 꽤 더웠다. 한국과 비슷한 날씨였지만 습도가 높은 섬 기후에 체감 온도는 훨씬 높았다.
“물이라도 마실래?”
백야가 고개를 끄덕이자 민성이 가판대로 이끌었다. 더위에 취약한 개복치가 흐물거리며 따라갔다.
‘그래도 여름용 망토라 다행이지….’
쿨 소재가 아닌 다른 재질이었다면 기념품 샵을 나오는 순간 스트레스 지수 100%로 돌연사 각이었다고 확신했다.
“마셔.”
죽어 가는 개복치를 위해 민성이 얼음물을 공수해 왔다.
목이 말랐는지 반병을 그대로 비워 내는 모습에 민성이 내심 놀라워했다.
“목이 마르면 말을 하지 그랬어.”
“형도 마실래?”
“아니야. 천천히 마셔.”
헤어스타일 때문에 더 더운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민성이 백야의 앞머리를 넘겨 주었다.
물을 가득 머금어 빵빵해진 얼굴이 뒤로 기우뚱 기울었다가 돌아왔다.
“더위 많이 타는 건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그냥 옷 벗을래?”
“아니야, 입어.”
물 한 병을 순식간에 비워 낸 백야의 볼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기껏 낮춰 놓은 스트레스 지수는 습한 더위에 빠르게 70%를 넘겼다. 정직한 몸도 슬슬 이상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충 적당한 타이밍에 빠져야겠다.’
백야는 엔딩을 본 후 이곳의 제가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만에 하나 민성에게 트라우마를 안겨 주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형, 어디 먼저 가 볼래?”
“음…. 키즈 파크?”
“그런 건 없는데.”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환기시킨 민성이 이번에는 제대로 된 목적지를 골랐다.
“여기 어때. 매직 월드.”
저희가 입은 망토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라 하자 백야도 찬성했다.
* * *
매직월드는 여름인데도 지붕에 눈이 소복했다. 물론 진짜 눈은 아니었지만.
“어디 보자~ 기차가 있는 곳으로 가면 될 것 같은데.”
“저기 있다!”
백야가 입구의 오른쪽을 가리키자 관광객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도에 마법 학교로 가는 급행열차 이미지가 크게 박혀 있었으니, 저 기관사가 미션을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민성과 하이파이브를 한 백야가 줄의 제일 끝으로 합류했다. 두 사람을 따라다니는 카메라와 스텝들 때문에 관광객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너 선크림 발랐지?”
“발랐어.”
뜨거운 햇빛에 복숭아가 까맣게 타 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하는 눈치였다.
‘얼굴이 많이 빨갛나.’
볼 위로 손등을 가져다 대자 뜨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안 그래도 하찮은 목숨인데 습한 날씨가 백야의 수명을 더욱 단축시키고 있었다.
“숙소 들어갈 때 오이 사 가자.”
“오이는 뭐 하게?”
“내가 팩 해 줄게.”
민성과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차례는 빠르게 다가왔다.
일본어라고는 아리가또와 스미마셍밖에 모르는 한국 아이돌은 어색한 몸짓으로 인사를 건넸다.
“하, 하이! 어……. 백야야 뭐라고 해야 되니.”
“나 일본어 몰라.”
“미, 미션! 위 알 미션.”
우리는 미션이라며 짧은 지식과 바디랭귀지를 뽐내자 기관사가 양피지 카드를 내밀었다.
[교장 선생님의 카드를 찾아라!
힌트 : 개구리 초콜릿]
이게 무슨 소리야.
암호 같은 글자에 머글이 얼굴을 찌푸리는 반면 민성은 무릎을 내려치며 소리쳤다.
“나 알겠다! 가자!”
“알겠다고? 이것만 보고?”
“너 돈 얼마 있어? 일단 가진 거 다 내놔 봐.”
뭐야 이 형…….
미션 물어보라 등 좀 떠밀었다고 동생 코 묻은 돈이나 뺏어 가려 하고 말이야.
불신 가득한 눈이 민성을 향했다.
“아니, 너 삥 뜯으려는 게 아니라 우리 초콜릿 사러 가야 해서 그래.”
“…….”
“일단 내 돈으로 살 거야. 근데 앞으로 어떤 미션이 나올지 모르니까 서로의 재정 상태를 확인하고 가자는 거지…. 나 못 믿어?”
“난 또.”
백야가 순순히 용돈 봉투를 넘겨주었다. 빳빳한 봉투 안에는 오늘 아침에 지급받은 3천 엔이 들어 있었다.
“그냥 형이 다 들고 있어.”
백야가 깔끔하게 경제권을 넘겼다.
대충 예산을 파악한 두 사람은 알록달록한 과자 상점으로 향했다. 개구리 초콜릿을 구매하기 위함이었다.
망토를 차려입은 두 사람이 카메라를 대동해 들어오자 시선이 집중됐다.
“형, 여기 청이 오면 눈 돌아가겠다. 그 팀 거지 되겠어.”
군것질에 감흥이 없는 백야도 예쁜 포장과 화려한 매장 디스플레이에 혹할 뻔했다.
“괜찮아. 거기 지한이 있잖아. 너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골라. 우리도 용돈 꽤 있어.”
민트색 선반으로 채워진 상점에는 각종 젤리와 사탕류들이 즐비해 있었다.
개굴개굴-.
그러던 중 어디선가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청각에 의존해 매장을 반 바퀴쯤 돌았을 때야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초콜릿 코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백야야 이거야.”
민성이 고딕 문양의 오각형 상자를 집어 들었다. 뿔 모양의 입체적인 포장 위로 ‘개구리 초콜릿’이라는 글자가 영어로 적혀 있었다.
“쉬운데?”
“그러게.”
초콜릿 한 통을 구매한 두 사람은 곧장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리곤 한적한 벤치에 자리 잡아 초콜릿 언박싱을 시작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초콜릿 상자에서는 교장 선생님이 아닌 웬 문어 머리 빌런의 카드가 나왔다.
“이 사람이 교장 선생님이야?”
“아니. 그냥 악당이야.”
뒤늦게 든 생각이지만 무슨 자신감으로 한 번에 뽑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의문이었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 두 사람은 다시 한번 과자 상점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두 개를 사서 돌아온 백야와 민성은 2차 언박싱을 시도했다.
“이 사람이 교장 선생님이야?”
“글쎄…….”
“그럼 이거?”
“그건 누가 봐도 그냥 개구리 카드 아니니?”
“…….”
떼잉. 머글이란.
마법사의 눈이 머글을 탐탁지 않아 하고 있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봐. 내가 이번에는 아예 10개 사 올게.”
“응.”
민성이 종이봉투 가득 개구리 초콜릿을 담아서 돌아왔다.
3차 언박싱을 하기에 앞서, 그는 덤블문을 모르는 머글을 위해 잠시 매니저의 핸드폰을 빌려 왔다.
“이 사람이 교장 선생님이야. 흰 수염. 이제 알겠지?”
“응. 그 사람 나오면 말할게.”
대망의 3차 언박싱이 시작됐다.
“제발. 제발…! 에잇!”
“또 꽝이야? 제대로 골라온 거 맞아?”
“골고루 가져왔는데 이상하다….”
“근데 형, 개구리가 자꾸 녹아. 형도 좀 먹어….”
“아니야, 너 먹고 있어. 이번에는 진짜 덤블문 나온다. 진짜야.”
눈이 쌓인 쓰레기통 옆.
기다란 벤치에 마주 앉아 카드 뽑기를 하는 미소년을 사람들이 신기하게 바라봤다.
백야, 민성 팀을 따라온 남경이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을 말려 보지만, 야외 촬영은 통제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 망토 입은 미소년들이 벤치에서 개구리를 뽑고 있어! 너무 귀여워서 눈물이 사방으로 날아갔습니다( ˃̣̣̥ω˂̣̣̥ ) 카메라도 엄청 많은데 연예인인 걸까? #오사카 #테마파크 (백야 민성 사진.jpg)
남경이 아무리 노력해도 백야와 민성의 초콜릿 깡은 알음알음 퍼지고 있었다.
물론 덕진과 다른 스텝이 붙어 있는 쪽의 상황도 별반 다르진 않았다.
- 테마파크에 잘생긴 슬리데린이 나타나 티라노를 쫓고 있습니다(*ω* ) 매우 행복해 보여! 그런데 티라노가 압도적으로 빠르다.. 어떤 촬영이라도 하는 걸까? (티라노 쫓아가는 청 사진.jpg)
└ 함께 있는 사람은 다가갈 수 없어(。•́︿•̀。) 동료에게는 상냥하지만 마주친 눈빛에 무릎 꿇습니다 (아이 컨택 지한 사진.jpg)
- 젖은 미소년에 충격! 엄청난 섹시함에 숨을 쉴 수 없습니다(눈물 이모티콘) 내 생각이 맞다면 한국의 아이돌이 틀림없어。・゚゚・(>д<)・゚゚・。 어딘가에 복숭아 군도 있는 걸까? (율무 유연 사진.jpg)